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
에릭 와이너 / 어크로스 / 2021.4.28
본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저자 에릭 와이너 (Eric Weiner)의 의도대로 따르다보니 어느순간 주마간산 (走馬看山) 하듯 훑어보게 되었다. 본서는 어렵게 말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쓰였다. 본서의 구성은 총 3부로 열네 번의 기차여행 또는 산책하듯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열 네 철학자들을 만나는 여정중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팁을 준다.

○ 목차
들어가는 말: 출발
1부 새벽 :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 3 루소처럼 걷는 법 / 4 소로처럼 보는 법 /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2부 정오 :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3부 황혼 :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나오는 말: 도착
○ 저자소개 : 에릭 와이너
에릭 와이너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다. 무엇보다 철학적 여행가다. 저서로 베스트셀러 《행복의 지도》와 《신을 찾아 떠난 여행》 등이 있다. 두 책은 스무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NPR의 해외통신원으로 일했으며 〈워싱턴포스트〉와 여행잡지 〈어파〉 등에 기고했다. 아내와 딸, 사납게 날뛰는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워싱턴D.C.에 살고 있다.
– 역자: 김하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뒤 지금은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식사에 대한 생각》,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외 다수가 있다.

○ 인상깊은 내용
1부 새벽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루소처럼 걷는 법, 소로처럼 보는 법,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을 들려준다.
①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온전한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 마르쿠스의 철학은 마르쿠스가 상담가 역할도 하고 환자 역할도 하는 심리 상담이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한다. 마르쿠스는 해야 할 중요한 일들과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사상들이 이불 밖에 있음을 안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은 외부에서 오는 ‘의무’와는 다르게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②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우리는 소크라테스 덕분에 전과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소크라테스는 가는 곳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진리의 표현이 자신의 언어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직감할 때 통찰의 순간이 찾아온다. 좋은 질문은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하나의 목표가 있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③루소처럼 걷는 법: 장 자크 루소는 철학자, 소설가, 작곡가, 에세이 작가, 식물학자, 독학자, 도망자, 정치 이론가, 마조히스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산책자였다. 걷기는 자연스러운 행위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걷기는 누구에게도 평등하다. 말년이 다가올수록 루소의 걸음은 더 부드럽고 낙천적인 성격을 띠었다. 옛날과 같은 자기 연민과 피해망상의 흔적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지만 절박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루소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무언가를 찾거나 철학적 주장을 하기 위해 걷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근대에 데카르트가 머리의 철학자였다면, 루소는 심장의 철학자였다. 루소의 주장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자연과 다시 동조하자는 것이었다. 걷기는 움직임 속의 성전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평화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함께 움직인다.
④소로처럼 보는 법: 소로의 저서 ‘월든’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소로는 신뢰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감각은 우리가 가진 전부인데 최대한 잘 사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본다는 것은 사진보다는 언어에 가깝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보는 것의 역학은 양쪽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⑤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쇼펜하우어의 암울한 세계관은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를 읽기 훨씬 전인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감사와 연민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분리된 것으로 경험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동양의 신비주의자들처럼 이러한 인식이 환상이라고 믿었다. 매일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처럼 정신에서 구성된, 즉 인지적 세계를 경험한다. 이 세계는 실재한다. 호수의 표면이 실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리처럼 매끈한 수면이 호수의 전부가 아니듯이, 인지적 세계 역시 실재의 일부만을 나타낸다. 호수의 깊이를 설명해내지는 못한다. 쇼펜하우어는 음악 외의 다른 예술은 그림자를 이야기할 뿐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본질을, 물자체를 이야기하고, 그러므로 모든 삶과 존재의 가장 내밀한 본성을 표현한다. 진정한 듣기를 위해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아무런 판단 없이 음악을 들을 때 “절대적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철학자들이 저 바깥세상을 설명하려 시도한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내면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이 세계도 알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2부 정오에는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간디처럼 싸우는 법,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알려준다.
⑥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시기는 치료 용도의 철학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헬레니즘 시대라고 불리는 그 시기에 사람들은 오늘날 배우자나 통신사를 고를 때처럼 열정적이고 신중하게 철학 학파를 골랐다. 먼저 그는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사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왜 관심이 있겠는가? 신으로 사느라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신은 유명인사와 비슷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 positive affect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 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 平靜 주의자’였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올바른 마음가짐만 갖춘다면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 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⑦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시몬 베유의 당부는 더 단순하지만 결코 더 쉽진 않다. 베유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아무 관심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베유가 생각한 관심은 그동안 내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르다. 관심은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많은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한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베유의 급진적 공감 능력은 관심에 대한 베유의 급진적 견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유는 관심을 어떤 수단이나 기법으로 보지 않았다. 베유에게 관심은 용기나 정의와 다르지 않은, 똑같이 사심 없는 동기가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진정한 관심이라면 그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인정하고 공경해야 한다.
⑧간디처럼 싸우는 법: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 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거세했다고 믿었다. 그는 인도의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남성성은 좀 달랐다. 간디가 생각한 남성적 힘은 폭력이 아닌 그 반대에서 나왔다. 간디는 부당한 법에 복종하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겼다. 그런 법에는 반드시 맹렬한 힘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비폭력적 힘으로 말이다. 간디는 그러려면 진정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디는 폭력을 혐오했지만 그가 폭력보다 더 싫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겁함이었다. 둘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간디는 폭력을 선택했다. 간디는 ‘바가바드기타’를 다르게 읽었다. 그는 ‘오늘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묘사한 하나의 비유라고 말했다. 진짜 전쟁터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아르주나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기초적인 본능에 굴복하는가, 아니면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하는가? 간디는 ‘바가바드기타’가 사실은 비폭력을 향한 찬사라고 생각했다. 한편 간디는 자신이 진실의 일부만을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고 자기 입장을 점검할 것을 말한다.
⑨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공자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인만큼 중요한 단어는 없었다. 인은 ‘논어’에 105번 등장하는데, 그 어떤 단어보다 많은 횟수다.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자 자신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연민, 이타주의, 사랑, 어짐, 진정한 선, 온전한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중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번역은 ‘인간다운 마음’이다. 공자가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다. 이 이유는 인과 친절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목표는 인성 개발, 즉 도덕적 역량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효도만큼 중요한 역량은 없었다.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공자의 ‘공부‘는 기계적 암기를 뜻하지 않는다. 심지어 배움 그 자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공자에겐 더 깊은 뜻이 있다. 바로 도덕적 자기 수양이다. 친절은 힘든 것이다. 친절에는 감정 이입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유교 의례가 필요하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친절은 힘든 것이다.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⑩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쇼나곤은 한 길에만 머무르길 거부한다. 그녀는 “세련되고 우아한 것들”에서 “가치 없는 것들”로 방향을 꺾었다가 다시 “진정으로 훌륭한 것들”로 돌아온다. 쇼나곤이 길을 잃은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쇼나곤은 “붓 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뜻의 즈이히츠 隨筆를 하고 있다. 즈이히츠는 일본의 글쓰기 기법 아닌 글쓰기 기법으로, 저자의 눈엔 책이 아닌 책을 쓰기에 완벽한 방식으로 보았다. 즈이히츠를 실천하는 작가는 주제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 지적 가려움을 긁은 다음,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글에 구조를 부여한다기보다는 구조가 스스로 나타나게 한다. 세이 쇼나곤은 자기 렌즈가 투명하고 깨끗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다.
3부 황혼에는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몽테뉴처럼 죽는 법을 통해 중년 이후 노년기의 생각들을 나눈다.
⑪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영원회귀‘라는 생각은 니체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니체가 보기에 춤추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목표를 향한다. 바로 삶의 찬미다. 니체는 그 무엇도 입증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기를, 자기 힘으로, 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기를 원할 뿐이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저자는 니체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안다.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의 모습은 시시포스의 행복이다.
⑫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는 지혜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사실적 지식, 절차적 지식, 인생 전체에 걸친 맥락주의, 가치 상대주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과 혼란을 관리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혼동한다. 스토아철학은 헷갈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간단하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몸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빌릴 뿐, 절대로 소유하지 않는다. 해방감이 느껴진다. 잃어버릴 것이 없다면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할 것도 없다.
⑬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노인들이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이 절망에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스토아학파의 믿음처럼 내가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 전자는 바꾸고 후자는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의 핵심이라면, 노년은 스토아 철학의 지혜를 연습할 수 있는 완벽한 훈련장이다.
⑭몽테뉴처럼 죽는 법: 죽음은 진정한 철학을 가리는 테스트다. 몽테뉴는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했다. 몽테뉴는 죽음을 회피하면 “다른 기쁨까지 전부 사라져버린다.”고 보았다. 몽테뉴는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선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그리고 몽테뉴는 동포인 시몬 베유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제발, 주의 좀 기울여.”
○ 나가며
본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인생의 새벽과 정오, 그리고 황혼에까지 인생에 단계별로 필요한 생각들을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의 속도로 각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들을 느껴 볼 수 있어 좋았다.

임운규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