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말로 표현한 사상은 거짓말이다 : 표도르 이바노비치 쮸체프 시선집
표도르 이바노비치 쮸체프 (츄체프) / 새미 / 2001.4.30
낭만주의 시인 츄체프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형이상학적이며 우주에 대한 범신론적인 개념을 기초하고 있다.
염세적이며, 마니교의 철학같은 그의 시를 만나보자 이 시집은 말의 허상과 힘의 사상을 담은 책이다.
표도르 이바노비치 튜체프 (Fyodor Ivanovich Tyutchev, 러: Фёдор Ива́нович Тю́тчев, 1803년 11월 23일 Ovstug ~ 1873년 7월 15일 푸시킨)는 러시아의 서정시인이다. 모스크바 태생의 귀족 출신으로서 평생을 외교관 생활로 보냈다.
처음에 알렉산드르 푸시킨 그룹의 한 사람으로 출발했으나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후에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소개로 각광을 받았다. 자연을 테마로 한 철학시가 많고 범신론·이원론적이다. 현실 세계와 이를 지배하는 카오스의 바다 대립을 낮과 밤, 빛과 어둠, 선과 악, 사랑과 죽음 등의 상징으로 나타냈는데 후의 상징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목차
- 둥근 하늘이 창백하게
- 말라리아
- 관은 이미 땅으로 내려지고
- 자연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자연이 아니네
- 겨울 마녀처럼
- 지금은 시를 쓸 때가 아니라네
-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고

○ 저자소개 : 표도르 이바노비치 쮸체프 (튜체프 / 츄체프)
1803년 모스크바 근교 옵스투그에서 오래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옵스투그에 있는 가문의 영지에서 보냈다. 그의 가족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입각한 지주의 풍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튜체프는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튜체프 자신 또한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보였다. 그의 가정교사는 시인이자 번역가로 유명했던 라이치(C. E. Raich, 1792∼1855)였는데, 라이치는 튜체프에게 고대문학과 고전 이탈리아 문학을 탐독하게 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튜체프는 라이치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로마시대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그 시를 모방한 시를 쓰기도 했다.
1819년 튜체프는 모스크바대학의 문학창작부에 입학했다. 이때 그는 포고딘(M. Погодин), 셰비레프(С. Шевырев), 오도옙스키(В. Одоевский)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 결과 슬라브주의자로서의 시각을 형성하게 된다. 튜체프는 학업에 정진하면서도 많은 시를 썼다. 하지만 튜체프는 학업을 마치자 뮌헨에 있는 러시아 공관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러시아를 떠난다.
유럽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뮌헨에서 튜체프는 소신 있는 외교관이자 문학 애호가로 알려지면서 사교계의 주요 인물이 된다. 이때 그는 셸링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게 되면서 독일 낭만주의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하이네와는 절친한 친구였다. 튜체프는 하이네의 시를 러시아어로 번역한 최초의 시인이기도 하다. 하이네 외에 실러와 괴테의 시를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한편, 이 당시 튜체프가 쓴 자작시들은 <망원경>, <북방의 선율>이라는 러시아 잡지에 종종 실리기도 했다.

1826년 튜체프는 페테르손(E. Peterson)과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도 튜체프는 다른 여자와 몇 번의 로맨스를 가짐으로써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는데, 그중 데른베르크(E. Dernberg)와의 로맨스는 크게 물의를 일으켜 결국 뮌헨에서 토리노로 좌천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튜체프는 1838년 첫 번째 아내가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배의 침몰로 인해 사망하자 데른베르크와 재혼하고자 했다. 이때 튜체프는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스위스로 갔고, 그 결과 외교관으로서의 자격마저 박탈되기도 했다.
그 이후 몇 년간 독일에 머물러 있던 튜체프는 1844년 러시아로 귀환했다. 그리고 1843년부터 러시아와 서구에 대한 저술에 전념했다. 그 저술에서 튜체프는 러시아와 동유럽의 연합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 슬라브 민족의 통합을 주장했다. 이러한 정치적 견해는 니콜라이 1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황제는 튜체프를 다시 관직에 복귀시켰다. 1848년 튜체프는 페테르부르크 외무부에 특채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서적 검열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튜체프는 곧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거물급 인사가 되었다. 그의 재치 있는 입담과 박식함, 노련한 대화술 등은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그의 시 역시 새롭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850년 <현대인>에 튜체프의 시는 다시 게재되었다. 이와 더불어 네크라소프(Н. Некрасов)의 비평도 실렸다. 네크라소프는 자신의 비평에서 튜체프를 푸시킨과 레르몬토프에 견줄 만한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했다. 이후 투르게네프(И. Турге?нев)의 주선으로 튜체프의 시집이 발간되었다. 당대의 많은 시인들 역시 튜체프를 러시아 최고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1850년은 튜체프의 일생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해다. 이때 그는 거의 딸과 비슷한 나이인 데니시예바(E. Денисьева)를 만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데니시예바와의 사랑은 사교계의 큰 가십거리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데니시예바는 자신의 가문에서 축출되기까지 했다. 데니시예바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는 튜체프를 사랑하는 대가를 처절하게 치러야 했으며, 1864년 짧았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인은 폐렴이었다.
데니시예바가 죽고 난 후 튜체프는 깊은 죄의식 속에 살았으며, 데니시예바를 향한 그리움과 죄의식을 시로 풀어냈다. 러시아에 머물 수 없어서 1년간 외국에 머물기도 했다. 방황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또 다른 슬픔을 경험해야 했다. 데니시예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명의 아이가 죽었고, 어머니와 유일한 동생이 연이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심정은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아우에게… (Брат, столько лет сопутствовавший мне…)>(1870)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에서 튜체프는 이미 자신의 삶도 거의 끝났음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3년 후, 1873년 6월에 사망했다.

- 약사
1803년 11월 23일 아룔 현의 오브스뚜그 마을의 전통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남.
1813년 11월 12일 쮸체프의 시중 가장 오래된 시로 인정되는 <사랑하는 아빠에게>를 씀.
1815년 그의 시적인 재능이 완연히 드러나는 시 ?1816년 새해에?를 씀.
1816년 모스끄바 대학에 다니기 시작. 가정과 대학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음.
가정 교사 라이히는 나중에 그의 친구가 되어 후원 역할을 하였음.
1818년 <러시아문학 애호가협회>의 편집 동인으로 선출됨.
1819년 <러시아문학 애호가협회>의 회보에 <에쩨나뜨에게 보내는 고라찌의 서한>을 기고.
1822년 외무성에서 근무 시작.
1825년 첫 번째 우수작품 <섬광>이 문학 작품집 『우라니야 Uraniya』에 발표됨.
1826년 엘레오노르 피터슨과 결혼.
1827년 관념론철학자인 W. J. 프리드리히 및 셀링과 친분을 쌓음.
1828년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와 사귐.
1836년 쮸체프의 시가 적힌 노트가 우연히 뿌쉬낀의 손에 들어가게 됨.
뿌쉬낀은 경탄한 나머지 자신의 『동시대인』 지에 쮸체프의 시 16편을 게제.
이를 계기로 쮸체프는 유명해짐.
1839년 스위스의 베른에서 에르네스티나 도른베르끄와 결혼.
1844년 뮌헨에서 소책자 『구스타프 콜브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러시아와 독일』)가 출판.
1848년 외무성 검열관의 책임자가 됨.
1848년 <러시아와 혁명>이라는 기사 작성. 이 기사는 1849년 5월 파리에서 소책자로 출판.
1849년 오브스뚜그로 떠남. 쮸체프의 작품 활동에 있어 새로운 시기가 시작됨.
이 해 가을 <러시아와 외국>이라는 주제로 논문 작업을 하였지만 끝을 맺지는 못 함.

1850년 1월 『동시대인』지에 쮸체프에 대한 N. A. 네끄라소프의 기사가 실 렸으며 이로 인해 쮸체프의 지명도가 더욱 높아짐. 프랑스의 『죠 몬트의 레뷰』 라는 평론 잡지에 쮸체프의 논문 ?로마법 왕권과 로마의 문제?의 장이 실림.
1853년 뻬쩨르부르그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떠나 같은 해 9월 9일 돌아옴.
1853년 크림 전쟁으로 발전한 <러시아?터키의 전쟁>에 대한 왕의 선언문 포고.
1854년 쮸체프의 시집이 『동시대인』지의 부록 형태로 출판됨.
1854년 쮸체프의 시들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단독 시집이 출판됨.
1855년 오브스뚜끄를 여행하였으며 ?이 가난한 마을들……?이라는 시를 씀.
1856년 레프 똘스또이와 만남.
1857년 국외 정치 잡지의 편집자로 추천되어 『러시아 검열에 대한 편지』를 편찬.
1858년 외국문서검열위원회 의장이 됨
1861년 쮸체프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농노 해방에 대한 성명서가 발행됨.
1864년 제니소바는 쮸체프 사이에 낳은 딸과 두 아들을 남기고 폐결핵으로 사망.
1873년 오랜 고통 끝에 황제 마을에서 뇌일혈로 생을 마감.
– 역자: 조주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슬라브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학술위원을 역임하였고, 2000년 2월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슈킨 메달을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 ‘러시아 시강의’ 등이 있으며, ‘시의 이해와 분석’, ‘러시아 현대비평이론’, ‘러시아 고대문학 선집’, ‘검찰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주인공 없는 서사시’, ‘타라스 불바’, ‘만젤쉬땀 시선집’, ‘보리스 고두노프,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외 다수의 책을 번역하였다.
○ 책 속으로
골짜기 너머로 살며시 불어오는
머나먼 종소리
나뭇잎 소리 사이로 사라져 가는
백학들의 울음소리
넘쳐흐르는 봄 바다 처럼
환히 빛나며 지지 않는 하루-
조용히 서둘러
언덕 위에 눕는 그림자 — p.17

○ 출판사 서평
시집『말로 표현한 사상은 거짓말이다』는, 한국 러시아어문학회 회장과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세계문학 연구소의 학술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조주관이 번역한 책이다.
조주관은 표도르 이바노비치 쮸체프와 함께 불라뜨 아꾸자바 (『나의 사랑 나의 인생』), 벨라 아흐마둘리나 (『비 이야기』)를 함께 엮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쮸체프는 대표적인 형이상학시인, 철학시인, 사유시인, 명상시인으로 자리 매김 되어 있다. 형이상학적 시인이란 본래 17세기 영국의 존 단을 중심으로 일군의 시인들이 지향해 나갔던 시 창작의 한 흐름을 일컫는 말이었다. 처음에 이들의 시는 너무 난해하여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세기 모더니즘의 대두와 더불어 재평가되면서 이전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형이상학적 시인들은 시를 통하여 그들 나름의 독특한 철학적 세계관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쮸체프는 영국의 형이상학적 시인들과 유사한 길을 걸어가면서 그 나름대로 독특한 시적 양식과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언제나 철학적 사유의 울림을 지니면서 후대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시는 상징주의 시의 맹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시인들에게 재조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쮸체프는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사유 시인으로 회자되었고, 그의 시적 스타일은 후대 시인들에게 새로운 경향의 시를 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쮸체프는 하나의 화두를 설정하고, 그에 대해 깊은 사유를 펼친다. 사물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하나의 철학적 명제가 되고, 그에 대한 물음은 시적 표현으로 이어진다. 시 Probleme (1833)는 사물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돌이라는 사물을 통해 존재의 의문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돌은 시인에게 던져진 하나의 화두이며 명제이다. 이 돌은 인간이 존재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수많은 물음에 대한 상징이다. 그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양상, 인간에게 다가오는 문제들의 영원히 반복되는 양상을 시적 장치를 통해 제시만 할뿐이지, 그 문제들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쮸체프의 철학적 사유의 큰 줄기는 인간 존재에 대한 것이다. 물론 존재의 문제는 쮸체프의 시 이전에 철학 전반의 근원적인 명제이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인간 존재의 분열적인 모습이다. 그의 [시 보라, 저 광활한 강물을]은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인간의 존재의식을 시적 사유를 통해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얼음 덩어리들은 태양 빛을 받아 녹아들면서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부유해 간다. 결국 그들은 개체의 색깔을 잃어버린 채, 하나의 거대한 심연으로 합쳐진다.
시의 초반부에서부터 얼음 덩어리들은 그저 하나의 자연으로 묘사되다가 나중에는 인간 존재인 나와 연결된다. 이 시에서 자연 묘사는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문제로 이어지며 철학적 사유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시인의 의식이 엿보인다.
그러나 유한성에 대한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판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유한한 세상을 부유하며 마침내 이르게 되는 것은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숙명의 심연”인 것이다. 사물의 개체성이 상실되고 그 대신 자연이라는 초언어적이고 사심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숙명인 것이다.
쮸체프의 철학적 사유 가운데 중요한 것은 시인의 언어 의식이다. 그는 언어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언어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창작이라는 언어행위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언어에 대한 그의 이중적 태도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시인의 부정 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시는 (1830)이다.
이 시는 언어에 대한 시인의 부정적 의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말해 버린 생각은 거짓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는 러시아 상징주의에까지 큰 영향력을 미쳤을 정도이다. 이 시는 언어에 대한 시인의 의식과 더 나아가 시에 대한 자신의 의식을 직접 서술하고 있는 일종의 메타시로 볼 수 있다. 쮸체프는 언어를 매개로 한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다른 시인들의 시에 비해 감탄문이나 의문문이나 명령문이 많다. 직설법과 명령법은 제르좌빈의 문체적 특성에 가깝고, 의문문이나 감탄사는 쥬꼬프스끼의 문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쮸체프는 어떤 의미에서 고전적인 수사적 서술을 사용하고 있다. 의문문으로 처리하는 문장 대부분에서 의문의 대상은 신도 타인도 아니다. 그 의문은 오로지 화자 자신의 의식을 향해 던져진다. 감탄사로 끝나는 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장 표현은 그의 시가 그의 사유의 공간이요 시간임을 말해준다. 시인은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유를 지속시켜 나가고자 한다.
쮸체프는 어려운 형이상학적 언어나 난해한 상징적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존재의 참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가 사유양상을 보여주는 기법 가운데 주요한 하나는 비유법이다. 그가 좋아하는 비유법은 상징, 은유, 의인법 등이다. 그는 편견을 갖고 시어를 대하지 않고 다양한 수준의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그의 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자연과 사랑은 시어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주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자연의 모든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는 사랑의 감성적 모티프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시인의 철학적 사유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다. 그에게 사물은 용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사물을 나누고 그것들에서 성분을 분리해낸다. 그는 사물을 분리하고, 다시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조각난 것들을 결합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