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의 ‘구세군 160주년’ 기념 메시지
“주님, 오늘 우리를 이 시대의 구세군으로 부르소서”

2025년은 구세군이 창립된 지 16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1865년, 영국 런던의 동부 빈민가에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목사가 시작한 구세군 운동은 지난 160년 동안 세상의 어두운 골목 곳곳에서 희망과 구원의 빛을 전해왔다.
이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신앙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 전환점에서 구세군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그 역사 속에서 드러난 복음의 본질과 시대적 소명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신앙의 방향을 재확인해야 한다.
복음은 언제나 시대의 상처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잃어버리기 쉬운 복음의 본래적 힘은, 고통의 한가운데서 울려 퍼질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구세군은 바로 그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온 ‘하나님의 군대’이다. 구세군의 역사는 단순한 구호활동이나 자선의 역사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사랑을 실현해가는 선교적 유산이다.

구세군의 어제 (The Salvation Army, Yesterday)
1865년, 영국 런던의 동부 빈민가에서 윌리엄 부스는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복음을 외쳤다. 그는 당시 교회가 외면하던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알코올 중독자들, 여성들, 아동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다. 산업혁명은 기술과 경제 발전이라는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는 아동 노동, 환경 파괴, 인간 소외와 같은 고통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 빈민들은 삶의 질적 하락을 경험하며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전통적인 언어로 복음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스는 기존 교회의 한계를 인식하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의 사역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전 존재를 회복시키는 실천적 복음의 형태로 나타났다.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이사야 58:7)는 구세군의 정체성과 사명을 명확히 드러낸다. 단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구세군의 어제는 바로 이처럼 고통의 현장에서 시작된 실천적 복음의 발자취였다.
구세군은 신학적으로 웨슬리안주의(Wesleyan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전통은 개인의 구원과 성화,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믿음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세군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전인구원(Holistic Salvation)’이라는 비전을 내세우며 사역의 방향을 설정했다. 헬라어 ‘소테리아(soteria)’는 단순한 죄 사함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 자유와 해방을 포함한 총체적 구원을 의미한다. 구세군은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몸, 정신, 사회 전체의 회복을 지향한다. 복음은 단지 교리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회복이어야 한다. 복음은 고통받는 이웃과의 동행 속에서 가장 진실하게 드러난다. 구세군의 어제는 바로 그 동행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실천적 복음의 살아있는 전통이 되었다.

구세군의 오늘 (The Salvation Army, Today)
160년이 지난 지금도 구세군은 여전히 거리로 나아가고 있다. 긴급 구조, 재난 대응, 노숙자 쉼터, 중독 회복 프로그램,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소, 고령자 돌봄, 아동 복지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 사회의 소외된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있다. 구세군은 말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실천적 복음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강력하게 증거하는 생명의 복음이다. 교회가 점점 제도화되고, 신앙이 형식화되기 쉬운 오늘날, 구세군의 사역은 진정한 복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이사야 58:8-9)는 말씀은 구세군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병원의 침상에서, 교도소의 절망에서, 중독자들의 눈물에서, 거리의 벤치에서 더 강하게 역사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성서의 핵심 주제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이자, 기독교인의 희망이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하나님 나라는 병원의 침상, 쉼터의 구석진 방, 노숙인의 벤치, 중독자의 눈물 속에도 임한다. 말씀은 교회 안에 머물 때보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더욱 강력하게 역사한다.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작은 실천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다. 오늘날 구세군은 사회사업단체가 아니라, 복음을 실천하는 선교 공동체이다. 구세군의 표어인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빵”은 그 사명의 상징이자 핵심이다. 빵만 가지고 가면 구제이고, 성경만 가지고 가면 전도이지만, 두 손 모두 가지고 가면 그것이 선교이다. 선교는 단순히 이론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랑의 옷을 입고 행동으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속에서 복음은 사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며,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열어간다.

구세군의 내일 (The Salvation Army, Tomorrow)
구세군의 미래는 단지 조직의 확장이 아니라, 복음의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앙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하는가? 다시 거리로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교회가 세상과 단절된 성역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현장이 될 수 있을까? 구세군의 내일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복음의 여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자와 함께 울고, 외로운 자 곁에서 머물며, 구조적 악에 맞서 싸우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거리로 나아갈 사람을 찾고 계신다. 교회 안에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실천하는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다.
“주린 자에게 네 마음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10-11) 이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어지고 있다.
복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눈물 속에, 외로움 속에, 억압받는 이웃 속에 살아 있다. 우리가 그곳으로 걸어 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구세군이 될 수 있다. 160년 전 시작된 거리의 복음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구세군의 내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혹은 편안한 신앙생활 속에서 자족하고 있다면, 복음은 다시 우리를 깨워 도전할 것이다. 복음은 안주하지 않고, 항상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간다. 구세군은 그 복음을 따라 오늘도 전진해야 한다. 사람들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주님, 오늘 우리를 이 시대의 구세군으로 부르소서”


구세군 호주 Chatswood Corps 김환기 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