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3)
<목사님, 명예박사 학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호주에서 이민자들과 함께 인생과 신앙을 나누어 온지 한 15년 쯤 되었고 내 나이도 어언 50을막 넘어섰을 때였다. 이름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한 후배 목사가 미국에서 찾아왔다. 그가 번역한 책에 사인도 해서 가지고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자신이 이사로 있는 미국의 어느 신학대학에서 나에게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주려고 한다면서 사양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 학교에 장학금 조로 약간의 기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도 했다. 기분이 좋은 말이긴 했지만 어딘가 좀 찜찜했다.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사양을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치켜세우면서 여러가지 말로 칭찬하면서 그 신학대학은 공신력 있는 좋은 학교라는 이야기도 길게 펼쳐놓았다. 나는 좀 더 생각해 보고 기도한 후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며칠 뒤 나는 호주에서 나의 신앙과 인생의 멘토이신 내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드리며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내가 사양하기를 잘했다고 하시면서 그 학교를 포함하여 미국에 있는 대학들 중 여러 학교가 지나치게 학위를 남발하여 오늘날 한국의 목사들이 잘못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많이 변했다. 요즘 시드니 교계에서도 박사 아닌 목사란 거의 없을 정도로 이 사람, 저 목사, 거의들 박사가 되었다.
목회나 선교나 그 무엇이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바탕이 되는 것 중 하나는 늘 쉬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도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한계와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어찌 모르랴! 명예나 권세나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면 결국은 인생을 망치게 된다. 사실 지난 날 목사로 안수 받을 때 우리는 평생 주님의 종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하면서 <평생 노예 약정식> 같은 서약을 하고 목사가 되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직이 무슨 대단히 높은 자리인 줄 알고 가문의 영광 운운하며 여대생들의 결혼 상대 최우선 자리엔 목사가 올랐있다고 한다. 크게 잘못된 일이다. 서글프게도 가짜 박사 중에는 신학박사가 제일 많다고도 한다. 목사들 만큼 명예를 탐하고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어디 있으랴 싶을 정도가 되었다. 예수님은 초등학교도 다닌 적이 없었고 목사도 아니었고 학위 같은 것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을 텐데 오늘의 교회와 목사들은 명예와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오래 전 평양에 가서 조선그리스도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고 또 봉수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거기서 만난 북한교회의 지도자들은 나를 부를 때 마다 “홍박사님, 홍박사님”이라고 했다. 참 민망했다. 그래서 나는 “아,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때 지금은 돌아가신 강영섭목사님이 말했다. “아니, 남조선 목사님들 중에도 박사 아닌 목사가 다 있습니까? 참 이상한 분이시군요” 사람의 심리란 이상한 것이어서 참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명예와 물질은 신앙이나 종교를 떠나 그 어떤 시대, 그 어떤 자리도 구별하지 않고 찾아오는 유혹이며 함정이다. 늘 경계하고 끊임없이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목사 동무란 우리 당서기 동무하고 비슷한 사람이군요>
요즘은 호주에도 탈북민들을 비롯하여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지만 30년 전에는 그렇질 않았다. 그 때 마침 북한의 국가대표 탁구선수를 지낸 분이 어찌어찌 하여 호주에 와서 우리 교회 근처에 정착하게 되었다. 처음 그이는 자유를 찾아 망명을 해 오긴 했지만 자본주의 땅에서 홀로서기가 그리 쉽질 않았다. “도대체 국가라는 데는 뭘 하는 곳입니까? 집도 자기가 구해야 하고 직장도 자기가 찾아야 하니 참 답답합니다” 그는 자주 나에게 하소연을 했고 차츰 이곳 호주에서 사는 것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선 배급도 없고 조직이나 배치도 없이 모든 일을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귀한 자유를 주어도 그것을 누릴 수가 없다. 그는 교회라는 말도 호주에 와서 처음 듣고 처음 와보았다고 했다. 교회란 북에서는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한 곳이라 했다. 그래도 우리 교우들이 여러모로 그를 도와주고 친절하게 보살펴주니 꾸준히 교회에 나왔고 점점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서 점심을 먹다가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그동안 목사가 뭐하는 사람인가 했었는데 이젠 알겠습니다. 목사동무는 우리네 당서기 동무하고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구요”
호주는 인종과 국경, 언어와 문화, 사상과 종교를 넘어서 이 모두를 아울러 주는 다문화, 다인종 국가이다. 그래서 여기에선 북한에 가지 않고서도 북녁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또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눌수도 있어서 “목사 동무는 우리네 당서기 동무하고 비슷한 사람”이라는 말도 듣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는 다른 나라의 이민교회와는 다른 각도에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 할수 있는 기회를 갖고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선교나 북한의 복음화를 넘어서 호주에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상을 서로 결합해 보거나 연결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곳 보다는 좀 더 열려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호주는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호주는 사회주의적 경제구조를 퍽 많이 채용하고 있는 나라다. 호주에 있는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는 직접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장차 통일된 조국의 정치와 경제체제에 있어서 제 3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본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결국 개개인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데 있다.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왜 우리 한인들을 디아스포라로 부르시고, 또 우리 목사들을 당서기 동무와 비슷하게 만드셨을까 생각해 보면 거기엔 하나님의 깊고 신비한 계획이 있어 보인다. (계속)
<이 글은 한국에서 발행된 계간지 “이제 여기 그너머” 2017년 여름호에서 옮겨와 가다듬은 것입니다>
*홍길복 (2025. 10.8)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3)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