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본문의 말씀은 요나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요나는 주전 약 8세기경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그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임무를 맡기십니다. 그 임무는 니느웨라는 도시에 가서 경고하되 그들의 악독이 만연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그 성이 무너지게 될 것을 소리쳐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니느웨라는 도시는 그 당시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앗수르는 그 당시 북 이스라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위협하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후에 북 이스라엘은 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 출신인 요나의 입장에서는 적국의 수도에 가서 그 성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심 내키지 않는 임무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나의 입장에서 보면, 신앙적으로 니느웨라는 도시는 이방신을 섬기는 도시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인 요나로서는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멸망을 미리 알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욥바라는 곳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지도에서 보면, 니느웨는 이스라엘 동쪽 내륙에 있는 도시이고, 욥바는 이스라엘 서편 끝 해안가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니까 반대방향으로 간 것이지요. 그런 요나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큰 물고기 뱃속에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3일을 지내고 하나님께 잘못을 빌고 회개한 후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니느웨로 향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이 요나의 사건처럼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신 것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엄중하게 징계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회개의 기회를 얻은 요나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도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즉 요나가 탄 배를 심한 풍랑으로 깨져 침몰할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그렇게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되었는데도 그는 배 밑에서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도 그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를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태평스럽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배의 선원들에 의하여 바다에 던져져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죽게 되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의 기도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욘 2:4)
그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하여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기 위하여 풍랑과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죽을 고비를 겪은 요나는 이제 하나님께 회개 합니다. 그런 사실을 그의 고백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 보통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옆길로 잠시 빠져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지라도, 그런 징계에 낙망하고 포기하지 말고, 요나와 같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징계에서 풀려나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이 요나의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회개했으나 경외하지 않은 요나
이렇게 죽을 고비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회개한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그 성이 40일이 지나면 무너진다고 외쳐 알립니다. 이렇게 요나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자 니느웨 성은 발칵 뒤집힙니다.
왜냐하면,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얼마 전에 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완전 일식(기원전 763년 6월 15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일식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낮에 태양이 가려져서 칠흑 같이 어둡게 되는 것을 신의 저주로 생각하고 매우 두려워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길한 징조들로 민심이 동요되고 있던 차에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가 성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하자 이 성에 주민들은 그 경고를 ale고 겁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의 왕은 모든 백성과 육축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철저히 회개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살려 주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그런 하나님의 결정, 즉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던 이방인을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결정에 불만을 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니느웨 사람들을 멸절하지도 않으시면서 자신을 구태여 니느웨로 보내서 그들에게 경고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하나님께 불만을 표합니다. 또한 요나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될 것(니느웨가 재앙에서 벗어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스로 향했던 것이라고 하나님께 교만함을 드러냅니다. 즉 그는 니느웨에 와서 하나님께 회개는 하였지만,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결정에 철저히 순복하는 경외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요나를 깨우치시기 위하여 박넝쿨을 준비하십니다. 해가 강하게 비칠 때, 박넝쿨의 잎사귀로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하셨다가, 그 이튿날은 이 박넝쿨을 벌레가 먹어 시들게 하여서 그늘을 없애신 다음 요나의 머리위에 해를 강하게 비추게 하시고, 또한 뜨거운 열풍을 불게 하셔서 요나를 더위에 지쳐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통을 주십니다. 그리고는 이런 설명을 요나에게 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0-11)
요나는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자비와 인애의 하나님은 결국 니느웨를 멸망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판단까지 하는 교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만 그 가운데에서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고생만 한 것이라고 불평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정이 없이는 요나도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지자가 되지 않을 것을 아셨고, 니느웨도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요나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고, 니느웨 사람들도 회개하게 하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 사건을 통하여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요나와 또 우리 인간들과 다른 하나님의 생각이십니다.
매순간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들도 일상에서 어떤 일을 평가할 때, 그 결과에 집착하고, 결과만으로 그 성과를 따지는 적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들의 구원에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제사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구원은 이루어지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삶 전체가 평가된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살아가는 매 순간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예를 들어보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죄들(밧세바, 인구조사)을 용서받고 구원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를 용서한 결과에만 그 사건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철저한 회개시키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후대에도 교훈으로 전해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시 103:17)
그렇습니다, 공평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에 어긋난 모든 죄에 대하여 벌을 내리셔야 하지만,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더 바라시며, 그렇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인자를 베푸시며, 그 인자하심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뜻을 돌이키시도 하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들어본 요나서에 나타난 요나의 개인적 회개와 니느웨성의 집단적 회개사건은 우리들에게 계시하는 바가 큽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들 개인이나 가정, 사회나 국가 또는 어떤 공동체라도 하나님을 잊고 살아온 과거로 자책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어떠한 죄라도 용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욘 3:10)
우리와 같은 이방인의 입장으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자부심에 가득 찬 이스라엘의 후손인 요나가 회개한 사건보다는 이방인들이 사는 니느웨성의 구원사건이 우리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니느웨성은 그동안 악한 길(evil ways,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을 좇고 손으로 강포(violence, 불법과 폭력)를 행하였던 대표적인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금식하고 그들의 짐승이나 육축까지 금식시키며, 반성하고 회개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육축까지도 진멸하시려는 뜻을 돌이키시고 살려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 사건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던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이 역사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이 살아왔더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어 구할 때, 그 강청함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신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인 것입니다.
성도의 결단
이렇게 니느웨성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증명하신 하나님께서는 한 성의 집단적 회개에 대한 용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메시지를 예수님을 통하여 전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재 확인시키셨던 것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4-5)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사랑(자비)을 깨닫고, 오늘 말씀에서처럼,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40일 작정)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죽음을 불사하는 결연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께 간구하는 개인적 신앙생활에 열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과거가 어떻든지에 개의치 말고, 하나님 앞에 육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로 또한 죄인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내가 너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리라”는 응답과 함께, 지은 죄를 용서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 가정공동체교회 창립 3주년 감사예배
일시: 2014년 3월 9일, 12:30 장소: 4 Mark Place Cherrybrook, NSW 2126 |
손창건 전도자(시드니 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