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소금과 문명
원제 : Salt and civilization
새뮤얼 애드셰드 / 지호 / 2001.8 30
소금은 하나의 물질개념에서 노력과 기술이 투입됨으로써 상품이 되고, 생명유지의 필수품에서 기호품으로, 단순한 조미료에서 산업과 문화의 주요 원료로써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소금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인류의 문명 형성과 발전, 소멸의 과정을 소금의 역사를 통해 고찰해 보는 책으로, 원시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시간 범위 속에 지역별로 생산, 분배, 소비의 세 측면을 통해 소금과 문명의 관계를 보여준다.

○ 목차
- 원시 시대
소금의 땅, 유럽
부의 원천, 아메리카
잿빛 소금이 대륙, 아프리카 - 고대 문명의 시대
로마의 소금
이슬람의 소금
인도의 소금 산맥
한나라의 소금 정치 - 암흑 시대와 광명의 시대
새로운 공정의 시작
소금의 전달자, 이슬람
비잔틴 제국의 황혼기
이동하는 소금 - 중세 시대
통일제국 시대의 소금
본격적인 무역의 시작 - 공존의 시대
다양해진 식생활
소금의 집산지, 오스만과 무굴
에너지 위기와 염정의 쇠퇴 - 근대화의 두 얼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소비
다른 형태의 근대화
중국의 몰락
○ 저자소개 : 새뮤얼 애드셰드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캔터베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라이스트와 옥스퍼드에서 수학했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중국사를 연구했다. 저서로는 <중국 염정의 현대화 (The Modernization of the Chinese Salt Administration)>, <세계사 속의 중국(China in World History)> 등이 있다.
- 새뮤얼 애드셰드 (지은이)의 말
모피에서 마소에게 먹이는 꼴에 이르기까지 상품은 문명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다. 소금처럼 공급이 제한되고, 분배를 통제할 수 있고, 수요가 많은 상품은 국가의 재정원으로 관심을 끌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수입원이 곧 국가의 기능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했다. 따라서 소금 이외에도 귀중품, 술, 담배와 같은 상품이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한 핵심 요소였다.
이 책은 이러한 가정에 토대를 두고 소금을 세계사의 한 주제로 다루어 볼 것이다. 원시 시대부터 산업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주요 시대마다 소금이 어떻게 생산되었고, 분배되었으며, 소비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찾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의 대상, 인간의 현실, 정신적 기질 (mentalite)의 표현이다. 인간 정신이 변함없는 “세계 안의 정신”이라면, 그것의 구획인 소금은 세계의 의미심장한 일부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 역자: 박영준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해오다가, 현재는 과학책과 인문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책으로 <자라파 이야기>, <소금과 문명>, <과학으로 가는 길>, <악마가 준 선물 감자이야기>, <지구가 지글지글>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소금이 생겨나는 과정과 그것의 운반과 소비는 자연에 대항하는 문화 투쟁의 일부로, 또한 자연이 공급한 문화적 무기로서 인류 문명을 이룩한 일등공신이다. 플리니우스의 말처럼 소금은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기를 위해서, 다시 말해 문화적인 활력을 불어 넣어 준 ‘넵투스의 선물’이다. — 본문 중에서
동방의 빛과 비잔틴의 황혼을 지나면 어둠에 도달하게 된다. 화려한 제국의 도시도, 돈을 물 쓰듯 하는 국경의 군대도 없이 다만 현실적인 상호주관성 안에 녹아드는 추상적인 사회 질서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암흑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회나 문화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태의 문제다. 정치적 부문 아래에 있는 하위 제도들-왕족, 수도원, 진지, 장원-은 시칠리, 에스파냐, 서지중해의 여러 지역을 빼앗긴 기독교 라틴 국가를 허망되이 지향한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와 서독으로 팽창해 나갔다. 소금사에서는 이를 “영지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에 건설적인 성취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어도 후대의 건설에 기초가 되었다.
서유럽 | 중요한 혁신들 | 생산
로마 시대에 별로 변하지 않았던 켈트 사회의 소금 산업 형태가 암흑 시대 동안에는 상당할 정도로 변화했다. 로마와 랑그도크에서도 중요한 혁신이 있었다.
농도가 낮은 바닷물을 이용하는 북부와 서부 해안의 소금 산업에는 두 가지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변화로 인해 예전의 브리크타주 기술이 쓰이지 않게 됨으로써 이후부터 이 기술은 가벨이 시행되는 카르 뷔용 지역인 노르망디에서 제한적으로 이용되었다. 우선 영국 해얀의 바닷물은 염도가 높은 대륙의 염천과 암염갱으로 인해 중요성이 감소되었다. 토지대장은 해안 염전이 여전히 링컨셔에 34곳, 예식스에 21곳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염전들의 중요성은 단지 지역적인 선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로마 시대에는 개발의 증거를 찾기 힘들었던 내륙의 염전이 이제는 지역적인, 심지어 국가적인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우스터셔에는 염전이 최소한 3백 군데가 넘었다. 염전들은 생산량이 제각각 다양했지만 평균 550리터, 즉 4톤 가량의 소금을 생산했는데, 모두 합하면 총 생산량이 1,200톤에 달했다. 이것은 25만 명에서 50만 명에세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다. 드로이트위치는 정복자에게 연간 소금 약 34킬로그램의 가치가 있었다. 체셔의 낸트위치, 미들위치, 노스위치는 모두 약 17킬로그램의 가치가 있었으므로 이곳의 총 생산량은 5백 톤에 달했을 것이다. 우스터셔와 체셔에서는 소금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했는데, 납가마에서 나무를 때어 소금을 만든 이 방법은 또 다른 혁신이었다. 우스터셔의 소금 산업은 우스터셔 교회를 승인한 머시아 (잉글랜드 중부의 옛 왕국)의 왕 애설볼드 (재위 716~717년)의 헌장에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여기에는 “강 남쪽 샐워프에서 소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건물 세 채와 노 여섯 개를 만들도록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우스터셔가 암흑 시대에 영향력이 컸던 수사들의 고향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세기의 성 오스월드와 11세기의 성 울프스턴이 이곳 태생이었고, 1066년 이후에는 휫비, 더럼, 세인트 메리즈, 요크 수복의 전초 기지였다. — pp.132- 134

○ 독자의 평 1
이 책 「소금과 문명」은 많은 이들에게 책을 저술하는 엄격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벼운 흥미 위주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이 책은 읽는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미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리뷰: 오지연
[2001/08/27] 나른한 오후의 강의실, 벌써 일부는 숙면에 들어갈 태세다. 문이 열리고 약간 구부정한 어깨에 두툼한 안경을 낀 교수가 들어온다. 대충 편하게 구김이 간 옷에 희끗희끗한 머리까지, 강의실의 나른함을 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것은 내가 표지 디자인을 의뢰하면서 요구한 이 책 「소금과 문명」(새뮤얼 애드셰드 지음·박영준 옮김·지호 펴냄)의 인상이다. 절대 세련된 분위기가 아니다, 세월의 묵은 냄새가 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전통성을 힘있게 보여달라. 결과적으로 책의 모양새는 처음 생각과 많이 달라졌지만 아무튼 이 책은 저자가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전통에서 비켜가지 않겠다는 자신감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농담도 아니건만, 어눌해 보이던 교수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자세를 바로 하고 눈과 귀에 힘을 줘서 경청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처 몰랐던 새로움의 세계를 접할 때의 흥미로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사롭지 않은 저자의 자신감 때문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역사를 재미있고 가벼운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애쓴다. 그만큼 이전의 역사가 고답적이고 재미가 없어서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이야기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의 역사 읽기가 흔하다. 그런 가운데 시대 순으로, 거기다 “생산, 분배, 소비”라는 3가지 원칙으로 전 세계 소금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자신감이 내게는 고지식하고 무모해 보였다.
그러나 원시 시대부터 고도로 문명화된 소금 세계가 있었음을 말하는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찍이 자크 르 고프를 비롯한 많은 역사가들이 왜 소금사에 매료되었는지 납득이 갔다. 소금에 관한 기원전 기록들까지 밝혀내면서 저자는 과장하지 않고, 꾸미려는 수사도 없이 담담하다. 그럼에도 서구 역사학자들이 범하기 쉬운 서양과 동양의 역사에 공평한 잣대를 잃지 않았다.
소금으로 인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흔히들 바닷물에서 소금을 만든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소금의 대부분은 땅에서 생산한다. 또한 소금을 생리적인 필요에 의해 먹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다.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적인 생기를 위해”, 즉 문화적인 기호품으로서 자리 매김 했다. 또한 소금으로 인해 생겨난 전 세계의 도시와 수송로, 교역의 장소, 산업화의 추진력, 그리고 국가의 수입원으로 장악해 나라를 통치하는 중국의 경우는 소금이 어떻게 인류를 움직여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현재 소금은 식용이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 더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실의 새로운 발견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이 책이 그냥 “소금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금”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는 이처럼 잠재적인 세계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새로운 세계를 더듬어 찾아보고픈 마음을 충동질한다.
○ 독자의 평 2
아무리 간단하게 저녁식사만 하는 자리라고 해도 ‘가족행사’가 낀 주말은그냥 없는 듯이 지나간다.휴일에 잠시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몸은 좀 가뿐해지지만 밀린 일들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른다 (간혹 ‘제 정신이야?’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저녁시간에 세탁기로 돌려놓은 빨래를 베란다 빨랫줄에 널면서, 문득중학생 때 빨리를 널러, 또 걷으러 대야를 들고 (아파트가 아니라) 당시에 살던 단층 단독주택 옥상에오르락내리락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낭패스럽게도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널어놓은 빨래를 다시 걷어다가 세탁해야 했던 일들도 (그러니까 빗방울이 떨어지자 마자 가장 먼저 떠올려야 했던 일은 ‘옥상의 빨래’였다!).
돌이켜보면, 그런 게 또 ‘행복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너는 빨래는 그런 ‘모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에 젖은 빨래를 다시 빨아 널어야 하는 불편은 덜게 됐지만, 덩달아 덜게 된 건 ‘일상의 모험’ 한 가지이다. 그러한 손익계산을 하자치면, 삶은 공평하다. 나아지는 게 없다. 아니, 공평하게 말하자. 삶은 언제나 퇴색한다. 더이상 청춘을 찾아보기 어려운 부모님의 얼굴처럼(내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셨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탁기 이야기’나 옮겨적을까 하고 옛날에(10년 전에) 만든 시집들을 들춰보다가 다소 엉뚱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 세상의 소금을 노래함’이란 시에 눈길이 간 것.약간 교정해서 옮겨놓는다.
이 세상의 소금을 노래함
소금은 짜다. 소금은 단순하다.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소금은 말한다, 아니면
퍽퍽하리라고, 맹탕이 되리라고, 밥맛이 떨어지리라고-
아무도 소금을 무시할 수는 없다. 된장 공장 같은
삶의 현장에서 짠맛이 빠진다면,
오, 어느 된장국에 우리가 숟가락을 담글 것이냐?
하여 우리는 소금을 묵인한다. 소금의 활동을 묵인한다.
맛소금, 막소금, 더러는 막돼먹은 소금이 도처에서
활발하다. 닭도리탕에도, 미역국에도, 더러는 레미콘에도.
소금은, 맛의 주연이고 베테랑이며 조국 근대화의 주역이니.
보라, 땀에 배인 소금의 과거, 짭짤한 소금의 현재, 빛나는 소금의 미래!
세상에 뿌려진 소금만큼 소금의 끗발은 줄지 않는다.
소금은 미나리가 아니고 미나리 사촌이 아니니
오, 이 땅의 소금들이여!
하여 우리는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던 것이다. 인제 다신
맹탕의 삶을 살지 않으리라, 삶을 물말아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맵짜지기로, 소금이 되기로, 소금기둥이 되기로!
소금은 짜다. 소금은 단순하다.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소금은 말한다, 장조림도 말한다.
아침밥을 먹고 오늘도 삶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숨이,
턱밑까지 찰 때쯤, 우리는
소금의 문턱에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설렁탕집에서 엊저녁에 꼬리찜을 먹은 게 ‘잔상’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요즘은 국산 소금이라도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중국산 소금을 잔뜩 사다가 염전에 뿌리고 그걸 다시 거둬들인다나. 해서, 이 세상의 소금들은 한가지로 다들 빛나지만 실제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 내 세대의 386 소금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겠다. ‘이 세상의 소금들’에 경의를 표하지만, 소금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내가 젊었을 무렵 요리점에 가면, 나도 세상의 청년들처럼 급사를 향하여 ‘여봐, 스테이크 하나, 고급 스테이크 한 접시, 등심살로 너무 기름기가 많지 않은 것을 가져와’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급사는 거의 내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것을 황송하게 듣는 일은 없었다. 또한 내 목소리가 주방에까지 들려서 요리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따윈 더더군다나 없었다. 설령 모두가 그러했다 하더라도 스테이크의 품질이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문제는 ‘스테이크의 품질’인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