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인문학으로 바라본 은행나무 이야기
은행나무는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드는 잎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거리와 공원, 학교 캠퍼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인문학적으로 은행나무는 ‘기억의 나무’, ‘시간의 나무’로 해석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한 식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살아 있는 화석 (化石)’으로 불린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자라온 은행나무는 다른 많은 종이 멸종한 이후에도 굳건히 살아남아 생명력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긴 시간을 견뎌낸 역사는 은행나무를 ‘시간의 증인 (證人)’으로 바라보게 한다.
동양 문화 속 은행나무
동양에서 은행나무는 장수와 기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마을 수호목 (守護木)으로 자리하며 공동체의 중심을 이루었다. 사찰 마당에도 은행나무가 자주 심겼는데,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지혜와 평안을 전해주는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 풍요와 생명력의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되었다.
서양 문화 속 은행나무: 기억과 생명의 상징
은행나무는 서양에서도 ‘기억의 나무’로 불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에도 살아남은 은행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다시 잎을 틔운 은행나무는 인간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은행나무는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치유와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문학적 의미
인문학적으로 은행나무는 ‘시간과 기억, 생명의 상징’이다. 수억 년의 시간을 견디며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은행나무는 인간에게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또한 가을마다 노랗게 물드는 잎은 인생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은행나무는 단순한 가로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철학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맺음말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생명력의 나무이자 기억과 치유의 상징이다. 우리가 가을의 은행잎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계절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과 시간,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은행나무를 마주할 때 그 안에 담긴 긴 역사와 인문학적 의미를 함께 떠올려 본다면 더욱 깊은 감동을 얻게 될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