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의 신학논단 : 천로역정강해 (제3강의)

묶인 사자와 아름다움 집 (House Beautiful)
1. 아름다운 집 앞의 두 마리 사자
기독도는 순례의 길을 걸어가다가 아름다운 집, House Beautiful에 가까이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무서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길 양쪽에 두 마리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매우 위협적이어서 그 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겁을 먹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 사자들을 보라! 저 길로 가면 틀림없이 잡아먹힐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 길을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존 번연은 그들을 비겁자와 불신자라고 묘사합니다. 그들은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뒤로 물러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길목에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의심장(Distrust)’ 이었습니다.
기독도: “친구여, 어찌 그리 떨고 있는가?”
의심장: “저 앞에 사자 두 마리가 있다네! 으르렁거리며 지나가는 자마다 덮치려 하지.”
기독도: “그렇다 해도, 나의 길은 저기 앞에 있네. 주께서 인도하신다면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의심장: “나 같으면 가지 않겠네. 내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가.”
그 말에 기독도는 잠시 멈추어 섭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십자가 앞에서 들은 음성이 다시 울립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 (마 28:20)
그는 조용히 기도하며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자를 봅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 발에는 사슬이 묶여 있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사자들은 묶여 있느니라. 믿음으로 걸어오라.” 문지기 (Watchful )의 음성이 들렸읍니다.
기독도는 두려움 대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길을 지나 마침내 ‘아름다운 집 (The House Beautiful)’ 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따뜻한 식탁과 쉼을 얻고, 다음 여정을 위한 영적 무장을 받습니다.
2. 신학적 해석 – 청교도 신앙의 빛 아래서 묶인사자
이 장면은 단순한 여행의 한 구간이 아니라, 청교도 신학이 강조한 믿음의 성장 과정을 상징합니다. ‘의심장 (Distrust)’ 은 외부의 인물이 아니라 기독도 내면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그는 믿음을 가졌지만 여전히 세상의 위협과 자기보호 본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를 확신 없는 신앙 (conviction without confidence) 이라 일렀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의심장은 신자 안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육적 두려움 (fleshly fear)의 상징이며, 믿음은 이 두려움을 제거하지 않고, 그 위를 걷는 용기 (courage through fear)로 나타납니다.
사자는 성경적으로 사탄의 세력과 세상적 위협을 의미하지만, 그 발이 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나타냅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그러나 “하나님이 네게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너를 해하지 못하리라.” (욥 1:12)
청교도들은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사탄은 포효하지만, 주님의 허락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 John Flavel, The Mystery of Providence
즉, 두려움의 실체는 묶여 있으며, 신자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합니다. 기독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며 힘들게 하는 사자의 모습들은 모두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어 결코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3. 아름다움 집 (House Beautiful) – 영적 재충전의 집, 교회
바로 그때 문지기 (Watchful)가 기독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그리고 그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 사자들은 쇠사슬에 묶여 있다. 길의 한가운데로 똑바로 걸어오면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기독도는 잠시 두려웠지만, 문지기의 말을 믿고 길의 가운데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갔습니다.
사자들은 계속 으르렁거렸지만, 그에게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그렇게 그는 결국 아름다운 (House eautiful)에 들어가게 됩니다. 기독도는 긴 여정을 걸어오면서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길에는 위험이 있었고, 마음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문 앞에 다가가자 한 여인이 나와 조용히 물었습니다. “순례자여,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기독도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습니다.
“저는 장망성에서 왔습니다. 그곳은 멸망할 도시입니다. 저는 하늘의 도성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에 들어오십시오. 이곳은 순례자들이 쉬며 힘을 얻는 집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간 기독도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독도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때 제 등에 있던 무거운 짐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내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저절로 벗겨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집의 사람들이 기쁨으로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날 밤 기독도는 그 집에서 쉬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과거에 어떻게 그의 백성을 인도하셨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여정에 어떤 시험이 있을지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기독도를 위해 갑옷을 가져왔습니다.
“순례자여,” 그들이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길에는 싸움이 있습니다. 이 갑옷을 입고 가십시오.”
기독도는 투구와 방패와 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에 그는 감사하며 말했습니다.
“이 집에서 저는 쉼을 얻었고, 믿음을 배웠으며, 다시 걸어갈 힘을 얻었습니다.”

아름다운 집 (House Beautiful)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례자가 쉬고, 말씀을 배우고, 다시 길을 걸어갈 힘을 얻는 장소였습니다. 기독도가 도착한 ‘아름다운 집’은 청교도 신학에서 교회 (Church)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다음과 같은 역활을 합니다.
(1) 환영과 공동체의 위로
아름다운집 House Beautiful에 도착했을 때 기독도는 먼저 따뜻한 환영을 받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 즉 분별 (Discretion), 경건 (Piety), 신중 (Prudence), 사랑 (Charity)이었습니다. 이들은 기독도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고 그들은 기독도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의 믿음을 격려합니다. 이 장면은 교회가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공동체적 위로와 환대를 상징합니다. 믿음의 길은 때때로 외롭지만, 교회 안에서는 서로의 믿음을 나누며 격려할 수 있습니다.
(2) 말씀과 신앙 교육
House Beautiful에서 기독도는 신앙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고, 하나님께서 과거에 어떻게 신실하게 일하셨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교회가 순례자들에게 제공하는 말씀 교육과 신앙의 양육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신앙이 깊어지는 곳입니다.
(3) 영적 통찰과 소망
그 집의 사람들은 기독도에게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순례의 길에는 위험과 시험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결국 순례자를 하늘의 도성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 줍니다. 이는 교회가 성도들에게 제공하는 영적 통찰과 미래의 소망을 상징합니다.
(4) 영적 무장 – 하나님의 전신갑주
House Beautiful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기독도가 갑옷을 입는 장면입니다. 그는 투구, 방패, 검, 갑옷을 받으며 앞으로의 싸움을 준비합니다. 이 장면은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상징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11).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그리고 말씀이라는 전신갑주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세상의 유혹과 영적 싸움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믿음의 무장을 갖추게 하는 곳입니다.
(5) 휴식과 재충전
기독도는 그 집에서 잠시 머물며 쉬게 됩니다. 긴 여정 속에서 쉼을 얻고 몸과 마음을 회복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신자들에게 제공하는 영적 안식과 재충전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청교도 교회론에 따르면, 교회는 단순히 피난처가 아니라 세상 속 전쟁을 위한 훈련소입니다. 기독도는 그곳에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다시 길을 떠나게 됩니다. 기독도의 여정은 두려움이 사라지는 길이 아니라, 두려움을 믿음으로 통과하는 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기독도는 의심장의 경고를 들었지만, 하나님이 이미 그 사자를 묶으셨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참된 평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은 교회 안에서의 안식으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집’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재충전의 자리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지치고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외롭고 어려운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다시 힘을 얻고 믿음을 새롭게 하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모입니다. 단순히 종교적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례자가 교회을 통하여 멈추어 숨을 고르고, 말씀과 은혜를 통해 새 힘을 얻는 곳입니다. 결국 『천로역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회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교회는 순례자가 천성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다시 힘을 얻는 영적 재충전의 집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우리는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 됩니다. 다음 주에는 기독도와 아폴리온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있는 영적 싸움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주에 계속).

이상택 목사
(아오나 콜럼바 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