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KWMF 시드니 방문 환영인사

KWMF (한국세계선교사협의회) 시드니 방문인사 말씀
여러분 뵙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저는 홍길복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80이 좀 넘었고 호주에 온지는 약 45년이 좀 더 되었습니다. 한국적 풍습에 따르면 어떤 모임에서 나이가 좀 들고 경력이 좀있는 사람이 나와서 인사나 환영의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 단체나 community 전체를 대표하거나 대신해서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줍찮기는 하지만, 이곳 시드니에 있는 300여개의 한인교회들과 모든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대신하여 이번 처음으로 시드니를 찾아오신 <한국세계선교사협의회> 전현직 임원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가 믿고 전파하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세상으로 파송하신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백여개도 더 되는 여러가지 Title과 Nickname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를 떠나 인간 역사 속으로 찾아 오신 첫 선교사요 모든선교사들의 모델 선교사였습니다. Jesus Christ is the First Missionary and the Model of Missionary from Heaven to Earth. 오늘은 바로 그 <선교사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여러분한분 한분에게 남다른 의미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잘 아시다싶이 호주교회는 1889년 Joseph Henry Davis와 그의 누이 Mary를 조선에 파송한 이후최근 까지 약 130여명의 선교사들을 우리 땅으로 파송했습니다. 이번 KWMF는 지구의 남단에 있어 쉬이 기억해 주지 않는 지난날 Australia가 파송했던 선교사들과 그들의 후손들과 그들을 파송했던 교회를 찾아 주시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셨습니다. 참 아름다운 발걸음이요,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만드는 귀한 발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저 신학교 다닐 때는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로써 교수를 하셨던 분들이 주로 많았는데 호주에서온 분은 딱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John Brown목사님, 한국이름으로는 변조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오늘은 연세가 93의 고령인데다가 몸이 불편하셔서 함께 자리하지 못하셨습니다. 그이는1960년 4.19가 나던 해 한국에 오셔서 13년간 주로 경남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하셨는데 그 때 자신이 맡았던 교회가 50개였다고 하시면서 한국어를 배운 후 처음 설교 한편을 준비해서 같은 설교를 50번이나 했다고 이야기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이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는 장신대에서 히브리어와 구약학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때 저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제출한 report나 시험지에서 한글 맞춤법이나 심지어는 띄어쓰기 까지 일일히 다 고쳐서 돌려주실 정도로 정말 한글과 한국어를 잘 하셨습니다. 한번은 시내 버스를 탓는데 젊은이들이 낄낄대면서 “야, 저기 양코쟁이가 탓어” 하면서 자기들 끼리 말하더랍니다. 변조은 목사님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리실 때, 그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양코쟁이는 나쁜 말입니다. 앞으로는 서양사람이라고 하세요” 하여튼 변목사님은 우리들에게도 가끔 “야, 웃기지 마라” “너 밥은 먹었니?” 같은 말도 스스럼 없이 하실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랑 다같이 무슨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하다가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이런 이야기는 따로 우리 한국사람들끼리 하자” 그러자 변목사님은 즉각 그자리에서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섭섭합니다. 나도 반은 한국 사람입니다. 그냥 이 자리에서 계속 이야기 합시다” 1974년 저와 몇몇 친구들이 긴급조치로 구속되었을 때, 호주로 돌아오서 장로교 총회 선교부 총무로 일하시던 변목사님은 제가 직접 받을 수는 없었지만 서대문 구치소로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보내시고 한국의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분과 함께 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많이 말씀드릴수는 없습니다. 저는<한국선교사 변조은>의 삶과 선교에 대한 글을 여러 곳에 퍽 많이 썼습니다. 변목사님은 그후 Uniting Church World Mission 총무로 일하시면서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서도 꾸준히 일해오셨고 저와 저희 친구들 몇몇과 그 가족들에게 여비와 학비, 주거비와 자동차 까지 다 마련해주시어 이곳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언젠가 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목사님께 지난날 우리 나라를 위해 헌신해 주신 선교사역에 대해 감사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답사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한국에서 드린 것 보다는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입니다. 저는 한국과 한국사람들과 한국 교회로 부터 너무 크고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제가 받은 것의 백분지 일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참 미안합니다” 이것이 모든 선교사들과 선교단체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교사란 받은 것은 많은데 베푸는 것은 미미해서 늘 미안해 하는 사람”입니다. Jesus Christ, The First Missionary – 그 분의 이름으로 KWMF 임원진 여러분들의 시드니 방문과 이를 통한 호주교회와의 깊은 Solidarity에 대해 다시 한번 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홍길복 (2026.3.4)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