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엘 그레코 (El Greco)의 <소경을 치유하는 그리스도 (Christ Healing the Blind)> 시리즈
엘 그레코 (El Greco)의 <소경을 치유하는 그리스도 (Christ Healing the Blind)>는 그가 이탈리아 체류 시절 (1567 ~ 1576) 집중적으로 다룬 주제로, 현재 세 가지 주요 버전이 전해지고 있다.
이 시리즈는 요한복음 9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베네치아 학풍의 색채와 로마 매너리즘의 건축적 구도를 실험하던 엘 그레코의 초기 화풍을 잘 보여준다.
- 주요 버전 및 소장처
엘 그레코는 이 주제로 최소 세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각 버전은 구성과 세부 묘사에서 차이를 보인다.

1.드레스덴 버전 (Dresden,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특징: 1567년경 제작된 가장 초기 버전으로, 서명이 없는 패널화다.
.상세: 화면 전경에 개, 자루, 물병 같은 풍속화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후 버전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생략된다.

2.파르마 버전 (Parma, Galleria Nazionale)
.특징: 1573년경 제작되었으며, 오른쪽 하단에 화가의 서명이 있다.
.상세: 드레스덴 버전보다 구도가 더 간결하고 정돈되었으며, 베네치아에서 베른 (Venice) 혹은 로마로 이동하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3.뉴욕 메트로폴리탄 버전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특징: 157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세 버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상세: 캔버스 유화로, 왼쪽 상단 부분이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어 화가의 초기 스케치 기법을 엿볼 수 있다. 1576년 엘 그레코가 스페인으로 떠날 때 직접 가져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예술적 특징 및 의미
.화풍의 변화: 초기 비잔틴 이콘화 전통에서 벗어나 티치아노 (Titian)와 틴토레토 (Tintoretto)의 영향을 받은 원근법과 극적인 명암 대비를 실험했다.
.종교적 상징: 당시 반종교개혁 (Counter – Reformation)의 맥락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은 이단에 빠진 이들에게 가톨릭 교회의 ‘참된 빛’을 전파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초상화 삽입: 메트로폴리탄 버전 등에서 전경에 배치된 인물 중 일부는 엘 그레코 자신의 초상이나 가족의 모습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의 그리스 출신 화가, 조각가, 건축가 엘 그레코 (El Greco, 1541 ~ 1614)
‘엘 그레코’ (El Greco, “그리스인”이라는 뜻; 1541년 10월 1일 ~ 1614년 4월 7일), 본명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그: 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는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의 그리스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엘 그레코는 별명이었고, 그는 보통 자신의 그림에 본명을 그리스어 문자로 서명했으며, 종종 “크레타인”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단어인 Κρής를 덧붙였다.
그리스 태생의 스페인인 화가로,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과 함께 근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로 꼽힌다.
17세기 르네상스 말기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의 궁중 화가가 되었고, 당시 매너리즘으로 분류된 그의 화풍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화풍은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베네치아에서 화가로서 입지를 굳힌 엘 그레코는 당시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던 스페인에서 성공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갔으며 그가 원하던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궁중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화풍이 펠리페 2세의 마음에 들지 않아 궁중 화가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 종교화와 초상화였고 회색빛 명암과 색채, 비정상적으로 길쭉하고 뒤틀린 인체묘사로 당시 스페인에서는 매너리즘 미술로 평가절하되었다.
사후 오랫동안 그의 진가가 묻혀져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재평가되어 폴 세잔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그는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 엘 그레코 (El Greco)
.출생: 1541년 10월 1일, 이라클리오, Fodele
.사망: 1614년 4월 7일 (73세), 톨레도
.묘소: Monastery of Saint Dominic of Silos
.직업: 화가, 조각가, 건축가, 제도사, 판화가
.제자: 루이스 트리스탄, 디에고 데 아스토르
.사조: 스페인 르네상스, 매너리즘
.동거인: 헤로니마 데 라스 쿠에바스
.자녀: 호르헤 마누엘 테오토코풀로스
.주요 작품: The Resurrection, 톨레도 풍경,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The Nobleman with his Hand on his Chest, Dormition of the Virgin, Modena Triptych, The Martyrdom of St. Maurice, 다섯째 봉인의 개봉, Laocoön, Saints John the Evangelist and Francis of Assisi
엘 그레코는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이자 후기 비잔틴 미술의 중심지였던 칸디아 왕국 (현대 크레타)에서 1541년 10월 1일에 태어났다.
그는 다른 그리스 예술가들처럼 26세에 베네치아로 가기 전까지 크레타 전통 안에서 훈련을 받았다.
1570년, 그는 로마로 이주하여 작업실을 열고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엘 그레코는 틴토레토와 티치아노 베첼리오를 비롯한 당시의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로부터 매너리즘과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요소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스타일을 풍부하게 했다.
1577년, 그는 톨레도로 이주하여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며 작업했다. 톨레도에서 엘 그레코는 여러 주요 의뢰를 받아 《톨레도 풍경》과 《다섯째 봉인의 개봉》과 같이 널리 잘 알려진 그림들을 제작했다.
엘 그레코의 극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스타일은 동시대인들에게 의아함을 불러일으켰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엘 그레코는 표현주의와 입체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그의 인물과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같은 시인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엘 그레코는 타베라 병원의 의뢰를 수행하던 중, 심각한 병에 걸려 한 달 뒤인 1614년 4월 7일에 사망했다. 죽기 며칠 전인 3월 31일, 그는 아들에게 유언장 작성할 권리를 넘겨주었다. 화가의 친구인 두 명의 그리스인이 이 유언장의 증인이 되었다 (엘 그레코는 그의 그리스적 기원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73세의 나이로 산토 도밍고 엘 안티고 교회에 묻혔다.
현대 학자들은 엘 그레코를 어떤 전통적인 학파에도 속하지 않는 매우 개성적인 예술가로 평가한다. 그는 비잔틴 전통과 서양화의 전통을 결합한 비정상적으로 길고 늘어진 인물들과 종종 환상적인 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