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북한 방문기

나의 북한 방문기 (1)
• 나에게는 생활일기를 비롯하여 <목회일기> <병상일기> <여행일기> 등 소소한 기록물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노트에다 손으로 썼던 글들인데 이번엔 그 중 하나인 북한방문 이야기를 컴퓨터에 다시 입력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져한다. 그것은 1997년 북한을 방문하면서 그날 그날 손 글씨로 기록해 두었던 여행일기로 모두 53쪽에 이르는 분량인데 이제는 볼펜로 썼던 글씨가 점점 흐려지면서 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 일기를 쓸 당시, 30여년 전의 생각과 표현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때의 일기를 고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남겨 놓으려고 한다.
• 내가 이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기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려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한 개인의 보잘 것 없는 경험이요 조잡한 여행일기라 할지라도 이 또한 훗날 우리 조국의 남북관계사를 살펴보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작은 사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북조선을 방문한지도 어언 29년 째가 되어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고 내 나이 또한 80을 넘어서니 이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이런 소소한 글이라도 남겨두면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 나는 북한 방문을 마치고 평양공항을 떠날 때 출입국 관리소와 세관의 검문검색에서 이<북한 방문기>를 비롯한 일체의 기록물들과 사진들 중 하나도 첵크당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어서 무난히 가지고 나왔다.
• 과정 – 먼저 북한 방문이 이루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수년전 부터 나를 이곳 호주로 초청해 이민목회의 길을 열어 준 John Brown목사님 (한국명 : 변조은)이 호주연합교회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이하 약자로 UCA) 전국총회의 세계선교부 총무 (The Director of the Commission for the World Mission)로 일할 때, 여러 차례에 걸쳐 남한교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있는 조선기독교도련맹 (Korean Christian Federation, 이하 약자로 KCF)과도 선교협력관계를 추진해보도록 제의한 바가 있었다. 정확하게 그런 제안에 따른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그후 1990년 3월에 열린 UCA 전국총회 실행위원회에서는 “분단된 한국의 통일을 위한 특별 선언서”를 채택하였다.
(2) 1991년 2월 7일 부터 21일까지 호주의 수도 켄버라에서는 WCC 제 7차 총회가 열렸다. 그 때의 주제는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Come, Holy Spirit – Renew the Whole Creation>였다. 특별히 그 총회에는 조선기독교도련맹에서 정식 총대는 아니지만 게스트로 고기준위원장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참석하여 남북교회의 대표들과 이곳 호주연합교회 및 우리 한인교회들과 만나 피차 교류를 갖게 되었다. 그걸 계기로 하여 나는 고목사를 위시한 북조선 교회의 여러분들을 우리 교회와 집으로 초청하여 처음으로 함께 기도도 하고 식사도 나누면서 자연스런 교제를 하게 되었다.
(3) 1996년 6월 일본 도쿄에서는 남북한교회 상호교류 모임이 있었다. 그 때 UCA 총회장 DR. James Haire와 장기수 목사와 내가 참석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KCF의 대표인 강영섭 목사를 만나 UCA와 KCF가 상호 선교협력 관계를 맺기 위한 협의를 추진하기로 하고 KCF는 금년에 UCA 대표를 평양에 초청하기로 구두 약속을 했다.
(4) 시드니로 돌아온 후 나는 KCF에 여러 차례에 걸쳐 팩스를 보내 약속한 초청장을 보내 주도록 요청하였으나 끝내 성사되지는 못했다.
(5) 1997년 3월 미국 켄터키주의 루이빌 (Louisville)에 있는 미국장로교회 총회에서는 미국, 한국, 북한, 호주 등 여러 교회들이 함께하는 선교정책회의가 열렸다. 호주연합교회에서는 Graham Brooks 총회 총무와 호주 연합교회 한인교회 협의회 총무 장기수 목사와 내가 참석했고 KCF에서는 강영섭 목사와 전경남씨가 참석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시 지난해 도쿄에서 구두로 약속했던 선교협력 문제와 UCA초청 문제를 거론하고 금년 중에는 꼭 이를 실현 하도록 촉구했다.
(6) 그러던 중 1997년 8월 항가리의 데브레첸 (Debrecen)에서는 세계개혁교회연맹 (WARC) 제23차 총회가 열렸고 나는 UCA 전국 총회장 John Mavor 목사와 함께 총대로 그 회의에 참석했다. 두 주간 동안 이어진 그 총회에는 KCF에서도 강영섭 목사와 황시천 목사 등이 참석했다. 나와 그들은 여러 날 같은 숙소에 머물면서 UCA와 KCF 사이의 선교협력과 상호 초청 문제를 협의했다. 이 비공식 협의에서 그들은 정식으로 호주연합교회에서 수재의연금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당시 북한이 직면한 고난의 대행진과 최근 평안북도에서 일어난 수재 상황을 호주로 돌아가서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의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추진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7) 나는 호주로 돌아와서 호주연합교회 세계선교부와 한인연합교회 협의회에 모든 상황과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고 마침내 총회 세계선교부와 여러 한인교회들이 북한의 수해와 북한교회를 돕자는 데 뜻을 같이 하게 되었고 나는 이를 KCF측에 알렸다. 마침 9월이 되자 KCF는 UCA총회와 우리 협의회 앞으로 공식적 초청장을 보내왔다.
(8) 그후 KCF 국제부장 황시천 목사와 한인연합교회협의회 총무 장기수 목사는 상호 연락 책임자가 되어 실무적 접촉과 준비를 진행하여 마침내 북한 방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9) 방문기간 : 1997년 10월 14일 부터 21일 까지 7박 8일.
(10) 방문자 명단 : 공식 방문자 – Rev. Gregor Henderson (총회 총무) / Ms. Joy Balazo (총회 선교부 간사) / 장기수 목사 (협의회 총무) / 홍길복 목사 (협의회 회장) / 기타 비공식 동행자 -임용모 장로와 이문철 집사 (시드니 제일교회) – 이 두 분은 당시 이산가족찿기운동 호주대표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 기간이 우리와 같았다.
<1997.10.12. 주일 / 시드니 –맑음>
정확하게 새벽 2시에 눈을 떴다. 오늘은 내 생전 처음으로 북한방문을 위해 시드니를 출발하는 날이다. 아침 7시 까지 한 주간 준비해온 설교문을 가다듬었다. 본문은 마태복음 22장 34절로 40절과 28장 18절로 20절 까지다. 주제는 <21세기를 준비하게 하소서>인데, 오늘의 말씀 제목은 <목적 2>였다. 지난 주일의 <목적 1>에선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는 내용으로 말씀을 전했다.
주일 예배후 오후엔 준비회의를 하고 여행가방을 챙기느라 많이 바빴다. 지난 몇일 동안 우리 교우들은 수천 불의 돈을 모아서 전해 주었다. 이미 제일교회가 공식적으로 여행경비와 선교비를 주었지만 교우들은 특별히 북한의 수재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고 적지 않은 돈을 모아주었다. 여기엔 우리 동족에 대한 깊은 연민과 북한선교에 대한 간절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우리 교우들은 지난 몇일동안 선교위원장 김명수 장로를 중심하여 많은 구호품들을 모았다. 모아진 옷가지들과 신발과 의약품들과 구호물품들을 다 챙기고 보니 200kg이 넘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는 우리 일행 4명에게 할당되는 무게를 크게 넘어서는 것이었지만 대한항공 시드니 지사에서 일하는 우리 교우 김숭 선생의 특별한 도움을 받아 모두 다 추가 요금 없이 첵크인을 해 주었다. 이 모든 사랑의 선물들은 제일교회 성도들과 특별히 선교위원장 김명수 장로의 수고와 기도와 섬김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오래토록 기억해 두겠다.
이미 교회에서 다같이 기도를 드리고 출발했는데도 20여 명이나 되는 교우들이 공항까지 나와서 환송해 주었다. Gregor와 Joy는 먼저 첵크인을 하고 우리는 일일이 다시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린 다음 출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우리 4명 외에도 오늘 우리와 함께 평양까지가는 임용모 장로와 이문철 집사, 서울로 가는 황기덕 목사, 미국 가는 권영태 집사 등이 같은 비행기를 탔다. 내 옆자리엔 이번에 우리와 함께 평양을 방문하는 이문철 집사가 앉아 계신다. 이 집사는 이번에 8번째로 북한을 방문하신다. 그이는 진정으로 우리 조국을 사랑하는 분이요, 결코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분이 아니다. 그이는 나에게 북한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와 지식을 전해 주었다.
지금 나는 이 일기를 시드니를 떠나 브리스번을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는 대한항공 814편 비행기안에서 쓴다. 우리는 브리스번 공항에서 레드 와인 한병을 샀다. 평양에 가면 오늘 구입한 호주산 포도주와 북한산 포도주를 섞어서 성찬식을 하리라 생각했다. 시간은 어느덧 밤 12시가 넘었다. 눈은 감겨지고 지친 몸을 가누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기내에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북한 방문기 첫날 일기를 기록해 둔다. 북을 찾아가는 내 마음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심정이다. 이번 방문을 통하여 꼭 호주와 북한, 우리들의 조국인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작은 물꼬라도 트는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조국을 떠나 이역에서 살고 있는 나와 장기수 목사 같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우리를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계속) *홍길복 (2026.3. 9)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