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 기도

걷는 기도 (18)
혼자 떠나는 길은
지도 위에 없는 질문처럼 흔들립니다
발걸음마다 의미를 묻지만
대답은 늘 한 박자 늦게,
바람의 뒤편에서만 속삭입니다
나는 나를 데리고 떠난 줄 알았으나
실은 나를 잃어버린 채
길 위에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안의 조용한 동행이
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그 음성은 소리보다 깊고
생각보다 먼저 도착하여
심장의 가장 어두운 방을 두드립니다
나는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도망이 아니라
머묾으로서의 걸음,
한 걸음마다
나의 불안이 흙이 되고
또 한 걸음마다
나의 침묵이 기도가 됩니다
길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는 것,
흩어진 생각들을 모아
하나의 숨으로 엮고
상처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저 품는 것
그때, 여행은 바뀝니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영원이 되고
방황이라 부르던 길들이
하나의 깊은 귀향이 됩니다
나는 이제 앎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찾기 위한 끝없는 질문이지만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이미 답 속을 걷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파라마타강변을 걷습니다
발걸음마다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는 나와 함께 있다”
그 말이
든든한 기도가 되어
길 위에 빛처럼 내려앉습니다
나귀타시고 입성하시는
당신의 뒷모습처럼……
20260327 교회 서재에서 匍越의 [걷는 기도] 중에서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