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고사리를 중심으로 양치식물 이야기(4)
수양산[首陽山]의 고사리
노년층의 한국인은 이씨조선 세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성삼문의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라는 시조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암기하고 있을 줄 안다. 首陽山 바라보며 夷齊랄 恨하노라[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원망한다], 굶어 주려 주글진들 採薇도 하난것가[굶주려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서야 되나], 아무리 푸새엣 거신들 그 뉘 따헤 낫다니[비록 푸성귀라 할지라도 누구 땅에서 난 건인가요]. 이 시조의 중장에 나오는 채미[採薇]가 고사리다. 수양산[首陽山]이라는 산은 중국에도 여러 개가 있고 한국에도 3개가 있다고 하며 그중에 북한땅 해주시에 수양산이 있다. 성삼문이 중국을 자주 드나들던 분이니 해주시의 수양산을 바라보고 시조을 읊은 것이 아닌가 상상해보지만 정확한 출처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은둔하며 고사리를 먹고 버텼다고 하니, 고사리분포의 학술조사를 통해 이분들의 행적을 고증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근자에 고사리가 독성때문에 자주 거론이 되니 거부감의 정서가 있으나 고사리로 수양산에서 버텼던 백이와 숙제는 약 3500년 전 존재하였던 상[商]이라는 나라의 사람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3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고사리를 식용으로 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고사리의 독성이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유구한 세월속에서 식품으로서의 인기를 누려 온 것이 아닌가? 유추해 보는 것이다. 필자의 집안은 전통적인 유교집안이며 선친께서 평생을 제사지내는 일에 정성을 쏟다 가시는 바람에 호주에 와서도 관습을 못 버리고 설날이나 추석의 차례[茶禮]와 여섯 번의 기제사[忌祭祀]를 지내고 있으며 제사음식으로 필수적으로 호주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는 밤, 대추와 고사리를 챙겨서 제상[祭床]에 올린다. 금년에는 추석즈음에서 여행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음력으로 7월 하순에 있는 어머니 추모와 추석차례를 함께 드리는 편법[便法]을 썼다. 그런데 차례를 다 치르고 나서 실수를 저질른 일이 발견돼서 실소[失笑]를 하였다. 지난해 연말 한국 방문시, 생질녀[甥姪女]로 부터, 충북 영동의 사돈집에서 보내온 것이라며 말린 고사리 한보따리를 선물로 받아온 것이 있었는데 추석 차롓상[茶禮床]에 올리려고 하루 전부터 물에 담갔다가 정성껏 고사리 나물을 마련하였었으나 정작 차례상에 올리는 것을 깜박하고 철상한 후에야 고사리나물 빠뜨린 것을 알은 것이다. 호주에서도 산행중에 간간히 고사리를 채취하여 말려 두었다가 쓰곤 하는데 충북 영동에서 채취하였다는 고사리는 비교가 안되게 연하고 맛이 있어서 조상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온 가족이 고사리나물을 맛있게 먹으며 즐겼다.
제사상에 올라오는 고사리
필자는 차례를 지낼 때 관행을 버리고 상황에 맞는 차례를 지내려고 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유치원생인 막내 손자가 차례 올리는 순서에서 자기가 늘 마지막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눈을 감고 묵묵부답 1시간여 가량 농성을 해서 온 식구들이 당황한 일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막내손자를 우선 참여케 해서 막내손자의 한[?] 풀어 준일이 있었다. 제사가 무엇인가? 종교적으로 견해가 달리 할 수 있으나 제사[祭祀]란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추념함이다. “祭는 사람과 귀신이 서로 교제한다[際]는 뜻이며, 祀는 似(사·같다)의 뜻이다. 즉 돌아가신 조상의 혼령과 만남[際]을 갖는 것과 비슷한 것[似]이란 뜻이다. 만날 듯 말 듯한 조상과 후손과의 은밀한 교감 행위이다. 따라서 제사는 제물을 많이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이의 정성이 중요하다.”(김기현 전북대 명예교수·퇴계학)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 호주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 과일 종류가 다양해 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메론, 수박, 포도 등 한국에서라면 근접할 수 없었던 과일이 차례상을 채우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제사음식의 논란은 있어온 것 같다. 이른바 ‘향벽설위(向壁設位)인가? 향아설위(向我設位)인가?’로 유학자들의 논란[論難]이 있었다는 것이다. 향벽설위란 벽을 향해 음식을 차려놓은 것을 말하며, 향아설위는 나(후손)를 향해 음식을 차리는 것을 뜻한다. 후손이 맛있게 먹고 마시면 조상님도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며 내(후손) 안에 조상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조상과 후손 사이에 교감이 이렇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편의적인 발상이다. 어찌됐던 금년 추석의 차례에는 영동 고사리덕분에 특별한 음식을 즐겨먹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식용고사리종[種]
호주에선 고사리 채취가 불법이라 차례상에 호주산 고사리 올리기가 곤란할 것 같다. 호주산 고사리와 한국산 고사리가 분류학적으로 같은 종인지 알아보기 위해 고사리 전문가가 있다는 Bluemountains의 그렌부륵 스테이션 근처에 있는 nursery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당사자가 없어서 표본 2점을 맡기고 왔었는데 1주 후에 표본감정한 결과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학명이 “Pteridium esculentum”인 이 고사리가 먹는 고사리다. 필자의 집앞에 Bidjigal Reserve라는 자연보존 숲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10m가 넘는 나무고사리며 고사리 종류도 많다. 이 보전지역의 계곡길을 걷다보면 다소 햇빛이 잘드는 creek 언덕배기에 먹는 고사리 Pteridium esculentum군락이 드믄드믄 눈에 띄인다. 주변에 한인들이 거주하기 때문이겠지만 이른 봄에 고사리 순을 채취한 흔적이 역역하다. 줄기며 잎새의 생김새가 한국고사리와 거의 같아서 검색하여 보았으나 비슷하기는 하지만 다른 종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식용으로 채취하는 고사리는 학명이 “Pteridium aquilium”으로 종[種]이 다르다. 이고사리를 일반적으로 고사리라고 부르고 식용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고사리는 잎자루[葉柄]가 길쭉하고 잎 모양도 독특해서 한 두 번 본 사람이면 단번에 구분할 수 가 있다.
고사리의 어원[語源]
다음은 ‘고사리’와 ‘고비’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검색한 내용이다. ‘고사리’는 ‘훈몽자회’, ‘두시언해’ 등과 같은 중세어에서도 역시 ‘고사리’로 쓰였다고 한다. 한자로는 ‘미(薇, 고비 미, 고사리 미)’나 ‘궐(蕨, 고사리 궐, 고비 궐)’이 고사리를 가리키는 글자인데, 한자 단어로는 ‘궐채(蕨菜)’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세어와 현대어에서 전혀 차이가 없이 그대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방언에서도 살펴보면 정말 다양하게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개사리, 게사리, 게아리, 게비, 고비, 고삐, 고사리, 고새리, 고세리, 고시리, 고싸리, 괴비, 괴사리, 귀사라, 기사리, 깨사리, 꼬사래, 꼬사리, 꾀사리, 끼사리’ 등 다양해서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처럼 ‘고사리’와 ‘고비’가 발음할 때 부르기 편하게 변이만 약간씩 겪은 것으로 보인다. ‘고사리’에 대한 어원 해석은 ‘동언고략(東言攷略)’이라는 책에서도 더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곡사리’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궐(蕨)을 ‘고사리’라 함(ㅏ: 아래아)은 곡사리(曲絲里)니, 권곡(拳曲)하고(ㅏ: 아래아) 유세(柔細)하니라(ㅏ: 아래아).” 이것을 해석하면, “‘궐’을 ‘고사리’라고 하는 것은 ‘곡사리’이니, 모양이 구부러지고 연하고 가늘기 때문이다.”라고 표현이다. 이 해석은 ‘구부러진 실’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인데, 고사리의 모양을 보고, 음이 비슷한 한자의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즉 한자 ‘곡사리’가 변하여 ‘고사리’가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서정범 교수는 ‘국어어원사전’에서 ‘고비사리’가 줄어서 ‘고사리’가 된듯하다고 보고 있다. 즉 ‘고’는 ‘고비’의 ‘고’이고, ‘사리’는 ‘풀’의 뜻을 가진 ‘사리’라고 보았다. 여기에서의 ‘사리’는 음운변화를 거쳐 ‘새’가 되기도 하는데, ‘새’는 어원적으로 ‘풀’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즉 삳>살>살-이>사리>사이>새의 변화를 거쳤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리’는 ‘새’로 변하기 전의 형태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으로 본다면, 서정범 교수는 ‘고사리’를 ‘고비’와 ‘사리’의 합성어로 보고 있는 듯하며, 그 어원적 해석은 ‘고비풀’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고사리 순을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만 식용으로 한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호주원주민인 애버리진[Aborigine]도 먹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따금 고사리에 대한 괴담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곤 한다. 암을 유발한다거나 정력을 약하게 한다는 등의 속설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고사리의 누명’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하지만 항간을 떠도는 소문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고사리를 먹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사리를 먹어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궐(蕨, 고사리)이 음력 3월 임금에게 진상하는 특산물로 기록돼 있다. 중국 동북부, 일본, 대만, 티베트지역과 함께 뉴질랜드 원주민도 고사리를 섭취해왔다. 다음에는 식품으로서의 고사리의 실체와 부작용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해 보려고 한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