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의 신학논단 : 천로역정강해 (제7강의)

기쁨의 산 : 종말론적 비전과 교회의 사명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에서 아름다움의 궁전 (House Beautiful)과 기쁨의 산 (Delectable Mountains)은 기독도가 여정 중에 쉼과 회복을 경험하는 중요한 두 장소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장소는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학적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두 장소는 천로역정에서 교회의 역활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 강의에서 (강의 3) 아름다운 궁전과 교회에 대하여 설명하지만 이곳에서 한번 더 정리하고 두 번째 교회의 역활인 “기쁨 산” 에서 만남 목자들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한다.
아름다움의 궁전 (House Beautiful): 신앙이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무장
『The Pilgrim’s Progress』에서 아름다움의 궁전 (House Beautiful)은 기독도의 순례 여정 가운데 중요한 전환점으로 등장한다. 이곳은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십자가 이후 신앙이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고 깊어지는 신학적 공간이다. 즉, 구원의 사건 이후 신앙이 실제 삶의 방식으로 구조화되는 자리이며, 교회의 본질적 역할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기독도는 이미 짐을 내려놓았으나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는 상태에 있다. 이는 구원이 단 번의 사건이라면, 신앙의 성숙은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아름다움의 궁전에 이르게 되어 환대를 받는다. 궁전의 여성으로 상징된 인물들 — 분별, 신중, 경건, 사랑 — 은 교회의 영적 성품을 상징한다. 기독도는 이곳에서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경험을 해석한다. 신앙은 개인적 체험 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공동체 안에서 해석될 때 비로소 깊어진다. 이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히 10:24–25)는 말씀과 일치한다.
이 장소에서 만난 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기독도는 자신의 여정이 영적 전쟁임을 깨닫는다. 교회는 단순한 위로의 장소가 아니라,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공동체이다. 특히 떠나기 전 전신갑주를 받는 장면은 교회의 본질중에 중요 역활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1)는 말씀처럼, 교회는 신자를 세상 속으로 보내기 위해 준비시키는 훈련의 장소이다.
결국 아름다움의 궁전은 교회의 세 가지 역할을 보여준다. 교회는 받아들이는 공동체이며, 가르치는 공동체이고, 준비시켜 파송하는 공동체이다. 이곳에서 기독도는 신앙을 무장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기쁨의 산 (Delectable Mountains) : 종말론적 비전과 교회의 사명
『The Pilgrim’s Progress』에서 기쁨의 산 (Delectable Mountains)은 순례자의 여정 속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전환점을 형성하는 장면이다. 기독도와 소망이 이 산에 올라 목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기독도에게 멀리 천성을 바라보는 비전을 열어준다. 그들이 가고 있는 방향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이 경험은 단순한 위로의 순간이 아니라, 신앙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종말론적이란 미래에 도달할 하늘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므로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크리스챤은 미래의 하늘나라를 지금 여기서 약속을 통해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기독도는 이미 십자가를 통과하였고,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기초를 형성하였으며, 여러 시험과 고난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자동적으로 신앙의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전히 길을 잃을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며,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의존할 때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기쁨의 산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비전이 없으면 사람은 길을 잃고, 백성이 방자하여 망할 것이다 (잠언 29:18) 라는 경고를 일깨워주는 장소였다. 기독도와 소망이 산에 올라 목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목자: “순례자들이여, 너희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기독도: “우리는 천성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 때로 흐려지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목자 (손을 들어 멀리를 가리키며):“눈을 들어 보라.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소망 (숨을 멈추며): “…빛나는 성입니다. 저곳이 우리가 가는 곳입니까?”
목자: “그렇다. 너희의 끝이요, 약속이다. 멀리 보아야 길을 잃지 않는다.”
(잠시 침묵 후, 목자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목자: “이제 저쪽을 보라. 저 길을 간 자들이 있다.”
기독도: “…길이 무너져 있습니다. 돌아온 흔적이 없습니다.”
목자: “.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떠나 천성의 비전을 잊고 잘못된 신앙의 유혹을 받아 잘못된 길로 들러선 자들입니다.
소망: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끝까지 갈 수 있습니까?”
목자 (조용히): “너희의 힘으로는 갈 수 없다.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천성을 바라보며 길을 가야 한다. ”
기독도 (고개를 숙이며): “…이제 알겠습니다. 길은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여지는 약속을 굳게 잡고 가는 길이군요.”
목자: “그렇다. 천성의 비젼 보며 걸어가는 자만이 끝에 이른다.”
1.종말론적 사건 : “천성을 여기소 먼저 바라보며 걷는 신앙”
기쁨의 산에서 이상과 같이 기독도는 목자들과 대화를 통하여 바라보며 끝까지 전진해야 될 것과 천성을 바라보지 않고 걸어갈 때 위험에 직면한다는 경고를 받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종말론적 현실의 선취 (prolepsis)이다. 즉, 미래의 완성이 현재의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사건이다.
기독교에서 “종말론적” (eschatological)이라는 말은 단순히 세상의 마지막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최종 완성이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신학적 관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말론적 삶”이란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바라보며, 그 약속을 기준으로 현재를 해석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이는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현재 속에서 드러내며 살아가는 크리스찬의 특유 존재 방식이다. 신자는 보이는 현실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삶을 살아간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기준으로 살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본향을 더 확실한 것으로 믿었고, 그 믿음이 그들의 선택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신앙이란 현재의 상황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며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삶이다.
2.목자들의 신학적 의미 와 교회의 역활
기쁨의 산에서 만나는 목자들은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다.
그들은 교회의 성숙한 지도력, 곧 해석 공동체의 대표이다. 동시에 교회의 역활을 뜻한다. 기독도는 목자들을 통하여 다음을 배우게된다.

(1) 보여주는 역할 (Vision) — 목적을 분명하게 한다
기쁨의 산에서 목자들이 수행하는 첫 번째 역할은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순례자의 신앙을 종말론적 방향으로 재정렬하는 신학적 행위이다. 기독도는 이곳에서 멀리 천성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 경험은 단순한 상징적 장면이 아니라 미래의 실재가 현재의 인식 속으로 들어오는 사건이다.
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들은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였다” (히브리서 11:16). 즉, 신앙은 현재의 조건이 아니라 미래의 약속에 의해 규정된다. 목자들은 순례자가 길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먼저 그 길의 “끝”을 보게 한다. 이러한 비전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서 방향성을 제공한다. 목적지가 분명해질 때 현재의 고난은 의미를 가지게 되며, 길 위의 혼란은 재해석된다. 따라서 목자의 비전 제시는 신앙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들은 목자들을 만나 기쁨의 산에서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라는 말씀을 깨닫게 된 것이다 (히 11: 1). 신자는 더 이상 막연한 기대 속에서 걷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본 것 즉 천성을 믿음으로 현재에서 경험하며 순례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성도들에게 비전이 없으면 방향을 상실하게 되므로 신앙의 비젼을 상실하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
(2) 경고하는 역할 (Discernment) — 선택을 바로잡는다
목자들의 두 번째 역할은 경고를 통해 분별을 형성하는 것이다. 기쁨의 산에서 목자들은 단지 천성의 영광 만을 보여주지 않고, 잘못된 길과 그 결과 또한 드러낸다. 순례자는 무너진 길과 파멸에 이른 사람들의 흔적을 보게 되며, 이를 통해 선택의 결과를 미리 인식하게 된다. 이는 신앙이 단순한 낙관이나 희망의 유지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요구하는 삶임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고린도후서 4:18)고 말하며, 참된 판단 기준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영원한 관점에 있음을 강조한다.
천성을 향하여가는 길에는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 이단의 유혹, 거짓 천성을 보여주는 거짓 메시야들, 인간의 점술과 복술 자들이 있다. 목자들의 경고는 순례자의 신앙에서 만나게되는 위험을 인식 하도록 가르친다. 신앙의 분별은 옳고 그름을 아는 것 뿐아니라 어떤 길이 끝까지 신앙적으로 옳은지를 보는 능력이다. 따라서 목자의 경고는 신자를 두려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확신에서 벗어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역활이다.
(3) 해석하는 역할 (Interpretation) — 현실을 하나님 관점에서 보고 행하게 한다
목자들의 세 번째 역할은 순례자의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다. 기쁨의 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목자들은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순례자가 자신의 여정과 연결하여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는 교회의 중요한 기능인 해석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반영한다. 인간의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으며, 해석을 통해 비로소 방향을 갖게 된다. 성경 역시 현실을 해석하는 틀을 제공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목자들은 바로 이 해석의 과정을 수행한다.
크리스찬들은 정치, 사회 경제 다양한 환경속에 살아간다. 교회의 역활은 바른 판단 바른 가치관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이 세상과 단절된 별개의 세상에 살지 않는다. 청교도 신자들이 저 멀리 천성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 세상을 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며 예언자적 삶을 살아 가도록 인도할 책임을 가진다고 가르친다. 교회가 이런 것들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구원자는 기쁨의 산에서 목자가 보여준 죽음의 산 계곡에 잘못 들어 죽은 자들의 위기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존 번연은 목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가 단순한 여정의 길을 넘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는 신학적 사명을 지닌 존재임을 제시한다. 순례 과정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사건들은 개인적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 ·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때 순례자의 삶은 신앙의 내면적 상태를 넘어서, 시대를 변화시키는 윤리적 · 신학적 실천으로 나타나며, 그 결과 그들의 여정은 역사 속에 변혁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 점에서 목자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신학적 해석자이다. 그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이해하게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순례자는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신앙을 지속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을 얻게 된다. 동시에 그들의 삶은 지나가는 곳마다 빛이 되어 어둠을 드러내고, 소금이 되어 사회의 부패를 억제하는 변혁적 영향력을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천로역정 – The Pilgrim’s Progress』에서 교회는 단순히 신앙의 출발을 돕는 공간이 아니라, 그 여정을 끝까지 완성하도록 이끄는 종말론적이고 해석적인 공동체로 드러난다. 교회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현재 속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신앙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동시에 경고와 분별을 통해 잘못된 길로부터 순례자를 보호한다. 이 두 기능은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신앙의 지속성과 성숙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한 위로의 장소가 아니라, 보게 하고, 분별하게 하며, 신앙을 해석해 주며 천성을 향해 끝까지 걷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공동체이다. 결국 교회는 순례자가 미래를 현재에서 바라보며 종말론적 비전을 통하여 천성을 향해가도록 영적 삶을 도와주며 하늘나라의 윤리와 가치관을 이 세상에 드러내 보이도록 성도들을 돕고 위험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교회 역활과 사명을 수행한다. 다음 강의에서는 또 다른 유혹을 만난 기독도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이상택 목사
(아이오나 콜럼바 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