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관계의 상처는 왜 이렇게 깊은가
인간에게 결속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결국 관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은 한 사람의 삶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 시기에 형성된 결속은 단순한 감정적 안정감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결속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 배우자, 공동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는 삶의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기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때 비로소 온전해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속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할 때, 사람은 깊은 정서적 혼란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한 청년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4년 동안 사귀어 온 여자 친구에게 깊이 의지하며 강한 결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관계는 그의 삶의 중심이었고, 정서적 안정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 받았다. 그 순간 그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마치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사라진 듯한 느낌,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공허함이 그를 덮쳤다. 오랫동안 형성된 결속이 한순간에 끊어질 때 인간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안정적인 결속을 경험하지 못한 한 여성은, 성장 과정에서 깊은 정서적 결핍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부모에 대한 분노와 사랑받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뒤섞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고, 이는 오랜 기간 우울로 이어졌다. 그는 결혼을 통해 새로운 결속을 기대했지만,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충분한 정서적 연결을 경험하지 못했다. 결국 점점 사람들 과의 관계를 회피하게 되었고, 삶의 여러 영역에서 흥미를 잃으며 고립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결속이 부족한 상태는 종종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중독적인 대상에 의존하게 된다. 알코올, 음식, 도박, 물질, 심지어 종교적 활동이나 성취까지도 관계를 대신하는 ‘대체 결속’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대상은 일시적으로 공허함을 덜어 주지만, 진정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더 큰 공허와 문제를 남기게 된다. 관계의 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결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로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어린 시절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자극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관계 형성을 방해한다.
헨리 클라우드의 『변화와 치유』는 이러한 왜곡된 사고를 잘 설명한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결국 나를 떠날 것이다”와 같은 믿음은 관계의 시작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생각이 굳어질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고,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건강한 결속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첫째,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 속에 결속의 결핍이 있었는지를 인정하고, 그것이 현재의 관계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변화는 언제나 인식에서 시작된다.
둘째, 관계를 향한 용기를 내야 한다.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는 일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을 열지 않으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 걸음 내딛고, 조금 더 마음을 열어 타인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서합리치료의 창시자 알버트 앨리스는 젊은 시절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낯선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말을 걸었다. 그 경험은 그의 부정적인 신념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셋째, 자신과 타인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믿기 어렵다. 동시에 타인을 불신하면 관계를 시도하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건강한 결속은 건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변화는 혼자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다. 심장마비에서 회복 중인 환자들 가운데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회복 속도가 더 빠르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인간이 맺는 관계와 정서적 연결이 단지 마음의 문제를 넘어,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더 깊은 고립을 경험한다. 온라인과 디지털 환경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실제적인 정서적 결속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살아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결국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은 건강한 결속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관계는 때로 어렵고,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치유하며, 삶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 준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무너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관계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중심에는 언제나 ‘결속’이 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한 경계선
도시에 살다 보면 새롭게 조성되는 건설 현장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공사 현장은 중장비가 끊임없이 오가는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현장에는 반드시 안전 펜스가 설치되고,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이처럼 물리적인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 두면 사람들은 그 공간을 자연스럽게 위험한 장소로 인식하게 되고, 불필요한 접근을 스스로 삼가게 된다. 경계선은 단순한 제한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보호 장치인 셈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경계선이 존재한다. 마당의 울타리나 ‘위험’ 표지판처럼 눈에 보이는 경계는 비교적 쉽게 인식할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를 존중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선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적절한 선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관계 속에서 혼란을 겪거나, 의도치 않게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경계를 쉽게 침범한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필요를 앞세우거나, 상대의 동의 없이 간섭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마치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쉽게 내어주며,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경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세워 누구도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고, 타인과의 연결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아니요’라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를 쉽게 내어주게 된다. 그 결과 반복적으로 부탁을 받거나, 때로는 무례한 요구까지도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정서적 피로와 소진이 누적되고,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자신은 지치고, 관계 속에서도 만족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아니요’를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지만, 타인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거나 이기적인 인상을 줄 수 있으며, 관계 형성과 유지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건강한 관계는 ‘무조건 수용’이나 ‘무조건 거절’이 아니라, 균형 잡힌 선택 속에서 이루어진다.
타인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를 스스로 설정하기보다는 타인이 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쉽게 균형을 잃는다. 해야 할 책임을 놓치거나,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정서적·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공동체 안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겉으로는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피로와 혼란, 그리고 방향을 잃은 상태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 과정에서도 경계선의 중요성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단순히 거절의 어려움을 넘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크지만, 자신의 필요를 드러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결국 혼자 감당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그로 인해 정서적 부담이 쌓이거나 자기 보호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아니요’는 말할 수 있지만 자신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과도하게 확장하거나, 타인의 영역에 쉽게 개입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삶의 중심이 흐려지고, 관계 속에서 갈등이나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경계를 인식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며, 둘 다 균형 있게 발달해야 한다.
성경의 비유 가운데 열 명의 처녀 이야기는 경계선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을 미리 준비했지만, 나머지 다섯 명은 준비하지 못했다. 신랑이 도착했을 때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은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를 거절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이기심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이야기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요청에 응하는 것이 항상 선한 행동은 아니며, 때로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책임 있고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과 나눔 역시 분별과 균형 속에서 이루어질 때, 자신과 타인을 모두 살리는 건강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경계선은 개인의 삶의 안정과 정신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기준이다. 건강한 경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무엇이 자신에게 중요한지 분명히 아는 것이 출발점이다. 또한 상황에 맞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면서도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상담에서는 이를 ‘자기 주장 훈련(assertiveness training)’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동시에 타인의 경계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 또한 함께 익혀야 한다.
건강한 경계선은 나와 타인을 동시에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이다. 그것은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이 경계를 어떻게 세우고 지켜 가느냐에 따라 삶의 균형과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