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 <피렌체 비가>

<피렌체 비가>
• <피렌체 비가 (悲歌) – 르네상스 도시 여행> <Florentine Elegy – A Trip to the Renaissance City> – 이 책은 최근 시드니 인문학교실의 최진선생께서 추천도 하시고 빌려주셔서 읽게 되었다. 현재 충북대학교 독일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문광훈박사가 2024년 9월 말 부터 한 두 달간 이탈리아 피렌체에 머물면서 그 도시의 수 많은 르네상스 유물들을 둘러보고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생각을 가다듬어서 쓴 700여 쪽이 넘는 대작이다. 그림과 삽화와 지도를 포함하여 이미지만도 160여개 이상이나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피렌체를 중심한 르네상스문화를 찿아나선 탐방기이며 저자의 체험적 기록이다.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이 책을 통하여 문교수는 피렌체 안에서 빛과 어두움, 찬란함과 상스러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며 讚歌와 悲歌를 같이 노래한다. 웃음 속에도 울음이 있고, 울음 속에도 웃음이 있듯이 말이다. 그가 쓴 시의 한 귀절 처럼 <찬가속의 비가요, 슬픈 찬가>라 할 수 있겠다. 인생과 역사와 모든 예술 속에는 찬가와 비가가 하나의 변증법 처럼 진행되어 가고 있기에 그러하리라! 르네상스를 꽃 피웠던 피렌체에서 그는 자신이 돌아본 도시와 공원, 성당과 미술관, 궁전과 박물관, 그리고 그 안에 전시되거나 숨겨진 작품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자료를 찿아 공부하고 글로 가다듬으면서, 이들 문화유산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조용히 되새디게 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르네상스 예술사와 그 탐방기를 넘어 하나의 인문학 도서로 자리한다. 2025년 말 서울에 있는 출판사 <풍월당>에서 발간했다.

• 다음은 문광훈교수가 <피렌체 비가>를 통하여 르네상스시대 피렌체를 중심한 건축과 회화 중심의 전문적 미학을 평이하게 서술한 것을 홍길복이 그의 <시드니인문학교실>을 위해서 인문학적 안목에서 발췌하여 메모해 두었던 글들에다 간간히 그의 생각을 덧붙여서 쓴 잡문이다.
1) 미술과 조각, 음악과 소리, 건축과 문학 등 모든 예술작품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것들은 쉬임없이 그것을 보고 듣고 읽고 느끼며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말을 건넨다. 시비를 걸기도 하고 생각을 촉구하기도 한다.
2) 르네상스 시대는 찬란했던 만큼이나 어두웠고, 영광스런 것 만큼이나 부끄럽기도 했다. 피렌체의 문화적 성취는 그 땅이 조화롭고 평화스러워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순과 회오리로 부터 생겨났다. 모든 문화적 성취는 모순과 싸우면서 이루어진다.
3) 모순, 균열, 이율배반, 수치, 모욕은 인간과 역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인간의 본성과 역사의 진행은 바로 이 모순과 균열로 엮어져 있다.
4) 모든 예술품들은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말없는 말>을 한다. 모든 예술품들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번역>을 요청한다. 말없는 예술품들은 말 할줄 아는 감상자들에게 <자기의 언어>로 말해보라고 한다. 이렇듯 예술작품이 감상자에게 요구하는 것을 우리는 <심미적 요청, aesthetic imperative>이라고 한다.
5)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걸려있는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작품 밑에 있는 석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 때는 나도 지금의 당신들이었소. 그러나 언젠가는 당신들도 지금의 나처럼 될 날이 올 것이오> memento mori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은 다 <한 때>일 뿐이다.
6) 그것이 우아한 것은 유연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아름다운 것은 조화롭기 때문이다.
7) 단테의 <신곡>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고통의 산물이다. <떠나감, 잃어버림, 그리고 아픔> – 이것이 우리를 신의 세계를 찾아가게 만든다.
8 )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런 것 중 하나는 <지금의 불행 속에서 지난 날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일이다>
9) 피렌체의 <성 마르코 성당>에는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침묵>이 걸려있다. 한 명의 수도사가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오른손 검지는 입술에 갖다 댄 그림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면서 우리들에게 침묵으로 말한다. <제발 더 이상 떠들지 마라. 침묵의 언어를 배워라. 말하지 않고도 말할 줄 아는 법을 배워라>
10) 우리는 흔히 인쇄체가 아닌 필기체를 <이탤릭체>라고 한다. 이것은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필사작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1)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인간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나 유대교나 이슬람 뿐만 아니라 무신론과 다신론, 미신이나 점성술까지도 모두 다 비슷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인간이 정말 위대한 것은 <고정 되어 있지 않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쉬임없이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바꾸고 다른 선택과 결정을 함으로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고 보았다.
12) 이미했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과격한 사고와 행위는 지속성을 갖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태적으로 지속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13) 사람을 너무 간단하게 보고 판단해서는 않된다. 인간에게는 늘 양면성이 공존한다. 선한 측면 뒤에는 보이지 않는 악한 면도 있다. 지성적이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도 동시에 반지성적이고 비양심적이고 부도덕적인 측면이 숨겨있게 마련이다.
14) 브루넬루스키는 1440년 피렌체에 처음으로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세웠는데 그 시설의 이름을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 Ospedale degli Innocenti>라 이름했다. 그 뜻은 <죄없는 이들을 위한 병원>이었다.
15) 인간은 빛 자체를 볼 수는 없다. 우리는 빛의 본체가 아니라 빛이 던지는 파장을 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을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신이 던지는 파동만을 볼 뿐이다. 우리는 파동을 통하여 본질을 추구한다.
16)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픔, 고통, 비극, 소음 같은 불행이 도처에 널려있다. 불행은 보편적이다. 가끔, 어쩌다가, 특별하게 기쁨과 행복, 고요함과 깨끗함이 끼어들 뿐이다. 항상 존재하며 가까이 있는 것들은 결코 행복도 기쁨도 될 수 없다.
17) 나는 늘 말한다. <절대적인 것은 절대로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죽음>이다. 모든 인간은 <절대로 죽는다.> 예외란 없다. 죽음은 절대적 평등을 제공한다.
18)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 이 점을 깨닫고 받아드리는 것이 곧 <구원으로 가는 길>이다.
19) <감정학으로서의 미학> – 감정도 이성적으로 설명하면 미학이 된다.
20) 예술사란 감정의 표현사이다. 그리고 이 감정의 표현사는 곧 인간성의 역사가 된다.
21)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동시에 그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장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의 사회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22) 보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묻게 된다. 회화와 건축, 조각과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삶과 행동을 준비하게 만든다.
23) 모든 그림은 화가와 감상자를 대화로 연결시켜준다.
24) 물질 자체에는 진선미가 없다. 그것은 아주 중립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영혼에는 조화와 균형이 있기에 거기에서 진선미가 만들어진다.
25) 어디에서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26) 균형과 조화, 욕망과 절제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에피큐리안들의 철학만은 아니다. 유교나 힌두교의 <사트바, Sattva>도 선을 향한 조화의 의미를 강조한다.
27) <자기를 절제하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남겨놓은 최후의 신적 이미지이다.
28)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신과 같아지는 것, homoiosis theoi>이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신과 같아질 수 있는가? <진실해야 한다> <착해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들은 진선미가 신의 자리인 거룩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29) 모든 억지로 하는 일들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30) 르네상스 때 그려진 그림, 만들어진 조각과 건축물들은 거의가 다 종교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 종교적인 것들은 한결같이 과학적 연구와 검토와 기술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미켈란젤로의 신성한 작품들은 깊은 해부학적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 졌다. 가장 종교적인 것이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종교적인 것이 되었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대립되고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협력적이다.
31) 중세는 예술을 종교에 예속시켰으나 르네상스는 예술을 종교에서 해방 시켜 주었다. 종교화라는 이름을 붙임으로 종교적 시각이나 신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했던 예술품들을 합리적이며 과학적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32) 우피치 미술관의 이탈리아어 uffici는 사무실을 뜻하는 ufficio (영어의 office)에서 온 말이다. 이 미술관은 본래 정부의 각종 사무실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33)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는 1743년 죽으면서 400여년에 걸쳐 메디치 가문이 모으고 소장했던 모든 예술품들을 피렌체시로 넘겨주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메디치 가문이 남기는 모든 유품들은 단 한 점이라도 피렌치를 벗어나면 않된다> – 그래서 우피치 미술관은 유럽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 되었고 피렌체의 공공 재산이 되었다.
34) 싹은 <트고>, 잎은 <나고>, 꽃은 <피고>, 열매는 <맺힌다.> 이 <트고, 나고, 피고, 맺히는 것>을 보티첼리는 그의 작품 <봄>과 <비너스의 탄생>에서 생생하게 그려냈다. 바로 이것이 <르네상스의 시작>이 되었다. 다시 살아나는 출발점이 되었다.
35)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는 성경을 최고의 진리로 받아드렸지만, 동시에 이성주의자였고 자연과학자였다. 그는 성경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수학적, 기하학적, 생물학적, 해부학적, 지질학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성경도 많이 읽었지만 죽은 사람의 시체를 30구 이상이나 해부할 정도로 과학적 검토와 실험을 거듭한 사람이었다.
36)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수태고지> <세례자 요한> <촤후의 만찬>을 비롯하여 자신의 자화상과 스케치들은 한결같이 논리와 이성을 초월한다. 그의 작품에는 신학과 과학, 논리와 신앙을 넘어서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 의미 역시도 <하나의 의미>만은 아니었다. 그의 작품속에는 <의미의 의미>와 <의미의 무의미>를 넘어서는 <또다른 의미>가 도사리고 있다.
37)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균형과 비례, 즉 조화를 따라 그려졌다. 그는 모든 균형과 조화의 원천은 인간의 몸이라고 보았으며 인간의 몸은 최고로 <신성한 비례>로 만들어졌다라고 생각했다.
38) 모든 균형과 조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알맞게 주고 알맞게 받음에서 생겨난다. 가장 알맞게 주고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사랑에서는 무엇이 나오는가? 평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이 주제에 따라 만들어진 것들이다.
39)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기독교적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품을 만들 때도 반드시 성스럽고 고상하게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성과 속을 적절하게 조화 시켰고 균형있게 표현했다. 르네상스는 이렇게 거룩한 것과 추한 것, 초월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 감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40) 모든 예술품은 창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가 살던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과 연결된다. 거기에는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이 뒤섞이게 된다. 그래서 모든 예술작품들은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시대상이요 자화상이다.

41) 모든 예술 작품 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공존한다. 축제 가운데도 잔인성이 있고 기쁨 가운데도 슬픔이 있다. 화가나 음악가, 문학가와 인문학자들은 그것을 동시에 그려낼 줄 안다. 카라바조의 <바쿠스>에도 그것이 아주 잘 표현되고 있다. 넘치는 포도주잔과 벌레 먹은 사과가 함께 들어난다. 그는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함께 그리고, 축배의 잔만이 아니라 시들고 벌레먹은 사과도 같이 그림으로 인간과 세상을 함께 보도록 이끌어 준다. 그런데 설교가인 나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다.
42) 모든 예술가들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다. 육체적이면서도 정신적이다. 거룩하면서도 속되다. 그런데 이들 예술가들은 그 양면성을 대결도 시키지만 동시에 중화도 시키다가 마침내는 승화하게 만들어 준다. 엄격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우면서도 엄격하게, 그 두 가지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가 예술 작품의 관건이 된다.
43) 보라! 기독교예술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이다. 예수의 중심 스토리는 무엇인가? 그의 고난과 죽음이다!
44)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고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율배반>이다. <현실속에 드러난 인간의 모순>이다. 그의 작품들 – <다비드> <수염난 노예> <젊은 노예> <깨어나는 노예> 등 일련의 노예작품들은 이를 잘 들어내고 있다. 예술가의 일생이란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하다. 시인 릴케의 말대로 <아름다움이란 끔찍함의 시작>이요 <행복이란 결국은 불행으로 가는 첫 발자국>이다. 예술가는 평생 이 모순과 싸우는 사람이다.
45) 조각가는 하나의 돌덩어리를 짜르고, 갈고, 쪼고, 두드림으로 (절차탁마, 切磋琢磨)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라. 사실 조각가는 바로 이 짜르고, 갈고, 쪼고, 두드리면서 조각상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自己自身>을 만들어 간다.
46)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고를 때도 아무 것이나 고르지 않았다. 그는 돌에도 이념이 있고 무형의 물질 속에도 정신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조각이란 이미 대리석 안에 담겨있는 그 본래의 정체성을 겉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믿고 조각했던 창조적 예술가였다.
47)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한다는 것은 무생물적인 돌에다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켈란젤로는 인간이 하는 예술적 창조 행위는 하느님이 하셨던 천지창조와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에타, PIETA>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아라! <피에타>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고난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간을 끝없이 사랑하는 하느님의 제 2의 창조>를 볼 수 있지 아니한가!
48) 예술품을 창조하는 것과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묵숨을 걸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49) 위대한 예술품이란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추하고 악한 세력과 대결하고 저항하는 작가의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거쳐서 탄생되는 것이다.
50) 어느 경우나 쏟아지는 찬사에 휩쓸리지 말아라. 정말 중요한 것은 <그냥 나답게 살아 가는 것>이다.
51) 개혁은 꼭 이루어 가야 할 과제이지만 거기에도 적절한 균형과 조절이 필요하다. 쇄신과 보존 사이에도 절제와 균형이 요구된다. 이를 지키지 못할 때 개혁은 부도덕해지고 부패를 낳게 된다.
52) 마키아벨리의 위대한 점 중 하나는 현실에서 부딪치는 수 많은 모순속에서도 끝까지 그 모순을 넘어서려고 노력한 점이다. 모순도 보는 눈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양심과 현실이 부딪칠 때, 그냥 그 자리에 주져 앉지 말고 잊혀졌던 양심의 소리를 듣고 부딪친 현실과 대결해 나갈 때 삶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다가오게 된다.
53) 인생을 잘 살려면 기쁨과 슬픔으로 부터 <무심해 지는 것>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54) 차분함과 온화함이 없이는 결코 내면의 깊이를 만들어 낼수가 없다.
55) 다시 말해둔다. 잘나고 똑똑하게 보이는 사람도 못나고 사악한 측면이 있고 그 반대로 어눌하고 미련하게 보이는 사람도 지혜롭고 정직한 측면이 있는 법이다.
56) 모든 것은 다 흘러간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은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네덜란드의 예술가 듀오 드리프트 (D. Drift)가 만든 설치작품 <수줍은 사회, Shy Society>는 이 표류하는 인간 삶을 잘 나타내 준다. 모든 예술품들은 제한된 시간, 제한된 공간에서 잠간 보이다가 치워지는 해프닝이요, 표류하며 흘러가며 이동하는 drift에 지나지 않는다.
57) 감성은 이성적 검토를 통하여 비로소 투명해 진다. 이것이 <감성의 이성화>요, <주관의 객관화>이다.
58)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감성과 이성, 주관과 객관의 균형과 조화, 통합과 중화를 통해서 만들어 진다.
59) 80 이전의 내 삶은 <활동적 나날, vita active> 이었다면, 80 이후의 내 삶은 <관조적 나날, vita contemplativa>이라 할수 있겠다. 그런데 활동적 삶이든, 관조적 삶이든 내 삶이란 모두 <빌려온 삶>이다. 인생이란 임차된 것이지 소유된 것은 아니다.
60) 산책을 하다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오늘도 나는 늘 가던 그 길을 걷는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61) 좋은 글은 주관적이면서도 그 주관성을 넘어 객관성을 담아내는 글이다. 객관화된 주관은 감성을 이성화하고 <이성화 된 감성>은 우리를 모순과 충돌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준다.
62) 음악이 아름답게 들려지는 것은 화음 때문이다. 긴 소리와 짧은 소리,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갈 때, 아름다움과 평안, 행복과 기쁨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너무 높거나 너무 낮아서는 않된다. 너무 길거나 너무 짧아서도 좋질 못하다.
63)개인적 느낌이나 생각은 진실성이 들어날 때 비로소 공감을 얻게 해 준다. 때로는 미흡하게도 보이고 부도덕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생각은 정직해야 하고 감정은 솔직해야 하고 표현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것이 예술의 아름다움이고 죽을 때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길이 된다.
64) 인문학에서 최고의 덕목은 관대함이다. 너그럽게 살아야 인생은 아름다워 진다.
65) 그 무엇에 대하여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인간의 영혼에는 새로운 전환이 생겨난다.
66) 우리의 삶이 다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때와 무의미한 일들도 많이 있다. 여기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럼 무의미한 것들은 모두 다 무가치한 것인가? 아니다! 유의미한 것에도 무가치한 것들이 있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들 중에도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67) <5월과는 전쟁을 하지 말아라! Non fate Guerra al Maggio> 포스터, E. M. Forster의 소설 <전망 좋은 방>에 나오는 귀절이다. 무슨 뜻인가? <봄과는 다투지 말아라. 시간과는 싸우지 말아라.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장사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68) 말과 글이 다양해야 생각과 삶은 그 폭을 넓힐 수 있다. 왜 굳이 라틴어로만 쓰고 읽고 기도하고 강론을 해야 하는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하면 죄가 되는가? 르네상스는 쓰고 말하고 기도하고 강론을 함에 있어서 언어의 다양성을 이끌어 냄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와 평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해 주었다.
69) <돈과 권력은 예술을 타락 시킨다> 그러나 가끔 예외도 있다. 메디치 가문의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Anna Maria Luisa de Medici) 같은 여인이 그러하다.
70) 가장 훌륭한 제도와 법규가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도 반목과 대립, 갈등과 싸움은 항상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앞으로도 멈추지 아니할 것이다. 인간성을 고치지 않고서도 사회는 선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인간의 본성을 고치는 일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교육과 종교가 정말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71) 종교권력자인든 정치-경제 권력자이든 모든 권력자들에게 최대의 적군은 평화다. 그들은 절대로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 마키아벨리
72) 중세시대 시민들과 군주들이 교황을 두려워한 결정적 이유는 딱 한가지다. <교황들은 그 어떠한 전쟁에서도 진 적이 없다. 교황은 반드시 이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73) 코시모 데 메디치가 우리에게 좋은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치적 때문이 아니라 그의 관대함과 순수함 때문이다. 그는 죽을 때 엄청난 부를 남겼지만, 그 부가 그의 덕망 보다 더 크지는 않았다.
74) 사랑을 감정적 영역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사람은 스피노자였다. 그는 신에 대해서도 이성적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스피노자는 이성과 감성의 통합,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75) 만약 우리가 정직과 진실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신과 매우 비슷한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랑의 최종적 목표는 신을 닮는데 있기 때문이다.
76)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초창기 내 아내는 내가 인문학교실을 이끄는 것에 대해 염려가 많았다. 인문학은 비기독교적 혹은 반기독교적 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초기 인문주의자들 중에도 비기독교적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독교적 인문주의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기독교적 사유 위에서 인간과 세계를 재해석하려고 했지, 반기독교 혹은 비기독교적 바탕에서 세계를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를 부정하고 기독교와 싸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이해시키려고 애쓴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성과 신앙의 역활을 분리하고 과학과 신학은 서로 독립 되어야 하고 교권과 왕권은 나누어져야 한다고 보았고 진리에 대한 해석은 교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 또한 이를 감당 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 맺는 말
1)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수 백년 전의 피렌체를 중심한 르네상스의 역사적 현장으로 초청해 주신 문광훈교수께 깊이 감사드린다.
2) 몇 해 전 시드니 인문학교실에서는 로마와 밀라노,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포함한 이탈리아로 학술탐사를 다녀왔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이 나오기 전이어서 예비 학습용 도서로 추천하지 못했지만 지금 추가로 추천한다. <피렌체 비가>는 우리가 르네상스에 대해 미리 읽고 공부하고 갔었어야 할 책이지만 다녀온 후에라도 반드시 읽고 지식과 정보를 재정리하고 가다듬을 만한 책이다.
3) 우리는 <아는 것 만큼 만 보게 되고, 보는 것 만큼 만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란 모르면 절대로 달라질 수가 없다>
4)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보아야 한다. 부분을 볼 때는 반드시 전체적 구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분과 전체, 처음과 마지막, 하나와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균형과 조화를 상실하면 극단으로 흐르게 된다. 眞善美는 中庸에서 만들어진다. 불가능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거룩으로 가는 길이다.
5) <절차탁마, 切磋琢磨> – 짜르고, 갈고, 쪼개고, 두드리는 것은 조각가의 일 만이 아니다. 이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매일 같이 걸어가야 할 인생길이다. (끝) *홍길복 (2026. 5. 20)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