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나의 북한 방문기 (10)
나의 북한 방문기 (10)
<1997년 10월 21일 (화요일) 평양, 베이징, 서울 – 세곳 다 맑음>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어젯 밤에 쓰다가 만 일기를 마무리했다. 7시경 강영섭목사와 이천민목사, 그리고 황시천목사와 이종로선생이 호텔로 왔다. 강목사는 작별인사 후 돌아가고 다른 분들은 함께 공항까지 나왔다. 공항을 향하는 마음은 참 착찹했다.

어느 나라나 그렇긴 하지만 특히 북조선이란 나라는 한두마디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나라요, 참 이해하기가 복잡한 나라다. 이 나라는 국가인지 가정인지 마을공동체인지 사이비종교집단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여러가지 의혹과 의심으로 인하여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체제속에서 마치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감격해 하는 인민들이 너무나 측은하다.
출국수속을 하고 나니 8시가 되었다. 승객들이 별로 없으니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해외원호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평양에 왔던 임용모장로와 이문철집사, 그리고 선명회의 오재식회장도 오늘 함께 돌아간다. 나와 장기수목사는 우리가 그동안 북에서 썼던 카메라와 시계를 풀어서 두 목사에게 주었다. 그리고 가방에 담겨있던 물건들 중 속옷이나 일기장 같은 것들을 제하고는 거의 다 털어 주고 빈 가방만 챙겨들고 평양을 떠났다. 말로는 설명이 않되는 사랑과 정을 표현한 것이다.

고려항공은 좌석이 한 120석 쯤 되어 보이는 작은 비행기였고 자리는 거의 꽉찬 상태였다. 평양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민족에게 궁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어두움으로 덮혀 있는 이 나라를 어서 밝혀 주시옵소서>
베이징공항에서는 한 시간쯤 기다렸다가 대한항공으로 갈아탔다. 김포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우리는 혹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써 한국의 출입국 관리소에서 무슨 문제라도 제기하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아무 것도 문제된 것이 없이 잘 통과 되었다.
KNCC에서는 우리를 위해 장충동에 있는 앰배서더 호텔에 객실 4개를 예약을 해주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와서 여장을 풀고 우리는 각자의 일을 보기로 했다. 나는 우리 쌍둥이 딸들을 만나 아이들의 그동안 서울 생활과 나의 이번 북한 방문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은 지난 3개월 동안 신당동의 신일교회 이광선목사가 배려해 주어서 교회손님방에 머물면서 한글 공부를 했다. 이젠 공부도 다 마쳐서 다음 주에는 시드니로 돌아간다. 성장하는 나이에 부모 떠나 태어난 고국에 와서 둘이서 살아본 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고 귀한 훈련이었다. 한국어도 많이 늘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1997년 10월 22일 (수요일) 서울 – 흐리고 약간 덥다.>
아침에 호텔로비에서 만난 Gregor와 Joy, 그리고 장목사와 나는 오늘의 일정 중 KNCC가 마련해 놓은 오전의 신문기자회견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호,불호를 떠나 현재로써는 북한교회에 대한 평가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대신 아침 7시 30분 우리는 KNCC 총무 김동환목사와 직원들을 만나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동안의 방북 내용과 의미에 대해 종합적 설명을 했다. 70년대 김관석목사가 KNCC 총무로 계실 때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서 함께 어울렸던 이해동, 김상근, 김용복, 이재정, 권호경, 안재웅, 김진홍, 인명진 등등 오래된 선배들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정치권력을 위시하여 많은 것이 변했다. 북쪽도 그렇고 남쪽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이 차지한 자리도 많이 바뀌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리가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없다가 생기거나 모자라다가 풍성해 지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들도 그렇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오전 10시엔 예장총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류태선목사, 최기준목사, 김봉익목사, 김낙은장로 등 여러분들을 만나 아침에 김동환총무와 회동했던 것과 비슷하게 방북내용을 설명했다. 12시엔 권호경목사를 만나 점심을 하면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한정권의 수뇌부에 대한 평가를 겸한 종합적 이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일정 부분 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써는 상호 방문과 지원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남북관계 개선의 방향이요, 북한선교라는데 뜻을 함께 했다. <지금 여기에선 가능한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상호 방문과 교류를 이어감으로 그들로 하여금 닫힌 문을 열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2시 반에는 호텔 로비에서 다시 우리 쌍둥이 딸들을 만나 아이들이 미리 시드니로 가져다 달라며 챙긴 짐을 받았다. 장기수목사는 몇일 더 서울에 머물겠다고 했다. Gregor와 Joy는 먼져 공항으로 출발했다. 나는 이광선목사에게 전화로 그 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배풀어 준 사랑에 깊이 감사를 표했다. 동생 길근목사네와 김대식목사를 비롯하여 친척들과 친구들 몇몇에게 전화로 이번에 만나지 못하고 가게되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이제는 열흘 만에 시드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의 북한 방문기> 마지막 일기를 마무리한다. 이번 북한 방문은 나에게 여러가지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젊은 시절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환상적 낙관주의에 젖어있던 내 생각에 조금씩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평화, 용서, 사랑, 화해, 일치, 그리고 통일이란 결코 쉽지도 않고 간단하지 않는 일임을 절감한다. 그래도,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꺽이지 않는 기도가 있다. <하나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난주 고려호텔에 도착했던 첫날 로비에서 은은히 들려왔던 노랫말을 중얼거리며 꼭 그날이 오기를 기도드린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동포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북한 방문을 통하여 내 일생에 오래오래 기억해 두고 다시다시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의미 있는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풀지 못한 숙제는 그들에게 넘겨 주어야 하겠다. (끝) *홍길복 (2026.6.8)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