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음미 (吟味)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뜨거운 한 모금의 차는
발톱으로 흘러가고 코끝으로 흐른다.
발톱으로 가서는 내가 딛고 나설 땅이 된다지만
코끝으로 간 것은 울음만 된다.
울음이 부서지면 산그늘로 숨지만
내 하늘을 채우고도 되레 남는다.
백자같이 너그러운 한낮
수정같이 도도한 밤
풀길없는 갈증으로 남는다.
내가 마신 한 잔의 커피로는 안 될 것이다.
발톱에서 코끝으로 오르는 파란만장한 질곡을
귀먹은 아우성을
내 철 없는 열증(熱症)을
나는 안다
어림도 없는 것이다.
*이향아 (李鄕莪) 시인
1941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 및 동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전공.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황제여』 『통행하는 바람』 『눈을 뜨는 연습』 『물 새에게』 등이 있으며 <문채> 동인.

사진 = 임운규 목사 (본지 편집/발행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