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서의 뒷담화
Hole 5 (숨 고르기)
Par 5 Blue Red
거리 464m 409m
인덱스 11/27 7/22/38
세계적인 이상 기후 영향이 이곳 시드니까지 마수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3월 중순경이면 여름의 더위가 꺾기고 시원한 가을바람에 센티멘탈해지는 추남(가을남자)가 되는데, 아직도 40도를 넘나드는 불볓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누라 눈치를 보며 골프백을 챙겨 나가려 하니 “40도가 넘고 열풍이 부는데, 골프는 무슨… 미친거 아니야!” 걱정해 주는 것인지 비난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멘트를 뒤로 한채 골프장으로 향한다. 평소 같으면 오늘도 마누라 잔소리 = 골프 망치는 날이었을 텐데, 갑자기 생각난 성경 구절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자, 제자들은 전혀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마누라에게 하고 싶었던 말 “나에게는 당신이 모르는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 있다.”
날씨에 대한 법정 스님의 법문이다. “추위와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추울 때는 자신이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자신이 더위가 되십시요.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위도 추위도 없습니다. 용광로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감히 더위가 범접할 수 없습니다.”
40도 열풍이 불고 지열 때문에 발바닥에 땀띠가 나고 안경 밑으로 땀이 비오듯 내려도, 아구찜에 와인이 걸린 저녁 내기일 때는 한타 한타가 무아지경이다. 감히 더위가 근접하지 못하는 것을 아마 마누라는 평생 이해하지 못하리라.
문제는 더위는 이겼는데, 샷이 갑자기 망가져 버렸다. 타이거 우즈도 두려워 한다는 생크.
생크(Shank)는 정강이 뼈, 날카로운 칼같은 무기를 뜻하는 잘 몰랐던 생뚱맞은 영어 단어인데, 골프 때문에 그 유명세를 톡톡히 하고 있다. 수많은 골퍼들, 아마추어건 프로건 상관없이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생크는 클럽 헤드 힐쪽과 샤프트의 연결 부분(호젤이라는 곳)에 맞아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대체적으로 크게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바나나 모양 같다고 해서 big banana shot이다.
생크의 원인은 기술적인 이유 뿐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가 슬며시 들어가면서 일을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는 대체적으로 공이 몸과 가까워져서 다운스윙할 때 스윙궤도가 아웃에서 인(바깥에서 안쪽)으로 빠르게 진행되어 발생한다. 또 한가지는 몸통과 함께 스윙이 되어야 하는데 팔로만 스윙하기 때문에 손과 몸 사이에 거리가 멀어지면서도 발생하기도 한다.
기술적인 문제는 숏게임 연습을 하면서 셋업 자세와 스윙궤도를 체크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심리적인 중압감 때문에 생크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있다.
골프 좀 친다는, 싱글 플레이어에겐 짧은 par 5홀이 웬만한 par 4홀 보다 쉽게 파를 할 수가 있다.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도 세컨샷 recovery를 한 후 세번째 샷에서 온그린 하면 두퍼터로 쉽게 파를 잡는다. 문제는 언제나 욕심에 있다. 좀더 가까이 붙여서 버디를 잡겠다는 심리적 중압감이다. 티샷도 잘 하고 세컨샷도 잘해서 그린까지는 60-70m만 남겨두고 있다. 앞에 물이 있는 것이 신경이 좀 쓰이지만 평상시 어프로치로 3번째 샷에 온그린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생크 병이다. 60m에서 잘 붙이기만 하면 버디도 잡을 수 있는 홀이기 때문에 만감이 교차한다. 세업 자세를 취하자마자 지난 주 이 홀에서 생크가 2번 연달아 나서 물에 빠져 빵점을 한 기억이 스물스물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몸은 경직되고 스윙에 자신이 없어진다. 자신감없는 샷은 역시나 아웃 인 스윙궤도를 만들더니, 공은 인정사정없이 물로 향한다. 지긋지긋한 이름. 생크.
버디는 물 건너갔고 파도 놓치고. 생크에 대한 중압감만 안고 무거운 걸음으로 다음 홀을 향한다. 뒷통수에 메아리쳐오는 김응룡 감독의 통탄의 절규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 가 아니라 ‘와인도 가고, 아구찜도 가고.’
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혜민 스님이 한 말을 조용히 음미해야 할 때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거리감. 쉼표 때문이다. 말(語)이 아름다운 이유는 말과 말 사이에 적당한 쉼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구는 골프에도 적용 된다.
스윙을 구분하는 커다란 두 가지는 백 스윙과 다운 스윙이다.
백 스윙과 다운 스윙의 차이에 대해서, 혹은 다운 스윙은 언제 시작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유튜브 레슨의 답이다. ‘백 스윙 끝이 바로 다운 스윙의 시작이다.” 어느 스님의 선문답처럼 멋있게 들리기는 하는데 알듯말듯 아리송하다.
아마추어의 골프 스윙의 문제점은 백 스윙과 다운 스윙의 차이점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하는데 있다. 이민 생활의 바쁨의 연속과 더불어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때문인지 잠시 멈추는 순간을 용서하지 못한다.
백스윙이 끝난 지점에서의 잠시의 멈춤으로 공을 효과적으로 멀리 보내기 위한 많은 동작들이 그 멈춤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 공을 끝까지 볼 수 있는 집중력과 다운 스윙하기 위한 무게 중심 이동이 자연스러워져 좀더 멀리 공을 칠 수 있게 된다. 금상첨화는 급해서 발생하는 생크도 치유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바쁜 여가를 보내다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지친 심신을 돌보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100세 인생 여정을 좀더 멀리, 좀더 효율적으로 가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져서 기분은 나쁘지만 와인과 아구찜을 기쁜 마음으로 한번 살 때 좀더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골프가 인생과 닮은꼴이 많다.
마이클 림
mcilim@hotmail.com
백세 인생이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백세까지 사는 것이 희귀한 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환갑 전이라기보다는 왠지 50대 후반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살갑게 들리는 나이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는 것이 끔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골프는 내 인생의 후반전을 좀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한 선택이고, 이 컬럼을 쓰는 것 역시 좀더 풍성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전에 종교간의 대화 모임이었던 길벗 모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도반, 좋은 길벗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같이 굳은 심장에 약간의 설렘이 속삭인다. 골프를 통한 새로운 도반, 길벗들이 인생 후반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Michael Lim, www.crazygolfdeals.com 한국 마켓팅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