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호세아서 개관 – 대응문화가 실종될 때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내는 은유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가족간의 관계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내는 은유도 있고, 왕과 백성 혹은 왕과 용사와 같은 정치군사적인 인물들의 역할관계를 나타내는 것도 있다. 또한 목자와 양, 농부와 포도나무와 같은 유목생활이나 농업현장에서 차용한 은유도 있다. 이러한 은유들은 한결같이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선택, 계약, 버림과 회복 같은 일련의 민족역사를 비유하고 묘사한다.
이러한 성경 은유가운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하는 것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과 자기들과의 관계를 결혼관계로 이해하고 살아왔다. 왜냐하면 부부관계가 우리 인간관계 가운데서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이며 결혼은 일종의 계약이며 그러면서도 법적이어서 항상 사랑과 열정,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배우자들은 서로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 관계로 들어간다. 이렇듯 결혼관계란 배우자들이 서로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구속력을 갖도록 묶은 장치요 절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도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열방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겸 신부로 택하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계약 상대자인 이스라엘에게 요청하고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존중함으로 인해 당시 타락하고 부패한 주변 문화와 종교로부터 구별되고 결별함에 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대응문화의 특성들, 즉 의와 정의와 사랑을 발전시킴으로 참된 제사장의 나라로 우뚝 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대응문화를 형성하는데 자신을 연마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의와 불신과 사랑의 결핍이 특징이 되어버린 왕국으로 끝없이 전락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신부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이방문화와 우상숭배를 탐닉함으로 인해 대응문화가 아닌 세속화와 동질화가 급속히 전개됨으로 인해 이방 민족화되는 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던가? 호세아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아모스와 거의 동시대에 사역한 인물이다. 북왕국의 마지막 선지자들 중에 속하는 호세아는 부와 번영을 구가하는 시대에 부름을 받았다. 그때가 대략 B.C753년 경으로 유다의 웃시야(B.C792~740년)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B.C793~753년)가 함께 치세하던 번영과 평화의 시기였다. 이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시대를 견줄만한 시대로서 호세아가 사역한 북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장단점이 특별히 부각된 시대였다. 북이스라엘은 아람의 침략으로 인해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였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 주요 교역로를 장악함으로 인해 막대한 부가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의 내부에는 심각한 붕괴조짐이 드러나게 된다. 상업과 무역의 융성함으로 인해 사마리아의 정치가들과 상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상류층의 탐욕과 불의와 사치스러운 생활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회가 깊이 분열되었는데 귀족들은 왕실을 모방한 사치한 삶에 빠져들었지만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가난과 굶주림과 압제속에서 고통당하며 노예상태로 전략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문화적 타락은 어떠한가? 정치가들은 정치적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외국문화의 영향을 조금도 막지 않았다. 그럼으로 풍요를 비는 제사가 만연하고 진탕 마시고 떠드는 주연이 끊이지 않았다. 풍기 문란한 가나안 족속의 바알숭배가 그대로 답습되었고 앗시리아의 종교적 관습이 차용되었다. 결국 혼합주의가 만연하여 이방종교의 호색적 의식 참가와 함께 동시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성소를 찾는 이들의 무리들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본질은 급속히 붕괴되어 갔다. 그들은 주변문화에 동화되어 자신들의 정체성의 본질인 대응문화의 창출에 실패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응문화란 무엇인가? 세상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할 때 그것에 대응하는 거룩하고도 참된 성경적 문화를 세우는 행동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속적 주류문화에 동화되지 않은 채 주님이 제시하시는 청정한 문화를 확립하고 흘려 보내는 삶의 태도이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소명이었지만 그들은 이 일에 실패하고 만다.
이에 대해 호세아는 B.C753년경에 예후왕조의 심판을 선언하면서 사역을 시작한다(1:4). 결국 이때로부터 약 한세대후(B.C722년)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한다. 아주 급격하게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 다가오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여로보암2세 이후 스가랴가 왕이 되었으나 6개월만에 살룸에게 살해당하고 예후왕조의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살룸또한 한달만에 므나헴에게 암살당하고 므나헴은 10년간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는데 이 때 그는 앗시리아에 조공을 바침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왕인 브가히야가 장관 베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베가(B.C740~732)는 앗시리아에 조공 바치는 일을 그치기 위해 주변왕들과 동맹한다. 이 당시 남유다의 아하스의 구원요청(왕하16:5-9)으로 앗시리아의 디글랏 빌레셀이 반란을 철저히 진압하고 이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반독립국가로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호세아왕이 이집트의 도움을 기대하고 앗시리아의 살만에셀에게 공물 바치기를 거부하였다가 B.C722년에 멸망당하게 된다.
이런 격변하는 상황속에서 호세아선지자는 이러한 급격한 몰락의 길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이런 신실하지 못한 모습을 선지자 호세아와 부인 고멜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시고 교훈하시기를 원하신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한가? 간음을 잘하는 고멜이라는 여인과 같다는 지적이시다. 이 고멜이라는 여인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뜨리고 열방의 방식을 탐닉하는 이스라엘과 같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이 세 명이 있는데 어떻게 이름이 지어지는가? 이스르엘(피흘림), 로암미(내백성이 아니다),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자). 결국 고멜의 부정함을 나타내는 그 자녀들의 이름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와 이교도의 부정한 길을 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심판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런 길을 갔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채 주변국으로부터 배운것들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심어린 호소를 내동댕이 치고 무엇을 받아 들였나?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 사상!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충성대신 번영과 권력의 신을 숭상하는 우상숭배! 인간성 존중의 공동체에 대한 열망대신에 탐욕과 인간성 무시의 이기주의! 역국의 물질성취 철학에 미혹되어 수출입과 정치적 동맹으로 국가를 유지하려는 힘의 철학!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통한 대응문화 창출에 실패하고 열방의 삶의 방식 그대로 답습함을 인해 멸망을 행한 진군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이렇게 신앙인들이 대응문화의 창출에 실패하는 길을 갈 때 기생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종교심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도 겉으로는 매우 종교적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말이 “덜 종교적인 그러나 더 예수 닮은 공동체”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떠났으면서도 아주 매우 종교적인 모습을 과시했다. 무수히 많은 제단을 만들었고(8:11) 무성한 포도나무처럼 종교적 상징물들을 많이 세웠다(10:1). 삶의 속내용은 없고 광적인 외형은 무성했다. 결국 이러했을 때 그들은 복음의 본질을 외면했다. 하나님의 꿈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하나님의 꿈을 외면했다! 하나님의 의와 진실의 왕국과 하챦은 욕망의 왕국 가운데서 비틀거렸다! 말씀에 의한 인도하심과 자신의 안전을 위한 조직 사이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배제했다.
결국 그들은 주변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말씀과 약속에 입각한 대응문화를 세우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결국은 몰락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속에서 언약의 갱신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희망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내 백성이 아니다(로암미)”(1:9)에서부터 “너는 내 백성”이라는 회복의 메시지가 주어진다(2:23). 피흘림(이스르엘)(1:4)을 초극하는 하나님의 풍요로움이 제시된다(2:21-22).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자(로루하마)(1:6)의 회복으로 새로운 혼인 관계로의 언약의 갱신이 약속된다(2:19-20).
바로 이러한 분이 유리 하나님이시다. 비록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대응문화의 창출에 실패하고 세속문화속에 깊이 물들어서 징계의 채찍이 불가피했지만 그들을 회복시켜 다시금 대응문화 창출의 선봉자들로 세우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꿈은 인간의 불성실함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우리의 불충성의 심연속에서도 다시 꽃피우신다. 바로 남은 자들을 통해서 행하신다. 누구를 통해서 남은 자들이 회복될 것인가? “다윗 계통의 왕을 통해서”(3:5)이다. 참 역설적이지 않는가? 다윗 왕가는 남유다이다. 지금 호세아의 예언은 북이스라엘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다윗 왕권을 부인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멸망후 10년이 지난 후에 북왕국의 남은 자들은 남유다의 다윗계통의 왕인 히스기야(B.C729년~686)의 메시야적 통치권 아래서 피난처를 찾는다. 거기서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과 다윗계열의 왕에게 충성을 공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다윗계통의 왕들로부터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약속은 마지막 날에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서 성취된다(3:5).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셨을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변혁시키기 위해 시대의 거센 탁류에 저항하여 순전한 물줄기를 흘려 보내는 대응문화를 견고히 확립시키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옛 이스라엘의 소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 문화속에 깊이 빠져들어 이 소명을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영역에 넘겨진 이 땅의 문화를 거스릴만한 대응문화의 모범을 보이시고 세우셨다.
희생과 사랑과 섬김의 문화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땅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 시대가 교만과 힘의 숭상, 그리고 추악한 이기심으로 충만해져 있음을 목도한다. 이제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우리들은 이런 시대적 풍조들을 극복하고 대응문화를 정착시키는 선구자 겸 소명자로 세움 받은 것이다. 우리는 옛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거센 세속의 탁류속에서 견고한 대응문화를 세우기를 분투할 때 우리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복음적 소망과 역할을 다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대응문화의 견고한 확립이야말로 이 시대를 복음으로 섬기는 우리들의 소명이요 거룩한 과제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