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20)
제16강 ‘철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 사이에서
서구 중세 철학의 시대(2)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금 서양사에서 중세라고 하는 특정한 시대의 중요한 사상적 흐름을 집어보는 중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기독교의 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초기 교부들과 그들의 사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중세 중기와 후기에 중요하게 두드러진 종교적 및 철학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콜라철학과 보편논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 번 공부에서 우리는 먼저 중세, 혹은 중세시대라는 개념의 의미를 살펴보고 역사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여러가지 방식과 안목들에 대해서 검토하면서 기독교의 태동과 확장, 그리고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초기 기독교가 직면했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사를 보는 눈은 결코 한 가지만 있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들로써는 특별히 ‘확증편향성’(確證偏向性, Confirmation bias)이 지닌 위험성을 조심해야한다는 점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분명한 사실 앞에서도 자신이 믿고 신봉하는 믿음과 배치된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안보고 안듣고 안믿으려는 인지적 편향성를 가지고 있습니다. 확증편향성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는 늘 대결하고 싸워야 할 대상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시대적 쏠림현상입니다. 좋은 말로는 집단지성이라고도 합니다만 사실 한 시대의 대중적 포퓰리즘이나 집단적 광기는 대단히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과 주장을 혼돈해서는 않됩니다. 우리 속에 있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한 쪽으로 기울어진 생각은 늘 우리 개인과 공동체와 역사를 삐뚤어진 방향으로 끌고 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폭넓은 생각과 너그러운 인생을 살도록 요구합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아름답고 풍성해집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잡초라고 하는 것도 아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됩니다. 우리가 우리 집이나 동네에다 만든 인조정원에서는 잡초라고 하여 뽑아버리는 잡풀도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동산에서는 절대로 뽑아버리지 않습니다. 한없이 넓고 넓은 우주와 자연계, 하느님의 세상에는 잡풀이나 잡목이 없습니다. 틀린 생각이란 없습니다. 오직 다른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진리와 거짓, 선과 악까지도 함께 섞이어 서로를 돋보이게 해 주려고하는 것이 인문학의 꿈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초기 교부철학을 중심하여 라틴 교부들과 동방교부들의 철학적 사상과 기독교 신학을 검토해 보았는데 저는 그 날의 강의 제목을 ‘알아야 믿는다와 믿으면 안다 사이에서’라고 정했습니다. 우리 모임의 좋은 격려자이신 구본영 교수님은 그날 말미에 그 제목의 뜻을 좀 더 클리어하게 말씀해 달라고 해서 저는 ‘이성과 신앙 사이에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교부철학이 제기하고 또 다루어 볼려고 몸부림 쳤던 주제란 결국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렌이즘의 조화와 균형에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기독교 신학이었던 교부철학은 겉으로 볼 때는 기독교신학을 변명하거나 지키는 호교적 성격이 강했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옹호하고 선교를 확대해 나가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그 내용은 세상, 혹은 세상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성과 기독교 신앙이 싸우지 말고 서로 함께 win-win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강의안의 제목으로 달아놓은 ‘철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철학은 교부철학이던 스콜라철학이던, 인문학적 접근을 하던 기독교 신학적 어프러치를 하던, 결국은 이 두 가지 서구 정신사의 양대 축을 접목시켜 보려는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진리는 오직 하나’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리란 연구하고 취급하는 분야에 따라 여러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학적 진리, 철학적 진리, 종교적 진리 등등 여러가지 형태와 여러가지 분야의 다른 진리들이 실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중세 중기 이후 스콜라철학과 보편논쟁 역시 큰 안목에서 보면 이성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를 나누어 보고 이 둘을 서로 조화시켜보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이성과 신앙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학문적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실’(Fact)과 ‘진리’(Truth)를 구분해보려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실은 진리이고 진리는 곧 사실’일 것이라고 쉽게 판단을 내립니다만 사실(事實) 가운데도 진리(眞理) 아닌 것들이 있는가하면 眞理라고는 하지만 事實과는 거리가 먼 것들도 있습니다. 예컨데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 진리입니다만 사실은 아닙니다. ‘히틀러도 국민에 의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입니다’ – 사실이기는 하지만 진리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선이 악을 이깁니다’ – 진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악이 선 보다 더 강합니다’ – 사실처럼 보이긴 하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종교(기독교)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 진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종교(기독교)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 사실이기는 하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 – 진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단순한 사회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짧고 일목요연하게 단순화 할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있고 대단히 복잡하게 뒤섞여있습니다. 그 무엇이던지 하나의 주제나 하나의 학문에는 하나의 정의나 하나의 목표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의학’을 예로 들어보시다. 종래 ‘의학’은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단순화 했습니다.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치료의 방법을 찾아내어 병든 사람들을 고치거나 질병을 예방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는 학문과 기술이 의학이요, 의학의 목표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의학’은 그렇게 단순화 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의료산업과 다양한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 의료인들과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거대한 자본가들과 정부기관, 의료기술의 이전과 각양 의약품들과 장비들을 제조하고 수출하는 판매와 무역 등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제약회사나 병원들은 이미 상업화 된지가 오랩니다. 이런 예는 일반 학문이나 산업 및 기술에서 만이 아니라 정치나 문화, 예술이나 스포츠, 그리고 종교에 있어서까지 이미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어떤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구 목사님 참 너무 너무 순진하시네요.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의학을 과학이라고 말하십니까? 의학은 산업입니다. 그건 과학이 아닙니다. 의료산업이란 말도 못들어 보셨습니까?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목사님이시니까 기독교와 교회를 아직도 인간의 정신을 순화하고 도덕적 가치를 고양시키며 인간영혼을 구원하는 기관이라고 하시지만 우리 세상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교회와 종교인들이 하는 일이 제일 수익성 높은 사업이고 거기가 가장 돈벌이가 잘되는 장삿꾼들의 세계로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생각과 판단, 나 한 사람의 주장과 입장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은 자칫 미숙하게 보이거나 생각이 짧은 사람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눈은 크게 뜨고 귀는 넓게 열고 생각은 깊이 해야 합니다. ‘그 말도 맞고 이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도 이해가 가고 이 사람의 태도에도 수긍이 간다’고 말하는 것이 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봅니다. 다원화된 세상에는 다양한 안목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주 자명한 진리라고 여겼던 수학적 법칙이나 물리학적 명제를 포함하여 사상이나 종교의 영역에 이르기까지도 너무 일찍 한 가지 신념과 한 가지 목표에만 생명을 걸고 매달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보는 것 입니다.
오늘의 키 워드(Key Word)
스콜라철학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저는 오늘의 키 워드를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이고 교회가 지상의 그 어떤 것 보다 위에 있다’라고 잡아보았습니다. 베네딕토 수도자였던 성 페트로스 다미아노(Sanctus Petrus Damiani)가 처음으로 한 말이라고 전해집니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Philosophia ancilla Theologiae) 이미 지난 시간 우리는 서양 중세시대를 ‘암흑시대’라고 이름붙이는 어두운 측면들을 10가지나 나열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중세시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두 가지를 말씀드렸는데 첫째는 봉건제도와 봉건체제가 확립된 것이요, 둘째는 기독교회가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는 물론이요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고 간섭하는 ‘종교의 절대권력화’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이성과 신앙의 균형과 조화는 깨어졌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이성, 지성과 합리성은 철저히 억압을 받고 ‘오직 믿음!’ ‘오직 교회!’ ‘오직 하나님!’ 만이 진리의 표준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초창기 3백여년 동안이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으며 순교했던 것을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권력을 잡았으니 복수하고 온갖 적패라는 이름으로 모두 쓸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겉으로 내세운 표어 자체는 그럴듯했습니다. ‘神(하느님 혹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신이야말로 ‘있다고 증명할 수도 없고 없다고 논증 할 수도 없는’ 영적이고 정신적이며 추상적인 신앙 개념입니다.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는 신’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대입하고 들이밀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의 뜻을 독점한 기관이 교회였고 그것을 점유한 사람들이 교황을 비롯한 신부들이었습니다.
중세는 후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 신학과 교회를 일체 모든 것의 ‘표준’(Standard, Criterion)으로 삼았습니다. 마치 자막대기(줄자, ruler)처럼 여기고 신학과 교회의 결정을 가지고 거기에 대보면서 ‘길거나 짧다’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교회와 교회가 만든 신학이 기준이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운동을 할 때는 선생님이 앞에 서 있는 학생중 하나를 지명하여 ‘기준’이라고 정해주고 그 ‘기준 중심으로’ 헤쳐 모이거나 앞뒤 및 좌우 간격으로 팔을 벌리라고 명령하곤 했습니다. 중세는 신학과 교회가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등 모든 인간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설혹 좀 모호하다고는 해도 신, 혹은 신학이 기준자체였다면 그런대로 이해 할수가 있었을텐데 교회라고 하는 제도, 조직, 인간이 만든 Institute를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그 교회를 구성하는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를 기준으로 삼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교회와 신학을 중심한 교권이 기준인 것 같이 말을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라 그 교권 자체를 잡고 있는 신학자들과 종교 권력자들이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신의 이름을 빙자하고 사칭한 인간들이 스스로 표준과 기준 행세를 했던 시대가 중세시대요, 특히 스콜라철학 시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학은 모든 학문의 여왕’이 되었고 ‘철학은 신학의 시녀’로 전락이 되었습니다. 인문학과 철학은 기존하는 기독교 신학과 그 이론을 정당화하는 도구요, 수단과 방법으로써만 인정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철학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정치도 교회의 지배를 받아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지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모든 세속적 경제도 교회에 예속되었습니다. 과학도 신학에 어긋나면 용납이 되지 않아서 ‘지구는 평평하다.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식으로만 가르쳤습니다. 음악과 미술과 건축을 포함하는 모든 예술과 문화도 오직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만 가치있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법률과 제도 등 모든 인간 삶과 사상은 신학과 교회의 콘트럴(control)을 받아야만 그 명맥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넓고 너른 세상에는 결코 하나의 기준, 하나의 표준치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또 그래서도 않됩니다. 신과 인간과 자연, 나와 너와 우리, 신앙과 양심과 이성이 서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기고 사람도 이기고 자연도 이기는 세상, 신앙도 살리고 양심도 지키고 이성도 고양시키는 공동체, 하나님도 살고 인간도 살고 자연도 함께 사는, 서로가 win-win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상생, 공존, 협력, 타협, 균형, 일치, 똘레랑스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은 중세시대를 극복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오직 하나의 기준과 하나의 표준만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권력을 지향해 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신이 홀로 다스리는 신정정치나 임금이 혼자 통치하는 왕정정치나 아버지가 혼자 명령하는 가부장적 구조만이 아니라 신앙, 이성, 과학, 자본 등등 모든 면에서 무엇인가 그 ‘하나’가 왕노릇 하는데 익숙한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여겨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들이 지배받고 싶어 하는 그 하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의 제일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나’입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과 교만 입니다. 이기심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자기 가족, 자기 나라를 중심하여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인간에게는 타인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넓은 우주는 염두에도 없이 오직 이 작은 지구라는 행성 하나 밖에는 모릅니다. ‘모든 것의 기준과 표준은 나다’라고 부르짖습니다. 자본주의의 대표국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트럼프 같은 표준적 이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실은 오늘 날 우리 인간들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똑똑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봅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지만 우리 인문학교실은 다양성 안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친구들이 모임입니다.
스콜라철학
스콜라주의, 라틴어로는 scholasticus, 혹은 Philosophia Scholastica라고 하며 영어로는 주로 Scholasticism이라고 씁니다.
1) 개념의 어원과 의미
스콜라(Scholar)라는 단어는 그리스말 ‘스콜레’(schole)에서 왔습니다. 그리스 말 ‘스콜레’를 라틴어에서 소리나는 대로 옮긴다는 것이 ‘스콜라’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어 ‘스콜레’는 본래 ‘여유가 있다’ ‘한가하다’ ‘쉰다’ ‘논다’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가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한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 첫째는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었는데 훗날 이것이 좀 더 발전되어 연극, 음악, 미술, 스포츠 같은 문화와 예술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공부였습니다.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물질 등에서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학교나 좋은 환경에서 수준 높은 공부를 할려고 하면 할수록 정말 돈과 시간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공부이고 역사와 전통이 깊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려면 엄청난 돈이 있어야만 합니다. 한편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이후 그리스와 라틴 세계에서는 이렇듯 공부하려고 모이는 일정한 장소를 학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콜레’ – ‘스콜라’ – ‘스쿨’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학자’를 영어로 스칼라’(scholar)라고 부르고 학문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을 스칼라쉽(scholarship)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을 학파 혹은 학교라는 뜻을 지닌 스쿨(school)이라고 합니다. 형용사로 scholastic 이라고 하면 academic이라고 하여 ‘학문적’이라고 하고 scholiast라고 하면 ‘고전 해석자’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와같이 어원적 뿌리에 따르면 스콜라철학, 혹은 스콜라주의란 (1) 순수하게 학문 그 자체를 의미하거나, (2) 학문하는 사람으로써의 학자를 뜻하거나, (3) 학문하는 장소로써의 학교를 가르치거나, (4) 학문하는 사람들의 특정한 그룹이랄 수 있는 학파나 학풍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2) 스콜라철학의 기원과 발전
5세기 이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사회는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부터 시작하여 여러 민족과 나라들이 제각기 일정한 나라를 세우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중 마침내 기원 7-8세기를 걸쳐 프랑크제국(오늘날의 프랑스와 남부독일 지역)이 거의 모든 유럽 전역을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8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크제국의 카를루스대제는 중세 유럽의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는데 그는 교회의 지배 아래에 있던 세상 제국의 황제였음에도 불구하고 (1) 성직자들의 수준을 높이려고 했으며, (2) 이를 위해서는 성직자 양성을 체계화하는 학교를 세워야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며, (3) 라틴어를 필수적으로 교육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카를루스대제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지역에 있는 교회들과 수도원에 부설기관으로 학교를 세워 나갔습니다. 교황이 아닌 국왕의 명에 따른 것이긴 했으면서도 초창기부터 학교는 국가나 정부가 세우고 운영한 공립학교가 아니라 수도원이나 교회 안에 세워진 사립 학교였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 까지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징으로 이어져오고 있어서 대부분의 본당이나 수도원에는 거이 부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있으며 교구나 대교구, 혹은 예수회나 프랜체스코 수도회나 도미닉크 수도회에는 대학이 있습니다. 초창기 이들 성당부속학교(Schola Parochialis)와 수도원학교(Schola Monachialis)에서 주로 가르친 것은 성경과 그 성경의 내용을 변증, 변명, 혹은 논증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중심한 고대 그리스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스콜라, 즉 교육과 학문과 학교의 출발이었습니다. 물론 이직은 유치한 단계였고 단지 ‘신학을 이론화하기 위한 학문’ 혹은 ‘신앙을 정당화 시키려는 이성’이라는 한계에 머물렀던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계시와 신앙을 이성과 학문으로 연계하고 학문적 가능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후 각종 인문학교들(그라마 스쿨)과 신학교들로 확장이 되면서 중세의 학교들은 3과(trivium)로써 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또한 4과(quadrivium)로써 음악, 수학, 기하학 그리고 천문학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어 마침내 1088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고등교육 기관인 볼로냐 대학이 생겨나고 이어서 1231년에는 살레르노 대학이 생겨났고 또 그에 앞선 1170년에는 프랑스에서 파리대학이 태동되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스콜라철학은 9세기부터 발아하기 시작하여 12세기를 거쳐, 그 후 토마스 아퀴나스를 정점으로 하는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후 르네쌍스 시대가 오면서 부터는 서서히 쇠퇴하게 됩니다.
3) 스콜라철학의 목표와 한계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즉 스콜라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스콜라란 학원, 학교, 그리고 거기에서 공부하는 학문과 공부하는 학자들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학문이란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학문이란 인간의 이성적 작업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학문 혹은 학문연구란 개인, 사회, 자연에서 나타나거나, 경험되거나, 느껴지거나, 생각되거나, 판단되는 그 어떤 현상, 운동, 행위, 경험, 사유, 판단, 주장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연구, 설명, 증명, 토론, 판단, 정리, 정돈, 응용하는 일체 인간의 이성적 행동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스콜라철학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대하여 이성적이며 철학적인 이해를 시도했던 하나의 학문적 경향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콜라철학자들은 이와같은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신학에다가 철학의 옷을 입히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이성적 접근, 성서에 대한 논리적 해석, 교리에 대한 지성적 성찰이라는 목표를 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교리와 조화를 이루는 이론적 사상 체계를 만들고 철학과 신학을 접목 시켜보려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여기에는 스콜라철학이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시기의 스콜라란 학문 자체를 위한 순수한 학문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기독교 교리와 신학을 정당화하고 교회의 제도와 체제를 튼튼히 하고 그를 수호하기 위한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우리가 철학적,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신은 존재하는가?’ ‘예수는 진정 하느님의 아들인가?’ ‘진리란 무엇인가?’하는 물음, 즉 신의 존재 문제와 예수의 신성 문제와 진리의 본질 문제로 부터 출발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스콜라철학은 ‘이미 신은 존재한다’ ‘예수는 하느님이다’ ‘예수가 곧 진리다’ 하는 전제하에서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 신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증명 할 것인가?’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믿게 할 것인가?’ ‘진리되시는 예수를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을까?’하는 데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스콜라철학의 과제는 이미 교회로 부터 주어진 교리를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신앙을 강화 시키려고 하는 분명한 전제가 있었습니다. 스콜라철학자들은 ‘기독교의 진리는 이성적’이고 ‘이성과 신앙은 상호 보완적’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생각에는 그 어떠한 갈등이나 모순도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과 전제를 굳게 믿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운동을 통한 증명, 원인을 통한 증명, 필연을 통한 증명, 비교를 통한 증명, 목적론적 증명 같은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철학적 논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물과 우주의 근본에서 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독교 신학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중요하게 여기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 아래에서만 허용했던 것입니다. 스콜라철학은 비판적 논증으로 어떤 결론을 유추하는듯 했지만 사실 기존의 기독교 신앙과 교리를 체계화하는 수단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철학을 철저하게 신앙의 도구화, 합리화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 스콜라철학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중세 스콜라철학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콜라철학에다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최소한 그 시대는 신앙과 이성, 계시와 논리를 피차 접목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는 점에서는 그 값어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편논쟁(普遍論爭, Controversia de Universalibus 영어로는 Controversy of Universal)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 타협과 절충을 시도했던 스콜라철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논쟁 중 하나는 보편논쟁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범주론 입문’에서 제기했던 문제가 다시 점화된 것입니다. 핵심은 ‘보편(Universal)은 실체로써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사고 속에 개념으로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논리적 싸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실체(實體, Substance)는 實在하는가?’하는 논쟁입니다. 그런데 철학사에서 이 문제는 사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플라톤과 그의 뒤를 이어온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이데아와 사물, 본질과 현상을 분리된 두개로 이해하고 이데아와 본질이 사물과 현상계 위에 있는 세계요, 영원하고 불변하고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본질의 세계로 실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본질로써의 이데아는 현상계를 떠나, 현상계와는 무관하게, 현상계에 앞서서 처음부터 실재한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을 실재론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현상계의 개별적 사물들 속에는 이미, 처음부터 그 사물의 질료인 이데아가 들어와 있다고 믿었습니다. ‘질료와 형상은 별개가 아니다. 이데아와 현상은 하나다. 그것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속에는 보편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보편이란 오직 그냥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는 이 생각을 우리는 유명론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얘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에 꽃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꽃’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꽃’은 꽃이 아닙니다. 그것은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별적 사물들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장미면 장미, 무궁화면 무궁화, 나팔꽃이면 나팔꽃, 튤립이면 튤립이라는 개별적 꽃들을 볼 뿐이지 ‘꽃’이라는 보편적 이름은 지극히 추상적인 명사일 뿐입니다. 그는 ‘꽃’이란 오직 하나의 개념, 하나의 이름으로만 존재할 뿐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유명론입니다. ‘이름으로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세상에 실재하는 여러가지 다양한 꽃들은 제각기 다른 이름을 지닌 꽃으로 불리울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꽃’이라는 하나의 이데아, 꽃이라는 하나의 본질로 부터 온 것이요, 따라서 개별적 꽃들에 앞서서 꽃의 이데아가 먼저, 실재로, 처음부터 있어왔다고 믿었습니다. 꽃이라는 이데아는 꽃들이라는 형상에 앞서서 실재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입니다. 다른 예들도 많이 들수 있습니다. ‘삼각형’만 해도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삼각형을 비롯하여 정삼각형, 직삼각형, 거꾸로 된 삼각형 등등 수많은 삼각형들이 있습니다. 기하학자들이 삼각형을 그릴 때 그의 머릿 속에는 ‘내각의 합이 180도’가 되는 수 많은 삼각형들을 상상해 보면서 삼각형을 그립니다. 플라톤은 이 머리 속에 것을 삼각형의 이데아로 보았으며 실재로 그 이데아가 먼저 인간의 생각 속에는 실재했고 그 실재하는 이데아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삼각형들이 그려진다고 보았습니다. 실재론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말하는 그런 이데아란 현실의 다양한 삼각형들을 떠나, 혹은 현실에서 보는 여러가지 삼각형들과는 별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상의 모든 삼각형 속에는 내각의 합이 180도가 되는 삼각형의 이데아가 형상과 ‘함께’ 공존한다고 보았습니다. ‘삼각형의 이데아가 별도로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것은 이름으로만 존재한다’ 이것이 그의 유명론입니다(책상, TV, 사람, 자동차, 진리, 사랑 등 여러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하느님입니다. 보편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神(하느님, 하나님)이 실재하느냐’는 것입니다. 흔히 ‘普遍論爭은 神論’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초이성적으로, 초경험적으로, 초상식적으로, 즉 실제로, 보편적으로 실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생각이나 이성 안에서만 존재하는가? 하느님은 우리의 이성 밖에서도 보편적으로 실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사고 속에서 추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하는가? 하느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이성적 판단과는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실재한다는 주장을 실재론이라고 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을 실재론자라고 합니다. 반대로 하느님이란 실재로는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알수 없고 우리는 단지 우리 앞에서 펼치어지는 우주 삼라만상과 현상계를 보거나, 교육이나 훈련, 혹은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지닌 어떤 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유명론입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별적 사물들을 보거나 개인적 특수한 경험을 통하여 보편적인 것을 추론한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도 우리 모두가 객관적으로 직접 하느님을 보고, 경험하고 그리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 우리가 알수 없는 분이 하신다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서 보편적 존재로써의 하느님을 추론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보편자로써의 하느님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생각 속에서 이름으로만 존재하는가?’하는 보편논쟁에는 3가지 주장이 이어왔습니다.
1) 실재론(實在論, Realism)
‘하느님은 모든 개체 가운데 실제로 실재한다. 하느님은 보편자로 보편적으로 실재한다’는 입장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있다고 해도 있고 당신이 없다고 해도 있다’ ‘하느님은 당신이 경험해도 있고 경험하지 못해도 있다’ ‘나는 믿기 위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같은 유명한 선언은 스콜라철학의 창시자중 하나이며 초기 실재론의 대표자였던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의 말입니다. ‘처음 아담에게 개체적으로 보이신 하느님은 계속하여 우리에게도 그대로 보이신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하느님은 모든 개체 속에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켄터베리의 대주교를 지냈으며 ‘프로슬로기온’(Proslogion)과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 같은 책들을 지었습니다. 실재론자들은 ‘보편은 개체에 앞선다’(Universalia ante res)고 하여 보편, 혹은 보편자는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입장을 가졌습니다. 그래야만 자연법의 실재도 긍정하게 되고 진리, 정의, 사랑, 덕과 같은 보편적 개념의 실재 또한 받아드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재론의 가장 큰 전제는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은 실재로 존재한다. 하느님은 존재하는 것 중에서는 최고의 존재이다. 더 이상 그 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최고의 존재는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 가운데 내재한다. 하느님은 정신 안이던 정신 밖이던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2)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하느님(神이라고 부르던 普遍者라고 호칭하던)은 단지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보편자로써의 하느님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유명론의 대표자였던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09)는 ‘보편자란 이름이요 명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개별적 사물들 속에는 개별적 존재의 속성이 있을 뿐이지 어떤 보편적인 것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꽃에는 무슨 무슨 꽃들이 있고, 나무에도 무슨 무슨 나무들이 있고, 벌레에도 마찬가지로 무슨 무슨 벌레들이 있을 뿐이지, 꽃이나 나무나 벌레라고 하는 보편자가 그 개별적 꽃이나 나무나 벌레 속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로스켈리누스는 하느님도 이와같이 보편적 개체 속에 꼭 들어와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 안에서든 밖에서이든 오직 이름으로만 붙여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을 예로 들어도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명사, 곧 이름으로만 존재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재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백문경, 홍길복 같은 개별적 존재들이 있을 뿐이고 이런 개별적 존재들을 통칭하여 ‘인간’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냥 이름, 명사일 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실재적 존재가 아니다. 신도 실재적 존재가 아니다. 꽃도 실재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 신, 꽃이란 모두 이름이요 개념이요 명사일 뿐이다’라는 주장이 유명론입니다.
3) 개념론(槪念論, Conceptionalism)
‘보편자는 보편적으로도 존재하고 동시에 개별적으로도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실재론과 유명론을 타협하고 절충한 이론입니다. 보편자로써의 하느님은 개별적 대상 가운데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하느님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각 속에는 하느님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일정한 능력도 있고 개체적 개념으로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우리는 보편적 개념으로써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를 이해 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소크라테스라는 하나의 개체적 인간 역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재론과 유명론은 서로 배타적일 필요가 없이 하나로 종합이 가능하다는 이론입니다. 실재론의 안셀무스와 유명론의 로스켈리누스를 조화시켜 보려는 이런 개념론적 시도는 아벨라두스(Aberlardus, 1079-1142)에 의해서 강력하게 주장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이성으로 뒷받침되는 신앙, 철학으로 굳세어지는 신학이라는 명목 가운데 진행 되어왔던 스콜라철학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보편논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끝없는 논쟁과 갈등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중에서도 중세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몇 가지 괄목할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새롭게 조명이 되고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라틴어와 아람어로 번역이 되고 그에 대한 주석들이 유행 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하면 플라톤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일원론적 사상이 중세 유럽에 넓게 퍼져나갔다는 말입니다. 이는 또다시 신앙과 이성, 계시와 논리, 신학과 철학이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와 수도원을 중심하여 생겨나기 시작했던 각종 학교들이 대학으로 까지 발전하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물론 영국으로 까지 대학이 확충됨으로 인문학의 발전이 눈에 띠게 높아졌습니다. 특히 학문하는 방법론에서도 이제 까지 교회에서는 수용이 되지 않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토론식 교육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Tutoring이나 Discussion이 시작되었고 일방적이며 주입식 강의 형태는 차츰 뒤로 물러났습니다. 셋째는 수도원 운동이 정화되고 체계화 되면서 그 동안 유행했던 탁발승 같은 거리의 수도사들은 차츰 정리되면서 학승과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신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스콜라철학과 스콜라신학과 스콜라신부 계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 수도원과 그 부설 신학교를 통하여 배출되기 시작한 학승들 중에서 마침내 중세 최고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출현 되었습니다.
중세 전기 교부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가 아우구스티누스였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후기 스콜라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요,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도미닉크 수도원 출신의 수도사로 사제였고 의사였고 동시에 신학자였습니다. 별명으로는 흔히 ‘천사박사’(Doctor Angelicus)라고 까지 불리우는 아퀴나스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신학과 교리를 체계화한 사람으로써 가장 높이 존경받는 신학자이며 동시에 신학과 철학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한 인문학자로써도 인정을 받습니다. 학계에서는 그의 이런 신앙과 이성의 균형과 절충을 향한 노력을 하나의 학파으로 인정하여 ‘토마스주의’(Thomism)라고 부릅니다. 아퀴나스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29권으로 되어있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이 있습니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은 조화되어 있고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상호보완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믿음을 주신 하느님은 동시에 같은 무게를 지닌 이성도 주었다고 확신했습니다. 철학은 인식에 있어서 주로 이성적 접근을 시도하고 신학은 인식에 있어서 많은 경우 계시에 의존 하지만 그러나 이 둘은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하고 상호보완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상충될 때도 있고 독립적일 때도 있고 중복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결국 신앙과 이성은 상호보충적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는 신학적 질문에 대한 철학적 응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는 ‘이성은 신앙에 봉사한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성을 배격해서는 않된다’ ‘이성적 진리는 신앙적 진리 아래에 있다’ ‘나는 이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면서 신앙우위론을 지지했고 ‘신학의 여왕 됨’을 적극 옹호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시대, 그 정도면 퍽 진보적 지식인이요, 앞서간 신학자라고 보는 것이 우리의 시각입니다. 최소한 아퀴나스는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가 지녔던 이원론적 사고를 거부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일원론을 전개하면서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 계시와 학문의 연결과 하나 됨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만 보아도 뛰어난 사상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플라톤과 아우그스티누스식으로 육체와 영혼을 분리된 두개의 개체로 보지 않고 ‘영과 육이 함께 하나의 인간을 구성하는 단일체’라는 입장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됩니다. ‘종교적 진리는 결코 초이성적이거나 반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신앙은 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성서는 이성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신의 존재는 이성에 의하여 얼마든지 입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전개한 것이 아퀴나스의 그 유명한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5가지 이론’입니다. (1) ‘운동을 통한 증명’(via ex motu)입니다. – ‘모든 사물은 운동한다. 움직인다. 모든 움직이는 것들은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어서 움직인다. 골프공은 혼자서 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축구공은 누군가 공을 찬 사람이 있어서 골인을 한다. 우주와 지구를 움직이게하는 분은 누군가?’ 아퀴나스는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가능태’라고 부르고 움직이는 사물을 ‘현실태’라고 불렀습니다. (2) ‘원인을 통한 증명’(via ex causa efficientis)입니다. –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책상은 그것을 만든 목수가 있고 자녀에게는 부모가 있고 부모에게는 조부모가 있고 조부모에게는 증조부모가 있고 …. 마지막에는 더 이상 원인이 될수 없는 ‘제 1 원인’에 이르게 된다’ (3) ‘우연과 필연을 통한 증명’(via ex possibillii et necessario)입니다. – ‘세상 모든 일에는 우연이란 없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여기는 것들의 뒤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필연이 있다 우연은 필연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하느님은 우주의 필연이다’ (4) ‘비교를 통한 증명’(via ex gradu rei)입니다. – ‘모든 사물에는 반드시 그 사물의 최고 완성태가 있다. 우리는 모든 사물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거듭된 비교의 비교를 통하여 마침내는 더 이상 비교가 않되는 최고의 지고선에 이르게 된다. 이 더 이상은 비교가 불가능한 분이 하느님이다’ (5) ‘목적론적 증명’(via ex finesive et gubernatione rerum)입니다. – ‘모든 사물들은 어떤 방향과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 궁수는 그냥 활을 당기지 않고 운전자는 아무 방향 없이 차를 몰지 않는다. 우주에도 어떤 목적이 있다. 우주만물은 하느님을 향하여 나간다’
나가는 말
(1) 확증편향성에 빠져 편견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살핍시다. (2)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를 뿐이라고 해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참 아름답고 풍성하다’고 생각해야 행복해 집니다. (3)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신념이나 종교적 신앙을 절대화하지 않토록 노력합시다. 공부란 결국 자신의 한계와 제한성,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진리 논쟁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는 절대로 하나의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4) 인문학을 공부하면 자신이 지닌 종교적 신앙이 점점 약화되거나 이러다가는 무신론자가 될까봐 걱정이 되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요. 처음 철학적 지식과 소양이 일천 할 때는 그럴 가능성도 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인문학적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이성적 판단이 강화되면 우리는 더욱 더 든든한 신앙과 신념을 지니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이런 지혜입니다. (5)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나누고 가르고 차별적 눈으로 보지 말고 통시적 안목에서 종합해 보고 동질성을 발견해 보도록 힘을 기울입시다.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을 하나되게 하는 일에 좀 더 마음을 써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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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