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시드니에서 부활절을 보내면서
한국에 부활절은 봄철에 맞이하지만 남반부 호주는 가을철에 부활절 휴가를 맞이한다. 하늘은 푸르고 선들바람이 불며 밤이 길어진 정형적인 가을철이다. 각 교회에서는 사순절 아침 예배를 마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금요일을 맞아 정사예배(못박혀 죽으심)을 보았다. 이날은 가급적 육식을 피하고 십자가가 그려진 빵을 먹으며 식사를 대신한다. 근래는 Fish Market에서 새우와 굴을 많이 먹는다.
2016년 인구조사(인구 2천2백73만3천9백 명)에 의하면 호주에 기독교인은 52.2%로 나타났다. 무신론자가 30%나 된다. 5년 전 2011년 기독교인은 61.1%였다. 호주의 기독교인들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이민자의 증가로 인해 다른 종교가 유입되는 경우와 기독교인들이 고령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인 중에 가톨릭 교인은 22.6%로 제일 많고 다음이 앵글리칸(영국교회)이 13.3%이다. 기타 개신교를 비롯해 동방정교회 등이 16.2%인데 그중에 연합교회(Uniting Church)가 가장 많아 3.7%을 차지하고 있다. 호주가 영국서 독립한 1901년 인구조사 당시 인구 3백77만3천800명인데 기독교인은 96.1%였다. 앵글리칸이 39.7%이고 가톨릭이 26%였다. 그후 이민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1986년 조사에서 가톨릭교인이 26.4%, 앵글리칸이 23.9%로 가톨릭 교인이 많이 늘었다.
각 주마다 기독교인 수를 비교해 보면 퀸스랜드 56.03%이고, 이어 NSW주 55.18%, 서부호주 49.8%, 타스마니아 49.7%, 남부호주 49.1%, 빅토리아주는 47.9%이다. 노던 테리토리 47.68%이며 기독교인수가 적은 주는 ACT가 45.38%이다. 빅토리아 멜본은 고 빌리 그래함 목사가 기독교인이 많은 곳이라고 칭찬했던 곳이며, 한국에 많은 선교사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2011년도 조사에는 57.5%였다.
근래 럭비 선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이스라엘 활로우(Israel Falou 30세, 키 194센티, 몸무게 107킬로그램, Centre Wing)는 1989년 4월에 시드니 서남부 민토(Into)에서 통가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2007년부터 멜본 스톰팀에서 선수로 시작한 이래 현재는 그의 형(John)과 같이 Rugby Union(Wallaby)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지난 4월 18일 그의 SNS을 통해 “동성애자나 거짓말하는 자, 알코올 중독자들은 회개치 않으면 지옥간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많은 팬들중에 럭비경기를 즐겨보는 동성애자들은 이글을 보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동성애자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호주 럭비협회(Australia Rugby League) 회장 피터 비티(Peter Beattie)가 이것은 Workplace law중에 Hate speech에 해당된다고 인정하고 4년간 400만불을 지불키로 하고 해고시켰다.
그는 동성애자를 미워서 한말이 아니다. 부활절에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적인 내용을 글에 올린 것이다. 즉 Free-speech인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재판에 송부해서 이것은 Free Speech라는 것을 받게 되면 돈도 400만불 이상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국민들의 55%가 인정해준 동성애자들을 겁주는 이야기라고 몰아 부치고 있다. 기독교에 위축으로 성경적인 이야기도 함부로 못하는 호주가 되어 가고 있다.
기독교는 세계의 제일의 종교로 21억9천만 명이다. 세계 전체인구의 31.7%라고 한다. 반면 모슬렘 수는 18억으로 24%이다. 기독교는 유럽이나 서구문화권에서는 줄어들지만 아프리카, 아세아, 남미 등지는 늘어나는 추세이다.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 수는 매년 1천5백만 명이 늘어나는데 비해 사망이나 기타 이유로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 1천1백70만이 줄어 실제로 증가 수는 매년 300만 명 정도이다.
유럽을 비롯해 과거 기독교 국가에서는 크게 줄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아세아, 중남미 등지에서는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 경우 1949년도에는 4백만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6,700만 명이 된다. 한국은 1945년에 2%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이 현재는 30% 가까이 늘었다.
기독교인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박해도 심하다. 가톨릭 헤럴드에 의하면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국가중 8개국이 이슬람 문화권이다.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에리트리아, 예멘, 이란 등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숨겨야 한다. 기독교인이 발견되면 맞아 죽거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해야 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신성 모독죄로 감금되며 사형에 이르기도 한다. 내전 상태에 있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테러 대상이 된다.
이슬람권이 아니지만 기독교를 크게 박해하는 나라가 있다. 13억의 인도이다. 근래 경제발전과 더불어 “힌두 내쇼널리즘”이 확산되면서 기독교 추방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인도의 기독교인 수는 6,700만 명으로 5%정도 된다. 인도에서 기독교회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한편 북한은 영도자 동지 이외에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는 “멸절해야 할 국가의 적”이라 가혹하게 박해한다.
호주 안작데이의 의미를 재고해 보자
호주총독 피터 코스크로브(Sir Peter Cosgrove) 경은 지난 4월 25일 캔버라 전쟁기념관에서 안작 기념연설을 통해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과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1915년 갈리폴리(Gallipoi) 전투 이래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호주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하는 길 이 되었음을 깊이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전에 호주 군사령관을 지낸 군인 출신이다. 안작데이의 참 뜻이 세월이 지나갈수록 잊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유럽중심 전쟁) 당시 호주 인구는 300만 명이 조금 넘는 실정에 33만 명의 군인들을 유럽전투에 파견했다. 이 중에 6만 명의 희생으로 68.5%의 희생을 기록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인도, 뉴질랜드 등 연합군 중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전승국가로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독일이 점령 통치하던 뉴리기나(현재 파푸아 뉴기니아)를 얻게 되었고 태평양 서남부에 이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호주로서는 대 승리이다.
그 당시 호주는 일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러시아(백인) 함대를 무찔렀던 강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강화회담에서도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호주 휴스(Hughes) 수상은 참석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부탁하여 이 문제를 없던 것으로 했다.
190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었던 호주는 그 당시 최강이며 최고 부한 모국인 영국에서 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25,000Km 떨어진 태평양의 인구 300만 정도의 섬으로만 간주되었으며, 그 후에 이민자들이 영국서 많이 왔지만 대부분이 가난하기 때문에 반수 정도는 호주정부가 여비 및 집까지 제공해서 온 사람들이다. 또한 미국과 달리 호주 이민을 영국에서 모집할 때 광고 내용을 보면 “호주에 오면 3번 고기를 먹을 수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고기가 부족했던 영국은 대부분 서민은 Fish and Chips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럭키 칸추리”란 책을 저술했던 고 “도날드 혼”교수도 호주는 ‘2등 국민’으로 표기했다.
호주는 모국인 영국과 같이 전승국 대우를 받게 되었다. 2차 대전도 역시 전승국가로서 많은 해택을 받았고 넓은 땅과 광활한 해양, 남극지역 권리 등 많은 해택을 얻어 냈다. 10만의 호주 젊은이들의 희생이 우리가 사는 땅 호주를 윤택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지난 안작데이 다음날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가슴 아픈 기사가 실렸다. 남부 호주 아들라이드에서 북쪽으로 250km나 떨어져 있은 조금마한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Mrs. Eliza Potter와 그의 남편 벤자민의 아들 4명이 1915년 8월에 모두 입대했다. 막내 Hurtle(22세), Ralph(24세), Edward(25세), Thomas(31세)이다. 그들은 아버지와 같은 목수였다. 그들은 모국을 위해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지원하였다. 그런데 1916년 9월중에 3명의 아들이 전사했으나 시체를 확인 못했다는 MIA(Missing in Action) 통보를 받고 Ralph는 중상을 입어 입원중이라는 통보도 정부로부터 받았다. 전쟁에 나간 아들들의 시체도 못찾고 죽어 갔다는 것이다. 부상당한 Ralph는 일년내 병원에 있다가 다음해 10월에 귀국했다. 그후 어머니는 두달 후인 12월에 늘 자식의 죽음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68세에 사망했다고 말한다. 그는 호주 군부대는 주로 프랑스 서북쪽에서 독일군과 대처하면서 프랑스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싸웠다. 생존한 Ralph는 4형제가 모두 불란서에 파견된 호주군 52nd Battlion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불란서 사람들은 호주군을 “Digger”라고 부르면서 환영했다.
1916년 9월 3일 호주군은 프랑스 Pozieres 지역에 있는 Mouquet Farm에서 독일군과 큰 전쟁이 있었다. 독일군들은 콩크리트 방어벽과 동굴에 숨어서 방어를 하고 있고, 호주군은 그대로 진격을 해야 했다. 자연히 공격에 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Ralph는 그의 동생 Hurtie가 바로 옆에 있다가 그대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를 못했다. 먼데서 보이는 Edward도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후 그도 심한 부상을 당하고 쓰러졌다고 한다. Ralph는 훌륭한 농부로 있다가 자기 아들이 사는 퀸스랜드 Howard를 방문하다 전쟁의 상처로 1961년 5월 21일 68세 일기로 사망했다.
호주의 세계 1차 대전 전쟁 연구가 Charles Bean씨는 전쟁사에서 1916년 9월 3일부터 5일까지 큰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에 있다고 말한다. 100여년이 넘은 2013년에 호주군 전사자 조사부에 불란서 농부가 “Mouquet” 농장 근처에서 수로 공사를 하다가 많은 사람의 뼈를 발견하고 호주정부에 알려 Paul Vercoe 중령이 조사해서 Albury에서 농사하는 Ralph 조카 Bob Lymbur의 DNA를 채취해서 Hurtie와 Edward, 그리고 Thomas의 시신을 찾았다. 같은 장소에서 형제 사망을 같이 발견한 것은 기록이라고 말한다. 안작에 한 가정에 비극이다.
가뭄으로 시드니 급수 제한 경고
지난 2017-18년간 2년간 기상청 보고서에 의하면 도시 급수 사용이 인구증가로 9-10% 증가 되었다고 말하고 금년 4월중에도 강우량은 평균치도 안된다고 발표했다. 농민들은 금년도 곡식(Grain) 생산을 위해 가을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4월부터 6월초까지는 많은 비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겨울작물의 대표인 밀 생산은 넓은 대륙인 서부호주에서 대량 생산하여 아세아지역(인도네시아, 말레이, 일본, 한국 등지)로 수출하여 큰 수익을 보고 있는 작물이다.
금년도 심한 가뭄으로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 역시 댐에 비축량이 줄어 대책에 신경을 쓰고 있다. 도시 인구가 가장 많은 시드니 수도국(Sydney Water)은 3개월 이내 많은 비가 오지 않는다면 8월부터 수돗물 사용을 제한해야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시드니 11개 댐에 평균 수위가 55.2%을 기록하고 있는데 매주 0.4%씩 줄어들고 있다. “캐 더린 포트” 시드니 수도국 책임자는 근래 18개월간 저수지에 물의 유입량이 1940년대 이래 적었다고 말하고 지난 1월 27일부터 시드니에 바닷물을 이용해서 음료수로 만드는(Desalination Plant) 공장을 작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물은 시드니 지역 15%만 공급하고 있다. 시드니 수도국은 비가 오지 않고 이런 상태를 계속한다면 8월경에 수도국 댐 수위가 50% 이하로 내려가기 때문에 부득불 수돗물 사용 제한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기상청은 3개월내 비 소식이 없다고 발표했다. 급수 제한령이 내리면 호수(Hose)로 물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며, 아침 10시 전과 오후 4시 후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서부 호주 퍼스(Perth)도 평균 강우량 급격히 하락되어 2006년부터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해수를 음료수로 만드는 공장(Desalination Plant)을 세워 근래는 40% 정도 공급하고 있고, 버린 물도 재생하여 사용하며 강우량 공급은 크게 줄었다. 20세기만 하더라도 강우량이 많아 매년 338Gigaliters 가 저장되었지만 근래는 90%가 줄어든 46Gigaliters 밖에 저축되지 못해 빗물을 통한 음료수 공급은 크게 줄였다.
멜본은 사람이 살지 않은 수풀(MT. Ash)을 수돗물 급수원으로 삼고 있는데 그 넓이만도 1,570㎢나 되고 Yarra강도 이용하고 있어 가뭄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지만 바닷물을 음료수로 바꾸는 공장도 있다(1/3을 공급할 수 있음).
호주는 물이 부족한 지역이며 태양열이 강해 증발역이 강함으로 3개월만 비가 오지 않아도 가뭄이라고 한다. 호주의 심한 가뭄은 보통 18년에 한 번씩 닥친다고 한다. 세계에 일 년간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양은 57,000리터인데 비해 호주는 한 사람당 341.000리터(대략 가정집 풀장 8개 정도)이고 미국과 캐나다는 217,000리터이다. 인구가 많은 중국은 26,000리터, 방글라데시는 16.000리터이다. 호주사람들의 물 사용량은 많은 편이다.
해안가에 있는 시드니 지역의 한 사람당 매일 사용하는 물의 양은 295리터지만 내륙으로 들어 갈수록 물의 사용량은 늘어난다. NSW 농촌 지역인 Waga-Waga는 340리터를 사용한다고 한다. 평균 가정당 하루 900리터를 사용한다. 내용을 보면 화장실 12리터, 목욕(물을 받아서) 100리터, 수도열고 샤워 10분에 200리터가 사용된다. 식기닦는 기계(Dishwach) 150리터, 세탁기 150리터, 양치(물을 틀고) 5리터, 음료수나 음식을 하거나 청소할 때 10리터, 수도를 열고 손닦기 5리터, 정원에 물주기(스프린클러 한 시간 1,000리터, 자동차(호스로 닦을 때) 200리터, 집 차고앞(콩크리트)을 호스(Hose)로 닦을 때 100리터로 계산된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10억 명 가량이 식수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연중 최소 한 달은 물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UN) 보고서는 2030년이 되면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에 의해 물의 수요량이 공급보다 40%를 초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근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은 심각한 가뭄으로 물공급 중단 위기를 맞았다. 물부족 현상은 비단 케이프타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1,000만의 브라질 수도 상파울러의 저수량은 4%미만이다. 바로 케이프타운의 전철을 밟게 되어 비상사태이다. 중국 베이징은 2,000만 인구인데 최소 비축이 1,000㎡이였으나 근래는 145㎡으로 낮아져 문제이다. 이집트 카이로도 나일강이 원천으로 되었으나 모두 오염이 되어 마실 수 있는 물이 없다. 모스크바 역시 충분한 물은 있으나 모두 오염되어 마실 수 없다. 도쿄는 비가 매년 4개월간에 집중적으로 오지만 나머지 기간을 위해 집집마다 물탱크가 있다.
하명호(SBS 방송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