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2층부터 갈래, 3층부터 갈래.”
지난 6일간의 취재 때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도 아렸습니다.
“2층부터 갈래, 3층부터 갈래.”
이 두 학생은 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중학교 동창이나 아니면 오랜 친구사이 같았습니다. 장래식장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마지막으로 떠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빼빼 마른 남학생과 큰 뿔테 안경에 바가지 머리를 한 남학생 한 명은 장례식장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빈소 현황이 나온 스크린을 말없이 쳐다보았습니다. 한참을 서있던 친구 한 명이 먼저 말을 건냈 말이 “2층부터 갈래, 3층부터 갈래.” 였습니다. 3층 건물의 장래 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해야하는 친구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친구들 떠나 보내도 그 기억이 평생을 가는 나이의 아이들이 한 번에 많은 친구들을 보내야 하는 가슴아픈 일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 나라가 울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도 아니고 어른들은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어떠한 변명을 늘어 놓아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원망에 온 나라가 슬퍼하며 원통해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형참사 사고들 가운데는 아이들의 이름이 끼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한참 웃고 떠들며 신나게 뛰어 놀아아 할 나이에 온종일 학교와 학원 교실에 갇혀 살다가 수학 여행이라는 추억의 길을 떠났다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습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엄마! 나왔어.” 라며 돌아 올 것만 같은 우리 아이들은 추운 바다에서 두 주먹을 꽉쥐고 그렇게 잠들었습니다. “가만 있어라” 라는 어른들의 말에 순수하게 순종하며 그렇게 눈을 감았습니다.
선장과 함께 책임감을 뒤로하고 도망친 선원들이나, 법을 어기며 돈에 눈이 멀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배를 떠나게 했던 회사나, 확인되지 않는 ‘전원구조’ 라는 문자를 돌린 학교 관계자나, 서로간의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정부 관계자들이나 어느 누구도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뒤로한 아이들을 돌아오게 할순 없습니다.
얼마전 김동호 목사님께서는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하여 “세월호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배 안에 갇힌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있다.” 라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정말 이 말씀이 맞습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밤잠을 설치며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바라며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사고를 당한 가족들과 친구들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부모는 죽어서 산에 모시지만 자식은 죽어서 가슴에 뭍는다고 하였습니다. 1m 앞도 보이지 않는 차디찬 바닷물에서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지금 세월호에 함께 갇힌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러한 비통함 가운데 동아일보에 기제된 글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14년전 부일외국어고 수학여행 버스 참사 생존자인 김은진 씨(30)가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그 친구와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온 국민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글이었습니다.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 는 2000년 7월 14일 경북 김천시 추풍령휴게소 부근에서 부산 부일외국어고 1학년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트럭과 관광버스 2대와 승용차 등과 연쇄 추돌하여 차량들이 전소하고 학생 13명 등 총 18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다쳤던 수학여행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 생존자 김은진씨 호소>
저는 2000년 7월 14일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의 생존자 김은진입니다. 방금 오전에 일 끝내고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안산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비보가 제일 먼저 보이네요. 멀리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만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뉴스를 보면 마음이 저려오는데, 그렇다고 귀 닫고, 눈 감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계속 뉴스만 찾게 됩니다…. 지금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겪고 있을 참담한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감히 언급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유사한 고통을 아주 오래전에 그들 나이에 제가 겪었고, 차후 몇 년 몇 십 년 동안, 어쩌면 살아 숨 쉬는 평생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이 견뎌야 할 고통의 무게를 제가 약소하나마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만 올립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돌봐 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생존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처벌이 죄책감입니다.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았더라면, 이 지긋지긋한 ‘만약에’라는 가정(假定)이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가슴팍을 짓누르며 숨도 쉴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사망 소식 뒤에 살아남은 부모들이 견뎌야 했던 처벌은 우울증과 이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고, 배우자를 책망하다, 결국 사망자 부모님 대부분이 이혼 또는 별거를 했고, 조부모님들은 손자, 손녀 사고 후 3년 사이로 많이들 돌아가셨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잊혀지겠지요. 하지만 당사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후폭풍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어도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동생과 언니 오빠를 잃은 형과 아우들은 외로울 겁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함께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면 “내가 대신 죽었어야 엄마 아빠 마음이 덜 아팠겠지” 하며 어린 나이에 충분히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이 그리울 겁니다. 모든 당사자에게 이런 참사는 처음이라 서로에게 실수를 할 거예요. 근데 모두가 취약한 상태라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말과 행동들이 비수가 되어 뇌리에 박힐 겁니다.
(중략)
‘이별’의 ‘원인’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대한민국이 잘못을 했고, 여객선이 잘못을 했고, 선장이 잘못했다 탓할 겁니다. 바뀌는 게 없을 겁니다. 아프기만 할 겁니다. 책망할 원인을 찾다 찾다 결국에는 본인에게 귀인할 겁니다.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나고, ‘진짜’ 뛰어들지 않았음에 괴로워하고 당신의 몸뚱이를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칠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살아남은 아이들은 친구들을 데려 나오지 않았음에 “자신은 평생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확정 지어 버릴 거예요.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칭찬 받을 일을, 축하 받을 일을 이루어도, 나는 나만 도망친 비겁자라는 전제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내가 7월이 되면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많은 아이들이 4월이 되면 봄을 즐길 수가 없을 겁니다.
대한민국이 잘못했다, 꼭 고개 숙여 사과해주세요. 외부를 탓할 때, 거기서 멈추게 해주세요. 책임자들이 책임을 피하면, 결국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잘못뿐입니다. 생존자들과 남은 가족들이 절대 자신을 탓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이 글을 읽는 동안 그냥 원망하고 슬퍼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기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이번 사건으로 고통 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의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 1)
현재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 부흥’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 와 ‘메시지 스쿨’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 주일 예배는 오전 10:30 에 메시지 스쿨에서 진행됩니다.
홈페이지: www.messageschool.org
학교주소: 43 / 14-26 Telopea Ave, Homebush West NSW 2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