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시리즈
인문학의 기능
우리는 종종 ‘공자같은 소리하고 있네’란 소리를 주변에서 듣는다. 공허한 이론,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 등을 표현하고 싶을 때 하는 말이다.
인문학을 말하면 ‘공자같은 소리한다’고들 한다. 그 말 속에는 인문학의 생산성 빈곤이나 가시적 효과에 대한 불신이 섞여 있다. 이처럼 오늘날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과 ‘효율성’은 인문학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도구가 된다.
지난 2009년 9월 15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은 고려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인문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시장논리의 무차별적 확산으로 위기에 처한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선언문 발표 배경에는 인문·사회학이 고사(枯死)하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언제부터인지 인문·사회학은 ‘경쟁의 시대’에 도태된 ‘낙오자’요,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불임(不姙)의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문학 교수들은 아우성이고, 학부모는 자식의 진학을 만류하며, 재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전향(轉向)’을 모색한다. 위기의 근인(根因)은 무엇인가? 세계화시대의 시장논리(외인론: 外因論)인가? 학문의 자기개혁 실패(내인론: 內因論)인가?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은 선언문 가운데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는 무차별적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 이로 인한 대학의 상업화라는 외생적 요소였고, 둘째는 인문학자들이 이에 대응해 인문학의 체질 개선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었다.
모든 학문은 그것이 사회 속에서 갖는 저마다의 기능이 있다. 생물학은 생명현상에 관해, 경영학은 기업의 경제와 경영에 관해 그 학문이 보여주는 역할이 객관적으로 제시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성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은 그것의 기능이라는 것이 위의 학문들처럼 사실적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잡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는 인문학은 그러한 객관적인, 외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즉 고대 로마에서나 동양의 고대 사회에서 인문학은 교육을 통해 지배계급이 그들의 신분을 유지하고 획득하는 수단이 되었다. 오직 자유민에게만 주어졌던 교양교육이나 지배 양반계급만이 인문교육을 통해 관료가 될 수 있었던 방식으로 인문학은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은 더 이상 그러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인문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는 신분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기능은 무엇일까? 외적 기능보다 더 중요한 인문학의 내적 기능, 즉 본질적 기능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인문학의 본질적 기능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게끔 이끌어 주는 역할, 즉 인간을 “정신적 주체”가 되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고 말해진다. 이때 ‘주체’라는 말은 타인이나 외부 조건에 예속되거나 종속되지 않은 상태, 즉 그러한 조건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체성이라는 이러한 독립된 존재의 상태는 우리가 끊임없이 외부 조건을 극복하는 노력 속에서, 즉 이른바 초월 속에서 확보될 수 있고, 그러한 초월을 통해서 우리는 독자적인 정신세계, 개성적 영혼을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세계의 구축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정신적 주체성을 획득하는 데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주체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스스로에 대해 자각하는 내면성의 영역이라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이러한 주체성은 사회 속에서 발휘되어 사회화된다.
주체성이 사회화되었을 때,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의 조건 그리고 그들의 주체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특히 거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쓴 소리를 하는 네거티브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이를 ‘비판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주체성과 비판정신을 가진 지식인을 우리는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지성인은 전문가와는 달리 어떤 특정분야의 기능인으로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념을 제시하고 그 것을 위해 참여할 수 있는 지식인을 말한다.
이처럼 인문학의 기능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사회 속에서 그 가치를 유지하게 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생산성은 이러한 관점에서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인문학 교육 또한 생산성의 입증을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평가방식에 휘둘려 인간소외의 현실에 복무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할 것을 요구받는 현실을 극복하고, 사유에 대한 학습을 통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키우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싸르트르는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 이외에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참여할 것이 요구되지 않지만 지성인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알고 그것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자라고 말했다. 즉 전문가는 특정 분야에 대한 스페샬리스트이지만 지성인은 그러한 스페샬리스트를 넘어 인간과 사회의 공동의 목표와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성인은 지식인이 가야할 최종적 단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인문학은 이러한 지성인을 양성하는 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그 기능이 있다고 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