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김환기 사관의 ‘성지순례: 이스라엘과 요르단’ 후기
2019년 9월 12∼27일, 이스라엘과 요르단 순례
구세군 사관 31명이 2019년 9월 12일∼27일까지,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를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두 동부인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 한 분은 7월에 급성악성유방암 판정을 받고 1달 후에 하늘나라로 갔다. 다른 분은 손자가 아파서 합류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27명이 출발했으나 필리핀 여권을 가진 사관 동부인은 요르단에서 입국을 불허해서, 이스라엘에서 합류하게 되었다.
시드니에서 두바이가 13시간, 두바이에서 암만까지는 3시간, 기다리는 시간까지 출발 후 18시간 후에 목적지인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 암만과 시드니는 7시간이다. 시차를 적응할 시간도 없이 바로 로마와 그리스의 유적지를 방문하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인 ‘후세인 부리지’를 넘었다. 요르단은 이슬람교, 이스라엘은 유대교가 국교이다. 종교가 다른 두 나라는 적대적인 관계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에게는 시나이반도, 시리아에게는 골란고원, 요르단에게는 예루살렘 동쪽지역을 빼앗고, 이스라엘 내부의 웨스트 뱅크지역 지역과 가좌 지역은 이스라엘 땅으로 편입시켰다. 이후 이집트에게 시나이 반도를 돌려주었지만,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땅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포했다. 예루살렘은 3대 종교의 성지이다. 유대교에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비친 곳이고, 이슬람교에서는 모하멧이 승천한 곳이고,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시고 승천한 곳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재림할 때까지 예루살렘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갈릴리 호텔에서 여정을 풀고 갈릴리를 중심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갈릴리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이동을 하여, 2000년 전 걸으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갔다. 베들레헴은 웨스트 뱅크지역에 속해있다. 지역은 이스라엘이 통치하지만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다. 이들은 육지 속의 섬에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허락 없이 아무 곳도 갈수가 없다. 베들레헴의 신학교에서 살림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본 화해의 신학에 관한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민박일정’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베들레헴의 크리스천의 비율은 40% 정도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종교 간의 갈등이 없이 조화롭게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무슬림이 합류하여 축하해 주고, 라마단 파티 때에는 크리스천이 축제에 참여한다. 이곳 사람들은 종교를 운명같이 받아들이고 있다. 무슬림 가족에서 태어나서 무슬림이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일정을 마치고 사해로 향했다. 사해(Dead Sea)는 일반 바다의 보다 8배나 높은 30% 정도의 염도를 가지고 있다. 사해 옆의 돌들도 소금 바위이다. 도로 옆에 소금으로 사람 형상을 한 소금기둥이 서있다.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탈출할 때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이다. 사해에서 하룻밤을 지나고 요르단 국경으로 가는 길에 여리고를 들려 예수님이 시험을 받았던 시험산을 들렸다. 시험산 정상에 있는 수도원에도 들렸다. 속세와 전혀 다른 생활을 할 것 같은 수녀들의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 있었다. 사해사본을 발견한 쿰란에 들려서 이스라엘의 정신적 성지인 마사다의 정상에 올랐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의 국경지대를 통과해서 요르단으로 넘어갔다. 국경은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4명의 사관이 구입한 기념품 중 유대교와 관련된 것이라서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경으로 돌아가서 돌려주고 나서야 통과하게 되었다.
요르단에는 명소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와디럼’(Wadi Rum)이란 사막이고, 다른 곳은 ‘페트라’(Petra)이다. 와디럼에서 ‘아리비아 로렌스’, 페트라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영화가 촬영되어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페트라는 개인적인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10년 전 여행 중, 일기장을 페트라에서 놓고 떠났다. 너무 아쉬워서 다시 한 번 가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 왜곡되지만, 기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만남이 있을 때마다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에도 여행 중 50여 페이지의 글을 남겼다.
9월 27일 마지막 날 새벽, 페트라에서 암만공항을 향하여 출발했다. 가는 길에 모세의 느보산에 들렸다. 출애굽의 주인공인 모세는 정작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는다. 하지만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느보산 정상에서 서면 가나안 땅이 보인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허락하지 않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 드디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는 민수기 20장의 무리바 물 사건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신명기에만 3차례나 나타내고 있다(1:37, 3:26, 32:49, 50). 모세는 늙어서 죽지 않았고,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죽었다. 거기까지이다. 우리의 인생도 아쉬울 때가 많으나, 거기까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이고, 죽는 것은 이제 사명을 다 마친 것이다.
김환기 사관 (시드니시나브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