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하나님을 기억하라
11월 11일은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을 기념하는 ‘영령기념일’(Remembrance Day)이다. 호주를 비롯한 참전국가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모든 행사의 마지막 구호는 동일하다. “Lest we forget”
2001년 영국의 국제사관대학에서 ‘Remembrance Day’를 맞이했다. 11월 11일 오전 11시가 되자 우리는 하던 공부를 멈추고 ‘영령기념일’ 행사를 가졌다. 담당 교수는 바닥에 커다란 세계 지도를 펼쳤다. 우리는 양귀비 한 송이씩 들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나가 들고 있던 양귀비를 자신과 관계된 국가 위에 올려놓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차례가 되어 양귀비를 뉴질랜드 위에 올려놓았다.
1996년 뉴질랜드에 교환 사관으로 갔었다. 어느 날 은퇴한 스미스(Smith) 사관이 자신의 집으로 저녁 식사를 초청했다. 식사를 하면서 그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스미스 사관은 한국전쟁 때 군목으로 참전했다. 영상을 통해 한국 전 당시의 비참한 상황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이미 80세가 훌쩍 넘은 스미스 사관은 “이 영상은 나보다는 자네에게 더 의미가 있으니 가져가게나”하며 주셨다. 그날 고인이 된 그분이 불현듯이 생각났던 것이다. 뉴질랜드 위에 양귀비를 올려놓고 그분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1) 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의 전쟁으로 촉발되어 유럽 동맹국들이 참전하면서 세계대전으로 발전되었다. 1914년 6월 28일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에 군대 열병식 참가하는 길에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권총으로 암살되었다. 이 사라예보의 한발의 총성으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1개월 만에 선전포고 하면서 유럽은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1차 대전이 끝난 날을 ‘정전일’(Armistice Day)로 정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전몰용사, 특히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unknown soldiers)들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였다. 이날을 ‘Poppy Day’라고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 가장 처절한 전투가 있었던,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지역에 ‘붉은 양귀비’가 만발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2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서는 ‘정전일’(Armistice Day)을 ‘영령기념일’ (Remembrance Day)로 개명하였다. 1차 대전뿐 아니라 인류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전몰용사를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날을 미국에서는 ‘향군의 날’(Veterans Day)로 지키고 있다.
2) 홀로코스트 박물관
지난 9월 성지순례 때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Holocaust History Museum)에 갔다. 홀로코스트란 뜻은 ‘전부’란 뜻의 ‘홀로’와 ‘태우다’라는 ‘코스트’의 합성어 이다. 2차 대전 중 나치에 의해 가스실에서 산화된 600만 명의 유대인의 죽음을 뜻한다. 히브리어로 박물관의 이름은 ‘야드 바쉠’(Yad Vashem)이다. 야드는 이름, 바쉠은 기억이란 뜻이다. ‘600만 명의 이름을 기억한다’란 뜻이다. 안에는 나치의 만행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살렸던 많은 영웅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로 잘 알려진 쉰들러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독일인 실업가로서 고용의 명목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살렸다.
개신교의 위대한 인물인 ‘코리덴 붐’ 여사의 이름은 찾지 못했다. 그녀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유대인들을 돕다가 체포되었다. 언니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었고 자신은 고문 끝에 살아남았다. 그녀는 전세계를 다니며 용서에 대한 설교를 했다. 어느 날 언니를 죽이고 자신을 고문했던 독일인을 집회에서 만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해도 그 사람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집회를 마치고 그가 악수하러 그녀에게 다가오는 짧은 시간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순종하여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님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가슴으로 물밀듯 평안이 밀려왔다.
3) 하나님을 기억하라
신명기는 출애굽 40주년 모세의 3번의 기념 설교이다. 임종을 앞둔 모세는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신세대를 향하여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설교로 설명한 것이다. 레위기가 문어체라 딱딱한 반면에, 신명기는 구어체라 이해하기가 쉽다. 신명기는 모세5경의 결론이며, 역사서를 시작하는 서론이다. 신명기의 구조는 1-4장은 과거, 5- 26장은 현재 그리고 27-34장은 미래에 대한 설교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억한 하나님을 교육하고, 교육한 하나님을 기대하라’이다.
지난 11월 9일 ‘Ryde Civic Centre’에서 ‘시드니 한인 경로잔치’가 열렸다. 70세 이상의 400 여명의 어르신들이 오신 것 같았다. 내 옆에 계신 분은 1924년생이다. 96세이다. 건강의 비결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찬물을 마시고, 몸을 스트레칭 하여 굳지 않게 한다. 새벽기도로 하루의 문을 열고, 하루는 뉴캐슬, 다른 날은 노인회, 그 다음 날은 블루마운틴, 또 다른 날은 선상 여행 등등 집에 있을 틈이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인생을 즐기신다. 얼마나 더 사시고 싶냐고 여쭈어 보았다. “일단 100살까지 살아보고, 그 다음에 결정하겠다”고 하신다. 식사 후에 노래 자랑 순서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회자와 참가자에 공감하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분의 장수비결은 공감능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식순에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에 이어서 호주국가를 불렀다. 정말 오랜만에 불러본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를 부르며 뿌리를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기억은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다. 기억은 정체성과 관계있다. “나는 누구인가”는 나의 기억에 의존한다. ‘Bourne Identity’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는 지중해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의 한 어부가 등에 총을 맞은 한 남자를 건져 올리면서 시작된다. 남자는 깨어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스위스 은행 계좌번호를 단서로 자신을 찾아 떠난다. 은행에서 자신의 이름이 ‘제이슨 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조금씩 기억을 되찾으면서 자신이 CIA 암살요원 이었음을 알게 된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Bourne Supremacy’, ‘Bourne Ultimatum’ 등의 후속 작이 나왔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릴 수도 있지만, 점차적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도 있다. 뇌세포가 파괴되면서 뇌조직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뇌기능이 약화되면서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다. 인간의 뇌에는 수 조개의 ‘신경세포’(Neuron)가 있는데, 이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는 ‘시냅스’(Synapse)로 연결되어 있다. 뇌의 시냅스는 계속 자라고 다른 신경세포와 복잡한 회로를 만든다. 건강한 뇌는 시넵스가 잘 형성되어 촘촘하지만, 병든 뇌는 조직이 엉성하다. 기억을 상실한 사람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와 실존을 다르다. 존재는 있는 것이고, 실존은 있는 것에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그 의미는 기억을 통해서 부여된다.
인생의 불행은 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잊는 것이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 줄 돈은 잊어버리고, 받을 돈만 기억한다. 부모의 은혜는 잊어버리고, 자식에게 베푼 것만 기억한다.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받을 것만 기억한다. 상처 준 것은 잊어버리고, 상처 받은 것만 기억한다.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사람만 기억한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 주셨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심을 기억하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아침에 ‘오늘도 태양이 떴을까’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가끔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은 못 볼 수는 있지만, 태양은 반드시 뜬다. 우리 인생에도 의심의 구름과 근심의 안개가 끼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칠흑 같은 어둠이 영원할 것 같지만 새벽이 되면 반드시 태양은 떠오른다. 태양이 뜨면 어둠은 물러간다. 찬란한 빛과 함께 만물이 소생한다.
이런 말이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 우리 집은 4형제였다. 어머니는 3명을 군대에 보냈다. 큰형님은 해병대 장교, 둘째와 셋째는 사병으로 갔다. 영장을 받고 1979년 4월 17일, 입대 날에 어머니는 덤덤하게 “잘 갔다 와라”고 하셨다. 아들들이 군대가는 것이 너무 익숙해지신 것이다. 큰형님은 마음이 우유부단해서 ‘좀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해병대에 지원하셨다.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입대했다. 입대할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입대 후 딱 3일 만에 후회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재미있는 시간은 빨리 가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천천히 간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나이만큼 속도를 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1) 말라기서의 시대적 배경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책이다. 말라기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1:1) 바사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고 100여 년이 지나자, 백성들의 마음은 나태해지고, 제사장들은 형식주의 제사를 드리고, 제물에 대한 경건과 성의가 없어지고, 십일조 생활도 나태하여졌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가운데 ‘저는 것’과 ‘병든 것’(1:8) 그리고 ‘흠 있는 것’(1:14)들이 있었다. 예배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질되면서, 백성들은 총체적 난국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할 것을 경고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성서에서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고,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이다. 잠언 9:10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다. 시편 14:1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했다.
삼상 25장에는 ‘나발과 아비가일’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발은 어리석은 자이고 그의 아내 아비가일을 지혜롭고 총명한 여자이다. 다윗의 나발의 양 때를 돌보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양털 깎는 때에 소녀를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했다. 화가 난 다윗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한 모든 자를 죽이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안 아바가일은 급하게 먹을 것을 준비하여 다윗이 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다. 그녀는 다윗에게 엎드려 나발과 같은 불량하고 미련한 자는 개의하지 말 것을 빌었다. 앞으로 당신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터인데 만약 무고한 피를 흘린다면 나중에 스스로도 후회할 것이라고 간언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다윗은 마음을 돌렸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녀를 칭찬했다.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 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상 25:33) 다윗이 물러가고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자초지정을 말하자, 그는 몸이 돌과 같이 되었다가 10일 만에 죽는다.
2) 의로운 태양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라고 약속하셨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우리의 의’(렘 23:5-6)라고 했고, 시편에는 ‘여호와는 태양이시고’(시 84:11)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태양’이시다.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면 불의와 혼돈이 사라진다. 흑암 중에서 방황하는 백성이 길을 찾는다.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자가 기뻐하며 춤을 춘다. 절망의 땅에 희망의 빛이 비친다. 예수 그리스도는 환란 날에 구원이시다.
지난 수업시간에 학생의 간증을 들었다. 그녀는 내가 보아도 신앙이 참 좋은 학생이다. 최근에 그녀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기도의 제목을 놓고 “하나님 이 일을 할까요, 말까요”라고 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하면 하지 않고, 대답이 없으면 기다렸다. 그런데 최근에 그녀의 기도의 차원이 달라졌다. 이제 자신의 기도의 제목이 아니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알려 주신다고 한다.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이 하라는 일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은데 순종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3) 의로운 태양의 치료하는 광선
여호와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다(출 15:26).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쓴 물을 마시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나무가지를 물에 던지자 단물로 변했다. 여호와께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시 103:3),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그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이시다(시 147:3. 신 32:39). 치료받은 사람이 외양간의 틀을 벗어나 기뻐 뛰는 송아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얽매는 것들의 사슬을 끊고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 혼, 육을 고치시는 분이다. 살전 5:23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인간은 영(πνεῦμα pneuma, Spirit), 혼(ψυχὴ psychē, Soul), 육(sōma, Body)이 연합된 ‘전인적 존재’(Holistic Being)이다. 구원이란 단어인 소테리아(σωτηρία)는 인간을 누르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 무엇이 영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혼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육의 문제일 수도 있다. 소테리아는 ‘전인구원’(Holistic Salvation)이다. 성경에 죄에서 구원은 물론이고, 병든 자를 치료할 때도 ‘소테리아’를 사용한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
한국 천주교 선교는 프랑스 신부의 주도로 시작되었고, 개신교 선교는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가 주도했다.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가장 큰 교단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아주 미약하다. 세계 장로교 인구는 1,800만이고, 이중 한국이 1/3이다. 전체 기독교 인구에 대비해서는 0.8%이고, 개신교 인구에 비해서는 3.4%에 불과하다. 미국은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악전고투 끝에 추수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한국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영향을 받아, 11월 3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요즘은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많이 있다.
1) 구약의 3대 절기
이스라엘 농부들은 일년에 세 번 추수하고, 추수기는 ‘삼대 절기’와 어우러져 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농경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보리를 추수하고 묵은 누룩을 없애는 ‘무교절’이 출애굽이란 역사적 사실과 결합된 ‘유월절(Passover)’, 밀을 거두는 ‘맥추절’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은 역사적 사실과 결합된 ‘오순절(Pentecost)’그리고 일년중 마지막 추수를 감사하는 ‘수장절’은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 생활의 역사적 사실이 결합된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이다. 수장절은 우리나라 ‘추석’과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추수 감사절의 유래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20년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는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다음해에 추수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칠면조를 잡고 예배를 드린 것이 시초가 되었다. ‘청교도’(Puritan)란 말은 영국 국교회에 비타협적인 개신교도들을 내리깎는 조소 띤 용어이다. 청교도란 의미는 세속의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거룩한 양심의 소유자들이란 뜻이다. 淸敎徒의 淸은 ‘맑을 청’이다. 1534년, 성공회는 헨리 8세가 수장령을 선언하여 가톨릭과 분리했고,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는 정착시켰다. 1559년, 그녀는 공식적으로 가톨릭에서 분리하고 개신교와 가톨릭의 ‘중도노선’을 택하여 종교 간의 갈등을 종식시켰다. 이를 반대하는 개신교도들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청교도’라고 불렀다.
1603년, 엘리자베스를 이어 왕이 된 ‘제임스 1세’는 성공회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그는 원래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제임스 6세’였다. 후계자가 없이 죽은 엘리자베스의 1세의 종손 자격으로 그녀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그는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을 발간했고, 1625년까지 통치하다, 아들인 챨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찰스 1세는 장로교를 믿는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잉글랜드의 국교인 성공회를 강요하는 종교 개정을 단행해 결국 ‘주교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은 찰스 1세 몰락의 결정타였다. 찰스 1세의 통치 말년에는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올리브 크롬웰’이 그를 사형시키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왕정이 복고되고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왕이 되었다.
3) 감사는 하나님의 뜻
감사의 대상은 만물의 창조자, 보존자,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Omniscience), 전능하시고(Omnipotence), 편재(Omnipresence)하시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성도의 삶의 여정을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우리가 삶에 대하여 감사했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모두 같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강할 때 감사했으면 병 났을 때도 감사해야 하며, 부유할 때 감사했으면 가난한 환경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않을 지라도 감사하는 것이 참 감사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