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 플라톤의 대화편
플라톤 / 박문재 역 / 현대지성 / 2019.11.15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된 소크라테스 사상의 정수를 한 권으로 만나다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읽는 인류 최고 지성인의 영원한 유산
참된 진리 앞에서 죽음도 기쁘게 받아들인 탁월한 지성인이자 정의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한 권에 담았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경 상대주의적이고 실용적인 진리를 내세운 소피스트에 대항하여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며, 질문과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웠다. 그뿐만 아니라, 불경죄로 사형 선고를 받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며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저술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모두 수제자인 플라톤에 의해 보존되어 전해졌다.
이 책 또한 플라톤이 저술한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된 세 권의 책(‘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그리고 에로스를 예찬하는 ‘향연’을 담고 있다. 이 네 권의 책은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불리는 25편의 대화편 중 초·중기 저작들이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에서는 이 네 권의 책을 그리스어 원전 완역하여 한 권으로 엮어냈다. 이에 덧붙여 전문 번역가 박문재의 상세한 주석과 해제를 통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상을 더욱 쉽고 자세하게 만나볼 수 있다.
○ 목차
일러두기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해제
연표
○ 저자소개

– 저 :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 서양 철학의 창시자들 중 한 사람이자 최초의 윤리철학자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자연철학을 탐구했고, 아낙사고라스의 책을 읽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여러 차례 참전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평생 교육자로서 청년들을 교화하였고, 진리를 상대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소피스트들의 태도를 배격하며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로써 이상주의적·목적론적 철학을 수립하는 데 힘썼다.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를 희극의 주인공으로 삼을 정도로 아테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말년에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 결국 불경죄와 청년들에게 궤변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
– 저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역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및 대학원 구약학(Th.M.)을 마치고, Biblica Academia에서 라틴어를 수학하였다. 역서로 헤르만 리델보스의 『바울 신학』, D.A. 카슨의 『요한복음』, 비슬리 머리의 『예수와 하나님 나라』,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 F.F. 브루스의 『바울』, 프란시스 투레틴의 『칭의』 등이 있고, 라틴어원전 번역한 책으로 『칼빈 주석』(공관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이 있다.
○ 책 속으로
나는 자신에 대한 변론을 행하는 동안에도 위험을 피할 요량으로 자유민에게 합당하지 못한 짓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식으로 변론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짓이든지 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변론하다가 죽는 쪽을 택한 것이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법정에서든 전쟁터에서든 나를 비롯한 어느 누구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일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 p.53
죽음이 좋은 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즉, 죽음은 소멸해버리는 것이어서, 죽은 자들이 지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거나, 어떤 변화가 일어나서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장소를 옮겨 살아가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전자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모든 지각이 없어져서 잠자는 것, 곧 꿈 없는 잠을 자는 것과 같다면, 그야말로 죽음은 놀라운 이득입니다. — p.56
또한 후자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것이 여기 이승에서 저기 저승으로 옮겨가 살아가는 것이고, 죽은 사람은 모두 저승에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재판관 여러분이여,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p.57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神)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p.59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계약을 맺어 그들에게 돈을 주고 이곳에서 나를 데리고 나가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나 이 일을 시킨 우리에게나 옳은 일인가, 아니면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나 그들에게나 옳지 않은 일인가 하는 것이네.— p.73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몸에 속한 그 어떤 것도 동반하지 않은 채로 홀로 순수한 상태로 있게 된다는 것이네. 영혼은 이승에서 살아갈 때에 몸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피해서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늘 죽음을 연구하고 죽는 연습을 하지 않았던가? 사실 철학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기꺼이 편안하게 죽는 것을 연구하는 일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지. 철학을 한다는 일이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p.138
○ 출판사 서평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소크라테스, 죽음으로 무지를 일깨우다
참된 진리 앞에서 죽음도 기쁘게 받아들인 탁월한 지성인이자 정의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한 권에 담았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경 상대주의적이고 실용적인 진리를 내세운 소피스트에 대항하여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며, 질문과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웠다. 그뿐만 아니라, 불경죄로 사형 선고를 받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며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저술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모두 수제자인 플라톤에 의해 보존되어 전해졌다. 이 책 또한 플라톤이 저술한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된 세 권의 책(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그리고 에로스를 예찬하는 ‘향연’을 담고 있다.
1.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에 불경죄와 청년들을 부패시킨 죄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들이 아니라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잡신들을 믿는다”는 고발에 대해 자신을 변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은 1차 변론과 유죄 평결 이후의 2차 변론, 그리고 사형 선고 후의 3차 변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자신의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받게 되는데,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의미를 알고 싶어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눴지만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발을 당했다고 변론했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는 신탁에 의한 것이므로 새로운 잡신을 믿는다는 고발의 내용이 거짓이며, 청년들이 자신의 행위를 모방한 것뿐이기 때문에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고발 또한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2. 크리톤
사형 집행 날을 코앞에 두고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탈옥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크리톤은 세 가지 이유를 들며 소크라테스를 설득한다. 첫째, 소크라테스를 살릴 수 있는데도 살리지 않으면 친구들이 욕을 먹게 된다는 것, 둘째,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택한다면 그를 고발한 적들을 돕는 셈이 된다는 것, 셋째, 죽게 되면 자식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이성과 논증을 바탕으로 탈옥이 정의롭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아테네에 산 것은 이미 법에 복종하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탈옥을 하면 그 합의를 깨뜨린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친구, 그리고 국가에게 해악을 입히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수치스럽게 살아남아 자신이 추구하던 참된 진리를 더럽히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 말하고 있다.
3. 파이돈
소크라테스의 생애 마지막 순간, 그의 친구들과 추종자들이 함께 모여 ‘영혼 불멸’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대화에서 죽음을 재앙이 아닌 복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죽음은 화(재앙)가 아니라 복이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것은 영원히 축복받은 자들의 땅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승에서의 철학자의 삶은 그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도리어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있다.
4. 향연
‘향연’은 플라톤의 글 가운데 ‘국가’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책이다. 기원전 416년, 아가톤이라는 비극 작가가 레나이아(Lenaia)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연회를 베푼다. 이 책은 이 연회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연애’의 신인 ‘에로스’를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연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보다 먼저 ‘에로스’를 예찬한다. 그들은 모두 ‘에로스’ 신을 자신의 연애 대상 또는 예찬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들은 ‘에로스 신’은 완전하고 온전히 아름답다는 전제 하에서 예찬을 이어간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에로스’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몸을 연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운 일들과 미덕들을 연애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거기서 “아름다움” 그 자체, 즉 ‘이데아’를 관조하고 직관하는 경지로 올라갔을 때에 ‘에로스’는 완성된다. 이에 덧붙여 철학은 궁극적으로 ‘이데아’를 직관하기 위한 것이고, 철학의 수단은 이성에 의거한 추론과 변증이다. 따라서 철학하는 것, 즉 이성적인 변증을 통해 참된 것들인 ‘이데아들’에 대한 지식을 얻어 진정한 지혜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고유한 의미에서의 ‘에로스’다.
○ 내용
*소크라테스의 변명(변론)
소크라테스의 변론(고 그: Άπολογία Σωκράτους, 영: Apology of Socrates)은 플라톤의 저작 가운데 대화록이 아닌 유일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이미 제목이 예시하듯이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당시의 일반적인 인간 생활에서 관찰하게 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토론이다.
– 개요
플라톤의 4복음서(소크라테스의 변론, 프로타고라스, 파이돈, 향연) 중의 하나로 그의 초기 대화편(對話篇)이다. 기원전 399년 부당한 죄상으로 피소된 소크라테스의 법정(法廷) 변론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부당한 죄상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은 무지(無知)에 대한 지(知)의 가르침이었다. 즉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는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같으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다른 사람에 비하여 얼마간은 지자(知者)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첫째가는 현자(賢者)이다”라고 하는 델포이의 신탁(神託)에 대한 그의 해석이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무지를 깨우치는 일이 신의 뜻에 좇는다고 생각하여 엄격한 대화를 통해서 사람의 억단(臆斷)의 꿈을 깨뜨려 나갔다. 이것이 사람들의 앙심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고 알게 하는 일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들은 신의 지(知)에 대해서는 무지와 다름없으므로, 그러면 그러할수록 진지(眞知)를 사랑하고 정신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신체나 재산보다 먼저 이 일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지를 사랑하고 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가장 큰 열쇠라고 하였다.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중략) 어떻게 하든 나는 결코 나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설사 몇 번이나 죽음의 운명에 위협을 받는다 해도.”라고 애지(愛知)에 대한 각오가 언급되고 있다. 결국은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시종일관 두려움 없이 자기의 소신을 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왔다. 나는 죽기 위하여,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그 어느 것이 더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신 이외에 아는 자는 없다.” 이것이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이다. 또한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서(書)이며 제자인 플라톤이 심혈을 기울여 지난날의 소크라테스를 같은 세대의 사람이나 후세에 전해 주려고 한 불후의 명저이다.
– 구성
17a – 18a: 머릿말
18a – 19a: 변론의 주제
19a – 20c: 첫째 고소에 대한 반증
20c – 24b: 반증에 덧붙이는 이야기
24b – 28b: 둘째 고소에 대한 반증
28b – 31c: 첫째 반론에 대한 변론
31c – 34b: 둘째 반론에 대한 변론
34b – 35d: 끝맺는 말 1
35e – 38d: 끝맺는 말 2
38c – 42a: 끝맺는 말 3
*크리톤
크리톤(고대 그리스어: Κρίτων, Kriton)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짧지만 중요한 대화편이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부유한 친구인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하고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권유에 대해 정의와 법의 관점에서 반박논변을 펼친다. 이 책에서는 정의에 대한 논의, 법의 지위와 사회계약에 대한 시발적(始發的) 논의 등이 나오며, 이러한 것들은 이후 일반철학 이외에도 정치철학이나 법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 개요
이 작품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인 크리톤이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는 감옥에서 나누는 대화를 담고 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탈옥할 것을 권유한다. 여기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로서의 도리’라는 이유를 들어 강력히 탈옥을 권유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탈옥 근거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갖고 있는 원칙을 제시하며, 정의와 법률의 관점에서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기각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법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상황이 초래되기 전의 상황을 그린 ‘변론’에서의 소크라테스는 악법은 단호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 두 작품에서 보여주는 소크라테스의 모순적 측면은 오늘날까지도 철학계에서 주된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모순적 측면은 법에 대한 태도 뿐만 아니라 시민불복종의 측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여겨질만한 주장을 펼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그러한 ‘결론을 도출한 것’일뿐 처음부터 그러한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논의들은 일반 철학 분야 이외에도 정치철학과 법철학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논변으로 여겨지고 있다.
–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 기원전 469년 ~ 399년의 인물. 그는 현재 사형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은 법정에서는 불의에 정면으로 항거[3]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법률과 공공권력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정의관을 제시하는 데 그것은, 기존의 가치관을 기본으로 갖고 있지만 어떤 사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 가장 정의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이전의 원칙만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전의 것보다 최선의 원칙이 등장하면 그것을 취할 줄 아는 합리적인 인간임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크리톤 :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알로페케(Alēpēkē)라는 같은 구(demos)의 시민이고, 소크라테스와 동갑이며, 소크라테스와 절친한 사이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매우 부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의 사형 대신 보석금을 내겠다고 자처하기도 하였으며, 사형이 확정된 이후 간수에게 호의를 보여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불편하지 않게 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준비하면서 그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 등을 기꺼이 지출하였다.
– 줄거리
.도입부(43a-44b)
기원전 399년 어두운 새벽녘 크리톤이 자신의 절친인 소크라테스가 사형판결을 받은 후 갇혀 있는 감옥에 찾아온다. 이 때 소크라테스는 사형일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달게 잠을 자고 있는데, 크리톤은 이 바보의 모습을 보고 소크라테스는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날 특별히 이른 시간에 크리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이유는 ‘델로스로 떠났던 배’가 곧 도착할 예정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닥친 상황을 설명하고 강력하게 탈옥을 권유하기 시작한다.
.크리톤의 탈옥 권유(44b-46a)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여러 이유를 들어 탈옥을 권유한다.
아래는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제시한 탈옥의 이유들이다. 이후에 크리톤과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제시된 이유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자네가 죽는다면 나는 결코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그런 친구를 잃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은 내가 돈을 쓰는 것을 꺼려 자네를 구하지 못했다고 여길 것이다. 곧 자신이 친구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평판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평판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없다.
친구들이 입게 될지도 모를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서는 염려할 것이 없다.
자네가 법정에서 한 말, 즉 자네가 추방되면 어떻게 지낼지 알 수 없다고 한 말에 구애받을 것도 없다. 자네가 도착하는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자네를 반길 것이다.
탈옥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아들들을 버리는 것인데, 자식들을 낳지 말거나, 아니면 그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며 그들과 함께 끝까지 고난을 견뎌 내야 한다.
나로서는 자네와 관련된 모든 일이 우리 쪽이 용기가 없어서 벌어진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나 않을까 해서 부끄러워하고 있다.”
.크리톤의 권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응답(46b-49e)
소크라테스의 원칙(46b-46c)
앞에서 크리톤이 탈옥을 강력하게 권유하자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찰하자고 제안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제 처음이 아니라 언제나, 추론해 보고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이는 원칙 이외에는 내게 속해 있는 다른 어떤 것에도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네. 그러니 나에게 이런 운명이 닥쳤다고 해서 내가 이전에 말한 원칙들을 지금 내던져 버릴 수는 없네. 그것들은 내게 이전과 거의 같아 보이며, 나는 바로 그 동일한 원칙들을 이전처럼 우선시하고 존중하네. 만일 지금 우리가 이것들보다 더 좋은 것을 제시할 수 있다면, 나는 자네에게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아두어야 하네. 다수의 힘이,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우리를 지금보다 더 많은 도깨비들로, 즉 투옥과 사형과 재산몰수로 겁을 줄지라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네.”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말을 통해 이성적인 분별을 통해 매사를 처리하고, 기존의 것을 포함하여 여러 원칙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이는 원칙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는 삶을 살고자 함을 역설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원칙주의자이기는 하지만, 기성의 원칙만을 무조건 고수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전의 원칙보다 더 좋은 것이 제시되면 그것을 취하는 합리적인 면모를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인용절에서 ‘원칙’의 그리스어 원어는 ‘logos’인데 이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결정할 때 따라야 할 행위의 원칙 또는 원리’이다. logos로서의 원칙은 이후 논의에서 계속하여 등장한다.
다수의 사람과 소크라테스의 원칙(46c-48b)
다수의 판단과 전문가 한 사람의 판단(46c-48a)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이 제시한 탈옥에 대한 이유 중 먼저 2번째 것과 7번째 것에 주목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하면, 자신이 친구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것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판단과 평판(doxa)에 대해 크리톤과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세운다.
“판단들 가운데 어떤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되, 어떤 것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의 모든 판단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그렇게 하되 어떤 것은 그렇게 해선 안되고, 또한 모든 사람의 판단들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분별있는(phronimos) 자들이 내리는 좋은 판단을 존중해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내리는 좋지 않은 판단은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것을 어떤 사람이 신체 단련을 하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크리톤이 우려하는 바를 일축한다.
사는 것과 훌륭하게 사는 것(48a-48b)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검토를 마친 후에 다수의 사람이 자신을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음을 자인하고 이에 대해 논의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사람이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 해도 앞에서 논의한 ‘다수의 판단’에 대한 원칙은 바꿀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는 원칙을 추가한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다수의 사람에 의해 죽게 되더라도 훌륭하게 사는 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훌륭하게 사는 것’, ‘아름답게 사는 것’, ‘정의롭게 사는 것’은 서로 동일하다는 원칙을 이끌어 낸다. 크리톤은 할 수 없이 이러한 원칙들에 동의하게 된다.
.문제의 새로운 정립과 정의의 원칙들(48b-49e)
탈옥은 정의로운 것인가?(48b-48d)
소크라테스는 앞에서 고찰한 3가지 원칙들을 바탕으로 탈옥의 문제를 새롭게 보고자 한다.
앞에서 고찰한 3가지 원칙들에 의하면, 다수의 판단은 고려할 요소가 못되며, 훌륭하게 사는 것ㆍ아름답게 사는 것ㆍ정의롭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해야한다. 따라서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좋은 것인가 아닌가, 아름다운 것인가 아닌가, 정의로운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밑바탕적 논의를 토대로 검토해야 할 문제는
“아테네인들이 나를 석방해 주지도 않았는데 내가 여기서 나가려 시도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인가?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
하는 것이 된다. 이 문제는 원칙들에 대한 논의 전개에 앞서 제기 되었던 문제인 ‘탈옥을 실행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더 명확하고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정의의 원칙들(48d-49e)
소크라테스는 탈옥의 시도가 정의로운 것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출발점을 확립하고자 한다. 출발점이란 논증의 전제 혹은 근거와 같은 것인데, 원칙들이 그 출발점 역할을 한다. 이 원칙들을 놓고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은 대화를 주고받는데, 크리톤은 전통적인 정의관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한 것을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못 되며,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경우에 나쁘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데 크리톤의 동의를 얻어, 다섯가지의 원칙을 세운다. 그 원칙들은 아래와 같다.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49b).
그러니 정의롭지 못한 짓을 당하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듯이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정의롭지 못한 짓은 결코 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49b).
남에게 해를 입해서는 아니 된다(49c).
해를 입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말하듯이 보복으로 해를 입혀서는 아니 된다. 아마도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49c).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합의한 것들이 정의롭다면, 그는 그것들을 이행해야 한다(49e).”
.아테네 법률의 연설(49e-54d)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언급(54d-54e)
*파이돈
파이돈(고대 그리스어: Φαίδων)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소위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 이 작품부터라고 하며 이는 영혼의 불사론(不死論)이다.
– 내용
파이돈(BC 417?- ? )은 소크라테스의 애제자로서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의 상황을 친구인 에케크라테에게 들려 준다. 소크라테스는 해질 무렵인 사형집행 때까지 주로 시미아스와 케베스라는 두 사람의 피타고라스 학도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태연자약하여 평소와 조금도 다른 바가 없었다. 한편 그 대화를 듣는 편이었던 제자들은 “방금 웃으며 떠드는가 하면 곧 눈물을 흘린다”라는 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육체라는 침침한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이므로 진리를 좀처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다운 지(知)를 사랑하는 자(철학자)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육체를 정화하여 영혼의 감옥이라 할 만한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즉 살면서 죽음을 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서 플라톤은 영혼의 불사(不死)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데아의 생각을 끌어낸다. 이데아는 우리가 현실의 개체를 현실의 개체로 인정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 이데아의 원인설이 영혼 불사론의 제1전제가 된다. 그런데 눈(雪)은 눈으로서 눈의 이데아가 현실적인 눈의 원인인 동시에 눈의 이데아는 그것과 본질적인 관계에 있는 냉(冷)의 이데아도 받아들여 그것과 반대 관계인 열(熱)의 이데아를 배척한다. 뜨거운 눈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2전제이다.
그런데 혼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욱이 현실의 생명은 생명의 이데아가 원인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리하여 눈이 냉(冷)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열(熱)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죽음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불사인 것이다. 이것이 이데아 원인설에 의한 불사의 증명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근거로 하여 태연하게 독배를 마셨는가. 거기에는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정의에의 확신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플라톤은 윤리적 근거로서 이데아를 안출하여 《파이돈》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태연한 죽음의 근거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향연
향연(饗宴, 고 그: Συμπόσιον)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파이돈’에 이어 써졌다고 추측된다. 이 글은 말하자면 플라톤의 ‘연애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 내용
기원전 416년 아테네의 비극 작가인 아가톤이 비극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는데, 축하연이 그의 저택에서 개최된다. 이 자리에 파이드로스, 아리스토파네스,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등 약 8명이 등장, 연회에서 각자가 에로스(사랑) 찬미의 연설을 하게 된다. 플라톤은 여기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안드로기노스족(남녀가 등과 등을 마주 대어 일체가 되어 있는 인간의 조상)론(論)을 교묘하게 인용해 가면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론으로 유도한다.
소크라테스는 옛날 현녀(賢女) 디오티마에게서 배웠던 일을 그녀와의 대화 형식으로 연설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임신을 하고 있어 낳기를 바란다. 그 뜻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도 죽기 싫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의 대상은 추(醜) 속이 아니라 미(美) 속인 것이다. 이 미에의 생산욕, 이것이 에로스(사랑)이다. 사랑의 첫 단계는 육체의 미 속에 낳는 것이고 그것은 육체에서의 불사(不死)를 구하는 일이며, 아기라고 하는 형태로 실현된다. 그 다음에 정신의 미 속에 낳는 것을 추구하게 되며 또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육체의 미 따위는 근소한 가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정신의 미라고 하는 대양(大洋)을 향하며, 아름답고 장대한 언론이나 사상을 낳고 결국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영역, 영원히 존재하여 생성 소멸하지도 않고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지만 다른 면에서는 추악스러운 일도 없이,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하다는 것도 아닌, 항상 불변하여 단일한 에이도스(姿)를 갖는 미 자체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 자체를 보면서 그와 더불어 있으며 거기에서 사람은 참다운 덕을 낳고 불멸하면서도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에로스는 처음에는 육체의 미, 다음에는 정신의 미, 그리고 최후에는 미 자체의 세계로 사람들을 높여 불사(不死)하는 보물을 얻게 하는 조력자였다. 그러한 에로스를 찬미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에이도스라든가 미 자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 최후로 알키비아데스가 애지(愛知)에 살고 있는 소크라테스야말로 정신의 미 속에서 생산하고 미 자체를 직감하는 진정한 사랑의 구현자라고 소크라테스를 찬미한다. 여기서 찬미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에로스는 이데아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된다. 이것이 참된 플라토닉 러브일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