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楊朱)의 위아(爲我) – 경물중생(輕物重生)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와 춘추전국시대의 양주는 권위 앞에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고 ‘나’를 지켰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 양주와 디오게네스의 닮은 꼴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사상가들을 합쳐서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부른다. 제자(諸子)란 많은 학자들이라는 뜻이고, 백가(百家)는 많은 학파라는 뜻이다. 이 명칭대로라면 오늘날 제자백가의 책이 적어도 100종 이상 전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제(諸)와 백(百) 자가 그냥 많다는 뜻이거나 많다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말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느냐고 핀잔을 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제자백가가 과장이 아니라 실제 그 숫자에 해당되는 사상가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남아 있는 책을 보면 제자백가 중에 이름은 전해져도 책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제자백가 중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이었던 양주(楊朱)와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이었던 추연(鄒衍)의 책이 없다. 추연은 전국시대의 제후들로부터 가장 환영을 받은 사상가이다. 그는 음양과 오행이 각각 주도하는 자연의 시간만이 아니라 역사의 시간을 계산했다. 즉 그는 오행의 객관적인 운행을 통해 미래 역사의 주인을 예측했던 것이다. 추연이 온다고 하면 제후들이 직접 빗자루를 들고서 그가 지나갈 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정성을 보였을 정도이다.
맹자에 따르면 당대의 사상계는 묵적(묵자 墨子)과 양주(양자)로 양분되었다고 할 만큼 그들이 영향력이 컸다. 맹자는 두 사상의 성행으로 인해 공자의 사상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중원 지역의 사람은 날짐승과 들짐승으로 타락할 것이라며 불안에 사로잡힌 경고를 했다. 왜냐하면 묵자의 겸애(兼愛)는 나와 너를 차별하지 않아 가족 윤리를 허물고, 양주의 위아(爲我)는 나를 우선시하며 다른 것을 돌보지 않아 사회 윤리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두 사상 다 기존의 도덕적 기초를 파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자백가 중에서 시대를 호령하던 추연이나 사회에 흥행했던 양주는 오늘날 책 한 권 남기지 못했다. 그들의 사상은 다른 제자백가의 책 속에 단락 글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추연의 사상은 한 제국 이후에 공통 자산이 되면서 독자성을 잃었으므로 사라졌다기보다는 흡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주의 사상은 맹자에 의해 극단적 이기주의와 반사회성으로 왜곡된 탓에 흡수되기보다는 삭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름도 없이 사라지거나 이름은 있되 책이 없는 사상가가 많다보니 ‘제자백가’가 과장된 명칭으로 보이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 시대의 편집자는 양주의 사상이 사회에 얼마나 충격적인 영향을 줄지 미리 예민하게 알아차렸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주로 소크라테스로 시작해,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설명된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외쳤던 탈레스를 비롯하여 많은 자연철학자들이 있었지만 모두 세 철학자의 등장을 도와주는 조연에 불과했다. 박홍규 교수가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펼친 다소 자극적인 도식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polis)에 예속을 낳는 시민의 덕을 말하고 디오게네스는 폴리스를 넘어 자유로 향하는 세계시민을 말했다. 특히 디오게네스는 교환 경제의 기준으로 자리한 통화를 개주하여 가짜 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위조지폐를 만들게 되면 법률에 따라 최대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디오게네스는 가짜 돈 사건으로 인해 고향 시노페(Sinope)에서 추방되어 아테네로 가서 이방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디오게네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게네스의 사상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하 [열전]의 약칭. 쪽수는 전양범의 번역본 기준)에 남아 있는 일화와 발언 덕분이다. 이렇게 보면 양주와 디오게네스는 당시 사람들에 의해 사상의 기록이 거부당해서 오늘날 전해지는 책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 디오게네스의 자연적 세계시민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질(巨帙)에 비해 디오게네스의 일화는 그 내용이 참으로 빈약하기 그지없다. 단편적인 글과 삽화를 보면 디오게네스는 사회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떠한 권위에 굴종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거리낌이 없다. 거칠게 말하면 디오게네스는 폴리스의 규범과 언어를 지키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테제, 즉 정치적 동물로서의 사람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가 아테네로 온 뒤에 머물 곳이 없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오두막 한 채를 준비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 사람이 차일피일 시간을 끌며 집을 마련해주지 않자 그는 공문서 보관서에 있던 큰 술통을 집으로 삼았다.(353p) 디오게네스는 돈이 없어서 생활이 어려웠다. 이때 그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고 돌려달라고 말했다.(364p) 사유재산과 물질적 소유로 작동하는 삶의 형식을 받아들이면 디오게네스의 언행은 다소 엽기적인 코드로 읽힐 수 있다. 반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연으로부터 채취와 물질 거래로 생기는 화폐 자본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화폐를 가진 사람은 특정 시점에서 그것을 관리하는 역할을 할 뿐 배타적 소유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돈을 맡은 사람에게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만남에서 자신의 개성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디오게네스가 양지에서 햇볕을 쬐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와 햇볕을 가로막은 채 “무엇이든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하라!”라고 했다. 그는 어떤 요구를 하지 않고 “햇볕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대꾸했다.(360p) 이는 단순히 왕에게 불손한 행동을 하는 배짱이 초점이 아니다. 그가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내리쬐는 햇볕 이외의 것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 초점이다.(이후 술통과 햇볕 일화는 서양 미술사에 자주 등장하는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디오게네스는 소유와 권위를 부정했지만 “삶에서는 무엇이건 단련 없이는 결코 잘 되지 않는 것이고 이 단련이야말로 모든 일을 극복해 나가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377p)이라고 말했다. 그가 단련을 강조했다고 해서 폴리스의 규범을 지키고 소유로 이루어진 삶의 형식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한 단련은 폴리스의 규범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살고자 할 때, 폴리스의 소유적 삶이 주는 유혹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신이 일반화된 삶의 형식과 다른 삶을 살면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왜소화시키지 않고 긍지를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노고가 아닌 자연에 적합한 노고를 택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삶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 양주의 공자와 묵자 비판
양주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책은 없지만 [맹자], [한비자], [여씨춘추], [회남자] 등의 책에 양주의 발언으로 지목되거나 추정할 만한 조각 글이 남아 있다. 인용자는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양주의 사상에 덧칠을 하고 있다.
맹자는 양주의 핵심 사상인 위아(爲我), 즉 나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국 사람과 짐승(동물)의 경계를 허물게 될 것으로 보아 강하게 비판했다. 맹자는 이런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양주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또는 정당화될 수도 허용될 수 없는 혹세무민의 사설(邪說)로 보았다.
.“몸의 털 한 올을 뽑아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拔一毛而利天下, 不爲. 「진심」 상)
상식선에서 보더라도 양주의 입장은 지나친 점이 있어 보인다. 몸에서 털 올을 뽑는다고 해서 다칠 리가 없는데 나라(세상)를 위해서 그것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니 너무한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털 한 올과 나라(세상)의 비중을 고려하면 양주는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털 한 올을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나의 생명을 유지하고 나의 의지에 반해서 누구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는 생명의 상징이라고 생각해보자. 일모(一毛)도 개인의 생명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개인을 둘러싼 천하의 가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일모는 천하와 대등하거나 더 소중할 수 있다. 부국강병을 내세우는 국가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희생해서라도 나라에 이바지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가혹한 요구를 충실히 이행했지만 제대로 보답을 받지 못하는데도 계속해서 희생을 요구한다면 “내가 왜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양주는 바로 그러한 시대의 열망을 담아서 ‘위아’를 주장했던 것이다. 한비는 양주의 사상을 물질의 가치를 가볍게 보고 생명의 가치를 높게 봐야 한다는 뜻의 경물중생(輕物重生)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한비의 평가는 맹자의 비판에 비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양주는 경물중생의 입장을 확립하자 자기 이전에 활약했던 공자와 묵자의 사상을 비판했다. 공자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주장에서 보이듯 도덕적 명예를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공동체의 복리를 위해서 정수리가 다 닳고 발꿈치가 다 헤질 정도로 헌신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피하지 않았다. 양주는 두 사람의 목표가 명예와 복리로 각각 다르지만, 결국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물질적 가치를 높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즉 그들의 사상은 중물경생(重物輕生)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양주는 공자와 묵자로 이어지는 물질과 소유 중심의 사상 흐름을 생명 중심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 일화를 표현한 서양의 그림처럼, 동양회화에서도 양주 사상의 핵심을 반영한 그림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경물중생, 생명은 양보할 수 없다
.천하와 털 한 올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을까? 양주는 외부의 가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내 생명의 가치와는 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맹자의 일모와 천하의 대립 구도는 참으로 절묘했다. 양주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일모와 천하의 프레임에 갇히면 논박하기가 쉽지 않다. 양주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모와 천하의 가치가 대등하게 보지 않거나 심지어 둘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주 학파는 포기하지 않고 맹자의 프레임의 허구성을 내세웠다.
가령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이것을 집으면 군수가 되는 대신 손가락이 잘릴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몇몇 사람은 손가락이 잘릴지언정 군수가 되길 원할 것이다. 다시 물건을 집으면 도지사가 되지만 손이 잘릴 것이라고 한다면 또 어떻게 행동할까? 그렇다면 앞의 손가락이 잘리는 경우보다는 좀 더 고민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래도 도지사가 되겠다고 물건을 집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건을 집으면 대통령이 되지만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여씨춘추] 「심위」의 예증을 수정했다.)
사람들은 처음에 털 한 올을 희생해서 더 큰 물질적 이익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희생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생명의 위협이 닥쳐오면 물질적 이익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처음에 일모와 생명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양주의 주장은 이렇다. 생명은 부분으로 나눌 수도 없고 어떤 외적 가치에 의해서 양도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바로 이때 나는 어떠한 외부의 요구로부터 자신의 심신을 온전히 지키려는 ‘인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내가 자신의 심신을 오로지 통제하는 자유를 가지면서 주체가 될 수 있다. 조각 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양주 사상의 전모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사회와 국가의 힘에 굴하지 않고 온전한 생명의 가치를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배타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사고가 성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털을 뽑지 않겠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양주는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유형무형의 무시무시한 위압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털을 뽑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했던 것이다. 우리가 양주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구석에 앉아서 슬그머니 털을 뽑고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기요”라고 하지 않을까? _ 글 신정근 /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