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타락과 낙원에서의 추방’(The Fall and Expulsion from Paradise)
Fresco, 280x570cm, 1509-1510년, 바티칸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이탈리아어: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1564년 2월 18일)로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유년 시절부터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하며 그림에 많은 관심을 쏟아 집안에서 자주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소년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 가에서 아버지를 설득한 덕분에 미켈란젤로는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가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에게서 배웠다.
로렌초 메디치는 엄청난 재력가로 유럽역사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했다. 미켈란젤로도 이중에 한명으로 메디치에게 많은 지원을 받았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의 위탁으로 다비드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계속하여 원형 부조인 성 모자를 만들고, 원형화 성 가족을 그렸다. 1504년 피렌체 시청의 위촉으로 대회장의 벽화 카시나 수중 접전도를 그리게 되었는데, 맞은편 벽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앙기아리 기마 접전도를 그렸으므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1505년에 미켈란젤로는 새로 임명된 교황 율리오 2세의 초대로 로마로 들어왔다. 그는 교황의 묘를 짓는 일에 위촉되었고, 그 작업에는 40개의 조각과 4년 정도 걸리는 공사였다. 교황의 후원받긴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수많은 다른 작업으로 무덤을 완공하는데 끊임없는 방해를 받았다. 40년 동안 묘 짓는 작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게 끝내지 못했다. 묘는 로마에 있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위치하며 중앙에 놓인 1516년에 완공한 ‘모세’ 동상으로 가장 유명하다. 묘를 위해 만든 조각상 중에서, ‘반항하는 노예’와 ‘죽어가는 노예’로 알려진 2개의 조각은 루브르 박물관에 현재 보관되고 있다.
1508년 바티칸 사도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위촉받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고통에도 4년 만에 완성하였다. 1520년 메디치가 성당의 묘비를 10년에 걸쳐 조각하는 한편,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도서관 입구를 건축하였으며, 1529년 독일 카를 5세 군의 피렌체 포위 때 방위 위원으로 뽑혀 성을 쌓았다.
후에 메디치 가의 폭군 알레산드로와 사이가 나빠져, 1534년 고향인 피렌체를 영원히 떠났다. 로마로 옮긴 그는 새로운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티나 경당의 정면 대벽화를 위촉받고, 노령으로 발판 위에서 떨어져 가면서까지 혼자 꾸준히 그려 6년에 걸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1550년 바티칸 바오로 경당의 벽화 바오로의 회심과 십자가의 베드로를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 주거하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주문을 받는 고급화가였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 세 조상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89세를 일기로, 외롭고 괴로운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쳤다.
그의 예술은 인생의 고뇌, 사회의 부정과 대결한 분노, 신앙을 미적으로 잘 조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시스티나 천장화’ 뿐만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 역시 명성이 자자하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강탈로 인한 상실감 가운데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그 분노를 후세에 남기고자 기획, 1535년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클레멘스 7세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 직후 선종, 다음 교황인 바오로 3세 때에 가서야 완성을 보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바오로 3세는 1535년 9월 1일, 그를 ‘교황청의 최고 건축가, 화가, 조각가’로 임명하는 포고령을 반포하며 예우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을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이 있다.
로마의 바티칸에 있는 시스틴 채플 천정에 ‘최후의 심판’의 한 장면으로 그려져 있는 ‘타락과 파라다이스에서의 추방’은 흔히들 타락과 추방을 별개의 그림으로 따로따로 그렸던 것에 비해 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나무에 매달려있는 뱀으로부터 선악과를 받아 먹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오른쪽으로는 칼을 든 천사에 의해 에덴동산을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나체의 두 사람이 칼을 든 천사에게 쫓기듯이 에덴동산을 떠나는 것이 비슷한 인상을 주며 배경설정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미켈란젤로가 약 90여년 전에 그린 마사초의 그림을 보고 인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이 그림은 세 개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생명나무를 중심으로 선악과를 따서 이브에게 주며 유혹하는 뱀과 선악과를 꽉 받아 쥐는 이브, 뱀에게 뭐라고 항의하는듯한 아담의 그림이 왼쪽에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타락의 결과 칼을 든 천사에게 쫓기듯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나체의 아담과 이브의 그림이 왼쪽에 있다.
마사초의 아담이 쫓겨나면서 눈을 두 손으로 막고 머리를 숙이고 무척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모습인데 비해 미켈란젤로의 아담은 칼을 내두르는 천사를 향해 무언가 억울하다는듯이 두 팔을 뒤로 내 저으며 얼굴도 든 채로 앞을 보고 있다. 그에 비해서 마사초의 이브는 비록 우는듯한 얼굴이지만 얼굴을 들고 앞만 보며 나아가는데 반해 미켈란젤로의 이브는 팔을 감싸고 아담의 옆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아담의 뒤로 피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사초의 아담과 이브는 어쩌면 후회는 있지만 쫓겨나는 자로서 미련은 없다는 인상을 주는데 반해 미켈란젤로의 아담과 이브는 적막한 분위기 가운데서 무언가 미련이 남아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타락 전과 타락 후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대비함으로 타락의 의미를 생생하게 부각시키려 하지 않았다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것은 양쪽의 모습들을 대비해 보면 더욱 강열하게 느껴진다.
선악과를 받아먹기 전의 에덴동산인 왼쪽풍경은 짓푸른 잔디위에 바위들도 있고 커다란 푸른 나뭇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뻗어 있어 비옥해 보이는데 반해 오른쪽 그림에서는 누렇게 마른 잔디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활량한 벌판으로 내쫒기는 풍경으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왼쪽의 타락 이전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무척 건강하고 생동하는 듯한 모습이며 더욱이 사탄에게서 선악과를 받는 이브의 팔에는 기운이 넘쳐나는 듯한 젊고, 아름답고 힘찬 모습인데 비해 왼쪽의 모습들은 늙어 보이고 맥이 빠져 보이며 주눅이 든 보습이며 특히 이브의 모습은 아담의 뒤에 숨어서 기를 펴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쫓겨나는 모습이다.
타락이전의 에덴동산은 평화롭고 행복하며 고통과 죽음이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다른 피조물들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추방됨으로 이 모든 것을 상실했음을 미켈란젤로는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