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칼 세이건의 말
칼 세이건 / 마음산책 / 2017.06.27
– 진솔하고 우아하게 우주를 그리워한 과학자
진지함과 유머가 공존하는 칼 세이건과의 지적인 대화.
‘칼 세이건의 말’은 2016년 12월 20일 20주기를 맞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진솔하고 우아하고 용감한’ 민낯을 볼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코넬대학교의 천문학 및 우주과학 정교수로 자리 잡은 뒤 이력의 절정으로 향하던 1973년 서른아홉의 젊은 칼 세이건부터,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의 각본에 참여했으나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996년의 칼 세이건까지, 모두 16편의 인터뷰에 그의 일생이 담겼다.
말년까지 간직하게 될 우주의 경이를 처음 깨달은 다섯 살의 기억, 그때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던 부모님, 그 덕에 빠져든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과학소설, 그러면서 갖추게 된 그만의 언어와 회의주의, NASA의 우주탐사 계획과 그의 오랜 숙원인 외계 지적 생명과의 만남, 그 탐색 과정에서 부닥친 다양한 종교적·정치적 반박과 사이비 과학에 대처하는 법 등, 칼 세이건은 단편적인 인터뷰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저서에서 하지 못한 여러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칼 세이건이 공감을 얻은 건 그의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화법과, 작은 질문에도 공들여 대답할 줄 아는 진지함과 배려 덕분이었다.
‘칼 세이건의 말’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칼 세이건의 매력이 흠뻑 배어 있다. ‘외계 지적 생명 수색 작업’인 세티(SETI)와 그가 참여했던 NASA의 우주 프로그램들에 관한 크고 작은 뒷이야기는 물론이고, 흔히 과학의 대척점으로 여겨지는 종교에 대해, 심령술이나 네스 호 괴물 같은 사이비 과학에 대해, 그리고 과학교육과 환경과 정치와 SF영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비아냥거림과 냉소로 일축하거나 젠체하지 않고, 모든 대상 모든 질문에 논리와 유머와 솔직함으로 답한다. 지식이 아닌 태도로서의 과학을 따랐던 칼 세이건의 순수한 지성을만나보자.
○ 목차
서문 _ 톰 헤드
아주 미미한 지구
살아 있는 것과의 공명
광속의 딜레마
인간을 닮지 않은 외계인
외계 생명을 소망하다
코스모스
신과 칼 세이건이 한 우주에?
창백한 푸른 점
전쟁보다 지구
콜라 전쟁이 아니다
과학, 세상에 착륙
자긍심의 실체
악령 살해자
사이비 과학에 대처하는 법
길고 꿈 없는 잠
또 다른 행성에서
옮긴이의 말
연보
원주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칼 세이건 (Carl Edward Sagan)
우주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한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미국 우주 계획의 시초부터 지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1950년대부터 NASA의 자문 조언자로서, 여러 행성 탐사 계획에서 실험관으로 활동했으며, 최초의 행성 탐험 성공(마리너 2호)을 목격했다. 또한 핵전쟁의 전 지구적 영향에 대한 이해, 우주선에 의한 다른 행성의 생물 탐색, 생명의 기원으로 이끄는 과정에 대한 실험 연구 등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는 1975년 인류 복지에 대한 공헌으로 성 조셉 상, 1978년 『에덴의 공룡 The Dragons of Eden』으로 문학부문 퓰리처상, 미국우주항공협회의 존 F. 케네디 우주항공상, 소련우주항공가연맹의 치올코프스키 메달, 미국천문학회의 마수르스키 상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을 수상했다.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수많은 책과 논문,기고문을 남겼는데, 그 중 『코스모스 Cosmos』는 지금까지 영어로 출판된 과학 서적 중 가장 널리 읽힌 책으로, TV시리즈로 방영되어 현재까지 60개국 5억의 시청자를 매료시켰으며, “까다로운 우주의 신비를 안방에 쉽고도 생생하게 전달했다”라는 평가를 받아 에미 상 및 피보디 상을 수상했다. 대중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칼 세이건 특유의 문체는 온갖 과학지식과 인문학적 상식을 종횡으로 엮어 우주라는 거대한 주제를 명쾌하면서도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는 코넬 대학교의 데이비드 던컨 천문학 및 우주과학 교수, 행성연구실험실의 소장,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제트추진실험실의 초빙교수, 세계 최대 우주 애호가 단체인 행성협회의 공동 설립자이자 회장을 역임하였고, 1996년 12월 골수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우주의 지적인 생명체 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 』『대지의 속삭임 Murmurs of Earth 』『브로카의 두뇌 Broca’s Brain 』『우주의 관계 Cosmic Connection 』등이 있으며 소설 『접촉 Contact』는 영화화되어 국내에 상영된 바 있다.
○ 책 속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증거를 얻기 전에 결정을 내려선 안 되는 법이죠.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데이터가 입수될 때까지 판단을 미루는 게 힘든 모양입니다. (…) 〈라이프〉 편집자들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여러 대안을 제공해서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지 마세요. 그냥 뭐가 맞는지만 알려줘요.” 저는 “뭐가 맞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여러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판단을 미뤄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냥 하나를 고르세요. 뭐가 됐든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걸로”라고 대꾸했죠. 〈라이프〉 편집자들의 그런 태도는 오늘날 많은 사람의 사고방식과 딱 맞아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고방식과.— p.34~35
요즘 우리가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파 에너지가 나오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하나는 AM 라디오에서 높은 주파수 대역이고, 두 번째는 일반적인 가정 텔레비전 방송이고, 세 번째는 미국과 소련의 레이더 방어망입니다. 지구에서 먼 곳에서 지구의 지적 생명이 내는 신호로서 감지할 수 있는 건 이 세 가지뿐입니다. 이것은 제법 숙연한 기분이 드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의문 중에 이런 게 있죠. 외계 지적 생명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대체 왜 아직까지 지구에 오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는 답을 압니다. 우리가 내보내는 방송을 한번 들어보라고요.— p.43
사람들은 화성에 대해서 거의 신경질적일 만큼 우월주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 그건 그냥 달이랑 비슷해” 하는 식으로요. 그런 논증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달에는 크레이터가 있지. 그리고 달에는 생명이 없지. 화성에도 크레이터가 있지. 그러므로 화성에도 생명이 없어.” 만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런 삼단논법을 들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겁니다.
그렇다면 매리너 9호가 우리에게 알려준 현실은 어땠을까요? 화성에 액체 물이 흐르는 운하는 없었지만 어느 모로 보나 꼭 말라붙은 강처럼 보이는 지형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달과 비슷한 행성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그와는 다른 무엇이었습니다. 화성은 누구의 추측과도 다를 만큼 그저 환상적으로 달랐습니다. 전 외계 지적 생명 수색의 현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환상에 순응 하지 않을 테고, 우리의 우월주의에도 순응하지 않을 겁니다.— p.50~51
요즘에는 일종의 이분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합리적인 것과 신비로운 것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하지만 전 그게 정말로 이분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약물 체험을 묘사하면서 자신과 우주가 하나가 된 느낌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약물과 무관한 종교적 체험에서도 물론 그런 표현이 쓰입니다. 동양 사상이든 기독교든 다들 그 비슷한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람에게 “우주와 하나가 된다”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물으면 그들은 그걸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합니다.— p.54
그는 여전히, 인간을 닮은 외계인과 “과학적 부정확성”이 산재한 두 영화에 코웃음을 보낸다. 그는 왜 제작자들이 굶주린 대학원생이라도 고용해서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살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타워즈〉에서 조종사 한 솔로는 하이퍼 공간으로 높은 “파섹”의 총알을 발사한다. 하지만 파섹(parsec)은 속력의 단위가 아니라 거리의 단위다. “그건 마치 ‘오늘 아침에 32마일에 일어났어’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세이건은 말한다.— p.125
“제가 과학이라는 활동에─특히 천문학에─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이 인간적인 행위로서, 즉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서 보였으면 하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의 다른 어떤 생물도 과학을 ‘하지’ 않습니다. 강렬한 감정이라면 다른 종들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건 감정이 아닙니다.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건 인간의 생각이고, 과학은 그것의 가장 훌륭한 예시입니다. 전 모든 사람이 그런 걸 즐기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학창 시절 초창기부터 사람들로부터 그런 의욕을 꺾어놓습니다. 모든 사람은 지적 발견과 공명하는 일종의 회로입니다. 저는 그 공명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p.133
창조론이 제기하는 질문에 관해서라면, 자연선택이 진화의 원인이라는 이론이 가설에 불과한 건 사실입니다. 다른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이 문제 삼는 건 공정성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은 여러 경쟁하는 원칙들 가운데 단 하나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공정성에 대한 그들의 관심에는 박수를 보냅니다만, 전 그들 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첫 단계는 그들이 교회 에서 기꺼이 다윈주의 진화를 가르칠 의향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양이 공정하게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염려하는 거라면 어떻게 교회나 시너고그나 모스크에서는 한만 가르치고 있는지 모를 일이죠. 텔레비전마저도 특정 신념 체계를 소개하는 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점도 덧붙일 수 있겠고요.— p.145~146
우리가 타고난 과학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종교적 질문을 떠올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상당히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입니다. 음악도 대체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공유하는 감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과학과 기술에 능통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실재화할 수 있죠. 그리고 과학기술은, 흰개미탑이나 그딴 걸 제외하고는, 분명 지구의 다른 어떤 동물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과학기술은 인간만의 특징적인 능력입니다. 감정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동물들도 거의 틀림없이 깊은 감정을 많이 느낄 겁니다. 인간 고유의 능력은 생각입니다. 따라서 전 종교적 발상에 모종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p.156~157
개인적으로 저는 사후생이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사후생에서 제가 이 세상과 다른 세상들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제 설명은 모든 인간이 진정으로 문화를 넘어서 공유하는 하 나의 경험인 출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9개월을 보낸 뒤에 난생처음 희미한 빛을 보는데, 그건 틀림없이 눈부시고 충격적인 경험일 겁니다. 그보다 더 극적인 전이의 경험은 상상하기 어렵죠. 그리고 보통은 그 빛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파든 산과의사든 아버지든. 최소한 저와 다른 몇몇 사람이 보기에 임사 체험이란 우리가 인생 최초의 경험,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경험이었을 그 출생의 순간에 가닿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순간에 탄생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 이게 천국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딴말이지만, 세례라는 개념 자체가 재탄생의 상징으로 여겨지지 않나요?— p.169~170
전 유인 프로그램을 ‘맨드(manned)’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건 싫은데요, 왜냐하면 여성 우주인들도 있으니까요. 차라리 ‘휴먼’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p.195
저는 지구라는 행성을 버려도 좋다고 말하려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껏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이 가공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 심지어 무시무시한 수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를 뒷받침하는 환경은 아주 취약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대기의 두께는, 지구 크기와 비교하자면, 지구본 겉에 발라진 유약의 두께 정도밖에 안 됩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우리가 스스로를 파괴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우리는 분명 스스로에게 위험한 존재입니다. 전 다른 세상에서도 인류의 자급자족 공동체가 번성해서─물론 이것은 장기적으로 하는 얘기고, 서두를 건 없습니다─인류가 위험을 분산한다면 좋겠습니다. 달리 말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 좋겠습니다.— p.200~202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답을 모르는 질문을 아이가 던질 때 겁먹지 않는 겁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겠다고 고백해도 정말 괜찮습니다. 설령 질문자가 여섯 살짜리라도요. 최악은 아이를 비웃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는 어른들을 성나게 하는 질문이란 게 있다고 믿게 되고, 그런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과학을 편하게 여기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한 명 잃은 겁니다.— p.234
동료들은 종종 비결이 뭐냐고 묻습니다. 많은 과학자가 자기 분야에서 연구자로서는 탁월하면서도 과학을 설명하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데, 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비결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전문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 입니다. 자기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겁니다. 대신 자신이 뭔가 이해되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속으로 말하듯이 하라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사실을 전문용어가 아닌 평이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중의 지성을 존중하되, 단 그들은 당신처럼 전문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p.278
세상에 외계 생명의 존재 가능성에 저보다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전 다른 행성으로 우주선을 보내서 외계 생명을 찾아보는 일에 관여했고, 대형 전파망원경을 써서 다른 별의 행성에 있는 다른 문명이 보낸 신호를 듣는 일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만일 외계인이 지구에 와 있다면 제가 수고를 얼마나 덜게 되겠습니까. 설령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땅딸막하고, 음침하고, 섹스에 집착하는 존재일지라도 말입니다.— p.297
자, 누가 더 겸손합니까? 열린 마음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우주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를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과학자입니까, 아니면 “이 책(성서)의 내용은 모두 문자 그대로 진실로서 받아들여야 하고 이 책을 쓰는 데 관여했던 인간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말라” 하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p.325~326
○ 출판사 서평
– 진솔하고 우아하게 우주를 그리워한 과학자 칼 세이건과 우주를 담은 23년의 인터뷰
약 50억 년 전 우주 어딘가의 성운에서 태양이 만들어졌고, 약 46억 년 전 그 주변을 돌던 미행성과 기타 물질이 중력으로 뭉쳐 지구가 되었다. 영겁과 같은 세월 속에서 아주 우연한 한 시점에, 매우 무작위적인 조건으로 발생한 지구 생명은 결국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다. 우주적 우연에서 생겨난, 우주의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죽음과 같다는 말이 상징이나 비약만은 아닌 것이다.
평생 친근한 언어로 학계와 대중의 경계를 허물며 우주와 깊은 유대감을 맺어온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섯 살 때 뉴욕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우주에 매료되어 매리너호 계획 등 NASA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1980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와 동명의 책을 내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된 뒤에도 그는 세계 최대의 우주과학 민간단체인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를 공동 창설하고 그 회장으로서 열정적으로 외계 생명을 찾아 헤맸다. 칼 세이건은 오직 인간이 아는 우주와 그 협소한 인식을 넓히는 데 평생을 쏟았고, 1996년 12월 20일 62세의 조금 이른 나이로 그에겐 좁았던 지구를 벗어나 넓은 우주로 나아갔다.
『칼 세이건의 말』은 2016년 12월 20일 20주기를 맞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진솔하고 우아하고 용감한’ 민낯을 볼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코넬대학교의 천문학 및 우주과학 정교수로 자리 잡은 뒤 이력의 절정으로 향하던 1973년 서른아홉의 젊은 칼 세이건부터,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의 각본에 참여했으나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996년의 칼 세이건까지, 모두 16편의 인터뷰에 그의 일생이 담겼다. 말년까지 간직하게 될 우주의 경이를 처음 깨달은 다섯 살의 기억, 그때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던 부모님, 그 덕에 빠져든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과학소설, 그러면서 갖추게 된 그만의 언어와 회의주의, NASA의 우주탐사 계획과 그의 오랜 숙원인 외계 지적 생명과의 만남, 그 탐색 과정에서 부닥친 다양한 종교적·정치적 반박과 사이비 과학에 대처하는 법 등, 칼 세이건은 단편적인 인터뷰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저서에서 하지 못한 여러 뒷이야기를 『칼 세이건의 말』에서 들려준다. 거의 평생에 걸친 그의 인터뷰에서 우주와 지구와 생물,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 대한 드넓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제가 변한 건 인생의 아름다움, 우주의 아름다움, 살아 있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훨씬 더 강하게 음미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 매 순간을, 살아 있지 않은 모든 것을, 하물며 살아 있는 것의 뛰어난 복잡함은 말할 것도 없고요. 네, 이런 것들이 그리울 거라고 상상하면 갑자기 모든 게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336~337쪽
일생을 두고 쓴 글, 평생에 걸쳐서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감추고 도망갈 길이 없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칼 세이건의 말』은 말하자면 칼 세이건의 감출 수 없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책이다. 그의 말은 진솔했고 우아했고 용감했다. 그도 진솔했고 우아했고 용감했다.-이명현(과학저술가·천문학자)
– 진지함과 유머가 공존하는 칼 세이건과의 지적인 대화
우리가 과학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정교함, 깊이, 탁월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데, 전 그것이 어느 관료주의적 종교가 제공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자연의 장엄함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 그 자체를 종교적 체험이라고 부른대도 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176~177쪽
칼 세이건은 특정 분야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히 ‘〈코스모스〉를 만든 과학자’ 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더 유명하지만, 열여섯 살에 시카고대학교에 들어간 영재에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와 코넬대학교 등에서 30여 년을 강의했으며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부지런한 과학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랫동안 한 분야에 매진할 때 흔히들 실수하는 것과 달리, 아집에 빠져들거나 경계에 갇히지 않았다. 이런 그를 이끈 것은, 인터뷰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드넓은 우주와 그 안에서 기적 같은 확률로 생겨난 지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그가 “종교적 체험”에 빗대기도 한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은 특정 학문이 전유할 수도, 그 혼자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질시하는 여느 과학자들이 조롱을 담아 말하는 “과학 대중화 전문가”(342쪽)이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칼 세이건 이전에도 과학이 있었고 이후에도 과학이 있지만, 그가 전하는 것만큼 과학이 친근했던 적은 없다.
요즘 우리가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파 에너지가 나오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하나는 AM 라디오에서 높은 주파수 대역이고, 두 번째는 일반적인 가정 텔레비전 방송이고, 세 번째는 미국과 소련의 레이더 방어망입니다. 지구에서 먼 곳에서 지구의 지적 생명이 내는 신호로서 감지할 수 있는 건 이 세 가지뿐입니다. 이것은 제법 숙연한 기분이 드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의문 중에 이런 게 있죠. 외계 지적 생명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대체 왜 아직까지 지구에 오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는 답을 압니다. 우리가 내보내는 방송을 한번 들어보라고요.-43쪽
칼 세이건이 공감을 얻은 건 무엇보다 그의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화법과, 작은 질문에도 공들여 대답할 줄 아는 진지함과 배려 덕분이었다. 『칼 세이건의 말』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칼 세이건의 매력이 흠뻑 배어 있다. ‘외계 지적 생명 수색 작업’인 세티(SETI)와 그가 참여했던 NASA의 우주 프로그램들에 관한 크고 작은 뒷이야기는 물론이고, 흔히 과학의 대척점으로 여겨지는 종교에 대해, 심령술이나 네스 호 괴물 같은 사이비 과학에 대해, 그리고 과학교육과 환경과 정치와 SF영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비아냥거림과 냉소로 일축하거나 젠체하지 않고, 모든 대상 모든 질문에 논리와 유머와 솔직함으로 답한다. 『칼 세이건의 말』에서는 질문자가 점성학자여도, 종교학자여도, 나아가 어린아이여도,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상의 논리를 대중적이되 진지하고 지적인 언어로 내보이는 칼 세이건의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비결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전문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 입니다. 자기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겁니다. 대신 자신이 뭔가 이해되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속으로 말하듯이 하라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사실을 전문용어가 아닌 평이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중의 지성을 존중하되, 단 그들은 당신처럼 전문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278쪽
–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것’에 대한 믿음, 인간의 원동력은 회의주의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감정적으로 정말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무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적절한 증거가 있는지 꼭 물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2년 전, 15년 전에 양친을 잃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관계가 좋았어요. 두 분이 정말로 그립습니다. 두 분의 영혼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정말로 믿고 싶습니다. 1년에 5분만이라도 두 분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 우리는 가장 엄격한 수준의 증거를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일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따라서 영매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어떤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나서 “부모님과 접촉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전 그 말을 절실히 믿고 싶기 때문에 더더욱 여분의 회의주의까지 발휘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제가 속기 쉬운 처지니까요.-329~331쪽
공개적으로 마지막 인터뷰가 된 1996년 5월의 인터뷰에서 칼 세이건은 많이 쇠한 몸으로도 평생 설파해온 ‘회의주의’의 신념을 놓지 않는다. 사실 그는 냉철하기만 한 과학 맹신자가 아니었다. 평생 외계인의 흔적을 누구보다 열렬히 좇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믿고 싶어 했고, 리처드 도킨스가 “만일 세이건이 살아 있었다면 그를 반드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겠다”(「옮긴이의 말」)라고 말할 만큼의 뛰어난 감수성을 『코스모스』와 『콘택트』에서 충분히 드러내 보였다. 다만 칼 세이건은 믿고 싶은 것을 정말 믿기 위해 비판과 회의와 증거가 필요했고, 이러한 태도가 바로 그가 생각하는 과학의 본질이었다. “과학이 발전하는 길에는 죽은 이론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습니다. 발전은 그렇게 이뤄집니다”(98쪽)라던 그는, 어느 때고 자신에 대한 비판과 반증, 시기와 질투마저 품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칼 세이건의 말』은 이처럼 지식이 아닌 태도로서의 과학을 따랐던 칼 세이건의 순수한 지성을 그 자신이 한 말로 넉넉히 들려준다.
과학을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 지식에 대한 주장을 회의주의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로 쓴다면 전 과학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넓은 의미의 정의입니다. 과학(사이언스)이라는 단어는 사실 라틴어로 지식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대단히 박식하거나 난해한 무엇으로 여겨선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과학의 핵심은 비판, 토론, 개방적인 탐구,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태도,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믿음을 미루는 태도, 비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 과학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의 견해를 반증한 사람에게 제일 큰 보상을 안깁니다.-299~300쪽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