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淮南子) _ 대립과 통일의 변주곡
– 지방자치를 강조한 ‘회남자’
유안의 할머니는 조(趙)나라에 온 고조 유방을 만나 유안의 아버지 유장을 잉태하였는데, 고조의 정비가 질투하여 옥중에서 유장을 낳고 자살하였다. 유장 또한 나라를 몰수당하고 촉(蜀)으로 유배 가던 중 자살한 인물이다. 이처럼 유안은 자신의 가계에서부터 힘겨운 인생 역정을 걸어야만 했다. 이러한 심경에서 유안은 유교 사상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제에 대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유분방한 노장 사상을 중심으로 각 지방의 특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지방자치제를 주장하였으며, 도가를 중심으로 유교 등 다른 모든 사상의 통일을 이루고자 의도하였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는 도가적 입장을 첫째로 삼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커다란 제약을 받았다. 즉, 당시 유교 사상만을 중시하여 유교적 ‘대통합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던 문제(文帝)와 무제(武帝)시대의 분위기를 뚫고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유가는 중앙집권을 강화하려는 사상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인데 반해, 도가는 만물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고자하는 지방분권적 자치를 강조하는 성격의 사상이었다.
문제 때의 숙손통(叔孫通), 가의(賈誼) 등이 유교 사상에 입각하여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시도하였고, 이러한 시도는 무제 때 동중서(童仲舒)의 유교 이데올로기적 중앙집권화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유안의 이상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무제가 남월(南越)에 출병하려고 하자 유안은 상소로써 “전쟁을 일으키면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반드시 흉년이 든다”거나 “전쟁이 일어난 자리에는 쑥과 가시덤불이 생겨 황폐하게 된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평화를 역설했던 것이다.
유안은 빈객(賓客)과 방술지사(方術之士) 수천 명을 불러들여 내서(內書) 21편을 지었다고 한다. 그밖에 외서(外書)도 있었으며, 8편으로 이루어진 중편(中篇)은 신선(神仙), 황백(黃白)의 방술(方術)을 기록한 것으로 20만여 자나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황백이란 수은이나 납을 주재료로 하여 황금이나 백은을 만드는 특유의 방술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서 21편만 남아 있다.
‘회남자’는 한나라 초기에 성행한 다양한 학술 내지 사상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면에서 특징적이다. 이 때문에 한서 예문지(藝文志)에서는 핵심적인 사상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잡가류(雜家類)에 넣고 있다. 잡가란 말은 사상의 핵심이 없이 여러 가지 학파들을 잡스럽게 뒤섞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회남자’는 우수한 문학 작품일 뿐 아니라, 유가가 한나라 시대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기 이전의 다양한 학술 풍토의 면면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당시 무제는 문예를 좋아하여 유안을 그의 아버지와 같은 위계로 우대하고, 공문서를 내릴 때에는 최고 문관에게 초고를 철저히 교열토록 한 뒤에 보냈다고 한다.
한나라 초기에는 부분적으로 서주(西周)시대의 봉건 제도를 부활시켜 황실의 일족들을 공신으로 봉하였으나 황실의 기초가 안정됨에 따라 커다란 봉국의 존재는 제국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큰 왕국을 나누어 작은 나라로 만드는 한편, 어떤 왕국에 대해서는 모반의 누명을 씌워 멸망시키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회남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나라는 유교에 의한 통일을 강조하는, 공양학(公羊學)1)적 통합주의의 분위기가 지배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저항해서 씌어진 것이 ‘회남자’인데, 이것은 정치적 모반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ㆍ문화적 모반으로까지 간주되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유안이란 인물과 ‘회남자’라는 책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회남국은 전국(戰國)시대에는 초(楚)라는 지역이었고 원래 사상적으로건 문화적으로건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있었다. 도가 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회남자’의 요략(要略)편에는 당시 지배적 분위기였던 유교적 중앙집권화에 대한 저항의식이 나타나 있다. 다만 이 때의 저항의식은 단순한 저항이었을 뿐 모반의 분위기에까지 이른 것 같지는 않다. 그러한 모반 사건은 유가의 사가들이 꾸며낸 것으로 보인다.
‘회남자’의 본래 제목은 ‘홍렬(鴻烈)’이었기 때문에, 뒷날 ‘회남홍렬(淮南鴻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홍(鴻)이란 크다는 뜻이고, 열(烈)이란 밝힌다는 뜻으로서, 홍렬은 곧 ‘도를 크게 밝힌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회남자’로 불리게 된 것은 유향(劉向)2) 이후의 일이다. 이 책에 대한 최초 주석서는 허신(許愼)과 고유(高誘)의 것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유의 것만이 남아 있다.
– 대자연의 법칙과 인간 행위의 합일
‘회남자’에 인용되는 문헌들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의 도가 계통의 서적들 그리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의 경전들과, 그 외에 법가 계통의 전적, 음양오행가의 주장, ‘묵자’, 심지어는 황로3)의 저작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과 여씨춘추(呂氏春秋) 등 매우 다양하고 광범하여 실로 잡다하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한나라 때에는 이 책을 잡가로 분류했으나, 후대에는 회남자의 사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여러 사상과의 유기적 연관성에 입각하여 평가하고 있다.
회남자는 2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마지막 요략(要略)편은 총론에 해당하는데, “도(道)를 말하면서 사(事)를 말하지 않으면 세상과 더불어 부침함이 없게 되고, 사를 말하면서 도를 말하지 않으면 변화와 더불어 노닐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도'(道)란 곧 노장(老莊)이 말한 도의 개념과 같은 것으로서,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뜻한다. 한편 ‘사'(事)란 인간 세계의 일을 일컫는 말로서 도에 근거하는 자연과 인생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 바꾸어 말하면, 현실 세계에서의 각양각색의 사태들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요략’의 입장은 우주의 원리와 변화무쌍한 일상세계, 그 두 가지를 동등한 비중으로 체계적ㆍ통일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나아가 거기에 응하는 인간의 일상적 자세를 강조한다.
회남자에 나타나는 20편의 순서는 노자가 말한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에 입각한다. 즉, ‘노자’에 나오는 “도는 하나를 생성하고, 하나는 둘을 생성하며, 둘은 삼을 생성하고 셋은 만물을 생한다”는 ‘도(道)→하나 →둘 →셋 →만물’의 구조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순서를 편명에 따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원도훈(原道訓)은 도를, 숙진훈(叔眞訓)은 하나를, 천지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는 「천문훈(天文訓)」, 「지형훈(地形訓)」, 「시칙훈(時則訓)」은 둘을,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남명훈(覽冥訓)」, 「정신훈(精神訓)」과 인사에 관하여 언급하는 「본경훈(本經訓)」 그리고 제왕의 통치 기술을 서술하는 「주술훈(主術訓)」 등은 셋을, 끝으로 인간 사회의 존재 방식으로 언어와 역사적 특수성에 기초하여 특수와 보편의 문제를 다루는 「제속훈(齊俗訓)」과 그 뒤의 11편은 만물을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결국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를 합일하는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통합에 돌아간다.
한편, 『회남자』는 백과사전적 성격도 가지고 있는데 유가, 묵가, 농가, 술수가, 병가, 소설가 등과 같은 다양한 사상들이 소개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상들의 무질서한 난립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다양한 사상들을 ‘도’의 입장에서 포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회남자』의 이러한 구조는 근원적 도의 입장에서 현상적 모순이나 대립을 포용하는 근거가 된다. 그것은 곧 잡다하고 다양한 인간 세계의 일들을 객관적인 이법인 ‘도’ 안에 포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노자와 장자의 도를 절충하고 서로 다른 사상들을 포용ㆍ통일하는 입장이다. 그러한 구조 안에서 다양성의 통일, 즉 노장 사상을 근본으로 삼는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백과사전적 지식의 종합을 통하여 현실의 대립상들을 곧 ‘도’의 관점에서 통일하려는 노력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도가적 삶의 이상인 자연과 인간의 완벽한 조화와 합일을 의도하고 있다.
– 무위(無爲)에 대한 적극적 해석
『회남자』에 나타나는 자연관의 특징은 단계적 우주생성론과 기(氣)4)의 관념을 결합하는 데 있다. 『회남자』에서 우주 생성의 단계는 “무한하고 형태 없는 혼돈과 같은 태시(太始)에서 질서를 이루는 ‘도’가 생성되고, 도에서 우주가 생성되었으며, 우주는 또한 기(氣)를 생성하고, 기는 천지와 음양을, 천지와 음양은 사계절을, 사계절은 만물을 생성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우주생성론과 아울러, 생명을 채워주는 기로써 ‘도→하나→둘→셋→만물’의 과정을 통해 이 세계가 형성된다는 『회남자』의 기 개념은 한대의 풍조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자연관에 있어서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의 사상은 노자로부터 발원한 것이며, 한대에 번성하여 후대 도교의 기본적 사유가 될 뿐 아니라 도교 의학의 발원지가 된다.
인간관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대립ㆍ갈등을 화해하고자 하다. 『회남자』는 자연과 인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순자(筍子)』, 『장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정하면서 인간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른바 자연적인 것이란 순수하고 소박하며, 질박하고 정직하며, 애초부터 잡된 것과 뒤섞여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인위적인 것이란 차이를 보여 주고 꾀를 부리며, 구부러짐이 있고 교묘하며 거짓됨이 있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을 우러러 보거나 굽어 보는 등 세속과 교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가 그 발굽이 갈라져 있고 뿔이 있으며, 말이 갈기를 달고 발굽을 온전히 하고 있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소의 코를 뚫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으로써 자연적인 것을 말살하지 말고, 이유로써 주어진 명을 말살하지 말라”는 『장자』 「추수(秋水)」편의 내용과 유사하다. 천(天)이란 순수하고 잡스럽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고, 인(人)이란 현실의 생활을 영위해 가는 인간의 지적 작위를 의미한다. 『장자』는 천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그러나 『회남자』는 천을 우위에 두긴 하나 인의 입장을 절대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천과 인의 입장을 가치적으로 동등한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 준다. 『회남자』의 특징은 ‘자연과 인사’, 즉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통일 또는 합일을 목표로 하는 철학적 입장에 있다. 이것은 노장적 입장을 토대로 다양성의 통일을 구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새로운 무위의 관념을 설정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무위란 사람의 판단으로써 억지로 꾸미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회남자』가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무위는 당연히 노장적인 것이다. 이른바 무위라는 인간 행위는 자연과 완전히 합치되어 억지로 행함이 없는, 스스로 그러한 것, 생각도 고려함도 없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 요체는 자연의 움직임에 순응하는 것이다. 『회남자』는 이러한 최고의 이상적인 무위에 또 다른 의미를 추가시킨다. 그것은 사회의 진화나 발전을 인정하고 변화된 시대에 적합할 수 있는 무위관을 모색하려는 노력에서 기인한다.
『회남자』가 의도하는 무위는 궁극적으로 노장적 무위로서,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무위를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개척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의지나 개인적인 편향에 의하여 억지로 꾸미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무위는 단순히 자연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객관적 법칙에 따라 자연의 조건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적극적 행위로 표현된다.
『회남자』가 무위를 단순히 고매하고 초탈한 인간만을 대상으로 삼는 실천 원리로 파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노장적 무위를 포기하지 않은 채, 무위의 범위를 현실적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지도 원리로써 그 내용을 확장하여 적극적인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회남자』는 노장의 이상적 경지를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철저히 현실에 적용하고자 하는 ‘무위의 현실화’를 의도하고 있다.
총괄하면, 『회남자』는 노자와 장자의 무위관을 합일하고 또한 황로적인 무위관까지도 포괄함으로써, 단순한 의미의 무위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사회나 역사 속에서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는 『회남자』가 철학적인 차원에서는 무위와 유위의 조화, 천도와 인사의 통합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의도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상사적인 차원에서는 노장과 유가, 법가, 묵가 등 종래 모순ㆍ대립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주장이나 사상들을 통합하고 나아가 고답적으로 보이기만 하던 무위를 현실화시켜 현실적인 실천 원리로 삼고자 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사회ㆍ역사관
『회남자』의 무위란,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나아가 개혁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뜻한다. 개인적인 욕구나 욕망을 배제하고 합당한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행위가 곧 무위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실에 대한 단순한 부정이나 도피의 태도가 아니라,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인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울러 도의 입장은 더욱 철저하게 강조되는 양면적 성격을 띠고 나타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합리적인 의미에서의 인위의 의미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여지를 자체의 체계 안에 남겨 놓는다. 거기에서 인의예악을 무가치한 것으로 배제하지 않고 도(道)와 덕(德)의 다음 가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것은 현인을 정치에 임용할 것과 법제의 확립을 긍정하는 경향을 낳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 실천적 태도는 인간성의 근거를 자연에 두고 인간 행위의 지향점을 자연으로 삼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나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만물의 변화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시세에 응하여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서 『회남자』 특유의 사회ㆍ역사에 대한 관점이 성립하게 된다. 물론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유안과 같은 사람들의 정치적 여망이 현실화될 수 없었던 까닭에 『회남자』는 각 지방의 예속이 다양하지만 각각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판단 아래 지방분권정치를 강력하게 표방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술훈」에서는 시대나 사회 형세가 변하면, 모든 사회적 제도나 예의 법도는 당연히 그에 부응하여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남자』가 제일의 이상으로 삼은 정신은 현실적ㆍ사회적ㆍ정치적 억압이 전혀 없는 상태를 바라는 도가적인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의 발전이나 진보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사회나 역사의 존재가 필연적인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유가나 묵가, 법가 등과 같은 사상들을 포괄하는 다양성의 통일을 기하고자 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회남자』의 무위관이나 사회관이 성립하게 된 것이었다.
나아가서는, 유가적인 법선왕(法先王)의 복고적 관점을 배척함으로써 발전적인 역사관을 보여 준다. 법선왕이란 훌륭한 성왕의 표본을 옛날의 성왕들에게 두어 그들을 본받는 것이 통치의 요체라고 보는 것이다. 유가의 관점이 반드시 복고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회남자』가 그러한 비판 의식을 통해서 퇴영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의식이나 역사 의식을 배척하고자 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제나 예악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발전적 역사관을 통해서 진보적인 의식과 행위를 강조하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한편 『회남자』의 사회ㆍ역사관에 나타나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사회와 역사가 발전한다고 했을 때 환경결정론적 사고를 보여 주지만, 이 때의 사회나 역사는 인간에 의하여 이해되거나 파악될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사회나 역사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숙진훈」에 나타나는 이러한 관점은 발전적 역사관과 일견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사회나 역사는 궁극적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일지는 모른다.
– 후대 도교 형성의 기초
도교(道敎)란, 그 내용뿐 아니라 개념까지 매우 다양하다. 현재까지 도교의 개념에 대한 본질적 정의가 종교학과 사회학, 역사학 및 사상사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어 왔지만 일관된 규정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교의 내용적 다양성 또는 정의의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도교의 일관된 특성은 존재한다.
도교의 역사는 대체로 후한 말의 태평도(太平道)나 오두미도(五斗米道)와 같은 교단화된 도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도교는 후대 북위(北魏)시대 구겸지(寇謙之)의 천사도(天師道), 남송 이후의 태일교(太一敎)와 진대도교(眞大道敎), 전진교(全眞敎) 그리고 정명충효도(淨明史孝道), 정일교(正一敎)로 그 맥이 이어진다. 그러나 도교의 범주에는 이러한 교단 도교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중국적 종교 현상이나 종교 의례, 더불어 여러 형태의 민간 신앙, 심지어는 신선술, 장생술, 방중술, 연단술과 같은 도사들이 실행하는 여러 가지 기술인 방기(方伎) 등도 여기에 혼합되어 포함된다. 그래서 도교는 중국인의 현세주의적인 민간 신앙의 요소를 포함하는 민족 종교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회남자』에서 도교적 요소는 부정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회남자』의 입장은 도의 관점에서 노장 사상과 공맹의 유가 사상 그리고 묵가, 법가, 음양가 등 종래 모순ㆍ대립되던 주장들까지도 통일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자연과 인간의 노장적 통일이라는 입장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회남자』의 새로운 ‘무위’ 해석에 의하면, 객관적 사물의 법칙에 따라 자연의 조건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자연에 대한 지식 수준에서 볼 때, 유안이나 그 문객들이 이런 양생을 중시하는 자들을 얼마나 허황된 자들로 보고 경멸하였을 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회남자』 이외의 실전된 『중편』이나 『외서』에는 신선ㆍ장생술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 유안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한다.
『회남자』에서는 노장적인 도가와 종교적인 도교 간의 통합이 예시되고 있다. 그 결정적인 요인은 ‘기’의 관념이다. 『회남자』의 기는 도가적 경향과 후대의 도교적 경향을 긴밀하게 결합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회남자』의 기의 개념을 분석하고 그것의 후대 도교 전적들과의 관계성을 추적해 보는 작업은 『회남자』의 도교적 계기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여 줄 것으로 보인다.
『회남자』는 모든 것을 종합ㆍ집대성하고자 한 저작으로, 사상적으로 볼 때, 천도와 인사의 합일이라는 구도를 통하여 현실적인 수많은 대립들을 도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종합ㆍ통일하고자 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과 갈등,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사이의 대립과 분열을 화해시키고자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노장적 통합을 통하여 후대의 도교적인 길을 잠재적으로 마련하였던 책이다.
–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회남자』에서는 사회적인 대립과 통일을 어떻게 이끌어 내고자 하였는가?
『회남자』는 근원적 도의 입장에서 현상적 모순이나 대립을 포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곧 잡다하고 다양한 인간 세계의 일들을 객관적인 이법인 ‘도’ 안에 포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다양성의 통일 즉, 노장 사상을 근본으로 삼는 통일이 이루이질 수 있다고 보았다.
2. 『회남자』에서는 유가의 중앙집권적 방식에 대하여 지방분권적 방식을 어떻게 이끌어 내고자 하였는가?
유가는 가부장적이고 도덕적인 질서에 입각한 중앙집권을 강화하려는 사상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회남자』에서 추구되고 있는 도가는 만물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는 의미에서 개개의 사물이나 개인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방분권적 자치를 강조하는 성격의 사상이었다.
3. 『회남자』에서는 이전의 전통적인 도가적 무위(無爲)의 방식을 어떤 방식으로 응용하여 어떻게 현실을 살아 갈 수 있다고 보았는가?
『회남자』가 의도하는 무위는 궁극적으로 노장적 무위이지만, 그러한 무위관을 넘어 현실의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무위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개척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의지나 개인적인 편향에 의하여 억지로 꾸미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회남자』에서 무위는 단순히 자연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객관적 법칙에 따라 자연의 조건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적극적 행위로 표현된다.
– 추천할 만한 텍스트『회남자』 (상ㆍ중ㆍ하), 유안 지음, 안길환 옮김, 명문당, 2001.
– 각주
1) 『춘추(春秋)』 삼전(三傳) 중 하나인 공양전(公羊傳)을 중심으로 동중서가 이끌어 낸 역사관으로서 사회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데, 공자(孔子)의 “옛 것을 본받아 새 것을 개혁한다”는 개수(改修)의 논리로써 유교적인 통치 이념을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2) 유향(B.C. 77년 추정~B.C. 7년)은 전한 때 사람으로서 본명은 갱생(更生)이고, 자는 자정(子政)이다. 성제(成帝) 때 광록대부(廣祿大夫)가 되고 벼슬은 중참교위(中參校尉)에 이르렀다. 여러 가지 책을 교열하여 『별록(別錄)』을 저술함으로써 중국 목록학의 비조가 되었다. 저서에 『신서(新書)』, 『설원(說苑)』, 『열녀전(列女傳)』 등이 있다.
3) 중국의 전설적인 성왕인 황제(皇帝)와 도가 노자(老子)의 사상을 합친 표현이다. 황제의 사상은 천인상감(天人相感)에 근거하며, 노자의 사상은 무위자연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데, 황로는 이 두 사상을 합친 통치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황로 사상은 전국시대에 존재하여 한비(韓非)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지만,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의 일파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4) 중국 사상에 들어 있는 독특한 개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사물이나 모든 일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잠재적인 활력을 가리킨다. 만물을 생성하는 힘은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라는 대립적인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저자 : 유안(劉安)
.해설자 : 윤찬원(인천대학교 윤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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