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楊朱)
양주(楊朱)는 중국 전국 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다. 자(字)는 자거(子居). 위(衛) 사람이다. 개인주의 사상인 위아설(자애설)을 설하였다. 양주(楊朱)의 전기는 모호하다. 묵적(墨翟)과 아울러 그 사람의 설이 천하에 가득 차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맹자(孟子)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에 걸쳐 그 학설이 유행했던 듯하다. 펑유란(馮友蘭)은 도가 사상 묵자(墨子) 이후에 출현하였다고 생각하여 양주(楊朱)를 그 시초를 삼으나 아직 불확실하다. 양주의 학설은 맹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여씨춘추, 회남자에 보인다. 양주(楊朱)는 하나의 생명이야말로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여 생활의 일체는 이 하나의 생명을 기르고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의 주체는 ‘나(我)’다. 그 ‘나’를 소중하게 하는 바로 그것이 최요하다고 주장한다. 노자(老子)는 무아를 말하여 무아속에 개인의 존속을 도모하려고 하였으나 양주는 무엇이든 나를 위해서만 해야 한다는 위아(爲我)설을 노골로 설하였다. 그것은 극단인 개인주의이기도 하였으므로 묵자(墨子)가 말하는 ‘겸애’의 생각과 상이해 대비된다. 양주의 이 주장은 한 마디로 ‘전성보진(全性保眞)’의 설이라고 평가받는다(淮南子 氾論訓의 楊朱評). 여씨춘추 不二篇에 양주를 평하여 ‘양생(楊生)은 나[己]를 귀히 한다’고 이르는 것도 양주 사상의 특색을 한 마디로 논한 것이다.
○ 양주(楊朱, Yang Zhu)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전기(前期) 사람으로 맹자가 묵자의 겸애설(兼愛說)과 함께 비난한 바 있는 ‘위아(爲我ㆍ唯我)’설을 주창한 사상가로 권력 지배가 침투하고 있던 사회로부터 개인의 삶을 고수하려고 자기 자신의 고립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곧 도가(道家)의 찬인사상(天人思想)의 시초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 전국시대의 반전사상, 양주(楊朱)
최근, 김시천 교수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도발적인 제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저자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게다가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통해 이기주의를 옹호한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신선했다. 책을 여는 순간 이름도 낯선 양주(楊朱)란 분이 불쑥 등장했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맹자(孟子)가 ‘듣보잡’ 양주를 아주 호되게 비난하고 있었다!
“양주가 ‘나를 위해 산다’는 학설(爲我說)을 주장하는데, 이에 따르면 터럭 하나를 뽑아 온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상을 근심하고 정의를 세우려고 한 맹자의 눈에 이런 이기주의자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게다가 양주의 사상은 젊은 세대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맹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양주를 가리켜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2,500년 동양사상사에서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대명사로 전해졌다.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사람은 “너 그러다 양주 되겠다?” “얼씨구 이 놈 이거 봐라, 말하는 게 양주 같네?” 등 곱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노발대발하는 맹자보다, 이토록 맹자를 화나게 한 양주란 사람이 어떤 분일까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맹자의 고발대로 양주가 “국가와 사회질서의 상징인 군주의 존재를 부인”했다면, 양주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권력에 맞선 일종의 아나키스트였다는 뜻 아닌가? 전쟁과 환란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반전사상가가 한명 쯤 있지 않았을까 궁금했는데, 양주가 바로 그 사람이란 말일까? 내 몸의 터럭 하나를 천하의 이익보다 소중히 여겼다니, 거참, 래디컬한 이기주의자로군!
맹자의 감정 섞인 비난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열자>의 한 대목에 ‘터럭’ 논란이 좀 더 자세히 기록돼 있다. 문제의 ‘터럭’ 발언은 양주가 직접 한 게 아니라, 백성자고(伯成子高)라는 옛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백성자고는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고, 나라를 버리고 숨어살면서 밭을 갈았다. (중략)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구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기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자기 몸에서 터럭을 하나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을 그만 둔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
천하를 평정하려는 전쟁을 중단하고,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민중이 다 함께 거부하면 세상에 평화가 올 거라는 뜻이었을까? 금자(禽子)가 양주에게 물었다. “선생님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온 세상을 도울 수 있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양주가 대답했다. “세상은 원래 한 개의 터럭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금자가 다시 물었다. “가령, 그렇게 해서 도움이 된다면 하시겠습니까?” 이 물음에 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자>가 전하는 이 대화가 사실이라면 양주는 사리에 맞도록 간결하게 대답하고 ‘자기를 시험에 들게 하는’ 억지스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합리적이고 온유한 품성의 사람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양주가 자리를 뜨자 제자 맹손양(孟孫陽)이 나와서 금자에게 대신 설명한다.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터럭 하나를 뽑는데 동의한다면 그 다음엔 살갗을 바쳐야 하며, 그 다음엔 한술 더 떠 몸 한 마디를 끊어서 바쳐야 할 것입니다. 터럭은 살갗보다 작고, 살갗은 몸 한 마디보다 작지만, 한 개의 터럭이 쌓여서 살갗을 이루고 살갗이 쌓여서 몸의 한 마디를 이룹니다. 한 개의 터럭은 몸 전체의 만분의 일이 안 되겠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양주는 기원전 440~360년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전국칠웅(戰國七雄)이 할거한 기원전 403년부터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한다면, 양주는 전국시대 초기에 활동한 사상가로 볼 수 있다. 부국강병의 대의를 내세우며 개인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하던 시대였다. 양주는 노골적으로 전쟁 반대를 말한 적은 없지만, 천하보다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위아(爲我) 사상 자체가 필연적으로 전쟁 반대의 사상적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양주는 인간이 남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거나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는 일이라고 본 게 아닐까?
<열자> 양주(楊朱)편에는 삶 자체보다 명예에 집착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강조하는 내용이 되풀이 나온다. 죽은 뒤의 명예를 추구하다가 삶의 소박한 기쁨을 놓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시대였다. “옛 사람들은 죽은 뒤의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다. 마음에 따라 움직이면서 자연을 어기지 않았고, 그가 좋아하는 것이 몸의 즐거움에 합당한 것이면 피하지 않았다. 실속있는 명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예란 것은 거짓일 뿐이다.” 양주에 따르면, 왕위를 사양하다가 나라를 망치고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명예에 집착하다가 삶을 망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욕망이 없었던 게 아니다. 깨끗한 몸가짐을 지나치게 뽐내다가 굶어죽기에 이른 것이다.”
양주의 이러한 생각은 <장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거북이 이야기와 서로 통한다. 초나라에 신령한 거북이 있었는데, 죽은 지 3,000년 된 이 거북이를 왕께서 헝겊에 싸서 묘당에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그 거북은 죽어서 뼈만 남긴 채 3,000년 동안 받들어지기를 원했을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탕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 장자는 자기에게 벼슬을 주러 온 두 대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나도 거북이처럼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며 사는 게 낫다”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벼슬을 하면 세상의 갈등과 다툼에 휘말려 화를 입기 쉽다는 뜻이었다. 삶 자체를 가장 중요시한 양주도 장자의 이러한 생각에 동의했을 것이다.
양주는 “죽은 뒤의 명예가 헛되다”고 강조했지만, 이를 곧 반전사상으로 단정한다면 논리의 비약일 것이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는 셈이니, 당시로서는 죽을죄에 해당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반전사상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양주는 그냥 삶이 소중하다고 역설했을 뿐인데, 이 정도 언급만으로도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이 가설이 맞는지 틀린지 입증해 줄 자료가 부족하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가설 아닐까?
한비자는 양주에 대해 “위험한 성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군대에 머무르지도 않았고, 천하의 큰 이익을 위해 자기 정강이의 털 한 올과도 바꾸지 않았다”고 썼다. 살생무기가 있는 곳은 물론 전쟁의 살기가 느껴지는 곳을 양주가 멀리 했다는 말은 이 가설에 힘을 더해 준다.
군인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은 멋진 군복을 입고 있는데, 한번 입고 버리기 아까운 이 화려한 군복은 군인의 명예를 치장해 준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는 죽음의 순간 머리에 투구를 쓰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당시 사람들은 투구를 쓴 채 죽어야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군인의 명예를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넘쳐났을 것이다. 따라서, 양주가 “죽은 뒤의 명예는 헛될 뿐”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의 반전사상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국시대에 성공하는 길은 아마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고 돈과 명예를 거머쥐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달콤한 유혹일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이었다. 전쟁 중에 군사가 죽는다면, 전쟁을 지속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다른 군사를 대체하여 투입하는 게 전쟁의 속성이다. <처음 만나는 동양 고전>을 쓴 김경윤씨는 양주의 반전사상을 이렇게 읽어낸다. “너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외부의 유혹을 무시하라. 그 유혹이 아무리 달콤할지라도 넘어가지 마라. 너의 삶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란 것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민중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탐욕과 살생의 축제였다. 군주를 중심으로 천하의 질서를 세우려 한 공자의 입장은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군주의 명령과 위계질서를 강조한 그의 입장은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는 권력자의 논리와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자기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긴 양주의 입장(重己)은, “작은 나를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라”며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한 공자와 정반대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자의 사상은 한(漢)나라 이후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2,0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했지만, 군주의 권위를 부정한 양주의 불온한 사상은 중국 사상사에서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이토록 위험한 인물인 양주를 당시 제후들이 참으로 융숭하게 대접했다니 뜻밖의 일이다. 자신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생존수단인 전쟁을 철학적으로 반대한 원흉인 양주를 잘 대접했다니, 당시 군주들은 아주 특별한 ‘톨레랑스’라도 보여준 것일까?
양주는 군주의 면전에서 “당신은 전쟁광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전쟁을 포기하십시오”라는 투로 말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이는 적당히 아첨하고 타협하여 부귀영화를 도모한 게 아니었다. 온유하고 합리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상대방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로 실질적인 이득을 주려고 했다. 민중에게 반전사상으로 읽힌 그의 위아(爲我)는, 군주에게는 하늘의 뜻을 자연스런 순리로 현실에 적용하는 통치철학으로 제시됐다.
<여씨춘추>의 본생(本生), 중기(重己), 귀생(貴生)편은 양주가 자신의 사상을 군주에게 말한 바를 간추린 것으로 보인다. 옛 군주의 언행을 인용하며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통치의 지혜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생명을 낳아 준 것은 하늘이고, 이를 기르고 자라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하늘이 낳은 바를 능히 기르면서 이를 어그러지게 하지 않는 사람이 천자가 된다.” 하늘과 땅의 자연스런 에너지의 흐름을 강조한 철학을 당시 군주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양주 사상의 핵심, 즉 물질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을 중요시하는 경물중생(輕物重生)의 철학이 더해진다. 부국강병도 좋지만 군주 자신의 생명을 먼저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었다. _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전 MBC PD)
○ 맹자(孟子)가 그토록 비난한 양주(楊朱)는 누구인가?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孟子(기원전 371~289)는 자신을 논쟁을 좋아하는 호변가好辯家라고 여기는 세간의 평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제자 공도자公都子에게 “내가 어찌 논변을 좋아하겠느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라고 두 번이나 변명했습니다. 맹자는 자신이 논변을 하는 이유로 두 사람을 꼽으면서 말했습니다.
“양주楊朱와 묵자墨子(기원전 480?~390?, 이름은 적翟. 그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의 이론이 전국시대에 가득 차 여론이 양주의 이론을 찬성하거나 묵자를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갔다. 양주는 위아爲我(이기주의)를 말하는데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고, 묵자는 겸애兼愛를 내세우는데 이는 자신의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다. 자기 아비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은 금수禽獸나 하는 짓이다.”
맹자는 양주楊朱(기원전 395-335)에 대해 “자신의 털 한 가닥을 뽑으면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해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였습니다. 맹자에 따르면 양주는 남을 위해 죽을 일이 전혀 없으며, 특히 나라나 임금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할 줄 몰라 무군無君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맹자가 그토록 비난한 양주의 생존 연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겸애설로 유명한 묵자와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생존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양주의 사상은 <맹자>, <장자>, <한비자> 등에 의하면, 이미 독립 학파를 이루고 묵가와 대립하여 활발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중요한 사상의 발전을 평가하여 기술한 <장자>의 ‘천하天下’편과 <순자>의 ‘비십이자非十二子’편에는 양주 사상에 대한 언급이 없어 양주의 사상이 다른 사상으로 극복 혹은 통합되면서 자체의 학술적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양주 사상의 핵심은 극심한 사회적 위기의식 속에서 상호간의 불간섭주의와 개개인의 생명의 존엄과 온전함을 추구한 그의 경물중생輕物重生(삶을 중시)에 있습니다. 중생重生은 양주의 사상입니다. 맹자는 양주를 위아爲我, 즉 철저한 이기주의로 소개하고 있지만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 <회남자淮南子>를 보면 그 사상의 핵심은 전생보진全生保眞입니다. “본성을 온전히 하고 천진함을 보전하며, 바깥의 사물 때문에 몸을 얽어매지 않으려는 것은 양자(양주)가 세워놓은 것이다.” <회남자>는 양주의 이론이 “겸애하고 능력 있는 자를 높이고 귀신을 존중하며 운명을 거부한” 묵자를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라 했고, 양주의 이론을 다시 맹자가 비판한다고 했습니다. 양주는 묵자가 지나치게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세우고 있다는 판단 아래 이런 이론을 세웠고, 맹자는 양주가 지나치게 개인을 중시한다고 보아 양주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의 입장에서는 양주 사상을 위아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한비자>에 따르면 “바깥의 사물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시한輕物重生”는 것이 양주학파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 평가였습니다.
양주의 사상과 노자의 사상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다릅니다. 이름이나 재물보다 목숨을 더 중시하는 중생 사상은 같지만 양주는 본성에 따름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데 비해 노자는 자족하여 생명을 오래 보존하기를 원했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맹춘기·본생’편에는 입이 달다고 하면 삼키고 쓰다고 하면 뱉는 것, 눈으로 보아 즐거우면 보고 괴로우면 보지 않는 것을 “본성에 이로우면 취하고 본성에 해로우면 버리는”, “본성을 온전히 하全性 도“라 했는데, 이런 도가 양주가 주장한 것입니다. 노자에게는 이런 분방함이 없습니다. 노자가 선택하는 것은 본성의 즐거움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정욕情欲’편에 있는 글은 양주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지름길이 됩니다.
“하늘이 인간을 만들어내니 탐욕이 있고 욕구가 있게 되었다. 욕구에는 진정情이 있다. 진정에는 절도가 있다. 성인은 절도를 닦아서 욕구를 억제하여 진정만을 나타낸다. 진실로 귀가 모든 아름다운 소리五聲를 욕구하고, 눈이 모든 아름다움五色을 욕구하고, 입이 모든 좋은 맛을 욕구하는 것은 진정情이다. 이 세 가지는 귀인, 천인, 우민, 지식인, 현인, 저능인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욕구하는 것이다. 비록 신농神農, 황제黃帝라도 걸桀, 주紂와 똑같다. 성인이 다른 까닭은 그가 진정情을 얻은 점에 있다. 생명生命을 귀하게 보고서 행동하면 진정을 얻게 되고, 생명을 귀하게 보지 않고서 행동하면 진정을 잃게 된다. 이 두 사실이 사느냐 죽느냐. 있느냐 없어지느냐 하는 근본이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