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정관, 미적 관조와 미적 향수
○ 미적 정관(美的靜觀, 영: aesthetic contemplation, 독: ästhetische Kontemplation)
미학상의 용어. 미의 한 측면으로, 대상에의 무관심성을 근본적 특징으로 하는 수용 활동. 근대에 있어서 미적 정관을 무관심성의 관점에서 고찰한 것은 칸트(Immanuel Kant)였다. 그는 취미판단이 대상의 실재에 대하여 관심을 결여하고 있는 점에서 정관적이라고 하고, 정관성을 미의 자율적 영역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성의 하나라고 보았다. 미적 관조에 있어서는 자아가 실생활의 모든 관심과 의욕을 초월하여 순수하게 대상으로 귀의하여 몰입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이거(Moritz Geiger)는 칸트의 무관심성을 비판, ‘무관심성’과 ‘몰관심성(沒關心性, 관심조차 둘 필요가 없는 경우)’을 구별하여, 미적 향수가 어떤 종류의 관심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립스(Theodor Lipps)의 감정이입미학에서도 정관성의 적극적인 전개 과정이 인정되고 있어, 현대에도 정관성은 능동적인 방향에서 고찰되는 경향이 강하다.
○ 미적 관조(美的觀照, 독: ästhetisches Betachten)
라틴어의 ‘관찰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미학상의 용어. 미의식의 한 측면으로 대상을 논리에 의하지 않고 직접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작용 및 그 작용의 결과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예술 창작이 미의식의 능동적 측면인데 반하여, 미적 관조는 미적 향수와 마찬가지로 미의식의 수동적 측면이다. 미적 관조와 미적 향수와의 차이는 전자가 대상의 직접적 수용활동인데 대해서, 후자는 전자의 작용을 전제로 하여 행해지는 간접적 수용이라는 점에 있다. 미적 관조는 자아와 대상과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전제로 하여 성립되며, 더욱이 그것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성을 전제로 하는 점에 있어서 인식론적 활동이나 실천적 활동과 구별된다. 이 무관심성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미적 관조를 오히려 미적 정관으로 보는 경우도 많으나, 해석의 능동성을 강조한 사고방식도 있다. 관조는 본질상 자아와 대상 사이에 거리를 두는 데서 성립한다. 그것은 자아가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대상을 수용하는 작용이며, 이 수용성으로부터 향수와 밀접하게 결합한다. 모든 미적 향수는 ‘관조에 있어서의 향수’이다. 그런데 미의식에 있어서의 관조는 소위 무관심성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미적 관조는 미적 정관과 거의 동일하다. 일반적인 용례에 따르면, 관조의 대상은 본래 가시적인 것이지만 미의식에 있어서는 관조의 대상을 이렇게 좁게 제한시킬 필요가 없다. 대상이 어떠한 것이든 그 충실상을 수용하는 것이 미적 관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악과 같은 가청적 대상이 미적으로 관조될 수 있음은 물론, 음악에 의해 유발되는 기분 등도 직접 체험함으로써 충실하게 생동하고 있는 한, 그들을 향해 의식이 집중하는 곳에는 일종의 미적 관조가 성립될 수 있다. 그것은 감각적 직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넓은 의미의 직관성을 가지는 것으로서 관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만 관조의 개념이 조형예술에 보다 많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그 본래의 어의로 보아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관조라는 말은 감상과 혼동되기 쉬우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감상도 관조나 향수와 마찬가지로 수용적 미의식을 가리키지만, 이는 주로 예술의 경우에 적용되며 특히 대상에 대해 적극적인 가치 인식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엄밀한 미학의 용어로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다. 칸트(Immanuel Kant)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이래로 근대 미학에서는 관조를 예술작품이나 미적 현상들에 대한 고유한 미적 지각으로 간주한다. 관조에서는 사물의 장소, 시간, 이유, 목적에 대한 일상적인 관찰이 차례로 중지되면서 사물의 순수한 본질이 직접 파악되는데, 따라서 정신은 스스로를 망각한 채 직관 속으로 침몰하여 목적도 고통도 시간도 없는 순수한 인식 주체가 된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관조에 대한 고전적인 정식화이다. 한편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관조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요청을 아폴론적 예술의 세계로 환원시켜 미적 관조의 순수한 감수성을 ‘여성적 미학’이라고 비판하였다.
○ 미적 향수(美的享受, 영: aesthetic enjoyment, 프: jouissance esthétique, 독: ästhetisches Geniessen)
미학상의 용어. 예술 창작이 미의식의 능동적 측면인데 비해 미적 향수는 미의식의 수동적 측면을 나타낸다. 이 능동과 수동의 차이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으로, 이를테면 립스(Theodor Lipps)의 감정이입미학에서는 미적 향수는 주관화(主觀化)의 측면에서만이 아닌, 가치 감정의 객관화의 측면에서도 고찰된다. 가이거(Moritz Geiger)는 미적 향수를 현상학적으로 분석, 본래의 미적 향수는 내방집중(內方集中)이 아닌, 외방집중(外方集中)이어야만 한다고 하여 대상의 관조향수(觀照享受)를 강조했다. 같은 현상학파의 미학 중에도 오데브레히트(Rudolf Odebrecht)와 같이 미적 가치체험의 창조적 계기를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수동적 측면으로서의 미적 향수는 고찰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미적 향수는 대상에의 무관심성을 특색으로 하고 있으나, 가이거는 칸트(Immanuel Kant)의 무관심성의 개념을 비판, 미적 향수는 어떤 종류의 관심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미학에서 논할 때 미적 향수는 향수 혹은 향락의 일종으로서, 유희와 스포츠의 향락, 기호품의 향락, 성적 향락 등과 공통되는 성질을 갖는다. 그러나 미적 향수가 이러한 향수 일반의 특성들을 갖는다는 것과는 별도로 그것이 특히 ‘미적’이기 때문에 보다 특수한 해명이 가해져야 한다. 가이거가 강조한 바 대로 모든 미적 향수는 관조향수이다. 미적 관조의 본질은 대상의 충실상을 수용하는데 있지만, 미적 향수는 대상의 충실상에 있어서의 직접적 향수가 아니라 대상의 충실상을 관조하는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향수인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