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에서 들려주는 교육칼럼
엄마 아빠가 함께 만들어 가는 자녀들의 마음의 지도
안녕하세요. 저는 캔버라의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호주에 오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서 고국을 떠나 이곳으로 오게 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호주로 왔다기 보다 한국을 도망쳐 나온 사람입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역시 목회자로 있었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 세상의 지도자로 세우는 일을 위해서 교육하며 있었습니다. 그 때, 나와 교우들의 생각은 우리 자녀들에게 많은 공부, 과외를 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탁월하지 않으면 세상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속에서 너무 힘들지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따라가기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녀들은 울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오던 16년 전에도 한국의 교육현실은 그러했습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해서 키워야 경쟁력있는 자녀로 키우는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습니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들어간 아이가 하기 싫은 공부, 매일 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더 깊이 고민했습니다.
성경에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답을 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답은 나와 있지만, 그 답을 확신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내 자신도 성경이 원하는 사람으로 키우면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교육적인 문제에 있어서 진리를 찾지 못해서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왔습니다.
자녀를 이 세상의 지도자로 키워내고 싶은 소원을 갖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부모님들과 교사분들의 소망을 함께 담고 뚜렷한 목소리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세상은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에듀라이프’를 만났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바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로 키우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소식지를 만났습니다. 에듀라이프를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많은 인재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까지 목회자로서 성경과 씨름하고, 교우들과 자녀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화두,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조그만 확신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존 가트맨, 최성애·조벽 교수가 지은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이란 책으로 교우들과
매주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부모는 4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별 것 아니야’라고 하는 축소지향형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감정도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 있어서 나쁜 감정, 예로 들면 슬픔 분노 이런 것들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관심을 빨리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못써!’라고 하는 억압형 부모는 감정을 무시할 뿐 아니라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감정자체 보다 그 감정으로 인한 행동을 보고 야단을 치며, 부정적인 감정은 아이의 나쁜 성격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그 감정을 아이가 이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매를 들어서라도 그 나쁜 감정을 없애려고 합니다.
‘뭐든 괜찮아질거야!’라고 하는 방임형 부모는 모든 감정을 다 받아주고,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 만 아니라, 감정을 분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공감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감정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코치형 부모는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문제도 함께 찾아봅니다. 감정은 다 받아주되 행동에는 제한을 둔다. 감정은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 없으며, 감정을 표현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며 표현된 감정을 존중해 줍니다. 작은 감정 변화도 놓치지 않고 발견해 보려 하며 감정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도록 합니다.
이런 내용을 부모님들과 함께 나누는 가운데 두 분의 나눔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분은 5살 정도 되는 아들을 두었는데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합니다.
배변을 가리는 시기는 자존감 형성에 중요한 시기이지만, 소변을 가리지 못할 경우 뒤처리를 해야 하는 일이 적은 일이 아니어서 자녀를 야단치기가 쉽습니다.
그날도 아들은 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자기에게 오는 어머니를 보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본 아빠가 다가옵니다.
‘아들아!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너의 잘못은 아니란다. 단지 너는 잠을 깊이 자는 아이여서 깨어나는 것이 힘든 것 뿐이란다. 그리고 아빠도 10살이 넘도록 소변을 잘 가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괜찮단다. 너도 잘 할 수 있어, 대신 너도 노력을 해야 한단다, 아빠가 밤에 깨워서 화장실에 가는 걸로 하자!’
아빠의 이 말에 아이는 두려움 대신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며칠 소변을 가리게 되었고 그 후에 소변을 가리지 못한 경우에도 어머니가 추궁을 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아빠도 그랬어!’라고 어머니에게 자신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자녀에게 정확한 감정코칭을 하는 아빠를 바라보며 자랑스런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나이에는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수치스럽게 대하는 태도로 자녀에게 수치심, 열등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용납하고 공감하는 것은 그 일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자신감을 선물로 주게 되는 것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아빠를 보면서 아내의 마음에 솟아나는 존경과 사랑의 감정을 또 다른 선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분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을 둔 어머니입니다.
아이가 보통 때 보다 조금 일찍 들어와서는 대충 인사하고는 테이블에 앉아서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하는 말로 ‘오늘 학교에 별일 없었니?’ 묻습니다.
‘별일 없었어’ 대답하는 딸의 말에 무언가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구나, 친구가 무슨 말을 했니?’ 아니라고 대답하는 딸의 눈에 눈물이 비칩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이어진 대화 가운데 알게 된 것은 딸이 슬립오버를 하게 되었는데, 딸의 친한 친구는 그 초대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딸의 친한 친구는 딸을 오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과 후에 그 친구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기대하고 있는 딸이 받았던 친구의 차가운 시선 앞에 놀랍고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으로 일찍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숨겨진 아픈 마음을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위해서 준비한 간식처럼
추운 마음을 알아내고 따뜻한 동행으로 함께 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해 주는 말에 이유 없이 그냥 흘러내리는 눈물이 딸은 눈이 아파서 눈물이 흐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어머니가 아픈 딸의 마음에 부은 향유였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좀더 생각해 보게 된 것이 있습니다.
친구가 자기를 오해해서 차갑게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다 초대 되었는데, 자신 만 소외되었다는 그 아픔을 가진 그 친구를 딸이 치유해 주는 일입니다.
“너가 받은 차가운 시선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슬립오버에 초대되지 못해서 아파했을 친구는 마음이 얼마나 더 아팠을까?”, “그러니 너가 가서 너의 친구의 아픈 마음을 이해해 주고 함께 해 주어라!” 어머니는 딸의 아픈 마음을 가지고 치유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길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원수로 등을 돌려야 할 사건을 치유와 더 깊은 사랑의 사건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앉아 있는 딸의 마음에 당황함과 분노와 섭섭함이 흐르고 있었고 또한 그 딸을 이 땅의 치유자로 세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 하나님의 계획도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딸과 함께 공감하며 머무는 짧은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딸을 세상의 리더로 세워주었습니다. “딸아, 너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치유하기 원하신단다” 딸은 어머니가 보여주신 자신의 길을 찾아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학교를 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해와 자기 중심적인 아픈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 일 가운데에서도 자신감, 사랑, 소명, 더 깊은 연합이 각 가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변으로 그려진 지도를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복을 나눌 세계임을 알고 행복한 웃음을 웃고 있는 한 아브라함의 자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김광호 목사(캔버라한인장로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