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2편) (빌 1:15-18)
15.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하여 15절에 나오는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말은 질투심과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투기와 분쟁”을 조장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은 그 다음 16절에서 나오는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이기적인 야망이로 인하여 경쟁적인 다툼으로 복음 사역을 하는 자들임을 잠깐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살펴보면, 이렇게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을 “겉치레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18절에서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이렇게 덧붙여 설명합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즉 그들은 사도 바울을 경쟁자로 여겼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어려움에 처할때 더 기뻐하고 좋았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꾼으로서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로 인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까 염려하면서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복음 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동안 그의 권위와 영향력을 약화시켜서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나 속이는 일꾼이나 사도로 가장한 자들 (고후 11:13) 이나 거짓 할례자들(빌 3:2)과는 다릅니다. 이들은 실제로 교회의 일꾼들입니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작은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이 변화되어 감으로써 작은 천국이 이루어져 가는 곳입니다. 교회 지도자들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로인해서, 목회자들이나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러한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누군가가 실망하고 상처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신앙 생활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오직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이익을 먼저 구하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들 또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고 겉치레로 복음사역에 동참하는 일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오직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를 위해서 그리고 나보다 내 형제 자매의 필요와 유익을 먼저 볼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때 이 땅의 불완전한 교회는함께 변화되어 가고 함께 성숙해 가는 작은 천국이 되어갈 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 15절에 의하면 위와 반대로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착한 뜻”은 헬라어로 ‘유도키안’ (εὐδοκίαν) 인데, 그 뜻은 ‘좋게 생각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라는 뜻을 지닌 ‘유도키아’ (εὐδοκία) 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호의적’ (goodwill: NIV, KJV 번역)으로, 혹은 ‘선한 뜻’ (good will: NASB 번역) 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한 동기’ 혹은 ‘순수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복음을전하 전했던 사실을 직접 보거나 듣고 나서 더욱 분발해서 복음을 전파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6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변호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도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바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는 동안 한편으로는 ‘선한 뜻과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에 대해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들이 있는 반면에, 사도 바울에 대해서 질투심과 경쟁의식을 가지고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쟁의식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황들에 대하면서 사도 바울은1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여기서 겉치레 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면, 이전에 사용했던 한글 개역 성경은 ‘외모’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파시스’ (προφάσις)인데, ‘보여주다’ (show) 또는 ‘가장하다’( pretence)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KJV성경은 겉치레(pretence)로 번역하고 하고 있지만, ‘거짓된 동기’(false motives)로 라고 번역한 NIV 성경이 문맥의 의미상 더 적합니다. 그러므로 18절의 의미는 복음 전파의 일을 맡은 일꾼들이 있는 ‘거짓된 동기로 복음을 전하든지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나는 기쁘고 또한 계속 기뻐할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경쟁의식을 갖고 적대감을 품고 있는 순수하지 못한 교회 일꾼들을 향해서 같이 적대감을 가지고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그들로 인해서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빼앗기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것을 초월하는 기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6:10 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도 바울이 누리는 기쁨은 복음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요 그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 때문에 얻게 되는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주는 기쁨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 보는 성숙한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세상을 살아 가다 보면 영적인 기쁨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끊임 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어려움과 바쁜 일상들 그리고 세상의 유혹으로 인해서 우리는 신앙의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우리의 신앙이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져가야 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0-11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세상이 줄수 없는 기쁨, 세상의 기쁨과 비교할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기쁨이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순수한 마음과 동기로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신령한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누렸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