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스가랴서 개관 : 나귀타고 오실 메시야에 대한 대망
스가랴서는 12 소선지서 중에서 가장 길고 내용이 쉽지 않은 책이다. 왜냐하면, 환상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스가랴서는 복음서의 수난기사를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고, 에스겔서를 제외한 다른 어떤 구약의 책들보다 요한 계시록의 풍부한 비유적 표현들의 원천이 되어왔다.
스가랴서는 학개와 마찬가지로 성전건축에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었으며, 스가랴는 당시 소년(2:4)으로 불리우며 학개보다 젊은 나이에 성전건축 캠페인을 시작했다.
학개가 방치된 성전 재건을 외쳤음에 반해, 스가랴는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음으로 이 성전 재건이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함으로 스룹바벨에 의해 완성 될 것을 말한다. (4:6-9)
< 역사적 배경>
표제에 따른 연대는 주전 520년에서 518년까지 이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 멸망으로 인해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B.C.538년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칙령 (에 1:1-4) 에 의해 귀환한다.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B.C.550년경 메대를 정복한 후 B.C.538년 바벨론 마저 역사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 이때부터 유대는 지리적 위치상 멀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전혀 관련이 없었던 페르시아의 통치에 놓이게 된다. 이 고레스가 유다 공동체의 귀환과 성전재건을 명하였고 (대하 36:22-23), 1차 귀환을 이끈사람은 사로잡힌 여호야긴왕의 아들인 세스바살이었다. 그가 총독으로 임명되어 귀환했고 성전재건은 포로 공동체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내적,외적 상황이 제대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성전 재건이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페르시아 초대왕인 고레스가 B.C.530년에 죽게되자 그의 아들 캄비세스(B.C.529-522)가 왕위에 올라 이집트를 정복했으나 본국에서 형제 가우타바가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한다. 이러한 혼란한 여러 상황속에서 군인이었던 다리우스가 왕위에 오르고, 다리우스는 불안정한 서부지역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로 다윗의 후손 스룹바벨애게 공동체 재건의 책임을 맡긴다. 이런 상황속에서 학개와 스가랴는 이때가 성전 건축의 적기라고 말하며 유다 백성들을 독려하여 성전 재건에 참여하게 한다.
<내용>
전반부인 1-8장과 후반부인 9-14장으로 나누어 진다.
전반부인 1-8장의 목표는 귀환한 유대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공동체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과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했던 약속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믿도록 격려하는데 있다.
중심내용은 여덟가지의 환상이다.
첫 번째 환상(1:7-17)은 밤에 본 환상으로 말을 탄 여호와의 네 사자들에 관한 환상이다. 1장8절에서 처음 본 것은 화석류 나무사이에 붉은 말을 탄 사람이다. 화석류는 장막절 축제 때에 장막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4가지 재료중의 하나였다. 유대교의 민간력에 의하면 한 해의 시작인 새해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초가을, 즉 장막절 때였다. 따라서 화석류는 만물의 소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 주권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두 번째 환상(1:18-21)은 네 뿔과 네 장인에 대한 환상이다. 네 장인은 이 뿔의 나라들을 멸망케 할 자들을 상징한다.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적대시하고 괴롭게 한 나라들을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분쇄될 것이다.
세 번째 환상(2:1-13)은 손에 측량줄을 잡고 있는 천사에 대한 환상으로 이 천사는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가는 천사이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환상은 끝날 메시야 때에 세워질 새 예루살렘의 모습에 더 강조점을 둔다.
네 번째 환상(3:1-10)은 여호와의 사자앞에 대 제사장 여호수아가 서있고 그 우편에 사탄이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환상이다. 이 환상에서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데(3:4), 이는 제사장으로서 자기 백성들의 추하고 죄 된 모습을 대표하고 서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탄이 고발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시는 징표로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깨끗한 관을 씌워주신다. 이 장면이 “스가랴 복음” 이라고 불리운다.
다섯째 환상(4:1-14)은 순금 등대와 그 좌 우편에 있는 두 감람나무 환상이다.
순금 등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짓고 있는 성전과 세상빛이 될 하나님 백성을 가리킨다. 이 환상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성전 건축에 여러가지 장애가 많으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반드시 완공되게 만드실 것을 약속하신다. (4:6) 또한 성전이 완성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실 것인데, 결코 사람의 지혜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이 일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신다.
여섯 번째 환상(5:1-14)은 하늘을 나는 두루마리 환상이다. 길이가 20규빗(약 9m)이고, 폭이 10규빗(약4.5m)인 큰 두루마리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공포심에 눌릴 것이다. 이 두루마리에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거짓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와 저주가 담겨있다. 본문에 나오는 두루마리는 “성소앞 낭실” (왕상 6:3) 과 크기가 같다. 그곳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 곳이며 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 었다. 즉 제사장 적 공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공정하게 이루어 짐을 보여주는 환상이다.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환상(5:5-11)은 에바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의 환상이다. 에바란 약 22L 정도의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로서 한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크기이다. 에바속의 여인은 유다를 멸망으로 이끈 우상 숭배의 대상인 여신이다. 그러므로 이제 에바속의 여인의 제거됨과 같이 우상 숭배의 정화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회복되고 유다 공동체가 회복될 것을 상징한다. 결국 악은 추방될 것이다.
여덟 번째 환상(6:1-8)은 네 대의 전쟁 수레 환상이다. 이 여덟 번째 환상은 첫 번째 환상과 비슷하지만 구별된다. 이 네 대의 전쟁 수레들은 하나님 백성의 원수나라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처럼 보여진다.
이것이 스가랴 전반부의 핵심 내용이다.
반면에 스가랴 후반부인 9-14장에는 더 먼 미래에 관련된 종말론적인 묵시적 상징들이 나타난다. 스룹바벨에 대한 소망이 사라질 때에 점증적으로 종말론적 메시야 예언이 등장한다. 그래서 특이한 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수난기사를 스가랴 9-14장을 통해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마태복음 21:4-5 ; 요한복음 12:15 (스가랴 9:9-10)
- 마태복음 26:15 ; 27:9 (스가랴 11:12-13)
- 마태복음 21:44 (스가랴 12:3)
- 요한복음 19:37 (스가랴 12:10)
- 마태복음 26 :31; 마가복음14:27 (스가랴13:7)
다시말해 진정하고 완전한 구원이란 성전 건축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한다. 스룹바벨과 같은 총독의 신분이 아니라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셔서 의와 구원을 베푸실 진정한 메시야를 대망하게 한다. 그가 오시면 사악한 세력을 무너뜨리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시는 것이다.
무엇을 통해서 인가? 권력? 재력? 아니다 ! 겸손한 섬김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볼때 스가랴서에는 하나님나라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한 참된 기대를 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도구들을 끊으시고 나귀를 타는 겸손한 왕을 통해 평화의 나라를 세우신 것이다(9:9-10).
<메세지> 구원과 구원 사이
스가랴 시대의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었다. 이 사이는 시작은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전 건축에 의해 예증된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신앙 공동체는 구원은 받았지만 진정한 구원을 이루는 일이 그들 앞에 놓여있었다. 이 도전은 다름 아닌 참된 언약 공동체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신실한 관계의 회복이 그들의 본분이다. 따라서 스가랴서는 바벨론으로 부터의 회복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삶의 원천인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로 부르심을 받은 것까자 나아간다.
이것은 우리 삶과도 연관되어진다.우리가 단순히 믿는 사람들의 무리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리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보일 진정한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느냐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스가랴서가 보이는 성전보다(1-8장), 보이지 않는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9-14장)에 촛점을 둔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모습인가? 전반부의 환상들 속에서 스릅바벨은 다윗 왕조의 소망을 전달하는 인물 인 것처럼 보인다.(3,4,6장). 그는 균형잡힌 지도자처럼 보여지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역사에서도 사라진다. 그 대신 메시야의 주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한 왕에 대한 유명한 성인과 함께 재개된다(9:9). 총독이 아니라 이것은 나귀를 탄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질 진정한 소망의 실현을 대망하게 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시대의 진정한 소망이란 스룹바벨과 같이 공적인 권력에 의해 힘을 부여 받은 존재가 아니라 나귀타고 오시는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이 땅을 섬기며 세우기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진리이다.
이렇게 살기를 하나님께 다짐할 때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진정한 변혁이 될수 있는 능력을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가랴서는 성전건축을 향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종말에 나타날 진정한 메시야의 모습을 비춰줌으로 인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시한다. 우리 역시 성전된 우리의 몸을 통해(고전3:16; 고후 6:16) 시대를 섬김으로 메시야 되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만 진정한 빛으로 설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