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시드니에서 고추농사
고추는 400년의 역사와 함께 농업경제와 국민 식생활의 중심에 있으며, 사회·정신·문화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치는 주요 작물이다. 국내 시장규모는 1조2000억여 원 상당으로 과채류 중에서 가장 생산액이 높으며 쌀 다음으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공항검색에서 고추가루가 금지 되면서 시드니의 교민들이 텃밭농사도 하고 고추농장도 바빠졌다. 고추농사는 그 어느 농사보다 까다롭고 재배기간도 긴 편이라 만만하게 달겨 들 수가 없는 것이다. 때 마침 한국의 장관후보자의 체험농지에 심겨져 있는 고추 몇그루의 사진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분은 아무래도 청문회에서 고추농사 흉내 낸것 때문에 곤역을 치르게 될 것 같다. 한 눈에 봐도 고추재배가 아니라 정원용 꽃나무나 화초가꾸기로 심겨져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고추농사에서 종자 확보가 첫 번째 과제이다. 언제 부턴가 종묘회사에서 잡종 제1대, F1[filial 1]로 육종한 종자를 생산해서 다음대인 F2에서는 고추가 거의 달리질 않고 간혹 결과를 해도 엉뚱한 고추가 달린다. 종묘회사에 돈을 벌게 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업농가도 씨앗 값이 영농비에 큰비중을 차지하면서 고추농사 잘 못하면 종자값도 못건진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드니에서 농장 하는 분들은 합법적으로 종자를 수입하는 것 같으나 텃밭농사 하는 가정은 고추씨 구하기가 어렵다. 지난해에는 좋은 종자를 얻을 수 있어서 고추묘도 잘 기르고 농사가 잘 되어 60여 포기의 장난감 같은 텃밭에서 고추가루 약 10kg이상을 수확해서 재미를 봤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몇일 전[7월 2일]에 묘상을 만들고 고추씨를 파종하였다.
고추는 원산지는 미국 남부로 부터 아르헨티나 사이에 열대 지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시드니의 기후는 열대는 아니지만 고추재배에는 적합한 기후이다. 고추는 식물 분류상으로 토마토, 가지와 함께 가지과에 속하며 학명은 Capsicum annuum으로 열대지방에서는 다년생으로 자라고 있다. 생육적온이 20-30°C이며 고온이 계속 되면 기형고추가 형성되기 쉽다. 한국의 경우 7-8월 장마기간에 고추에 치명적인 탄저병의 발병으로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은데 시드니의 재배농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탄저병은 그리 많이 발생하지 않는 것 같다. 탄저병(Colletotrichum acutatum)은 고추의 에이즈라고 불리어 지며, 고추뿐만 아니라 사과나무등 과수에도 발병하고 대게 병든 과실에서 월동한 병균이 고온 다습할 때 비바람에 날려 옮겨진다. 시드니에는 기후관계 등 몇 가지 요인 때문에 탄저병 피해가 많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필자의 텃밭은 몇 십평 밖에 안 되는 작은 면적이라 거름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인지 무병하게 싱싱하게 자란다. 작년에 잔디깎아 썩힌 퇴비와 버섯공장에서 부산물로 나온 퇴비를 흙과 거의 반반으로 섞어서 파 엎었고 닭똥 섞인 것, 난로에서 나온 재[災], 질소[N], 인산[P], 칼리[K]를 적정량으로 시비[施肥]하였다. 고추재배 기술중에 묘 농사가 7할을 차지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전업농가에서 건실한 묘를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육묘기간이 길고 고온이 요구되므로 한국보다 기온이 높은 시드니에서도 7-8월 달은 겨울철 최고기온이 20°C이하로 내려가므로 비닐을 덮어 보온하지 않으면 고추묘를 키울 수 없는 것이다. 육묘기간이 노지 재배의 경우 70-80일정도가 걸리며 잎이 11-13개에 첫 번째 꽃이 피었을 때를 정식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이때 이미 꽃눈 30여개가 분화된 상태며 온상에서 정식을 할 경우 급격한 기온차에서 오는 충격을 최소화 시켜 주기 위해 이랑을 만들고 검은색 비닐을 덮어 지온을 높여 주고 있다. 전업농가는 생업이기에 갖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아기 키우듯 정성을 다하여 고추묘를 길러 낸다.
연구 조사의 한 자료에 의하면 1그루에서 노지재배의 경우 600-800개의 꽃이 피며 그중에 약 20% 정도가 결과 한다고 보고 있다. 전업농가의 비닐 하우스에서는 800-1200개의 꽃이 피며 어떤 고추농사 전문가의 수익성을 발표한 것을 보면 1주당 2근[1.2kg] 내외의 말린 고추를 수확하였다는 수기를 읽은 일이 있다. 비교하기가 무리 하지만 필자가 텃밭농사로 50여 그루에서 고추가루로 약 10kg을 수확하였는데 전업농가의 10%정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재배방법에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나는 것이다. 고추는 정식하고 2-3주정도 되면 30-40cm가량 자라고 줄기가 Y자형으로 갈라지는데 디딜방아 같다고 해서 일명 “방아다리”라고 한다. 이 방아다리 사이에 꽃망울이 맞히고 고추가 달리에 된다. 줄기가 계속 Y자형으로 자라며, 꽃이 피는 것이다. 첫 번째 방아다리 아래의 곁순이나 잎은 나무 세력을 키우기 위해 제거해 주기도 한다. 첫 번째 첫 고추는 방아다리 고추라고 해서 품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과 같이 첫 자손이라 정성과 관심이 집중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고추는 자가수분 [[自家受粉]을 하지만 30%정도는 타가수분[他家受粉]을 한다. 고추밭 근처에 한국고추보다 훨씬 매운 월남고추가 옆에 있으면 월남고추의 꽃가루가 수정되어 고추가 매워지는 경우가 있다. 다민족 사회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일이 고추재배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추를 drive-way에 검은색 비닐을 깔고 말리는데 화초로 재배하던 월남고추를 따다가 함께 말리라고 갖다 주곤 한다. 손자 손녀들 중에 김치나 매운 것을 먹는 숫자가 반이 안 된다. 어른이 돼도 바뀔 것 같지가 않다.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늘 먹던 매운 음식에 중독된 노년 세대는 매운맛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농촌경제원의 연구 조사자료[2009년]에 의하면 1990년대 중반이후 부터 식생활의 서구화가 촉진 되면서 한국인의 1인당 년평균 소비량이 약 2.4%정도씩 감소 추세로 나타나며 2009년에 1인당 4kg 가량 소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민속학자 안정윤은 “한국인은 왜 고추의 매운맛을 찾는가?”라는 시론에서 전쟁을 치르고 난 1960년대 이후에 유명해진 음식점들이 거의가 매운 맛으로 호황을 누렸는데 6.25라는 전쟁을 치른 한국인이 트라우마[trauma-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에 빠지게 되었고, 매운 맛을 통해 고통을 상쇠할 수 있었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교동의 “낚지볶음집”, 숭인동의 “깃대봉 냉면”, 연천의 “망향 비빔국수” 등이 매운맛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 유명하게 된 것은 한국인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고추의 매운맛은 통각 세포가 자극되어 통증을 느끼게 되면 천연 진통제인 “엔드르핀”을 분비하게 되고 이 때문에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에드르핀”의 작용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드니의 교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때문일까? 매운맛으로 소문난 음식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박광하 (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