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0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도시락
나에게는 여전히 계속되는 고민이 하나 있다. 매일 생각해도 정답이 없어 머리가 지끈지끈 하고 입술이 타들어 갈 정도다. 하루라도 소홀히 할 수 없고 그만큼 강력한 집중력을 요하는 그것. 바로 ‘도시락’이다. 솔직히 남편의 것은 가끔 빠트리기도 했지만 하람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꼼짝없이 도시락의 올무에 묶여버렸다. 나는 한국의 급식세대가 아니다. 물론 나중에 커서 급식업에 종사하긴 했어도 학생 때는 줄곧 도시락 통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나에게는 도시락 이라는 것이 허기를 달래주는 용도 외 에도 자존심과 연결된 민감한 사항 중 하나였다.
삼형제의 둘째라는 숙명으로 항상 새것을 사는 막내와는 다르게 언니의 것을 물려받던 나는 도시락 통 마저 언니가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 했었다. 그러다 보니 보온도시락 같은 경우는 점심으로 먹을 때쯤이면 이미 미지근하게 식은 밥을 먹어야 했고 김치 국물이 반찬통에 배어서 다른 반찬을 담으면 김치 맛이 섞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밥뚜껑을 열면 뽀얗게 연기가 나오는 뜨끈한 도시락 통을 가진 친구들이 그래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도시락 반찬도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김치볶음이 주 메뉴였고 콩자반이나 양념 김 등이 자주 반복 되었다. 야채를 다져 예쁘게 말아 부친 달걀말이나 후랑크햄, 쫄깃한 오징어채 볶음은 정말 아주 가끔 싸주실 뿐이었다. 때때로 나는 그래서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 먹기가 조금 창피했다. 김치와 검정콩이 섞여버린 반찬통이 꼴 보기도 싫었다. 그런 날은 아침에 문구를 사야한다고 부모님께 돈을 타내서는 참치 캔이나 스넥을 사가 대신 먹기도 했다.
그 당시 그렇게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는데 왜 그러셨을까. 철부지 아이들의 반찬 투정이라 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파 어쩌면 견디기 힘드셨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하람이가 떼쓰고 고집하면 그냥 사주고 마는데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작은 것부터 절약을 실천하신 부모님. 가끔 좋아하는 메뉴를 싸주는 걸로 우리삼형제를 달래시던 그분들 덕분에 삼형제 모두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지금도 자식들 도움 없이 사신다고 엄포하시고는 당당하게 지내시는 게 아닐까. 정말 존경스럽다. 그러다 한국에도 언제부턴가 단체 급식이라는 게 생겼다. 전교생이 동일한 밥과 반찬을 식당에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니 신세계 아닌가. 어쨌든 먹는 사람은 참 좋겠지만 많게는 하루에 3끼 (대학교 기숙사) 메뉴를 짜야하는 영양사는 턱 하고 숨이 막힌다. 또한 제대로 달력보고 꼭 챙겨야 하는 특별식도 있다. 설 즈음 에는 떡국과 갈비찜. 학생들에게는 귀여운 조랭이 떡국이 나가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 후식으로는 다양한 부럼을 준비한다. 삼복더위에는 당연히 삼계탕이 나가지만 때때로 얼큰한 육개장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가장 큰 명절인 추석에는 토란탕과 잡채등의 잔치 음식은 물론 송편을 절대 빼놓지 않는다. 동지가 오면 팥국수나 후식으로 팥양갱 등이 메뉴에 추가된다. 일주일을 돌아가며 한식, 양식, 중식, 분식류로 다양하게 메뉴를 섞어 짜던 게 얼마 전 일 같은데 호주에서 많은 시간이 흘러 감각이 떨어졌나 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하람이는 뭐든 잘 먹는다. 베이컨과 달걀,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도 버섯과 마늘을 넣은 파스타도 가끔은 김치를 씻어 볶아주는 볶음밥도 다 남기지 않고 먹어주어 고맙다.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치킨너겟과 만두를 튀겨 급하게 도시락을 싼다. 더불어 내 도시락은 튀긴 만두에 매운 사천 소스와 야채를 넣어 볶은 매운 만두덮밥 이다. 남편은 야채와 참치를 넣은 볶음밥에 작은 사발면 하나를 들고 간다. 찬 볶음밥에 뜨거운 라면국물을 넣어 말아 먹으면 참 맛있다는데 나는 그것을 ‘괴짜밥’ 이라 부른다. 이렇게 각자의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일터로 향하는 우리 가족. 때로 도시락 때문에 고민스럽고 걱정되지만 하루를 열심히 산 증거로 빈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랑하는 식구들. 어디든 입맛에 딱 맞는 배달음식이나 포장 도시락이 흔한 한국과는 다르게 사먹고 난 후에 꼭 김치를 떠올리게 하는 호주 음식이 난 아직 익숙지 않다. 또한 간단히 사과 반쪽에 구운 식빵 하나 정도의 점심은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도시락과의 전쟁은 계속 될 것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