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易地思之)의 역할수행론
사자성어에 ‘역지사지’ (易地思之)란 말이 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 易: 바꿀 역, 地: 땅 지, 思: 생각할 사, 之: 어조사 지, 갈 지)는 당사자들 간에 서로의 처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목적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함으로써 갈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역지사지의 태도는 공감 능력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지사지’는 ‘맹자’의 ‘이루 하’ (離婁下) 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 (易地則皆然)이라는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 중국에 벼슬에 오른 하우와 후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나랏 일로 바빴던 이들은 자기 집 앞을 세 번씩이나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나랏일을 먼저 생각했던 하우와 후직이 집안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들을 매우 훌륭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공자는 제자 안회를 칭찬했다. 안회는 가난한 세상에 사람들이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만으로만 살았다. 공자는 자신의 처지보다 세상 사람들을 생각했던 안회를 칭찬하였던 것이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는데,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물 깊이에 대한 셈을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하여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 안회의 생활 방식을 통하여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말하였다.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 보라는 말이다. 즉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 사람의 처지나 서로 바꾸면 누구나 다 똑같아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버트 셀먼 (Robert Selman)은 사회와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으로서 ‘역할수행능력’을 제안한 바 있다.

로버트 엘 셀먼 (Robert L. Selman, 1942년 5월 7일 ~ )은 미국에서 태어난 교육 및 심리학자이다. 청소년 사회 발전을 전문으로 하는 그는 앤 셀먼 (Anne Selman)과 결혼했으며 제시 셀먼 (Jesse Selman)과 멧 셀먼 (Matt Selman)의 아버지이다. 그는 하버드 교육 대학원 (HGSE-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의 교육 및 인간 개발 교수인 로이 라슨 (Roy E. Larsen)이자 하버드 대학의 의학 심리학 교수이다. 로버트 셀먼 (Robert Selman)은 1992년 하버드 교육 대학원에서 위험 및 예방 석사 프로그램을 설립했으며 1999년까지 첫 번째 이사로 재직했다 (2010년에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예방 과학 및 실습”으로 변경되었다). 하버드 의대 (Harvard Medical School)에서 그는 정신과의 심리학 교수이며, 베이커 아동 센터 (Judge Baker Children’s Center) 및 보스턴 아동 병원 정신과에서 선임 부교수 (senior associate)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리학자 로버트 셀먼 교수가 제안한 ‘역할 수행 이론’ (Role-taking theory)은 인지 발달 분야에서 이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성숙한 역할수행능력 (Role Taking Ability)을 통해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또한 우리가 역할 수행 능력을 개발하는데 덜 준비됐다면 다른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만 행동하고 있다고 잘못 판단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외부 요인들에서 이 이론에 대한 셀먼의 주요 추가 사항중 하나는 경험적으로 지원되는 역할 수행 능력의 이론이다. 이는 체험과 경험을 근거로 역지사지 또는 공감 능력의 맥락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야기되는 영향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파급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역할수행능력을 개발해 볼 수 있다.
ADHD를 가진 아이들은 그들의 사회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이것에 대한 사회적 인지적 이유는 많은 부분에서 더 구체적인 모델제시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만 ADHD가 있는 어린이는 ADHD가 없는 어린이보다 역할 수행 능력이 낮고, 역할 수행에 대한 인식 및 사용이 적으며, 역할수행능력을 개발하는데 더 느린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ADHD를 가진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가 여러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감안할 때 ADHD를 가진 아이들은 종종 대립하는 반응 행동 문제를 포함하여 사회적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역할수행능력’에 대한 훈련을 받는 것이 제안받고 있다.
성장단계를 레벨 0~4로 설정했다.
.레벨 0 : 평등한 역할 수행 (대략 3-6세)
.레벨 1 : 주관적인 역할 수행 (대략 6-8세)
.레벨 2 : 자기반성적 역할 수행 (대략 8-10세)
.레벨 3 : 상호 역할 수행 (약 10-12세)
.레벨 4 : 사회적 역할 수행 (대략 12-15세 이후)
이러한 역할수행능력의 레벨단계는 인지심리학적, 인본주의 심리학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자아 구축과 관련해서 사회에 속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그러한 사회에 다시금 자신을 보여주는 상호적이고 사회, 문화적인 관점을 폭넓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성육신 (聖肉身, incarnation) 하신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고 말씀하시며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이해할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라 말씀하셨다.
○ 홍길복 목사의 세번째 잡기장 (72) 중에서 _ 10월 9일자
– ‘알고나면 이해가 됩니다’

인간이해에 대한 저의 생각 중 하나입니다.
‘내가 미쳐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이해가 되고 모르면 늘 오해가 생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런 저의 생각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 중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성내운 선생님은 1960년대 초, 제가 대학에 들어갔던 해에 문과대학 교육과의 교수로 부임해 오셨습니다. 채플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무슨 특강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 되지는 않지만 그 무렵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초창기 한국 교육계에서 민주와 민족교육을 이끌어오신 성내운 선생님은 대학교수로 오시기 전, 당시 문교부 수석 장학관으로 일하시던 중에 격었던 일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서대문에 있는 미동국민학교로 장학시찰을 가셨답니다. 마침 4학년 교실에 수업참관을 들어가셨는데 미술 시간이었답니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자유화 시간이다. 너희들이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그려라’ 아이들은 질문이 많았습니다. ‘선생님 ! 집 그려도 되요? 자동차 그려도 되요? 비행기 그려도 되요? 꽃 그려도 되요? 나무는요? 새는요? 해는요? 별은요? 아빠 그려도 되요? 엄마 그려도 되요?’ 등등 많은 질문이 쏫아졌습니다. 자유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질문과 두려움이 많은 법이잖아요? 하여튼 그 때 마다 선생님은 연속 똑같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래 그래 무엇이든 그리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그려라’ 드디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앞에서 부터 학생들의 그림 그리는 것을 개별적을 살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중간쯤 오셨을 때, 선생님은 한 아이에게 약간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 이녀석아 이런 그림이 어디있어 ! 어떻게 주먹이 얼굴 보다 몇배나 크냐? 고쳐서 그려봐!’ 그리곤 다음 학생에게로 넘어가셨습니다. 야단을 맞은 아이는 그림을 좀 빨리 그렸는지 이미 색칠까지 다 한 것을 다시 고쳐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습니다. 선생님은 말씀했습니다. ‘오늘 그린 그림을 모두 다 앞으로 가져 오너라. 끝까지 완성 못한 것도 괜찮다’ 그리곤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선 교무실로 가셨습니다. 성내운 장학관도 교무실로 따라 가셨습니다. 그리곤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의 그림을 좀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조금전 그 아이가 그린 도화지는 약간 구겨져 있어서 금새 눈에 띠었습니다. 들여다 보니 미동국민학교라고 쓰여진 교문 앞에 왠 조그만 아이 하나가 넘어져 있는데 그 옆에는 등치 큰 고등학생이 교복을 입은채 손을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 주먹을 쥔채로 어린 아이를 때리려는 그림이었는데, 정말 그 고등학생의 주먹쥔 손이 얼마나 큰지 얼굴 보다 한 3,4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성내운 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그 4학년짜리 학생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데리고 운동장 곁에 있는 나무그늘 벤치에 앉으셔서 말을 붙였습니다. 이름이 뭐니? 어디사니? 부모님은 다 계시니? 그런데 아이는 아무 대답도 않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후 성내운 선생님은 또 물었습니다. ‘넌 오늘 무슨 그림을 그렸니? 선생님도 초등학생 때 그림을 잘 못그렸어. 그래서 선생님한테 꾸중들은 적이 있었어’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월사금을 못냈단 말입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무슨 그림을 그렸느냐?’는 질문에 아니 ‘월사금을 못냈다’니? 시간은 좀 지났지만 그날 성내운 선생님은 그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점심도 사 먹이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미술 시간이 있기 몇일전, 학교에서는 월사금 밀린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면서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서 월사금을 받아오던지 아니면 언제 까지 내겠다는 약속을 받아가지고 와서 책가방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도 월사금을 못냈기에 책가방은 교실에 둔채 그야말로 쫓겨나서 월사금을 받아오려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가지않고, 남대문 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아버지를 찿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함께 장사하는 다른 몇분 아저씨들에게서 부탁하여 돈을 꾸어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애는 너무 신이나서 그 돈, 그 월사금을 손에 꽉쥔채로 다시 달려서 학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왠 고등학생 형이 교문 앞에서 아이를 가로막더니 ‘야 이 자식아! 그 돈 이리 내놓아 !’ 하더니 주먹으로 갈기곤 그 돈을 빼았아 갔습니다. 소위 깡패에게 아빠가 힘들게 빌려서 까지 주신 월사금을 뺏기고 만 것입니다. 한참후 아이는 담임선생님에게 가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몇일만 더 기다려 달래요’ 그리고 책가방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두워진 후 아버지는 돌아오셔서 물었습니다. ‘오늘 월사금 잘 드리고 왔냐?’ 아이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예 잘 드렸어요’ 아이의 마음엔 고민이 생겼습니다. 학교에다는, 몇일만 기다리라고 하고, 아빠한테는, 월사금을 잘 냈다고 했으니, 정말 어쩔수 없는 갈등과 고민 속에 어린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 미술 시간에 선생님은 ‘뭐든지 그려도 된다. 자유다. 그리고 싶은 것은 아무 것이나 다 그려라’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이는 당연히 그날, 그 순간, 월사금을 빼겼던 순간, 자기의 모습과 고등학생 형아와 그의 주먹쥔 손이 떠 올랐습니다.
성내운 선생님이 대학 신입생인 저에게 들려주신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얼굴 보다 10배도 더 큰 주먹을 그린 그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누군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알아야 이해할수 있고 이해하면 마침내는 사랑할수 있게 됩니다’
‘모든 오해는 몰라서 생기고 모든 이해는 알아야 가능해 집니다’
저는 오늘도 당신을, 당신의 참 모습과 깊은 마음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