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3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추억을 곱씹다
화창하고 맑은 날이 얼마간 계속 되었다. 한국의 가을 마냥 바람은 청량함을 품은 채 불어오고 빨래가 잘 마르는 햇살 좋은 날이 이어졌다. 그래서 비구름이 심통이 난 걸까? 이번 주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강한 빗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깬 게 몇 번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람이 학교 갈 채비를 하면서 무심하게 바람을 동반한 빗줄기가 너무나 야속했다. 요즘 감기가 유행인데 이러다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서 이다. 하람이네 반에도 지독한 감기 때문에 며칠 동안 결석한 친구가 있었다. 그러며 나는 살포시 지난 추억을 떠 올렸다.
본인은 88올림픽 세대이다. 그때 초등학생 이었는데 성화 봉성이 있던 날 언제 올지 모를 그것을 기다리며 종일 길가에 친구들과 서 있었다. 하지만 학교 전교생이 동원되어 막상 본 성화 봉성은 생각 보다 너무 시시하고 짧았다. 그렇게 국가 행사에 자주 동원되어 몇 시간이나 기다리는 일이 즐비 했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는 늘 학교에 갔다. 부모님은 내가 아플 때도 학교에는 꼭 가야 한다고 하셨고 그 당시 대다수 부모님들의 생각이 같았다. 특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초등학생이 다니기에는 좀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 장마철이면 산에서 흙탕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빙판이 미끄럽고 위험해 선생님들이 아침마다 연탄재를 마구 뿌리던 그런 곳 이었다. 그래도 항상 부모님의 배웅 없이 언니 동생과 손을 꼭 잡고 등교했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약간은 막무가내 같은데 그래도 그런 부모님들의 아름다우면서도 지나친(?) 학구열이 지금의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건 그렇고 왜 학교주변에는 항상 학생을 유혹하는 문구점 즉 문방구가 그토록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걸까? 문구류도 팔지만 약해빠진 병아리, 떡볶이 등의 분식 외에도 입맛을 자극하는 추억의 불량식품들이 잔뜩 있었다. 십원에 몇 개씩 주던 일명 돌사탕. 하얗고 단단한 자갈처럼 생겼는데 달콤한 캬라멜 맛이다. 팔대처럼 생긴 아폴로, 난로에 구우면 쫄깃쫄깃 맛있는 쫀드기,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던 네모난 쥐포.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맛으로 500원만 있어도 먹고 싶은 모든 걸 모두 살수있는 저렴함 까지 겸비했다. 지금은 흔하게 찾을 수 없기에 더욱 그리운 맛. 물론 영양가도 없는 불량식품 이지만 가끔 묘하게 생각난다.
또 무슨 조회는 그리 많이도 섰는지. 월요일 아침이면 으레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가 1시간도 넘게 애국 조회를 했다. 학급주번만 빠지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면 국기에 대한 맹세부터 시작해서 애국가도 4절까지 부르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교장선생님의 길고긴 훈화까지 들어야 끝이 난다. 60분은 코 질질 흘리는 초등학생들이 가만히 차렷 자세로 서 있을 만한 시간이 결코 아니다. 을씨년스럽게 추운 날은 또 어떤가. 손발이 꽁꽁 얼어 서 있기조차 힘들고 한여름 땡볕아래서는 빈혈로 친구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래서 그 당시 주번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선택 받은 자 같은 당당한 얼굴로 교실을 지키는 특혜. 그 정도로 나가기 싫어 화장실에 몰래 숨어 있다가 선생님한테 걸려 엄청 혼난 적도 있다.
토요일 마다 교실 나무 바닥을 왁스로 닦는 대 청소 시간은 또 어떤가. 집에서 만든 걸레로 친구들과 바닥에 앉아 닦는둥 마는둥 놀다가 끝이 난다. 약간은 촌스럽지만 생각만 해도 좋은 어린 시절. 지금의 하람이를 보며 나는 그때를 떠 올린다. 우리는 그렇게 강하게 자랐고 지금 혼자 놀이에 익숙한 아이들과는 달리 어울림을 배웠다. 엄격함 덕분에 도덕과 예의범절을 실천하며 살려 노력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누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 물어 본다면 난 절대 아니다. 추억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지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손톱에 흙물 들이는 것도 싫고 길게 줄 서서 예방 주사 맞는 것도 싫다. 내가 생각해도 참 별거 아닌 이유인데 재미나 웃음이 난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