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철학편지
볼테르 / 문학동네 / 2019.2.28
– 부조리한 권력과 광신에 펜으로 맞선 시대의 정신, 추방당한 철학자 볼테르의 기지와 사상의 보고 (寶庫)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재치와 기지, 사상이 한데 결합된 걸작 ‘철학편지’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5번으로 출간되었다. 귀족과의 다툼으로 망명생활을 하게 된 볼테르가 3년간 영국에서 지내며 써내려간 글들의 묶음으로, 당시 프랑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영국의 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조국인 프랑스에 유머러스한 독설을 던진 작품이다. “구체제에 던져진 최초의 폭탄”이라고 평가받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금서조치를 당했고, 볼테르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또다시 파리를 떠나 피신해야 했다.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평생 부조리한 권력과 광신에 펜으로 맞서 투쟁한 볼테르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그의 전 생애의 요약판과도 같은 작품이다.
○ 목차

편지1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2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3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4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5 영국국교회에 관하여
편지6 장로교에 관하여
편지7 소치니파, 또는 아리우스파, 또는 반反삼위일체파에 관하여
편지8 의회에 관하여
편지9 정부에 관하여
편지10 상업에 관하여
편지11 천연두 접종에 관하여
편지12 베이컨 대법관에 관하여
편지13 로크 씨에 관하여
편지14 데카르트와 뉴턴에 관하여
편지15 인력引力의 체계에 관하여
편지16 뉴턴 씨의 광학에 관하여
편지17 무한과 연대기에 관하여
편지18 비극에 관하여
편지19 희극에 관하여
편지20 문학을 하는 귀족들에 관하여
편지21 로체스터 백작과 월러 씨에 관하여
편지22 포프 씨와 몇몇 유명 시인에 관하여
편지23 문인들의 처우에 관하여
편지24 아카데미에 관하여
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
해설 | 영국으로 추방된 젊은 프랑스 철학자의 편지
볼테르 연보
○ 저자소개 : 볼테르 (Voltaire, 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 (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 (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 (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 (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 (Sceaux)성 (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 (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 (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 (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 (L’Ingenu)』 (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 (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 (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 (1734), 『깡디드』 (1759), 『관용론』 (1763), 『철학사전』 (1764) 등이 있다.
– 역자 : 이봉지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배재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사학과 페미니즘』이, 옮긴 책으로 『수녀』, 『쿠데타와 공화정』이 있고,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폴 리쾨르』등을 공동 번역하였다.
○ 책 속으로
이곳은 다양한 종파의 나라다. 영국인은 자유인답게 자기 마음에 드는 길을 따라 천국에 간다. —「편지5 영국국교회에 관하여」중에서
로마의 경우, 내전의 결과는 노예화였는 데 반해 영국은 분쟁의 결과로 자유를 얻었다. 영국은 왕권에 저항함으로써 왕권을 규제하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마침내 매우 현명한 정부를 수립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편지8 의회에 관하여」중에서
프랑스의 내전은 영국의 내전보다 더 길고, 더 잔혹하고, 더 많은 범죄로 점철되었다. 게다가 그 많은 내전 중에 어느 것도 자유가 목적은 아니었다. —「편지8 의회에 관하여」중에서
프랑스에서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후작이 될 수 있다. 귀족풍의 이름에다 돈푼깨나 가지고 파리로 올라온 시골뜨기들까지도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상인을 버러지처럼 멸시한다. —「편지10 상업에 관하여」중에서
나는 육체이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상은 모른다. —「편지13 로크 씨에 관하여」중에서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을 많이 하며 문학도 프랑스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것은 영국 정치체제의 영향이다. 런던에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고 나라의 이익을 옹호할 권리를 지닌 사람이 800명가량 있다. —「편지19 희극에 관하여」중에서
가장 유용한 발견은 가장 미개한 시대에 이루어졌다. 가장 계몽된 시대, 가장 학식 높은 단체의 역할이란 이 무지한 사람들이 발명한 것을 연구하는 데 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희망이다. 희망은 우리의 슬픔을 달래주고 현재 누리는 기쁨을 통해 미래에 다가올 기쁨을 그려 보인다. —「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중에서 —「편지24 아카데미에 관하여」중에서
○ 출판사 서평
– 18세기 프랑스를 지배한 비판적 정신 이성· 관용· 정의의 수호자 볼테르
빛의 세기를 밝힌 위대한 사상가,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본명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로, 1694년 파리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수학하며 라틴어와 수사학 등을 배웠고, 고전문학과 연극에 특히 관심을 가졌으며 언어와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1717년 루이 14세 사후 섭정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고, 수감생활 동안 첫 희곡작품 「오이디푸스」를 집필했다. 출옥 후 이 작품의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라신의 후계자”로 평가받았고, 이때부터 ‘볼테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명성을 얻으나 1726년 한 귀족과의 말다툼으로 또다시 바스티유에 수감되며, 영국으로 망명을 가는 조건으로 곧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강한 환멸을 느끼게 된다.
볼테르는 당시 프랑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영국에서 3년간 생활하며 사회적·사상적 자유를 만끽했다. 그곳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철학편지』를 집필했으며, 프랑스에서는 1734년 출간했다. 1745년 왕실 사료편찬관이 되었고, 1750년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체류하게 되지만 베를린 아카데미 원장인 모페르튀이와의 논전으로 그곳 역시 떠나게 된다. 1758년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역 페르네에 정착해 대표작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출간했다. 이후 『백과전서』 편찬에 관여해 여러 항목을 집필했으며,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인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불의에 관용으로, 광신에 이성으로 맞서 끊임없이 투쟁한 볼테르는 시, 희곡, 역사서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으나 그중 대다수가 금서조치를 당했다. 1778년 「이렌」의 상연을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가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프랑스혁명 시기에 유해가 판테온으로 이전되었다.
– 추방당한 철학자 볼테르의 사상과 재기가 한데 결합된 ‘철학편지’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
18세기 초, 볼테르는 귀족의 멸시를 받는 평민의 신분이었다. 1726년 1월 어느 날 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대귀족 가문의 자제인 슈발리에 드 로앙 샤보가 “볼테르 씨, 아니 아루에 씬가, 당신 이름이 뭐요?”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볼테르요. 내 이름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당신 이름은 당신으로 끝날 거요.” 모욕을 당한 로앙 샤보는 며칠 후 하인들을 시켜 그를 급습했고, 루이 15세를 움직여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시키기에 이른다. 볼테르는 곧 영국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고, 그해 5월 영국으로 떠난다.
영국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부지런히 영어를 익혀 영어로 일기나 논문을 썼고 그곳 사람들과 유창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당대 작가인 알렉산더 포프, 조너선 스위프트, 윌리엄 콩그리브, 철학자 조지 버클리와 신학자 새뮤얼 클라크 등과 교유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관람했으며, 뉴턴의 연구와 로크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18세기는 영국이 봉건귀족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가는 전환기였고, 볼테르는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자유의 나라’ 영국에서 방대한 독서와 자료수집에 몰두했고, 이 망명생활은 곧 볼테르의 인생과 사상적 경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그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의회정치가 실현된 영국의 모습을 톺아보며 한 편씩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철학편지’는 영국의 정치·종 교· 사상· 예술· 과학 등 볼테르가 그곳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망라한 책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면면을 관찰하고 프랑스와 비교하며 조국에 대해 유머러스한 독설을 날리는 이 작품은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사적인 편지, 수신인이 정해진 편지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는 편지, 열린 편지의 형태를 띤다. 대부분 영어로 직접 집필했고 1733년 8월, 런던에서 『영국에 관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했다. 당시 판본에는 『팡세』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인 「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이후 런던에서 출간된 최초의 프랑스어판 『영국에 관한 편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해인 1734년, 현재 대표적인 원전으로 간주되는, 「편지25」를 포함한 『철학편지』가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영국의 자유와 관용에 관한 볼테르의 감탄이 녹아든 이 책은 프랑스의 정부와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져 출간하자마자 금서조치가 내려졌다. 더불어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어 볼테르는 또다시 파리를 떠나 연인 샤틀레 부인의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결국, 이 작품은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서 특유의 신랄한 재치가 빛을 발하는 『철학편지』는 볼테르의 근대적 사고와 비판적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시대의 지성으로, 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생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관념을 풍자하고 조롱한 볼테르의 정신은 2백 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우리가 진정으로 존경해야 할 사람은 무력을 사용하여 타인을 노예로 만든 사람이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정신을 지배한 인물이며, 세계를 파괴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제대로 알게 만든 사람이다.”
○ 추천평
구체제에 던져진 최초의 폭탄. – 귀스타브 랑송 (문학비평가)
볼테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18세기 전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빅토르 위고
천재성, 상상력, 심오함, 방대함, 합리, 세련, 철학, 고양된 정신, 독창성, 꾸밈없음, 재기와 고귀함과 분별 있음, 다채로움, 올바름, 섬세함, 따뜻함, 매력, 재능, 힘, 학식, 격렬함, 정확함, 우아함, 능변, 발랄함, 조소, 비장함 그리고 솔직함. 이 모든 것이 볼테르를 나타낸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신이 만든 가장 놀라운 창조물이다. – 괴테
볼테르를 존경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의 방증이나 다름없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철학편지』는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었다. 추방으로 점철된, 그럼에도 결코 비판을 멈추지 않은 볼테르의 전 생애의 요약판과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이봉지 (옮긴이)
○ 독자의 평
계몽철학자라 하면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등 프랑스 철학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철학의 왕으로 죽을 때까지 칭송받던 볼테르의 작품이다.
그의 철학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부정적인 의미로서 갖추지를 못한 것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워낙에 자신의 사상을 표명하는데 현학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알기 쉽게 바로 이해가 가능하게끔 저술한다는 뜻이다. 본 작품에서는 볼테르의 사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 이성에 의한 과학에 대한 믿음, 전제정치에 대한 비판, 종교적 맹신과 광기에 대한 경고, 온갖 종류의 종교에 대한 관용 등 철학의 왕의 면모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