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중국 고아
볼테르 / 지만지드라마 / 2019.8.1
‘중국 고아’는 원대 희곡 작가 기군상의 ‘조씨 고아’를 각색한 작품이다. 작품에 ‘고려 (Coree)가 등장해 관심을 끈다.

○ 목차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저자소개 : 볼테르 (Voltaire, 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 (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 (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 (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 (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 (Sceaux)성 (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 (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 (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 (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 (L’Ingenu)』 (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 (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 역자 : 이봉지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배재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서사학과 페미니즘』이, 옮긴 책으로 『수녀』,『쿠데타와 공화정』이 있고,『플로스 강의 물방앗간』,『폴 리쾨르』등을 공동 번역하였다.
○ 책 속으로
이다메: 서방님, 황자를 구할 방도가 있어요.
우리 아들과 함께 멀리 보냅시다. 빼낼 방도가 있어요.
절망하지 말고 빨리 준비합시다.
에탄을 따라 바다 건너 고려로 갑시다.
바다로 둘러싸인 그 음울한 고장에는
인적 없는 황무지와 감춰진 동굴이 있을 거예요.
거기로 아이들을 데려갑시다.
거기까지 참화의 손길이 미치기 전에.
도적들이 그곳을 알기 전에.
한시가 급해요.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볼테르는 기군상의 ‘조씨 고아’에서 두 가지 비극적 상황, 즉 은인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해야 하는 정영의 갈등과 친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양아버지를 배신해야 하는 조무의 갈등 중, 전자만 취하고 후자를 배제했다. 대신 원작에 없는 정영의 아내, 즉 이다메를 등장시켜 은인의 자식 대신 자기 자식을 희생해야 하는 부모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심화하는 한편, 그녀를 사랑하는 정복자 칭기즈칸을 통해 남녀의 사랑과 지배자의 덕목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6세기가 아니라 칭기즈칸 생존 당시인 13세기 초로 설정했다.
볼테르의 ‘중국 고아’는 18세기 내내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1755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코메디 프랑세즈 극단은 1756년 리옹 극장 개장 기념 공연으로 볼테르의 이 작품을 올렸고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궁전에서 어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국의 경우, 볼테르의 ‘중국 고아’와 머피가 각색한 작품이 함께 공연되었다. 특히 머피의 ‘중국 고아’는 미국으로 건너가 1767년 필라델피아 공연을 시작으로 1842년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공연될 때까지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볼테르의 ‘중국 고아’가 한국인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작품에 한국에 관한 언급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언론소개
– 이봉지가 옮긴 볼테르 (Voltaire)의 ‘중국 고아’ (Orphelin de la Chine)
사랑보다 큰 사랑
칭기즈칸은 이다메를 사랑했다.
이다메는 잠티와 결혼한다.
부부는 죽음 앞에 선다.
남편을 배신하면 부부는 산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이긴다.
잠티: 아! 나와 함께 웁시다.
또 나와 함께 황자를 구할 방도를 생각해 봅시다.
이다메: 내 아들을 죽이고!
잠티: 얄궂은 운명이오.
하지만 당신도 어미이기 이전에 백성이잖소.
이다메: 당신은 천륜도 모르시나요?
잠티: 그럴 리가 있겠소. 하지만 도의가 먼저요.
내가 낳은 미천한 아기보다 주군의 혈육이 먼저요.
불쌍한 황제의 혈육을 지킬 의무가 내게 있소.
이다메: 아니요, 저는 그 같은 도의는 모릅니다.
성은 불타고, 왕좌는 부서졌습니다.
저 역시 주군께 닥친 끔찍한 불행 때문에 울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철천지원수 사이라고
놈들이 원하지도 않는 우리 아들 목숨을 바치려 하십니까? – ‘중국 고아’,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34∼35쪽
볼테르가 중국 고아를 주제로 희곡을 썼는가?
그렇다. 볼테르는 1755년 파리에서 출판한 ‘중국 고아’의 서문에서 “얼마 전, 뒤알드 신부가 출판한 선집에 포함된 프레메르 신부 번역의 중국 비극인 ‘조씨 고아’를 읽다가 이 비극을 착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기군상의 ‘조씨 고아’가 원작인가?
그렇게 봐야 할 것이다. ‘사기’ (史記)에 나오는 춘추 (春秋) 진 (晉)나라 영공 때의 간신 도안고와 충신 조순에 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원작을 어떻게 변주했는가?
원작에는 없는 ‘이다메’를 등장시킨다. 은인의 자식을 희생시킨다는 원작에 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상황 설정은 작품의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주제의 변주는 없는가?
이다메를 사랑하는 칭기즈칸을 통해 남녀의 사랑과 지배자의 덕목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역사 배경이 칭기즈칸 생존 당시인 13세기 초로 이동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는 한국에 관한 언급이 등장한다.
한국이라면 고려를 말하나?
그렇다. 고려군과 고려가 칭기즈칸이라는 막강한 세력에 맞서 황자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원군이자 피난처로 제시된다. 하지만 무대에 고려인은 등장하지는 않는다.
볼테르가 어디서 고려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가?
분명치 않다.
위 인용문에서 잠티가 자식을 죽이려는 이유가 뭔가?
황제와의 약속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공격으로 나라가 패망했다. 황족들도 죽임을 당했다. 황제는 죽기 전에 잠티에게 자신의 막내아들 목숨만이라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잠티는 어떻게 할 셈인가?
자기 아들과 황자를 바꿀 생각이다. 고려에서 원군이 오면 그편에 황자를 맡기려 한다. 하인을 시켜 아들을 데려오게 한다.
잠티의 부인, 이다메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다메는 아들이 처형되려는 순간에 나타나 정복자 칭기즈칸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 아이가 황자가 아니라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라면 죄 없는 아이를 지켜 줄 거라고 믿는다.
그녀가 칭기스칸을 그렇게 믿는 이유가 뭔가?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산천초목이 벌벌 떠는 왕 중의 왕 칭기즈칸이지만 그녀는 그의 청년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용맹함이 드러난 칭기즈칸의 얼굴에서 위대함을 보았다. 이민족인 그를 백성으로 받아들여 교화했다면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인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젊은 시절, 칭기즈칸은 이다메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했다. 이다메의 부모는 그가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그 뒤 이다메는 유학자인 잠티와 혼인했다.
칭기즈칸의 판단은?
그녀에게 선택권을 준다. 자신을 선택하든지 잠티와 황자, 아들까지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든지.
이다메의 선택은?
충절을 지키고 황자도 살리기로 한다. 감시가 소홀한 틈에 숨겨 두었던 황자를 고려군이 마련한 비밀 통로로 빼돌리려다 발각된다. 칭기즈칸은 호의를 배신한 이다메에게 분노한다.
그들은 모두 죽는가?
잠티는 사형, 그러나 이다메는 살리려 한다. 이다메가 잠티와 이혼하고 자신의 아내가 되면 잠티도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이다메는 마지막으로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이별인가?
아니다. 남편과 함께 죽으려는 거다. 잠티가 단도로 이다메를 찌르려는 순간 칭기즈칸이 나타나 만류한다. 부부의 충절은 그를 감동시키고 모두는 죽음을 벗어난다. 칭기스칸은 법과 도덕으로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다짐한다.
볼테르가 희곡도 썼나?
이 작품 외에도 ‘오이디푸스’, ‘자이르’, ‘이렌’ 등의 희곡을 썼다. 그의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은 코미디 프랑세즈 극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어떻게 살다 갔나?
1694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볼테르’는 필명이다. 영국 자유주의를 소개하는 도시에 프랑스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철학 편지’를 출판해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750년 파리를 떠난 뒤 1758년에는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있는 프랑스 영토인 페르네에 정착해 20년간 농사를 짓고 주민들을 돌보며 생활했다. 1778년 파리로 돌아왔으나 무리한 활동 때문에 건강을 해쳐 그해 5월 30일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봉지다. 배재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