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895년 11월 27일, 알프레드 노벨이 사후 자신의 유산으로 노벨상을 만드는 유언장에 서명
1895년 11월 27일은 알프레드 노벨 (Alfred Bernhard Nobel)이 1896년 12월 10일 운명하기 1여년전 자신의 사후 유산으로 노벨상을 만들라는 유언장에 서명한 날이다.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 (Alfred Bernhard Nobel, 1833년 10월 21일 ~ 1896년 12월 10일)은 스웨덴의 과학자이다. 그는 고체 폭탄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 알프레드 노벨 (Alfred Nobel)
.출생: 1833년 10월 21일, 스웨덴 스톡홀름
.사망: 1896년 12월 10일 (63세), 이탈리아 왕국 산레모
.국적: 스웨덴
.분야: 화학, 공학, 방위산업, 발명
.주요 업적: 다이너마이트 발명, 노벨상 제정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혼합한 안정한 규조토와 같은 물질을 만들었으며 그것을 좀 더 안전하고 사용하기 쉽게 변형하였는데, 이 혼합물들을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냈다. 발명 첫 해에는 잉글랜드의 레드힐 (서리주)에 특허를 내고 “Nobel’s Safety Powder”란 이름으로 이름 짓기도 하였지만 ‘힘’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다이너마이트란 이름으로 결정한다
노벨은 이후에 콜로디온과 유사한 니트로글리세린과 니트로셀룰로스 혼합물들을 섞은 혼합물을 만들었고, 후에, 투명하고, 젤과 같은 물질이면서 다이너마이트보다 더 강력한 젤리나이트 또는 블라스팅 (blasting) 젤라틴이란 이름을 붙은 물질을 1876년 특허를 낸다. 비슷한 혼합물의 호스트로 부터 유래된 것이지만 질산칼륨 (potassium nitrate)를 추가하고, 다양한 그 외의 물질들을 추가한 점이 다르다. 젤라틴은 보다 안정적이고 이동하기 편하고, 구멍을 뚫거나 (드릴링)이나 채광 (마이닝)에 좀 더 쓰기 편하게 구멍과 같은 홈에도 넣어 쓸 수 있었다.
채광 역사의 표준으로 이 물질이 사용되면서 노벨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노벨은 운명을 앞둔 1년 전 유언장에 자기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부문에 걸쳐 공헌이 있는 사람에 상을 주라고 남겼다.
“재산은 유언집행인에 의하여 안전한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그 이자는 매년 그 전해에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 …”

1896년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친필 유언장이 공개되자 노벨의 가족 친지들은 경악했다. 특히 조카들은 삼촌이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금으로 기부한데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망한 사람은 비단 가족만이 아니었다. 스웨덴 국민도 노벨이 재산을 조국을 위해 쓰지 않고 온 세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한데 대해 비(非)애국적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노벨의 유언이 집행되기까지는 5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1901년 12월 10일 노벨의 5주기에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여했다.
노벨이 남긴 재산은 당시 스웨덴 화폐로 3,323만크로나(US$770만)였다. 오늘의 물가수준(20배)으로 환산하면 6억6,460만크로나(1,850억원)의 거금이다. 노벨재단은 그동안 유가증권과 부동산에 투자하여 30억크로나로 불렸고, 수상자는 부문당 790만크로나(11억원)를 받는다.
노벨은 왜 노벨상을 제정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노벨은 1891~1895년까지 3회에 걸쳐 직접 유언장을 작성했다. 다른 사람들은 유언장의 내용을 몰랐고, 노벨상 제정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었다. 이로 인해 노벨의 유언배경을 놓고 몇가지 추측이 있다.
그 하나는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재산을 내놓은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 추론에는 2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1888년 한 프랑스 신문이 낸 오보(誤報)이다. 노벨 형의 죽음을 노벨의 죽음으로 잘못 안 이 신문은 노벨을 ‘죽음의 상인’으로 묘사하여 노벨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노벨의 인생관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864년 발생한 폭발사고이다. 노벨이 운영하던 다이너마이트 원료 니트로글리세린 제조공장이 폭발하여 동생 에밀 등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것이 노벨의 유언장 작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벨재단이나 노벨연구자들은 이러한 추론을 부인한다. 노벨은 이상주의자였으며 개인이 큰 돈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보사건이나 폭발사고, 그 어느 것도 노벨상 제정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833년 스웨덴 북쪽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한 노벨은 사업적 성공과 실패한 인생이라는 양면이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부와 명예를 쥐었지만 내성적이면서 괴팍한 성격과 우울증 등 심신의 병약으로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1896년 사망하기 직전에는 협심증과 심장발작으로 괴로워했다.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러시아, 프랑스 등을 전전했던 그는 사망 당시 스웨덴 국적도 없었다. 이러한 인생역정이 그를 스웨덴이라는 작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로 눈을 돌리게 했으며 노벨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의 평화와 과학의 발달을 염원해 오던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은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 기부되었다. 그 기부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를 설정하였다. 이 상은 물리학 · 화학 · 생리 · 의학 · 문학 · 경제학 · 평화의 6개 부문으로 나누어 국적 및 성별에 관계없이 그 부문에서 뚜렷한 공로자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노벨상과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다루는 노벨 박물관은 스톡홀름의 구 시가지에 있다. 주기율표 102번 원소인 노벨륨은 노벨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