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교육평가의 허[虛]와 실[實]
교육에서 평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정범모[1925- 교육학자]교수는 교육을 “바람직한 인간 행동특성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치관[價値觀]이나 신념[信念] 등이 행동특성으로 자리잡게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은 허공을 짚는 것 만치나 어렵지만 조선시대에는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육방법이 1대1의 대화방식이고 책 한권을 암기하고 이해하며 행동화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교육이었다. 소위 선비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받고 지식이나 행동이 일치하기에 사회의 귀감이 될 수 있었지 않았는가? 이는 과거에 소수의 특적계층에만 이루어 질수 있었던 교육제도이기에 현대교육에 비교하기는 무리한 것이지만 교육의 맹점이 무엇인지를 짚어 볼 수 있는 사례이다. 40여명의 다인수 학급에서 1대1, 대화방식의 교육은 거의 불가능 하고 행동변화여부를 평가한다는 것은 난해한 것이다. 더구나 교육의 목적을 명문대학 입시에 걸고 있으면 성숙한 인격을 갖추려는가를 가름하는 정의적[情意的] 행동의 평가는 필요성이 절식하지 않게된 다.
대학에서 몇 가지 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지만 핵심은 학업성적이다. 학업성적은 대부분 인지적[認知的] 특성을 평가 받은 것이며 상대평가이다. 상대평가는 어쩔 수 없이 학습목표에 성공자와 실패자를 골라야 하고 서열을 가리게 되어있다. 성공한 자는 승리감에 도취 될 수 있지만 실패한자는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분발의 계기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학업성적요인을 분석한 연구는 수없이 많다. 교육현장에서 관찰해 보면 학습능력의 차이가 세밀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성적일람표를 분석하여 보면 학업석차, 30등 내외의 학습자가 그의 수준을 탈출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매번 30등 내외에서 머물고 있다. 이는 학습능력이 타고난 지능과 적성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며, 실제로 연구결과를 보면 초등학교 3학년때 학업석차와 고등학교 2학년의 학업석차를 비교하여 보았더니 +.85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85%이상이 불변하더라는 것이다. 만약 이와같은 상황을 변화시킬 방안이 없다면 학교는 학생의 학업성적에 관하여 유전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할일이 거의 없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교육학자들이 이런 모순을 수수방관 할리가 없다.
교단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Carroll의 학습모형이 있다. Carroll의 이론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학습 가운데 특히 인지적[認知的]학습에 작용하는 중요한 변인들을 추출한 다음 상호관계를 토대로 학습방안을 체계화해서 적절한 조치를 하면 학습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습자 중에는 빨리 배우는 학습자[faster learner]와 느리게 배우는 학습자[slow learner]가 있게 되는데 이게 변인이라면 학습시간을 조절해서 학습목표에 도달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faster학습자가 1시간을 소비해서 목표에 도달하였다면 slow학습자는 그보다 더 많이, 2-3시간의 학습시간을 투여하게 해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교사가 할일이라는 것이다. 지능이나 적성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며, 석차로 학습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직무유기 내지 포기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업성적에 긴장감이 감도는 교실에서 Carroll의 학습모형은 이상에 불과하다. 적자생존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한국의 교실 상황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게 교육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교육계획서에 제시하고 교장실마다 게시되어 있다. 어느 학교나 교육목표가 미래지향적이고 바람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도의를 실천하는 행동인늘 기른다. #주체적 학습능력을 지닌 지식인을 기른다. #운동능력과 강한 체력을 지닌 건강인을 기른다 등이 학교교육목표의 유형이다. 사립학교의 경우 설립목적에 맞는 인재를 길러 내겠다고 내세우고 있으며 그 핵심은 인지적인 것보다 정의적영역의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목표가 있다면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교육계획을 수립해서 교육하고 평가를 하여야 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과정이다.
학교에 따라 서술방법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비슷한 내용의 교육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도의를 실천한다든가 하는 정의적인 영역을 교육하였는가? 평가는 하였는가? 하는 것은 모호하게 된다. 학업성적표나 학생기록부에 평가한 기록은 미미하고 추상적인 짧은 문장의 언급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교사나 학생, 학부모가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관심 밖의 사항이다. 오로지 학업성적, 석차, 명문대학, 대학도 서울대가 최종목표인데 “국민도의를 실천하는 행동인”과 같은 정의적[情意的] 행동특성과는 간격[間隙]이 넓다. 왜냐하면 지식위주의 학업성적, 석차가 상위 수준으로 서울대를 합격한자라고 하여도 그가 인류의 보편적가 가치인 인권존중, 박애[博愛], 평화 등에 관하여 계획적인 교육프로그램으로 교육받고 평가 받았는가 하는 것은 애매해 지는게 현실이다. 특히 한국교육에서 인성이나 가치관교육이 구호만 있을 뿐이지 내용이나 평가는 빈강정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교육평가의 치명적인 허점[虛點]이다. 아침 7-8시부터 등교 시켜서 저녁 10-11시까지 외우고 또 외우고, 풀고 또 풀어서 대학문턱을 넘어야 끝을 내는 교육, 매년 신문에 서울대 학격자수 발표로 고등학교 교육의 평가를 받게 되는게 한국교육 아닌가?
고등학교에서 xx명의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였다고 교문에 합격자 명단을 프랑카드로 만들어 높이 달아 놓고[지금은 금지 되었다고 하지만] 자랑하는 일이 관행이었다. 시·도교육청은 명문대학 합격자수를 조사하여 학력향상 우수고로 포상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학력향상은 칭찬 받을 일이지만 교육의 본질은 아니다. 상대평가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학업성취도의 차이로 한국교육은 그 폐해를 알면서도 상대평가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교육의 핵심적인 영역인 정의적 행동특성을 상대 평가로는 불가능 하다. “국민도의를 실천하는 행동”이 이루어 지고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인가를 예단[豫斷]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바람직한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영역보다 정의적인 행동이 더 중요하고 행복을 가져 올 수 있는데도 목전[目前]의 학력경쟁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행동특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가치관에 관하여 어떤 교육그램을 통해 진지하게 학습하였는가를 살펴볼 때 너무나 미미한 접근에 그쳤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이 교육에서 철학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관련교과를 통해 교육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 받고 있으나 유명무실에 그치고 있다. 학교나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관심 밖의 교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교육의 본보기로 프랑스의 교육제도를 꼽을 수 있다. 프랑스는 고 3때 철학교과를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민들은 거의가 철학에 관하여 일가견을 피력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문적인 평가자료를 갖지 않더라도 몇 가지 덕목의 가치관에 관하여 20대 전후의 한국 젊은이들에게 견해를 피력해 보라고 하였을 때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상상해 보면 짐작이가고 남음이 있다.
예를 들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自由]에 관하여, “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유는 무엇이며 정당화 될 수 있는 자유의 제한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논리 정연하게 피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류[類]에 합당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은 되고 있겠지만 교육주체나 소비자가 매달릴 겨를이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평가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학생이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보다는 학생이 다른 학생에 비하여 얼마나 더 많이 성취했느냐에 집중되다 보니 가치관에 관한 행동 특성 등에 소홀하게 되고 사회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교육에서 성취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가치관이 뚜렷하다”, “신뢰감이 있다”, “공감적 이해력이 탁월하다”, “매사에 진취적으로 임한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역역하다”, “봉사 활동에 작극적이다”, “ 정의감이 강하고 논리적이다” 등으로 평가 받아 행복한 삶을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학교교육을 통해 가치관이 뚜렷하고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행동특성으로 변화되었다고 평가 받았다면 교육의 값진 열매[實]가 아니겠는가!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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