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콜롬바(St, Columba)의 생애와 영성(13)
성 콜롬바와 아이오나 공동체의 영성 – 수도원과 공동체의 영성(2)
켈트인 수도사들은 모든 역사와 문학을 보존하는 것을 좋아해서 켈트신화와 전설들을 후세에 전하는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가장오래된 전설들은 아일랜드 정복의서 (The Book of the Conquest of Ireland)라는 제목의 12세기 수도원 필사본에 보존되어 있다.
장윤재에 의하면, 물론 이전에도 켈트신화는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꿈> 등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판타지 문학은 21세기를 전후로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각종 온라인 게임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창조세계와 모든 물질적 존재의 선함을 믿는 켈트인들의 마음이 너무도 강해 로마 교회 가 갖고있던 이원론적 신학이 켈트교회안으로 침투 할수가 없었다. 성과 속을 하나로 보고 일상생활의 예삿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한 켈트영성은 이원론적이 아니었다.
유럽대륙의 교회들이 베드로성당을 위시해서 거대한 인공성전들을 건축할때 겔트인 들은 나무나 돌로 작은교회를 짓고 예배 드렸다. 로마와 유럽대륙의 교회들이 더욱 물질적이 되어갈때 켈트교회는 더욱 금욕적인 삶을 강조하면서 열정적인 선교 활동을 할수 있었다. 신약성경 서신들 중 에서도 입증되듯이 예언자들은 신약시대에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수도원 운동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에서 전개 됐는데, 그리스도인 들이 그리스도를 따를수 있도록 좀더 초점이 맞춰지고 철저히 열중케하는 생활 형태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정신을 계속 살아 움직일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은자들과 수도사들 이 수도원을 추구하는 일이 일어났다. 수도원 운동은 너무 제도화 되었을때 위태로왔고, 그것이 성직자 중심의 양태로 바뀌게 된다. 수도사들이 광신적이되고, 지나치게 고행하고, 이성을 멀리하려는 경향은 위태 롭고 어두운 면이 될수 있었다.
켈트교회는 영웅들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의, 강하고 열정적인 남자들과 여자 들의 교회 였다. 옛 켈트전사 정신이 그들속에 살아있었으며, 이제 복음을 위해 힘쓰고 고귀한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발휘되었다. 콜롬바는 ‘비둘기’로 알려 져 있지만, 그는 또한 ‘늑대’라고도 불렸다는데, 그는 항상 비둘기 옷을입은 늑대였을 것이다. 그는 전사였지만 춤을추는 전사였다. 왜냐하면 그는 시인이자 저술가이며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켈트 수도원의 영적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존재였고, 그래서 그들은 ‘영혼의 친구’ ‘아남카라 (Anamchara)로 불리웠다.”
Timothy J Joyce에 의하면, 아일랜드는 15세기초에 유럽에서 수도원의 중심지 였다. 아일랜드의 교회들은 수도원 의 지도자들에의해 지배되었고, 아일랜드의 수도승 들은 북유럽의 선교사로 활동 하였다. 성콜롬바와 그의 추종자들은 북부 스코틀랜드 에서 선교 하였다. 콜롬바는 문서로 수도원 규칙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규칙들이 후세에 전해졌다. 이 규칙들은 초기 아일랜드 수도원의 영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규칙을 중심으로 수도원의 주제인 균형과 리듬을 따르고 시간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노동시간, 휴식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새기술을 배우는 시간, 예배와 경건의 시간, 봉사의 시간을 엄격히 유지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이 세상에 세워 나가는데 큰 역활을 해왔다. 스코틀랜드의 켈트족뿐 아니라 아일랜드와 웨일즈의 켈트족도 신속히 수도원 운동을 받아 들였다. 수도원 운동이 그렇게 신속히 일어난 사실은 기독교 자체를 빨리 받아들인 것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패트릭의 저술들 외에는 기록물이 드믈기 때문에 언제 최초의 기독교수사들이 아일랜드와 웨일즈에 왔는지 확실하게 얘기 할수 없다. 패트릭 자신이 프랑스에 있는 동안에 수도원을 접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수도원 운동은 금욕적인 생활양식에 이끌린 전사민족(warrior people)을 매료 시켰다. 수도원 운동은 우주의 징표들을 해석하기위해 드루이드들에게 의지했던 신비주의적 민족을 매료 시켰다. 수도원운동은 공동체 속에서 친밀한 삶을 살던 부족적 민족을 매료 시켰다.
티모시에 의하면, 수도사들에는 남자들과 여자들, 사제들과 평신도들과 한사람 내지 두 사람의 주교가 포함 되있다. 수도원장 이나 수녀원장은 공동체의 행정적인 지도자 였는데, 주교와 사제에게 성례전및 복음전도의 직무를 맡기었다. 사제는 공동체를 섬겼으며 밖으로 나가서 아직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씨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수도원의 규칙을 분석하면 수도사들의 수련, 영성, 이웃개념, 그리고 윤리로 구별 되어 있다. 콜롬바 수도원 규칙에 나타난 수도사들의 수련 규정에서 콜롬바 수도원의 영성의 특징을 살펴 볼수 있다.
(1) 수도사들의 수련
배고플 때까지 음식을 먹지말라.
눈물이 날 때까지 일하라.
눈물이 나올 때까지 기도하라.
졸음이 올때까지 잠을 자지 말라.
노동을 하거나, 기도할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때 까지 하라.
모든일에 자선을 행하라.
공적인 일외에 말을 삼가라.
매사를 정해진 시간계획대로 행하라.
(2) 수도사들의 영성
그대의 양심이 무리들과 함께 할 준비가 되있지 않거든, 도시 근처의 한적한 곳에 혼자 떨어져 있으라.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을 생각하며 항상 몸과 마음을 비우고 있으라.
전능하신 하나님과 말씀에 입각하여, 제전에 참석하며, 주님의 말씀을 강조하여 설교하는 사제가 되어라. 사리를 분별하고, 믿음위에서, 거짓말을 금하며, 적당한 노동을 하며 항상 준비 되있는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매사를 순종하는 마음을 품어라.
주님의 백성으로 죽은 영혼들을 위하여 찬송하라.
영혼들을 찬미하고 일어나서 찬양하라.
그리스도의 제자직분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서 사람의 피를 흘리는 대안을 찾는 적색순교의 마음을 가져라.
그리스도가 인류를 온전히 포용하기위해 자신의 신성을 버린거와 같이 수도사가 그리스도를 따르기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땅을 버리는 백색순교의 마음을 가져라.
(3) 수도사 들의 이웃개념
세속적인 언어로 주님과 대화하려는 자들과, 구제받으려고 속삭이는 자들, 친구와 원수사이에서 괴롭힘을 받는자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받을수 있게 해주어라.
고난 받는자를 위하여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라.
타인을 위해 금식하고 철야하는 기도를 게을리 하지말라.
먹을것, 입을것이 늘어날때, 먼저 가난하고, 이 물질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섬겨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쌍한 이웃을 먼저 섬기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4) 수도사들의 윤리
하루동안에 기도하며, 노동하며,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라.
하루의 일과를 세부분으로 나누면, 주님의 처소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감당하고, 형제들과 노동을 나누며, 이웃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봉제일도 서로 돕고, 주님 보시기에 헛된 시간이 없도록 시간 관리를 하라.
의복이나, 음식물 혹은 음료수를 조금적게 혹은 많게 배분을 할경우, 연장자에게 그 권한을 주어 실시케하고, 신앙적으로 형제들간에 시험에 들지 않토록 하게하라.
문을 한개만 열고 닫으며 모이기에 힘쓰라.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라.
Kenneth에 의하면, 수도사들은 배움에 대한 사랑, 학문 연구에 대한 존경, 지혜에 대한 갈망들이 있었다.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영적여정은 축복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키우며 육체와 영혼이 치유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아이오나는 수세기동안 크리스찬 영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활을 잘 감당 해왔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수도원에 찾아가 경건의 규칙에 서약하고 권위에 복종하며 살기를 원했고 서약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랐다. 평생을 수도사로 헌신 하는것 부터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경건규칙에 이르기까지 서약은 다양했고, 경건의 규칙은 수도사들에게 한정되는 것이아니라 그 마을 공동체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수도원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경건훈련은 꼭 수도사가 되는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은 수도사들처럼 예수의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방수도원의 대부라고 불리운 바실의 규칙에 근거한 콜롬바의 규칙들은 로마교회의 성 베네딕트의 규칙에 의해 대체 될때까지 서부유럽의 많은 수도원들에서 사용되어 왔다. 콜롬바는 수도원에서 매우 엄격한 생활습성과 성격을 준수하였다. 수도원 규칙에는 순종이 강조되고 있어서 모든 수도자는 상위자인 원장의 말에 순종 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정하였다. 노동을 통해 생긴 생산물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도원 마을 들은 신앙생활의 중심지 였으며 또한 상업과 교역, 농업 오락및 교육의 중심지였다. 콜롬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아일랜드에 대한 불타는 마음을 가졌기에 데리, 듀러우및 켈스 지역에 수 많은 수도원을 세우고,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 섬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켈트세계 전체를 위한 신앙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6세기 종교개혁으로 해체될 때까지 남아 있었다.오늘날 많은 성지순례자들이 콜롬바와 그의 수도사들에 의해 신성화된 유적을 참배 하여 전사, 수도사, 성자, 예수님의 제자였던 콜롬바를 기리며, 경이로운 옛 십자를 그곳 박물관에서 보면서, 콜롬바의 생애와 영성을 추구하며 기도를 드린다.
노정언 장로
한남·촬스슈터트대학 신학석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