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개망초대’의 아픈 이야기
프롤로그
매일 아침 산책길에 정원의 화초며 나무를 접하게 되고 계절 따라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호주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보니 호주의 생태계도 인종 (人種) 만큼이나 천태만상 (千態萬象)이다, 그 중에도 유난히 눈에 띠는 것은 망초대다. 모든 생명체의 종 (種)이 다 그러하겠지만 식물 이름에 ‘개’자가 붙은 것은 그것과 견줄 수 있는 기준으로 삼는 식물에 비해 그만 못하다고 여긴데서 유래한 것이다.
“개”자(字)가 들어가는 식물명
개살구, 개머루, 개다래, 개복수초, 개쑥부쟁이, 개상사화, 개비름 그리고 개망초 등 많은 식물들이 그의 이름에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 개망초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이 땅에 들어와서 터를 잡은 귀화 식물이다.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망초 종류로는 민망초가 있는데 개망초 꽃이 더 아름답다. 그럼에도 ‘개’자를 붙이는 것이 개망초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꽃도 그만하면 예쁜데 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름에서 까지 차별을 받는 것일까? 망초 (亡草)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란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망초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면서 을사조약이 맺어졌다는 것이다. 왜 풀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본을 지칭하는 ‘왜 (倭)’자를 붙인 것 역시 을사조약으로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은 것과 무관하지 않은 이름이다. 과연 망초 때문에 나라가 기울었을까? 하필이면 나라가 기울어질 때 들어와서 푸대접을 받는 억울한 사연을 가진 들꽃이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망초가 철도 공사를 할 때 미국에서 들여온 철도 침목에 씨가 묻어온 것으로 추정하는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이다. 오늘 다문화 (多文化)가정이 늘고 있는데 귀화 식물 (歸化 植物)이란 식물의 다문화화 (多文化化)라고 할 수 있다. 망초 보다는 개망초가 꽃이 더 크고 분홍색이 돌며 예쁘다. 그럼에도 ‘개’자가 붙은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냐는 우리 선조들의 분노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는 때에 들어와 터를 잡았을 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개망초 (Erigeron annuus)

개망초 (Erigeron annuus)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귀화식물 (歸化植物) 종 (種)이다. 도시 주변의 빈터 또는 1, 2년 정도 방치해둔 휴경 (休耕) 밭에서 큰 무리를 이룬다. 개망초는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들풀이지만, 귀화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귀화식물 (新歸化植物, Neophyten)이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에도시대 말 (1865년경) 관상용으로 도입되었다가 탈출해서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개망초는 가을에 종자에서 발아하고, 뿌리에서 생겨난 로제트 상태의 근생엽 (根生葉)으로 겨울을 보낸다 (로제트; 가을에 돋아 겨울을 견디고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로제트 식물’이라고 부른다). 아직 나무들이 잎을 내거나 꽃을 피우지 않은 이른 봄에 땅 바닥을 보면 많은 풀이 자라고 있고 심지어 꽃도 예쁘게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로 냉이 · 민들레 · 큰개불알풀 · 뽀리뱅이와 같은 풀이다. 키도 작은 것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피어났을까? 사실은 새봄에 자란 게 아니다. 우리가 보는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다. 개망초의 경우는 근생엽 (根生葉)과 상관없이 기저 (基底) 부분에서 약간 옆으로 줄기를 길게 내밀어 키 큰 식물체로 성장한다. 꽃 피는 여름이 되면 근생엽 (根生葉)은 고사해 버린다. 일반적으로 두해 살이풀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전형적인 해넘이 한해살이다. 종소명 안누스 (annuus)다. 종소명은 ‘1년생 초본’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 annuus다. 개망초는 뿌리에서 난 잎 (根生葉)과 줄기에 난 잎 (莖生葉)의 모양이 확연히 다른 것을 봄날이면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개망초의 백색 설상화 (舌狀花)는 암꽃 (雌性花)이고, 안쪽의 황색 관상화 (管狀花)는 짝꽃 (兩性花)이다. 즉 암꽃을 바깥쪽에 배치함으로써 타가수분 (他家受粉)을 용이하게 한다. 이러한 꽃 모양이 마치 계란 프라이처럼 생긴 데에서 일명 ‘계란꽃’이라고도 부른다. 속명 에리게론 (Erigeron)은 희랍어로 ‘이르다 (eri)’와 ‘노인 (geron)’의 합성어다. 개망초나 망초는 부드러운 연모 (軟毛)처럼 흰 빛깔의 깃털 (冠毛)를 덮어쓴 열매를 만든다. 바람에 날리기 직전에 꽃부리에 매달려 있는 열매 형상이 마치 나이든 사람의 흰 머리를 떠올리는 데에서 유래한다. 한글명 개망초는 망초에 ‘개’ 자를 더한 것인데, 1921년 ‘조선식물명휘’ (朝鮮植物名彙) 속에 나오는 일본명 이누요메나 (犬嫁菜)의 ‘개’ (犬)에서 힌트가 된 것 같다. 개망초의 방언으로 ‘왜풀’이 있으며, 그 이름은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귀화 식물이라는 도입 경로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개망초 군집 (群集)
농사를 짓지 않고 한두 해 방치한 밭은 망초-개망초 군집이라는 식물 사회가 크게 번성하는 농촌 생태계에서 중요한 서식처로 기능한다. 메밀 밭, 유채 밭과는 사뭇 다르게, 수많은 곤충과 야생 조류 같은 생명체들이 깃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개망초가 일제히 꽃 피는 6, 7월의 농촌 풍경은 사람이 떠나버린 소박하고 고즈넉한 한국 농촌의 한여름 경관이 된다. 망초-개망초 군집이 농촌 생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망초는 망초보다 일찍 성장하고 꽃이 피며, 적어도 보름 이상, 길게는 한 달 이상 빠르다. 묵정밭에서 개망초는 초여름까지 완전히 우점 (優占)하며, 그 뒤를 이어서 망초가 길게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형태가 비슷한 두 종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식물 계절 (phenology)이 다르기 때문이다. 망초는 개망초 만큼 서식처 범위가 넓지 않다. 개망초는 농촌 지역뿐만 아니라, 특히 도시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종이 될 만큼, 도시 산업 지역에서도 흔하게 관찰된다. 망초는 그렇지 못하다. 개망초의 적응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개망초는 보통 키가 1m 이상까지 크게 자라지만, 불리한 서식 환경에서는 키가 10cm 정도로 한 뼘도 되지 않는 왜소한 것도 있다. 그러면서도 꽃이 피고 열매도 맺는다. 국립공원의 자연림 속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개망초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화식물 (歸化植物)
식물도 여행을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식물을 움직일 줄 모르는 ‘지구의 붙박이 가구’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고정 관념 때문이다. 물론 식물이 개체로 있는 동안에는 서식하는 공간을 떠나 이동할 수 없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식물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장 먼 땅,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극도로 열악한 지역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라는 멋진 책을 쓴 식물 생리 학자 스테파노 만쿠소 (Stefano Mancuso,이태리 피렌체대학교에서 교수)는 말한다.“식물을 정의하는 형용사는 실제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이 아닌 ‘원하는 곳에 뿌리를 내리거나 정착할 수 있는’것이 되어야 한다. 고착성 유기체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이동할 수 없지만, 식물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이동할 수 있다.”그렇다. 식물은 포자나 씨앗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해 세상의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기 위해 이동하고 전진한다. 고사리 같은 양치류 식물은 수천 킬로미터까지 바람에 실려 운반될 수 있는 천문학적인 양의 포자를 방출하여 자손을 퍼뜨린다. 씨앗을 맺는 식물은 바람에 실리거나 땅 위를 구르거나 동물 털에 붙어서, 또는 곤충이나 조류, 포유류 같은 특정한 동물의 힘을 이용해 종자를 퍼뜨린다. 식물은 우리가 흔히 잘못 생각하듯 수동적 (受動的)인 생물이 아니라 얼마나 활달하고 능동적 (能動的)인 생물인지! 화단에서 키우는 분꽃은 씨앗이 여물면 탁, 탁 소리를 내며 되도록 멀리 씨앗을 날려 보낸다. 길가에 자라는 야생 돌콩 같은 경우도 꼬투리가 바짝 마르면 포탄을 쏘듯이 씨앗을 멀리멀리 날려 보낸다. 아주 특이한 경우지만 라틴 아메리카 열대 지방에 자라는 후라 크리피탄스라는 나무는 다이너마이트 나무라는 무서운 별칭을 지니고 있는데, 이 나무는 큰 폭발음을 내며 씨앗을 초속 400미터까지 날려 보낸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식물명의 허실 (虛實)
망초와 개망초가 이름 때문에 한국인의 호감 (好感)을 감소시켰을 것이나 생물종으로서의 그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상당수 (相當數)의 귀화 식물들이 본토의 생태계를 어지롭히고 있긴 하지만 반면(反面)에 과학적인 실체가 들어나면서 진가 (眞價)를 발휘하는 식물종들도 많다. 개망초도 조선조 (朝鮮朝)의 패망과 동시에 한국땅에 귀화해서 질시 (嫉視) 받은 것은 사실이나 개망초는 민망한 이름과는 달리 약과 음식 재료로 모두 쓸 수 있는 고마운 존재다. 한방에서는 개망초를 일년봉 (一年蓬)이라 하여 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내며 소화 불량에 효과가 있고, 장염으로 인한 복통, 설사를 치료하는 효능을 가진 약재로 쓴다. 줄기와 잎에는 혈당을 내려주는 성분이, 꽃에는퀘르세틴 (quercetin)과 아피제닌 (apigenin)이라는 생리 활성 물질이 들어 있다. 퀘르세틴은 양파 껍질에 많이 들어있다고 널리 알려진 성분으로 동맥 경화 예방과 알레르기에 대한 방어력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아피제닌은 다양한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어 개망초는 생활 습관병으로 고생하는 현대인들이 즐겨 먹어도 괜찮은 식재료라는 것이다. 개똥쑥은 “개”자 (字)에다가 “똥”자 (字)까지 보탰으니 식물이름 치고는 볼품없는 이름인데 개똥쑥 (Artemisia annua) 연구로 중국의 투유유 (屠呦呦) 중국 중의 과학원 교수가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은 바 있다. 투 교수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인 ‘아르테미시닌’을 뽑아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 퇴치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이 상을 받는다. 신화 통신은 “이 약 덕분에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개불알풀이라는 연푸른 자주색 바탕에 흰색과 짙은 청색 줄무늬가 있는 지름 1cm 이내의 꽃이 핀다. 열매가 2개씩 달리는데 그 모양이 개불알 같다 하여 개불알풀로 불리지만 한자로는 ‘지금’ (地錦, 땅 비단), 봄까치꽃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갖고 있다. 밀원 식물로 어린순은 나물로 먹으며 뿌리는 중풍, 요통 등의 약으로 쓰인다. 개불알풀 종류에도 선개불알풀, 개불알풀, 큰개불알풀이 있다 그중의 큰개불알풀이 가장 흔하다. 한국의 봄의 전령사(傳令使) 개나리도 비하의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일본인들이 조선, 한국인 하면 급이 낮은 국가나 인종으로 격하 (格下)시키려는 저급한 심보를 적나라 (赤裸裸)하게 들어내고 있으며 식물의 이름을 들쳐봐도 분통(憤痛)이 터질지경이다. 개나리는 고유한 한국의 식물종이기에 학명이 Forsythia koreana이다. 한국 특산종이라는 것을 못 박아 논 것이지만 일본의 식물학자라는 사람들이 번역하면서 한국, 조선 의미의 koreana 쏙빼고 개 “字”를 붙여 개나리로 탈바꿈 해 놨다. 나리 종류의 꽃이 있는데 나리 꽃보다는 꽃의 아름다움이 떨어진다고 천한 품격(品格)의 이름을 붙여 빼도 박도 못하게 해놨다. 이와같은 어처구니없는 동·식물 명들이 허다 하지만 또 다시 개명 (改名)하는 것도 문제가 많아 관련 학자들이 포기한 상태다. 사회 현상에 진실을 밝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식물명에서 보듯이 평소에 과학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인식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