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종교론
A. N. 화이트헤드 / 종로서적 / 1986.8.1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종교론을 통해 종교사상과 신학이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올 수 있는 사상적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 (A. N. Whitehead)는 그의 특이한 종교관과 유기체적 우주관으로 인해서, 신과 우주와의 관계 즉 신과 우주 만물과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인물로 평가되리라고 사료된다.(역자의 각주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각각 역사 속의 두 영성체험의 순간들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즉 불타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이다. 세계를 깨우치기 위해서 불타는 그의 교리를 주었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 교리에 관심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나 아마도 종국에 가서는 불타의 교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의 삶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종교론)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신 (神)의 화육(化肉)에 의해서 살아가고 잇다. 신은 세계안에서의 연결하는 요소이다. 신은 우리들 자신의 의식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심사들에 치우치지 않는 목표들에로 우리의 목적들을 향하게 하는 세계 안에서의 기능이다. 신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에 대한 평가이다.(종교론) 신은 느낌을 위한 유혹자며 욕구의 영원한 충동자다. … 신의 귀결적 본성은 이 세계에 대한 심판이다. 신은 세계가 바로 자신의 생명의 직접성 속으로 들어올때에 그 세계를 구원한다. … 신은 일자이고 세계는 다자라고 말함이 옳듯이 세계는 일자이고 신은 다자라고 말함도 옳다. 신이 세계를 초월한다고 말함이 옳듯이 세계가 신을 초월한다고 말함도 옳다. _ 역자 류기종 저 ‘종교와 신과 세계’ 중에서
○ 저자소개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 ~ 1947)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 (Fellow)과 수석 강사 (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 (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1924~1937)를 역임했다. 그는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그의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 (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 (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 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 역자 : 류기종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드루 대학교 (Drew University)대학원에서 신학과 종교철학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학위 (Ph. D.)를 받았다. 연세대 신학과와 교육대학원, 연합신학대학원, 서울신대, 호서대, 강남대 강사를 역임했고, 한국과 미국에서 약 15년간 목회도 하였다. 목원대학과 협성대학, 미주감리교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조직신학, 현대신학, 종교철학, 과정신학, 그리스도교 영성 그리고 영성신학 등을 강의하였다. 2006년 LA에 ‘평화영성신학연구원’을 창립하여 원장으로 있으면서, 국내외를 왕래하며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영성강좌와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Claremont 대학의 ‘과정사상연구소’ 한국분과 학술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영성신학과 과정신학을 접목하는 일과 함께 ‘LA 연경반’ (다석사상 연구회) 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나가주나의 공사상과 틸리히의 신관』(경서원, 1986),『기독교 영성: 영성신학의 재발견』(열림, 1990/개정판, 은성, 1997),『대화의 신학』(은성, 2000),『기독교와 동양사상』(황소와 소나무, 2003),『팔복의 영성』(kmc출판국, 2008),『주기도문의 영성』(kmc출판국, 2008),『예수의 영성』(kmc출판국, 2009)이 있고, 번역서로는『화이트헤드의 종교론』(종로서적, 1986),『존 캅의 과정신학』(열림, 1993/개정판, 황소와 소나무, 2003), 화이트헤드의 글 편역,『과정신학의 기초원리: 종교와 신과 세계』(황소와 소나무, 2003)가 있다.
○ 역자의 글
– 종교와 신과 세계 _ 류기종 저 (황소와소나무 / 2003)
宗敎와 神과 世界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 (A. N. Whitehead)는 그의 특이한 종교관과 유기체적 우주관으로 인해서, 신과 우주와의 관계 즉 신과 우주 만물과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인물로 평가되리라고 사료된다.(역자의 각주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각각 역사 속의 두 영성체험의 순간들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즉 불타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이다. 세계를 깨우치기 위해서 불타는 그의 교리를 주었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 교리에 관심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나 아마도 종국에 가서는 불타의 교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의 삶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종교론)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신(神)의 화육(化肉)에 의해서 살아가고 잇다. 신은 세계안에서의 연결하는 요소이다. 신은 우리들 자신의 의식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심사들에 치우치지 않는 목표들에로 우리의 목적들을 향하게 하는 세계 안에서의 기능이다. 신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에 대한 평가이다.(종교론) 신은 느낌을 위한 유혹자며 욕구의 영원한 충동자다……신의 귀결적 본성은 이 세계에 대한 심판이다. 신은 세계가 바로 자신의 생명의 직접성 속으로 들어올때에 그 세계를 구원한다……신은 일자이고 세계는 다자라고 말함이 옳듯이 세계는 일자이고 신은 다자라고 말함도 옳다. 신이 세계를 초월한다고 말함이 옳듯이 세계가 신을 초월한다고 말함도 옳다.(신과 세계)
–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Alfred N. Whitehead, 1833-1947)
20세기 들어와서 기독교와 불교의 긴밀한 관계성과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이다. 그는 런던 대학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온 해인 1924년 2년 후인 1926년에 발표한 그의 종교론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란 책에서, 불교와 기독교 두 종교의 특색과 함께 두 종교의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1) 최고의 합리적 종교로서의 불교와 기독교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주된 합리적 종교가 있는데, 이들은 곧 기독교와 불교이다. 즉 기독교와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발전된 우주관에 적합한 합리화의 과정에 진입한 종교들이다. 이 들 두 종교의 주변에는 경쟁적 종교들이 있었지만, 이 두 종교는 이념의 명료성, 시유의 일반성, 도덕적 품위, 존속의 능력, 그리고 세계로의 확대의 폭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성질들을 골고루 구비한 점으로 해서 그들의 경쟁자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들 두 종교를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판단한다면 현재 쇠퇘(퇴보)의 국면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두 종교는 현재 세계에 미치는 과거의 위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두 종교의 특색:
(1)화이트헤드에 따르면 기독교와 불교는 두 위대한 이물인 불타와 그리스도의 영적 체험에 기초한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의 구원의 도리를 인간과 우주 만물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적 이해를 통해서 도달하려는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활동하는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불타는 인류에게 위대한 교리를 준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표현이 불교와 기독교의 특색을 가장 잘 들어내는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불교는 다분히 혹은 본래적으로 철학적/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불교를 응용된 형이상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례라고 말하며, 따라서 불교가 종교를 탄생시키는 형이상학 즉 종교적 기능을 하는 형이상학/철학 원리인 반면 기독교는 항상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종교 즉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정항에서 시작해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종교의 특색을 지녔다고 말한다.
(2)화이트헤드가 이해한 기독교와 불교의 또 하나의 특색(유사점과 차이점)은 악의 문제에 관해서이다. 기독교와 불교 둘 다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위대한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는 이 중대한 악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즉 악의 극복의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불교는 물질적 또는 감정적 경험의 세계의 본성 자체 안에 악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것을 깨닫게 하는 지혜는 그러한 경험의 방편이 되는 개체적 성격들로부터 “놓임”을 받도록 깨닫게 하며 또한 그렇게 삶을 살도록 유도한다.
기독교도 역시 악 혹은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놓임”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악의 문제에 있어서 불교보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는 덜 분명하지만, 반면에 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담고 있다. 즉 기독교는 처음에는 악이 세계 전반에 내재한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악은 개개인의 삶/사실 그 자체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개인의 숭고한 이상의 실현과 선을 지향하는 삶을 통해서 즉 선으로서 악을 극복하려 한다고 본다. 따라서 화이트헤드는 악의 문제이 있어서 즉 악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극복의 방법에 있어서 두 종교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3. 두 종교의 퇴보의 원인과 대화의 필요:
화이트헤드는 기독교와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진보된/발전된 위대한 종교들이지만 현재의 상태는 그들의 발생 초기에 비해서 쇠퇴의 과정에 들어서 있다고 보고 있다. 두 종교의 쇠태/퇴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두 종교의 폐쇠성 즉 두 종교가 각각 배타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져서 상대방에게서 더 배우려 하지 않고 자기만족에 빠져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두 종교가 초기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두 종교가 문을 열고 대화하며 상대방에게서 배우려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대 사상에 있어서 결정적 영향을 끼친 기독교와 불교의 퇴보는 부분적으로는 이들 각 종교가 지나치게 상대방으로부터 피해 숨어버린 상태에 기인한다. 배움에 대한 자기 충족의 폐쇄성과 무지한 열광주의자들의 확신이 결합하여 각 종교를 자기 자신의 사유의 형식 속에 갇혀 있게 만들었다.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한 상호간의 탐구와 고찰 대신에 그들은 자기만족과 메마른 상태로 머물러 온 것이다 (Whitehead, 종교론, 류기종 역, 제4장, 진리와 비판, p.111).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와 불교가 각각 자기 종교의 쇠퇴(퇴보)적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보다 높은 단계로의 성숙을 위해서 자기 종교의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두 종교 간의 긴밀한 상호 교류와 대화가 요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화이트헤드는 두 종교 간의 관계를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 즉 서로에게서 배워야 하는 상보의 관계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상호교류는 양 종교를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겠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