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개념 있는 그리스도인(I) 딤후 3:1-5
전에 유명한 모배우가 자신의 자서전을 발간하는 기자회견의 자리에서 다른 여인과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고백인가? 자신은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개념 없는 사람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상처받는 아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모르고 지나가도 될 일을 굳이 밝혀서 상처를 주어야만 했는가? 어쩌면 불륜을 저지른 것 보다 그 사실을 밝힌 것이 더 개념 없는 행동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개념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만 살겠다고 남을 죽이는 사람들,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는 사람들, 기차에서의 막 말하는 사람들, 아무데서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결혼한 아들에게 잘하라고 며느리를 야단치는 시어머니, 그리고 가장 개념 없는 사람들은 아이의 손을 붙잡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개념이 있다, 없다의 차이는 많이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을 하고 사느냐의 차이이다. 물론 개념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의 차이이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도 생각하면서 무단횡단을 하고, 아이의 팔을 당기면서 새치기를 하는 엄마도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는가? 자기 생각 밖에 못하고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개념 없는 사람, 무개념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팔을 잡고 무단 횡단하는 부모가 한 번 더 생각하면 과연 이 모습을 보고 내 아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를 생각하면 멈칫하게 되고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념 있는 사람의 생각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개념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가?
한국서 목회 할 때 병원에 심방을 갔는데 6인실이었다. 조용히 들어가서 환자와 이야기를 하고 말씀 한 구절을 읽어드리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리고 통성기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몇 명의 환자들이 있었고 그 환자들 가운데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환자가 조금 심통이 난 것 같다. 텔레비전의 볼륨을 찬송가소리에 질세라하고 점점 높이 올렸다. 그래서 기도소리,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병실을 가득 메웠다. 목사인 내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환자심방을 하고 나간 후에 환자들이 얼마나 기독교 비난을 할 까 생각하니까 얼굴이 화끈 거렸다. 물론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환자에게 위로하고 힘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병실에는 그 환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한국에서 휴게소에 갔는데 화장실에서 일을 보려다가 깜짝 놀랐다. 소변기에 스티커가 하나 붙혀 있었다. 여기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붙혀 있었다. 그리고 밑에 “예수님 믿으면 평생 후회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여져 있다. 조금 더 이것을 긍정적으로 봐서 어떤 사람이 소변기 앞에서 일을 보다가 이 글을 보고 감동이 되어서 예수를 믿는 다고 하자! 그러나 과연 이것을 보고 믿는 사람과 이것을 보고 더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면 이것은 과연 올바른 전도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한국에선 지금 인천 아시안게임이 한참 진행 중이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십자가를 들고 빨간 조끼를 입고 전도지를 주는 모습들이 SNS에 올라오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예수를 믿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접할 환경이 못 되어서, 아니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못 들어서, 말씀을 접할 수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시대인가? 그렇지 않다. 텔레비전을 키기만 하면 서너개의 케이블 채널에서 예배가 나오고 찬양이 나오고 설교가 나온다. 지금 말씀을 못 들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복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안티를 만들어낸 이유>
한국 기독교가 이렇게 비난받고 안티를 만들어낸 이유는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는 기독교가 정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정치를 할 때에 아무리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할지라도 기독교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대신 기독교적인 정신을 가지고 정치를 할 때에 진짜 기독교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공공성을 띤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영삼,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독교색채가 너무 드러났기 때문에 도리어 기독교가 혜택은 받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비난과 핍박을 받게 된 것이다. 교회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늘 주변인인 갈릴리에서 사역하셨다. 교회는 권력의 핵심이나 정권과 연결되어지면 금방 부패되어지고 타락으로 가게 되어 있다 차라리 교회가 핍박을 받고 환난을 받으면 교회는 건강해져갔다.
둘째는 기독교가 이웃과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교초창기에는 교회가 들어오면 교회주변에 집값이 올라갔다고 한다. 감옥 하나를 세우는 것 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회는 점점 스스로의 벽을 세워갔고 담을 높여갔다. 자신들만의 종교집단화가 되어간 것이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끼리도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통의 관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가까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눈치를 보고 어쩌다가 주일예배에 한 번 드리면 등록하라고 성화를 해서 그 교회에 다음부터 갈 수가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웃과 소통하고, 교회와 소통하기 보다는 자기 안에 스스로의 만족만을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게 되면서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셋째는 교회만 다니는 선데이 크리스천들 때문이다.
교회가 보편화되면서 교회를 나오고 출석하는 것이 하나의 교양이며 문화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일예배 한두 번 가놓고 교회를 다닌다고 나발을 불어낸다. 그리고 직장에서 나쁜 짓이라고 하는 것은 다하고 가장 못되고 무례하게 구는 나이롱 신자들이 많아지면서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게 되었다. 목회자도 정규과정이 아니라 아닌 통신과정, 속성과정으로 목회자가 되면서 사회에서 지탄을 받았던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면서 불신이 더욱 커져간 것이다.
넷째는 예수도 잘 믿고, 신앙생활도 잘하는데 잘못 된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예수도 잘 믿는다, 교회생활 아주 잘 한다. 새벽기도회 안 빠진다, 헌금생활도 잘 한다, 교회에서 봉사도 잘 한다, 그런데 명절에, 친척행사에 얼굴도 비추지 않는다. 또 친척들에게 죽어도 밥 한 끼를 안 산다. 직장에서 불법은 다 행한다. 그러면서 교회행사가 있는 날은 직장상사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교회를 간다. 이런 사람들이 밖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그의 삶의 태도나 행동을 보면서 기독교를 비난하고 또 기독교인들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는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