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고고학 전문웹 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 ‘아우구스투스 업적비’에서 “예수 출생시 호적조사의 역사적 사실성” 언급
‘Caesar Augustus: An Archaeological Biography’ 주제로 게제
성서고고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웹사이트 ‘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biblearchaeologyreport.com)’는 2019년 12월 13일 자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고고학적 전기’ (Caesar Augustus: An Archaeological Biography)란 제목으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실시했던 인구조사가 예수 탄생 시의 호적조사를 언급한 신약성서 누가복음 2:1-3 속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글을 게재하고 있다.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 (퀴리니우스)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눅 2:1-3)
성경에는 비록 단 한 번밖에 언급되지 않지만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나사렛 예수 탄생의 기록을 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아우구스투스가 인구 조사를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그는 600년 전에 기록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도록 도왔다 (미가 5:2).
많은 사람들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집권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와 내분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가 통치하는 동안 로마 제국 전체에 위 한 수많은 인구 조사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업적비’ (라: Res Gestae Divi Augusti)에는 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로마 시대의 가장 중요한 비문 중 하나인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비 (라: Res Gestae Divi Augusti)는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업적을 설명하는 자서전이다. 유언장에서 그는 죽음에 따라 로마의 영묘 앞에 두 개의 청동 기둥에 자신의 업적비를 표시하라는 지시를 남겼다. 청동 비문은 살아남지 못했지만 4개의 사본 조각은 살아 남았다.
① 앙카라 사원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거의 완성된 라틴어 텍스트, ②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된 삼중 아치형 관문의 중앙 통로 측면에서 얄박 근처의 피시 디안 안티오크에있는 부분 라틴어 텍스트, ③ Apollonia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단편적인 그리스어 번역, ④ 사르 디스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사원일 가능성이 있는 벽에서 발견된 단편적인 그리스어 번역 등이다.
이 4곳의 업적비 자서전에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인구 조사를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했다고 묘사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번째 집정관으로[BC29] 로마 민중들과 원로원의 명에 의해 나는 귀족들의 숫자를 늘렸다. 원로원의 명부는 세 번을 수정했다. 6번째로 집정관역을 맡았을 때[BC28]는 동료인 마르쿠스 아그리빠와 함께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이 인구조사는 41년 만에 실시되는 것이다. 이 인구조사에서는 4,063,000명의 로마 시민들이 등록되었다. 가이우스 센소리누스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가 집정관일 때 나는 다시 한 번 인구조사를 실시했다.[8 BCE] 이 조사에서는 4,233,000명의 로마 시민이 등록되었다. 세 번째의 조사에서는[BC14], 이번에도 역시 집정관의 권한으로, 그리고 내 아들 티베리우스와 함께 실시했으며, 4,937,000명이 등록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내가 13번째 집정관을 맡고 있을 때 원로원과 기사원(equestrian order), 그리고 전 로마 시민들이 내게 ‘조국의 아버지(Father of my Country)’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인 고대사」에는 이 사건을 언급한 듯한 내용이 나온다.
“모든 유대인들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유대 왕 정부에 충성을 표시할 때 이 사람들(바리세인들)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 바리세인들의 숫자는 6천명이 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인구조사는 로마제국 전 영토에 걸쳐 실시됐을 것으로 짐작한다. 인구조사, 또는 호적등록이 있었기 때문에 황제에게 충성을 거부한 바리세인들의 숫자가 6천명이 넘는다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같은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무엇을 추론할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누가가 예수 탄생을 기록했을 때 실시되었던 인구조사의 정확한 날짜를 끄집어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모든 주장은 추측에 불과하다.
로마 제국 전체에 걸친 인구조사를 완료하는 데는 몇 년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기원전 6년경에 태어났다면 누가는 기원전 8년에 실시된 인구조사를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로마 제국에 살던 사람들이 황제를 ‘조국의 아버지(Father of my Country)’라 부르며 충성을 맹세했을 때 (성경 속의) 호적등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는 4세기의 역사학자 오로시우스의, ‘누가가 언급한 인구조사는 제국 영토 내의 모든 국가들이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하나의 동일체의 일부가 된 그 사건을 말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로마제국 영토 내의 전 민중둘이 황제에 충성을 맹세한 사건이 기원전 2년경에 일어났다고 본다면 예수 탄생 시간 설정과 잘 들어맞는다.
어느 쪽이든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으로 실시된 성경 속의 인구조사 기록은 황제의 칙령에 의한 인구조사라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된다. 또, 누가가 언급한 호적등록이 적어도 두 번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들어맞는다.

제공 = 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 (biblearchaeologyreport.com)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