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논문
코리아(鳳)와 차이나(龍)의 기원과 미래
중국인들은 셈, 함, 야벳 가운데 누구의 후손일까? 용(龍)의 나라 중국의 성경상의 기원을 우리 겨레의 그것과 대비해 정리해보자. 대개 성도들은 함을 흑인종, 야벳을 백인종, 셈을 황인종의 조상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중국인도 아시아의 황인종이니만큼 의당 셈의 후손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시안 이라고 모두 셈의 후손은 아닌 것이다. 일례를 들면 인도인들은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말도 있듯이 백인종의 조상인 야벳 계열의 백성이다. 중국인들 역시 셈의 후손이 아니다. 그들은 흑인종의 근간이 된 함의 후손이다. 이 또한 내증(성경의 증거)뿐만 아니라 외증(성경 밖의 증거)까지도 충분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국인을 부를 때 ‘시노(Sino)’족이라고 한다(영어 사전에서 ‘Sino’를 찾아보라). 이 ‘시노’는 함의 후손 ‘신(Sin)’ 족속에 해당된다(창 10:17). ‘시노’의 어원이 ‘신’인 것이다(강해설교의 대가인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도 그의 창세기 강해서인 ‘천지창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은 가나안의 아들이요,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이다(창 10:6; 15). 支那(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그러니까 중국인은 셈의 자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인 것이다.
이사야 49:12에는 열국에 분산된 유대인들의 고토 귀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있다.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사 49:12). ‘북방’은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 주로 러시아의 유대인을 뜻한다. ‘서방’은 주로 북남미를 가리킨다. ‘시님’은 가나안의 아들 ‘신’의 후손 곧 ‘시노’족이 살고 있는 중국을 뜻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나치 학살을 피해 세계 각지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때 일부 유대인들은 중국 땅까지 도피했는데, 상해에 25,000명(당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해만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했다), 북경에 5,000명의 유대인이 거주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재건 이후 이사야 49장 12절의 예언은 명확히 성취되었다. 중국은 ‘시님’으로서 함의 손자 ‘신’의 후손이 거주하는 땅이다. 바로 이것이 중국인을 ‘시노(Sino)’족이라고 부르게 된 역사적 연유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생물학적 근거도 있다. 2005년 1월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소재 동물연구소 유전생물학실험실의 장야핑(張亞平) 원사는 현재의 중국인들은 아프리카인과 조상이 같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인의 유전자본체(DNA)에서 Y염색체를 추출해본 결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선조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대체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의 조상이 고대 아프리카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문화일보 2005. 1. 15).
게다가 중국인들은 古來(고래)로 龍(용) 숭배하는 종족이다. 이것은 그들이 함의 자손임을 보여주는 현저한 外證(외증)이다. 에덴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옛 뱀은 네 발로 걸어 다니던 ‘들짐승’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저주를 받아 흙을 먹으며 배로 다니게 된 것이다(창 3:1; 14). 용은 신비감을 자극하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들짐승’처럼 몸에 네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바로 옛 뱀의 형상인 것이다. 이 옛 뱀인 용을 지극히 사랑하는 지나인들은 셈의 후손일까? 그들이 고대로부터 붉은 색을 좋아하며 용을 숭배해왔다는 사실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반증해 주는 것이다. 셈의 후손은 옛 뱀인 용을 숭배하지 않는다.
중국인이 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용의 고향이 바벨론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더더욱 확실하다. 왜냐하면 함의 손자 니므롯이 세운 도시가 바벨론이기 때문이다. 용은 바벨론의 聖獸(성수)였다. 이 용을 바벨론에 살던 지나인의 조상들이 고대에 동양으로 갖고 들어온 것이다. 당시 그들은 곤륜산을 넘어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中原(중원)으로 들어왔다. 곤륜산은 일명 ‘華土(화토)’라고도 한다. ‘화토’를 지나왔다는 뜻에서 그 종족을 ‘華族(화족)’이라 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이 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셈의 후손인 한국인은 龍(용)이 아니라 鳳(봉)을 숭상했다.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서 ‘스발’(시베리아~만주)로 천동했던 한국인의 선조들은 중국인의 조상들과는 달리 새인 鳳(봉)을 종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삼았다. 동이족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믿음 아래 하늘과 땅의 매개체인 새를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集安(집안) 5호분 4호묘의 고구려 벽화에는 태양 속에 들어 있는 세발 달린 까마귀 즉 三足烏(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우리 선조들이 대홍수 후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좇아 동쪽으로 올 때 그들 앞에서 까마귀가 동행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까마귀를 하나님이 친히 기르시는 귀한 새로 언급하신 바 있다(눅 12:24).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이 까마귀를 위하여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말씀이 두 번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욥 38:41, 시 147:9). 이 얼마나 귀하고 특별한 새인가? 삼족오는 ‘三(석 삼), 足(발 족), 烏(까마귀 오)’라는 글자처럼 세 발 달린 까마귀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발 까마귀는 동이족이 吉鳥(길조)로 여기던 신성한 새이다.
그 발을 세 개로 그린 것은 까마귀를 삼신 하느님의 새, 곧 ‘하늘 새’를 표시하기 위함이었다(우리 조상들이 섬긴 하느님은 ‘삼일신’ 곧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 바로 이 ‘하늘 새’가 吉鳥(길조)인 봉황의 기원이다. 봉황은 ‘하늘 새’가 점차 더 멋진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이족의 삼족오는 곧 ‘하늘 새’이고 이 ‘하늘 새’가 봉황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봉황’은 정확히 말하자면 ‘하늘 새’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鳳(봉)은 龍(용)에게 눌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단군조선 해체 이후 용을 숭배하는 ‘시님’ 땅의 함족에게 우리 겨레가 지속적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징그럽게 생긴 龍(용)이 鳳(봉)보다 우월한 상징적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한족은 오랜 세월 맞싸워 온 동이족의 상징 동물을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고자 용을 황제, 봉을 황후의 상징 문양으로 썼다. 용맹하기로 소문난 동이족의 느낌을 약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여성화시킨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봉을 용의 아랫단계로 생각하는 오해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만약 암수의 개념으로 본다면 어떻게 용과 봉이 짝을 이룰 수 있을까? 생김새도 다르고 태어난 환경도 다른데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때에 찬 섭리와 경륜에 따라 봉(코리아)이 용(차이나)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두고 보라. 숨어 있던 鳳(봉)은 자태를 드러내 비상하고 승천하던 龍(용)은 떨어지리라!
유석근 목사(알이랑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사상고사학회 선임연구원)
